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9일 일요일

Beethoven: Symphony No. 9 "Choral" - Allegro Assai Movement 4

일에 관련된 내용이라 구체적으로 블로그에 적을 수는 없지만 어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뭔가 기분을 좀 더 즐겁게 하고 싶어 음악을 이리저리 찾다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이 걸렸다. 정확하게는 Symphony No. 9 "Choral" - Allegro Assai Movement 4. 듣고 있는데 흥이나서 지휘하는 손짓을 혼자 호텔방에서 할 만큼 정말 좋았다.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음악. 그 순간의 내 기분에 너무나 적절한 곡이었다.

음악을 링크를 걸고 싶어서 유튜브를 찾다가 단지 음악이 나오는 것 보다 더 적당한 동영상을 찾았다. 보면서 '그래, 음악을 하는데 폼잡는 것 필요 없이. 이런게 음악 아니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감상하시기를.


2015년 6월 7일 일요일

Haruki Murakami, Piet Mondrian and William Ackerman

1.
나는 메세지를 인위적으로 전달하려 애쓰는 글이 싫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효과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글에서 취하는 과한 상황 연출이나 강조 등이 불편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마치 긴장감을 견디기 싫어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메세지성이 강한 글이나 소설을 아주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빠져들기도 한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이나 양귀자의 희망 같은...- 그래도 '선호하다' 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메세지성이 아주 강한 글은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선호하는 글은 건조하게 '이건 무엇이다' 라는 식으로 내뱉는, 마치 무언가에 대한 설명문 같은 글이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 바로 그 이유, 메세지성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상징성이 강하고 메세지 역시 강렬하다. 다만 작가가 그것을 굳이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상황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책 속의 상황을 '그려내듯 보여' 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적인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전혀 없다. 독자에게는 아주 간단한 선택지만 주어질 뿐이다. 소설속 상황을 무덤덤하게 '느끼'거나 책을 덮어버리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 그토록 하루키의 작품들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누군가에게 그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대단히 곤란해 한다. 무언가 메세지로 구체화된 것을 '찾아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보고 '소설이 그리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게 어렵다. 하고 싶지도 않다. 내 '느낌'을 '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왜곡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자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설명은 못하는데 그냥 그의 글이 좋다' 정도가 될까.

2.

한때 피트 몬드리안의 컴퍼지션 시리즈에 정신없이 빠져 지냈던 적이 있다. 원래부터 곡선 보다는 직선을 좋아하긴 했지만 몬드리안의 컴퍼지션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며칠동안을 조금이라도 고품질의 이미지를 웹에서 찾기 위해-원작을 국내에서 볼 방법은 없으니- 다른 일을 못했을 정도로 흠뻑 빠졌었다. -중학생때인가 차가운 추상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암기하라고 배운 것은 논외로 치자. 그 땐 그의 작품도 제대로 보지 않고 몬드리안 = 차가운 추상 이라고 외우기만 했으니 - 이 때가 박사학위를 받기 직전이었는데 미술에 관심을 갖게된 첫번째 경험이었다.

하루키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에서도 어떤 메세지를 끌어 낸다는 것은 - 적어도 내게는- 불가능하다. 그냥 작품 자체로 보고 좋으냐 아니냐의 구분만 가능할 뿐. 선과 면 그리고 색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이 왜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받는것이 싫어서 어디가서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도대체 내가 좋다는데 왜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것인지.

3.

대학교 1학년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 혹은 그 즈음.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으니- 그때만 해도 아직 학교 앞에 음악사가 있었고 지나가다 문득 들어가서 CD를 뒤적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처음 보는 앨범을 집어들고 나왔다. 이유는 앨범 재킷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이 앨범이 William Ackerman 의 Passage 라는 앨범이다. 그리고 이후 몇년간 거의 이 앨범을 끼고 살았다. 그 전까지는 기타 연주곡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앨범으로 기타 연주곡에 대단히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안타깝게도 이 앨범만큼-심지어 William Ackerman의 다른 앨범조차도- 마음에 드는 기타 연주곡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 음악적 취향은 건반악기 쪽으로 치우쳐 있는 듯 하다.

가사가 없어 '언어'의 형태로 내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없고, 마치 창문 밖의 풍경을 덤덤하게 내게 보여주는 듯한 그런 건조하고 덤덤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무엇을 느끼든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일 뿐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그는 내게 어떠한 느낌도, 메세지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 건조함속에 온전히 내가 받는 그 '느낌'...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원시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토록 빠져 살았던 것 같다.

4.
지난 며칠을 아내가 예전에 선물해준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다. 선물 받은 지는 한참이 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가 주말동안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이, 몬드리안의 그림이 그리고 애커맨의 기타 연주가 생각났다. 저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래전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을 다시 구해서 봐야겠다. 애커맨의 CD도 다시 찾아서 듣고.

감기약을 먹고 있는 탓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게, 그래서 찬장에 놓여 있는 반쯤 남아 있는 나파벨리산 와인이 무척이나 아쉬운 밤이다.

2015년 5월 10일 일요일

Wicked

출장을 다니면서도 휴일이면 그저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일반적이었다. 뭘 해도 그닥 즐겁지도 않고 흥미도 일지 않았기 때문.

오늘은 예외적으로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Wicked. 오리지널 극장인 Gershwin theatre 가 호텔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데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시작 15분전.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세차게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