2016년 8월 21일 일요일

테트리스

어렸을 때 오락실에 테트리스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잘 하지 못하는 그 게임을 유독 굉장히 잘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 손이 빠르고 느리고의 문제가 아닌...유독 테트리스를 잘 하는 친구들. 나중에 온라인으로 대전할 수 있는 형태로 게임이 발전하고 난 이후 사람들과 게임을 같이 해보면서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나, 정말 테트리스를 못했다. 게임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유독 테트리스는 못했다.

결혼 후 아내가 테트리스를 잘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두대의 닌텐도DS를 샀으니까...) 아내와 수없이 대전을 했지만 정말 한번의 예외 없이 백전 백패. 그 비법이 신기해서 아내가 게임을 할 때 옆에 붙어서 어떻게 하는지 관찰을 해봤다. 정답은 뜻밖의 곳에 있었다. 나는 빈칸이 생기면 어떻게든 거기를 블럭으로 메워야 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하다 흐름이 끊겨서 게임을 망치곤 했는데 아내는 빈 곳에 개의치 않고 그 윗줄부터 다시 쌓아 나가는 것이었다. 빈 곳을 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게임을 하니 실수를 하더라도 영향을 덜 받았고 당황하지 않으니 침참하게 블럭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지점에서 포기. 깨달았다고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초반에 한두번은 나도 빈 칸에 신경쓰지 않고 게임을 잘 진행했지만 속도가 빨라지고 옆사람에게 블럭을 지워서 보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빈칸을 계속 신경쓰고 있었다. 아내에게 게임을 지는 시간이 조금 연장됐을 뿐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살면서 가끔은 그런, 테트리스를 놓을 때 처럼 내가 한 실수를 개의치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필요햘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많은 승부가 나는 것도 게임과 비슷하다.

꼼꼼함은 대범함과 함께 어울어 질 때 강점으로 살아나는 듯 하다. 대범하지 못한 꼼꼼함은 조바심일 뿐이다. 이 조바심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참 난감하다. 타고난 성격인 것을...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딴 짓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쓰지 않은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페이스북에 가끔씩 짧게 흔적을 남기고는 있지만 '글' 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의 것들은 아니다. 글의 길이에 의미를 두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적어도 생각을 정리/표현 한다는 측면에서 사색의 과정 없이, 또는 시간의 세례 없이 남기는 문자의 조합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글을 쓰는 것이 삶의 탈출구였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외면하고 살게 되었을까.

비단 글쓰기 뿐만은 아니다. 사진이 그랬고,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 그랬다. 그냥 하고 있으면 즐거운 또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나만의 취미(달리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손대지 않게 됐다. 지금에 와서는 회사-집 의 반복되는 삶속에 그저 하루하루 '지내고' 있을 뿐. 가족들과의 시간이 무의미 한 것은 분명 아니나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이 어쩌면 근래 내가 많은 허전함을 느끼는 근본 이유일 수도 있다.

사진을 다시 시작해 보거나 프로그래밍을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나 시간이 정말 많이 드는 일들이라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보다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발목을 잡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쪽에 가깝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비해 내가 가진 역량 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딴짓을 하는데 시간을 쓰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걱정이 되는 탓에 딴짓은 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더 생산적인 무언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딴짓이 걱정되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

정말로 다시 시작해볼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2016년 2월 28일 일요일

무제

삶이 힘든 이유는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다.  

애초에 내 삶이 힘든 이유를 남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은 더우기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 들불처럼 번졌던 멘토링이 순식간에 사그러 지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 이면에 깊게 자리잡은 선의와는 별개로 누군가의 어려운 상황을 분석하고 조언한다는 건 서로에게 쉽지 않다.

45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어제 집에 돌아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길게 나가 있었던 출장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출장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업무적으로도 그렇지만 혼자서 견뎌내는 시간들이 전보다 더 힘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지냈다. 주말이면 근처 산을 찾아가 등산도 하고, 뮤지엄도 찾아가고, 쇼핑도 다니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등, 휴일이 되면 마트에서 맥주를 한박스 사다가 싼값에 마음껏 취하곤 했던 지난 출장과 비교하면 훨씬 건강하게 그리고 긍정적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인가, 애틀란타 수족관 인파들 사이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상어를 4시간 가까이 멍하니 보고 있는 스스로를 인지하고나서 알게 됐다. 지금의 난, 삶이 참 힘들구나...하고. 출장이 힘든게 아니었다. 스스로의 삶을 힘들어 하는데 그 시기에 출장을 나온 것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 자신이 싼 값에 위로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싼 값에 구한 위로는, 내 고민과 어려움을 저렴하게 만들 뿐이다. 어쨌든 혼자 나와 있는 그 시기를 힘들어 하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쓸 수는 있었다.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최소한 시선을 밖이 아닌 내면으로 향하는 계기는 되었다. 

고민되고, 힘들다. 인정하자. 인정한다고 바뀔 건 없지만 최소한 아니라고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아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