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2일 금요일

Darmstadt 에서의 뜻하지 않은 휴식

한국 시간으로 6월 22일 15시 37분. 원래대로라면 지금쯤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아마 강릉으로 가기 위해 장기 주차장으로 셔틀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유럽에 있으며 Frankfurt 도 아닌 Darmstadt 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Darmstadt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신경도 안썼던 곳이었던 탓에 아무런 정보도 없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까지는 27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아주 멀다고 할 수도, 가깝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곳. 


여기에 오게 된 건 다름 아닌 항공기 기체 결함으로 이륙이 취소되면서 졸지에 공항 미아가 된 200여명의 승객들을 아시아나 항공이 인근 호텔로 분산 수용 했기 때문이다. 종종 항공기가 결항되고 어쩌고 하는 뉴스를 접한 적은 있지만 막상 내가 타려고 했던 항공기에 기체 결함이 발생해서 이륙이 취소되는 상황을 접해보니 무척이나 난감했다. 그것도 탑승 시각 2분 전에 탑승구 앞에서 바로 듣는 기분이란.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그 자리에서 항공사 직원들에게 큰소리로 따지거나 해서 오히려 더 정신 사납게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 모두들 조용히 항공사의 설명을 듣고 제시하는 조치에 따라 차분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큰 혼란 없이 네곳의 호텔에서 온 버스에 나눠 타서 빠른 시간내에 움직일 수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다른 부위도 아니고 날개에서 손상이 발견되었다는데 무작정 타고 가겠다고 고집 부릴 수도 없고. 한가지 문제라면 너무 배가 고프다는 것. 기내에서 저녁 식사를 먹을 생각에 아무것도 안먹고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도착한 호텔에서 먹는 저녁 식사가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객실 자체도 유럽 출장 다니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호텔보다도 깨끗하고 좋았다)


내가 탄 버스는 주로 혼자인 여행객들이 타고 온 버스라 식당에 가선 끼리끼리 몰려 앉기 보단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내가 같이 앉은 사람들은 업무 출장을 나온 나와 동갑인 남자와 휴가를 내고 2주간 유럽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간호사였다. 저녁을 먹고 함께 맥주를 한잔 하면서 제법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이 상황에 대해 짜증을 냈다면 그렇지 못했을텐데 세명 다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다. (어쨌든 혼자 휴가를 내서 2주간 유럽 여행을 다닐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긴 그 나이어린 간호사분께 찬사를. 대단한 용기와 실행력.)

고민을 계속 했던 것은 이왕 이렇게 된거 법인으로 돌아가서 좀 더 일을 할까 했는데 고민 끝에 그냥 호텔에 남아 있기로 했다. 우선 비행기 시간까지가 조금 애매해서 법인에 갔다가 다시 공항에 갔다가 하는 사이에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과(여기서 법인까지 가는 교통편도 애매하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하루 정도 좀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렇게 하루 밤 휴식을 취하고 나서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와 잠시 주변을 거닐었다. 가볍게 둘러봐도 높은 마천루 하나 눈에 띄지 않고 독일 특유의 가옥 형태를 띤 주택들이 적당히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 여기가 다운타운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원래가 좀 이런 분위기의 도시인건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만 건물들 중에 유난히 고풍스럽게 보이는 건물들이 있어서 (black forest 의 castle 유적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의아해 했었는데 구글지도를 켜놓고 근처 명칭을 좀 봤더니 바로 옆이 대학이었다. 대학 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역사가 수백년이 된 듯 하던데 유럽 지역의 대학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시간도 남겠다 대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이리저리 근처를 구경하는데 대학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건물들이 나오는게 아니라 멋진 공원과 같은 곳이 나오고 그 공원을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숲 너머에 대학 건물들이 있는 방식으로 나무와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와- 이렇게 멋있을 수가. 내 팔로 세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이 셀 수 없이 심어져 있는 그 공원을 보면서 오로지 아스팔트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내가 졸업한 모 대학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는지 몰랐는데 문득 시계를 보니 한시간이나 근처를 걷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공기가 깨끗한 이곳에서 수백년은 된 듯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푸른 공원을 산책하면서 취하는 사색과 휴식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한 듯 하여 여러모로 어떻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중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그런 시간을 갖게 됐다.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대학생들 사이로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으며 만끽하는 싱그러움은 지난 며칠간의 피로를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은 호텔 밖이 내려다 보이는 내 객실에서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글을 타이핑 하고 있다.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 도시의 풍경에 어울리게도 이 좋은 호텔마저도 너무 높지 않은 층수를 갖고 있어서 아래 사진처럼 적당한 높이에서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난번에 왔을 때 지냈던 호텔에서는 잔디밭에 야생 튤립이 중간중간 꽃을 피우고 있어서 무척이나 예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빨갛고 노란 야생 튤립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면 아쉽기도 하다. 



뭐, 생각해보면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하루의(정확하게는 반나절) 휴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 휴식이 너무나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항공기 결항에 대한 불만은 없다. 시차를 맞추기 위해 한국 아침 시간에 맞게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이제 슬슬 졸린다. 그래도 잘 참고 비행기 타야지. 강릉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쉽지 않을테니. 

어쨌든, Thank you and good bye Darmstadt!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출장

다음주에 또다시 유럽 출정이 예정되어있다. 생각해보니 이번 출장을 포함하면 지난 넉달 중 유럽에서 체류한 날만 한달이 된다. 그만큼 공을 들였는데 과연 그래서 얻은게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좀 답답하다. 회사에서 내 숙박비와 교통비로 지출한 돈이 한두푼도 아닌데 아직껏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니 이만저만 민망하고 자존심 상하는게 아니다.

물론 조급해 할 일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실적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전략이 부족한 프로모션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마 이번 출장 비행기에서도 쉽게 잠을 이루진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치열한, 일등이냐 이등이냐가 아니라 망하느냐 살아 남느냐를 놓고 싸우는 극한의 치킨게임을 경험한다는 건 돈을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이니 고맙긴 하다. 딱 하나 바라는 건 메모리 반도체처럼 이런 치킨게임을 오랜기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어쨌든,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