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8일 토요일

로마인 이야기

지인이 보내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

역사는 집단의 성과에 대해서만 기록할 뿐 개인의 희생은 기록하지 않는다. 1970년대로 상징되는 급속한 경제 발전기에 희생한 이들을 지금 당장 우리가 챙겨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과연 후세의 역사가들은 뭐라고 기록할까? 아마도 단 한줄,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사회의 부가 고루 분배되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로 묘사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다. 정치가들은 국민들에게 희생을 말 할 수 없다. 올바른 정치가라면 희생이 아닌 권리와 의무를 말할 것이다. 허리띠 졸라메달라고 말하기보다 납세의 의무와 권리를 말하고 그 혈세를 어떻게 사용해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를 말해야 한다.

역사가 개인의 희생을 기록하는데 소극적인 것은 정치인들이 역사에 맡긴다는 말을 남발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가들은 현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지 후손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현재를 사는 이상 어떻게 포장하든 그들은 현재에서 평가 받는 것이 옳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역사를 운운 해서도 안된다. 그가 이룬 결과물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직접 체험한 이들이 살아있는 지금. 지금이 바로 그를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모호하게 역사로 넘어가는 순간, 희생한 이들은 잊혀지고 국가가 이룬 경제적 성과를 발표한 그의 목소리만이 남게 된다. 옳지 않다.

위안부 문제 역시 역사로 넘겨선 안된다. 희생된 분들이 남아있는 지금. 지금이 그 문제를 매듭지을 시점이다. 그럴지 않으면 '증언' 이 아닌 '증거'만으로 다투게 되고 역사의 밀당이 항상 그렇듯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단 한줄로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희생된 여성들도 있었다."

...막아야 한다. 현재의 의지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들이 역사로 넘어가는 일들은 막아야 한다.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어머니

당신 혼자만의 생각에 함몰되어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현상을 곡해하시는 어머니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느끼는 건 아버지께서 안계신 지금 이 세상에 나 혼자겠지. 아들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 그런데 딱 거기까지일 뿐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들이기에 갖는 한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편적으로 상황을 보시는 모습을 보며 그토록 현명하셨던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면 당연한 변화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너무나 극적인 변화가 당황스러운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이제 아들의 존재 이유를 나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난감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마흔을 바라보며

내일 모레면 마흔이다.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으로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은 내일 모레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기준으로 보면 무언가를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대충 2년의 준비 기간이 걸린다고 했을때 내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 준비하면 내가 마흔을 찍는 순간에야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게 된다. 두달도 남지 않은 2012년. 올해가 지나게 되면 나는 한국 나이로 38이 된다. 내게 있어 이번 연말은 내 사십대에 대한 설계도를 완성해야 하는 시점이다. 바로 마흔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항상 그렇듯 나이가 드는것 자체는 별 감흥이 없다. 이십대때는 삼십대가 되고 싶었고 삼십대인 지금은 사십대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눈길을 걸을때 발자국이 찍혀있지 않은 길을 보며 즐거워 하기보다 내가 찍으면서 온 발자국을 보며 흐뭇해 하는 성격 때문이리라.

나이가 드는게 아쉬운 이유는 지금처럼 내가 무엇인가 한걸음 더 움직이려 할 때마다 세상은 나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경쟁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 빠르기를 따라가고 있다. 항상 그렇지만, 정해진 루트가 없는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느림보가 빠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그려야 하는 경로는 복잡하고 힘들다. 그래서 먼저 고민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굳이 이겨야 하냐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이기지 않으면 낙오된다. 단순히 늦게 가는게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것들마저 줄어든다. 그 말인즉슨, 내 가족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으로써 그것만큼 피하고 싶은 일은 없다. 내가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아둥바둥 하는 이유다.

11월 6일. 첫째의 세번째 생일 아침. 여러가지로 생각이 깊다.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씁쓸한 언어별 검색 결과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기업의 마인드

얼마전 사내 교육에서 강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단. Spec 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검색할때와 한글로 검색할 때 차이가 난다는 말. 휴일 아침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나도 한번 해보곤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영문으로 samsung spec 을 검색해 봤다. 아래와 같이 상위 5개 결과에 광고를 포함하여 모두 삼성에서 출시한 각종 기기들의 사양에 대한 결과가 도출됐다.



그리고 이번엔 다시 한글로 삼성 스펙 이라고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상위 다섯개 결과에 모두 입사자들의 조건에 대한 내용이 랭크됐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그냥 '스펙' 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신문기사부터 위키까지 모두 취업과 관련된 내용(그것도 대기업)으로 도배가 된다. 얼마나 이 땅의 젊은이들이 취업에, 그것도 대기업 취업에 목말라 하는지 알 수 있는 결과다.

그렇지만 대기업 취업에만 매달리는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한국의 여건으로 보면 그건 당연한 일 중 당연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업부에는 유난히 중소기업에 다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많다. 신생 사업부이기도 했지만 산업 자체가 워낙 초기이다 보니 관련 인력도 부족하고 그만큼 기존 인력의 이동이 잦기 때문이었다. 경력 입사자들이니 당연히 신입 사원을 뽑은 것보다 어느정도 직급을 모두 부여해야 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지불한 인건비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들의 대부분이 산전수전 다 겪고 온 인재들이어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나 업무 자체의 효율성에서 깜짝 놀랄만큼 대단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조직의 크기와 특징상 모든 의사 결정이 느리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대기업에서만 일해본 사람들과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문화에의 적응 문제(실제로 전세계 모든 기업들에서 경력 입사자의 조직문화 부적응은 심각한 이슈다)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비용의 손실이나 신입사원에 비해 더 많은 급여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도 경력직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올라가는 추세다.

그런데 얼마전 대기업에서 경력직을 뽑을 때 중소기업등에서는 쉽게 사람을 뽑지 못하도록 제한하려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착찹했다. 일단 표현이 잘못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직은 개인의 자유다.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막을 권한은 기업은 물론 국가에게도 없다. 뉴스에서 접한 중소기업 사장들은 핵심 인재를 대기업이 빼가서 기술 유출이 심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까운 핵심 인재에게 과연 얼마나 차별화 된 대우를 해줬는지 반문하고 싶다. 과연 그들에게 능력에 맞는 연봉을 지급했는지, 우리사주를 지급해서 지금은 어렵지만 상장하면 그만한 보상을 받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해줬는지, 얼마전 소개된 회사처럼(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IT기업) 회사내에 어린이집을 둬서 맞벌이 부모들이 마음놓고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돌보게 해줬는지 등등.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기업은 인재를 직접 키워서 쓰거나 그만한 보상을 상대 기업에 하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마치 자신들은 경력직을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데 웃음밖에 안난다. 쉽게 말해 이적료를 내라는 것은데 자기들이 취업자에게 입사 당시 계약금을 지급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발상인지 모르겠다. 정말 이적료를 받아야 할 만큼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직원이라면 그만큼의 대우를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도 다른 기업에서 일했던 경력직을 뽑을 때 이적료 형식으로 지불할 것인가? 나는 저런 주장을 하는 중기 사장들이 '싼 값에 능력있는 인재를 마음껏 부려서 이득을 독식하려'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어쨌든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앞으로 대기업 입사한 사람은 계속 대기업 다니고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은 계속 중소기업 다니던지 이적료 만큼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인고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할 상황이 됐다.

대기업들 간에도 인재 유출은 간혹 법정 싸움으로 갈 만큼 민감한 문제이긴 하다. 이를 막기 위해 인재에게는 연봉을 더 지급하고 승진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하는 등 자구적인 노력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사람에 대한 대우를 통해서가 아닌 금지 조항을 담은 서약서를 통해 막고자 하는 시도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그 강도가 약해지는 추세이다. 이번 중기 인재 유출에 대한 뉴스가 법제화 되어 정말로 강제화 된다면 그건 이런 대기업들의 자구 노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이 땅의 젊은이들이 시작을 대기업에서 하려고 하는 자세를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그들은 도전 정신이 없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높으신 분들 덕에 첫직장이 인생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로 내몰린 그들의 진정한 아픔은 알지 못하는 듯 하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간만의 포스팅

근 두달여만에 포스팅을 하는 듯. 7월 말에 깨진 유리에 왼손을 베었는데 왼손 손가락 세개의 인대가 모두 잘려서 세 손가락 모두 접합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깁스를 하고 있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이 수술은 장 됐고 두달의 병가를 마무리 하고 다음주부터 다시 출근이다.

암튼 손가락 세개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열흘간의 입원과 투약 비용이 모두 다해서 160만원 가량 들었으니 대한민국의 공공의료 시스템 만세다. 여기에 더해서 산재가 아님에도 그나마 내가 지출한 치료비를 전액 지원해주고 병가 기간도 충실하게 보장해주는 우리 회사의 복지 시스템도 만세.

2012년 7월 1일 일요일

700 개의 글

아침에 게시글 하나를 포스팅 하고나서 우연히 블로그의 대시보드를 보는데 전체 게시글 수가 정확하게 700개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에 글이라를 것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부터이고 1997년에 한번, 1999년에 또 한번의 사고를 통해 많은 글을 잃어버렸고 2000년부터 다시 모으기 시작한 글이 모두 700개라는 의미.

참 많이도 썼다. 어쩌면 요즘 온라인에서 유명한 블로거들이 1년이면 올리는 숫자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난 12년동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올려서 700개의 글을 남긴 것이면 적은 숫자는 아니리라. 더욱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터 따로 쓰기 시작한 가족일기 블로그까지 합하면 천개의 게시글에 육박한다.

예전 글과 요즘을 비교해 보자면 예전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사색하고 정리하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인지 좀 더 감상적이고 사색적인 글이 많은 반면 최근의 글들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아쉽기도 하지만, 지난 12년간의 글을 보면 내 일상은 물론 그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어떠한지도 알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2004년, 단 하나의 글만을 남긴 유일한 해. 바로 아버지가 암이라는 것을 알았던 해이고 짧다면 짧은 투병 생활을 했던 해이며 결국 아버지를 잃었던 해이다. 결혼을 했고, 박사과정에 진학했으며 힘들어 했던 어머니를 위로하느라 나 역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삭혀야 했던 해이기도 했다. 지금서 돌이켜 보면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글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냈어야 했지만 도저히 키보드를 잡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그냥, 그러했던 해라는 기억만을 단 하나의 게시글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이렇게 남기고 있는 글 들은 아마 먼 훗날 내게 소중한 기록물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 유행했던 미니홈피나 페이스북보다 블로그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 최소한 구글블로그는 내 모든 글을 백업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해 준다.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 과거의 기록을 잃는 일은 1999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마침 맞게 두 아들이 잠에서 깨서 아빠를 찾아 거실로 나왔다. 이제 이 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줘야 할 시간. 자, 오늘은 무엇을 하면서 놀까?

휴일 아침

모처럼 어디론가 움직일 계획에 부산스럽지 않은 휴일 아침을 맞고 있다. 아내와 두 아들은 방안에서 서로 뒤엉켜서 자고 있고 나는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이 아침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다. 얼마만에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건지.

외동으로 태어난데다 부모님들께서 맞벌이를 했던 어린 시절 덕에 나는 혼자서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성장했다. 이 때문에 좋았던 점도, 안좋았던 점도 있었으니 평가는 무의미 하지만 어쨌든 그런 환경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오롯이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때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해소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그런데 결혼 후 가족이 생기면서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지더니 두 아들이 태어나고 난 후에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통해 얻는 행복과 맞바꾼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다. 사진도, 음악도, 시나 수필을 쓰는 것도 모두 일정 이상의 시간과 부담없는 시간 활용이 필요한데 요즘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때 아내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좀 누릴까도 해봤는데 막상 해보니 가족들이 모두 날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 방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거나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포기.

그래서 아직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는 이 시간이 내게는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비록 사진을 찍는다거나 시에 집중한다거나 할 정도까지의 시간은 안되지만 적어도 안개로 유명한 이 도시의 자욱한 아침 안개를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할 수 있는, 그러면서 Bach를 들을 수 있는 시간 정도는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키보드를 잠깐이나마 두드릴 수 있는 시간도.

모처럼 편안한 휴일 아침을 맞고 있다.

2012년 6월 22일 금요일

Darmstadt 에서의 뜻하지 않은 휴식

한국 시간으로 6월 22일 15시 37분. 원래대로라면 지금쯤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아마 강릉으로 가기 위해 장기 주차장으로 셔틀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유럽에 있으며 Frankfurt 도 아닌 Darmstadt 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Darmstadt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신경도 안썼던 곳이었던 탓에 아무런 정보도 없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까지는 27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아주 멀다고 할 수도, 가깝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곳. 


여기에 오게 된 건 다름 아닌 항공기 기체 결함으로 이륙이 취소되면서 졸지에 공항 미아가 된 200여명의 승객들을 아시아나 항공이 인근 호텔로 분산 수용 했기 때문이다. 종종 항공기가 결항되고 어쩌고 하는 뉴스를 접한 적은 있지만 막상 내가 타려고 했던 항공기에 기체 결함이 발생해서 이륙이 취소되는 상황을 접해보니 무척이나 난감했다. 그것도 탑승 시각 2분 전에 탑승구 앞에서 바로 듣는 기분이란.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그 자리에서 항공사 직원들에게 큰소리로 따지거나 해서 오히려 더 정신 사납게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 모두들 조용히 항공사의 설명을 듣고 제시하는 조치에 따라 차분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큰 혼란 없이 네곳의 호텔에서 온 버스에 나눠 타서 빠른 시간내에 움직일 수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다른 부위도 아니고 날개에서 손상이 발견되었다는데 무작정 타고 가겠다고 고집 부릴 수도 없고. 한가지 문제라면 너무 배가 고프다는 것. 기내에서 저녁 식사를 먹을 생각에 아무것도 안먹고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도착한 호텔에서 먹는 저녁 식사가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객실 자체도 유럽 출장 다니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호텔보다도 깨끗하고 좋았다)


내가 탄 버스는 주로 혼자인 여행객들이 타고 온 버스라 식당에 가선 끼리끼리 몰려 앉기 보단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내가 같이 앉은 사람들은 업무 출장을 나온 나와 동갑인 남자와 휴가를 내고 2주간 유럽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간호사였다. 저녁을 먹고 함께 맥주를 한잔 하면서 제법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이 상황에 대해 짜증을 냈다면 그렇지 못했을텐데 세명 다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다. (어쨌든 혼자 휴가를 내서 2주간 유럽 여행을 다닐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긴 그 나이어린 간호사분께 찬사를. 대단한 용기와 실행력.)

고민을 계속 했던 것은 이왕 이렇게 된거 법인으로 돌아가서 좀 더 일을 할까 했는데 고민 끝에 그냥 호텔에 남아 있기로 했다. 우선 비행기 시간까지가 조금 애매해서 법인에 갔다가 다시 공항에 갔다가 하는 사이에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과(여기서 법인까지 가는 교통편도 애매하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하루 정도 좀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렇게 하루 밤 휴식을 취하고 나서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와 잠시 주변을 거닐었다. 가볍게 둘러봐도 높은 마천루 하나 눈에 띄지 않고 독일 특유의 가옥 형태를 띤 주택들이 적당히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 여기가 다운타운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원래가 좀 이런 분위기의 도시인건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만 건물들 중에 유난히 고풍스럽게 보이는 건물들이 있어서 (black forest 의 castle 유적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의아해 했었는데 구글지도를 켜놓고 근처 명칭을 좀 봤더니 바로 옆이 대학이었다. 대학 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역사가 수백년이 된 듯 하던데 유럽 지역의 대학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시간도 남겠다 대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이리저리 근처를 구경하는데 대학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건물들이 나오는게 아니라 멋진 공원과 같은 곳이 나오고 그 공원을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숲 너머에 대학 건물들이 있는 방식으로 나무와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와- 이렇게 멋있을 수가. 내 팔로 세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이 셀 수 없이 심어져 있는 그 공원을 보면서 오로지 아스팔트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내가 졸업한 모 대학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는지 몰랐는데 문득 시계를 보니 한시간이나 근처를 걷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공기가 깨끗한 이곳에서 수백년은 된 듯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푸른 공원을 산책하면서 취하는 사색과 휴식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한 듯 하여 여러모로 어떻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중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그런 시간을 갖게 됐다.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대학생들 사이로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으며 만끽하는 싱그러움은 지난 며칠간의 피로를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은 호텔 밖이 내려다 보이는 내 객실에서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글을 타이핑 하고 있다.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 도시의 풍경에 어울리게도 이 좋은 호텔마저도 너무 높지 않은 층수를 갖고 있어서 아래 사진처럼 적당한 높이에서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난번에 왔을 때 지냈던 호텔에서는 잔디밭에 야생 튤립이 중간중간 꽃을 피우고 있어서 무척이나 예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빨갛고 노란 야생 튤립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면 아쉽기도 하다. 



뭐, 생각해보면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하루의(정확하게는 반나절) 휴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 휴식이 너무나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항공기 결항에 대한 불만은 없다. 시차를 맞추기 위해 한국 아침 시간에 맞게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이제 슬슬 졸린다. 그래도 잘 참고 비행기 타야지. 강릉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쉽지 않을테니. 

어쨌든, Thank you and good bye Darmstadt!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출장

다음주에 또다시 유럽 출정이 예정되어있다. 생각해보니 이번 출장을 포함하면 지난 넉달 중 유럽에서 체류한 날만 한달이 된다. 그만큼 공을 들였는데 과연 그래서 얻은게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좀 답답하다. 회사에서 내 숙박비와 교통비로 지출한 돈이 한두푼도 아닌데 아직껏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니 이만저만 민망하고 자존심 상하는게 아니다.

물론 조급해 할 일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실적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전략이 부족한 프로모션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마 이번 출장 비행기에서도 쉽게 잠을 이루진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치열한, 일등이냐 이등이냐가 아니라 망하느냐 살아 남느냐를 놓고 싸우는 극한의 치킨게임을 경험한다는 건 돈을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이니 고맙긴 하다. 딱 하나 바라는 건 메모리 반도체처럼 이런 치킨게임을 오랜기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어쨌든, 힘내자.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면접

오후 내내 면접관으로 면접실에 앉아 있었다. 회사 간부로 있는 이상 면접관으로 호출되는게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세번이나 면접관으로 불려갔으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횟수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면접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입사 지원자들을 면접보는 건 생각보다 배우는게 많은 행위다. 학창 시절에 전공 과목 공부를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공부한 부분을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설명하면서 스스로가 정리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깨닫기도 한다.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단기간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높은 효과를 본다. 면접도 마찬가지다. 입사 지원자들은 긴장해서 잘 알지 못하겠지만 사실 면접관이랍시고 앉아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는게 있다고 하더라도 싫은 건 싫은거다. 내가 면접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경력직 사원도 아니고 신입 사원들이라면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기본기라는 것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토익 점수가 몇점이고 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등등은 자신에게는 큰 사건이고 경력일지 몰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면접보는 면접관 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든가 오지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든가 하는 이색적인 경력 역시 내 경우엔 전혀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가' 이다. 무엇을 얻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얻은게 있다면 겉으로 드러날 것이고 배운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경험은 불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오지 봉사 활동을 통해 다른이를 배려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이력을 설명하지 않아도 토론 면접을 시켜보면 다른이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다른이를 배려하느냐 아니냐지 원래 배려하는 성격으로 타고났는지 후천적 경험을 통해 배려하는 법을 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남에 비해 좀더 좋은 기회를 많이 누렸다고 해서 더 유능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어려워 하는 부분은 바로 그런 사람인지를 내가 그토록 단기간내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면에서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내가 그를 올바로 판단했는지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과연 내가 내 가치관으로 다른이의 점수를 매기는 것이 옳은가? 뭐,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님은 잘 안다. 그냥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최선을 다해 평가를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오늘도 수십명의 긴장한 입사 지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점수를 줘야 하는 내가 그들만큼 긴장해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경험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하면 내 실수에 그들의 삶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최대한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했고 평가했다는 것은 누가 물어도 확언할 수 있지만 내가 그를 정말로 맞게 평가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매번 면접을 할 때마다 괴롭다. 

사람도 많은 회사, 이젠 좀 다른 사람에게 면접관 역할을 골고루 돌려 줬으면 좋겠다.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친구

3일간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느라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던 주말에 그동안 얼굴을 거의 보지 못하고 살던 고향 친구 셋을 만났다. 어쩌다 보니 세 친구들을 각각 만나게 됐는데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녀석은 토요일 오후에 잠깐,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친구는 일요일 점심에 가족 모임으로, 나와 비슷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일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불러서 아이들은 장난감 방에 들어가 놀게 해두고 어른들끼리 맥주 한잔을 같이 했다. 만나면서 느낀 것은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의 특징에 따라 차츰 그 친구의 성향이 변해 간다는 것. 전혀 변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각자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성향이 크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사실이고 다른 면에서 그만큼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만날 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한번 더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돌팔매가 장난으로 통하던 시절 계곡물로 함께 다이빙을 했던 사이라 할지라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돌팔매는 더이상 장난으로 통하지 않는다.

친구들 중 다른 친구에게 지나치게 경우 없이 행동하는 녀석은 없어서 가족 모임을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긴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인들이 함께 참석하는 모임은 사실 묘하다면 묘한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다. 발 밑의 얼음이 조금 얇아진 기분이랄까. ㅎㅎ )

명절에 고향 친구들이 모이는 저녁 술자리에 몇년째 참석하지 않다 보니 그런 자리가 좀 그립다. 하지만 명절에 가족들을 놔두고 친구들을 만나기에는 지금의 내 나이가 좀 많거나 적거나 하다는게 내 생각.(달리 말하면 '결혼하기 전이나,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서 집안이 북적거리거나 하기 전에는 가족과 함께'가 우선이랄까.) 뭐, 이번처럼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한넘씩이라도 얼굴 보면서 사는 수 밖에. 어느 면으론 그게 편하기도 하고.

암튼, 별 것 아니지만 간만에 친한 고향 친구들 몇을 봤더니 괜시리 기분 좋은 휴일이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승마를 시작하다

승마[乘馬,升麻]
말을 타고 하는 운동 경기

승마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말을 타고 하는 운동' 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몇해 전 제주도 여행때 말을 한번 타보고는 아내가 승마에 완전히 빠져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시작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회사 동호회 중에 승마 동호회가 있는 것을 보고 반나절 정도 고민하다가 가입을 했다. 아내의 이야기가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은 분명했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안하는 취미나 놀이)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으로 승마장에 다녀 왔는데 제주도에서 타봤던 느낌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 때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순하디 순한 말을, 그것도 관리사가 이끄는 방식으로 탔었는데 이번에 가서는 멀리서 지도는 해줘도 어쨌든 혼자 타야 했고 좌속보(앉은 채로 말을 빨리 걷게 하는 것. 일반 속보는 등자를 밟고 몸을 일으켰다 앉았다 하면서 말과 박자를 맞추는 방식)까지 해봤다. 결론은 긴장되기도, 무섭기도, 재미있기도 한 복잡한 한시간 반. 나는 계속 앉아 있는 방식으로 말을 탔기 때문에 긴장은 했어도 땀은 크게 흘리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흠뻑 젖어서는 숨까지 헉헉거리면서 몰아쉴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했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취미를 하나 새로 시작했으니 일상에 제법 활력이 될 것 같다. 아내가 무척이나 부러워 하고 있는데 동호회 회원 가족 행사때는 회원 가족들도 함께 말을 탈 수 있다는 말에 희희낙낙. :-)

그나저나...아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승마는 평소 쓰지 않는 근육들까지 다 쓰는 전신 운동이라고 하더니 지금 도대체 왜 거기에 알이 배겼는지 알 수 없는 근육들이 뭉쳐서 좀 고통스럽다. 편하게 탔다고 생각 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구보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말에서 내린 후에 무릎을 짚고 헉헉거릴 만큼 힘들어 하던데...그 정도까지 진도가 나가면 운동 효과도 상당할 듯. :-) 

2012년 4월 22일 일요일

작업용 노트북

해외 출장때 매번 회사 업무 노트북을 대여해서 나가는 것도 번거롭고 이번 출장처럼 출장자가 몰리면 대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해서 보통 출장 갈 때는 내 개인 넷북을 들고 나간다. 막상 업무용으로 사용하고자 들면 화면이 작다는 점 등 몇가지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그럭저럭 잘 활용하고 있다. 어차피 출장 나가서 사용할 자료들이야 출장 가기 전에 작업을 마쳐놓기 때문에 화면이 작더라도 쓰는데 심각하게 불편한 점은 없고 무엇보다도 우리 회사의 혀를 내두를만한 보안 시스템 때문에 노트북에 파일을 담아서 가져나가 작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만에 하나 본사에서 추가로 자료를 송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개인 노트북을 가져가는거나 회사에서 노트북에 미리 자료를 담아서 나왔거나 관계없이 동일한 상황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자료를 메일로 받을 방법이 없다. 반드시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서 작업해야 하는데 가상 시스템을 거치는 등 여러가지 보안 절차가 필요하고 작업한 파일은 이 가상 시스템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그 파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자 해도 무조건 가상 시스템에 접속한 후 파일을 열어서 사용해야 한다. 전에는 가상 시스템에 접속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거래선 회의실 유선랜이 안되서 결국 수정하기 전 자료로 하느라고 땀 뻘뻘 흘려야 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업무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용 노트북을 가져가며 인터넷도 별도로 유선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고 내 아이폰을 연결해서 테더링으로 사용하는 것.(덕분에 해외 출장때마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 요금제를 이용한다. 출장비 정산도 안되는데...내가 미쳤지. ㅡㅡ )

사실 이렇게 쓰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내 싱글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좋긴 한데 얼마전 보안 시스템이 바뀌면서 좀 더 무거워져서 여러가지로 못마땅한 사항이 늘었다. 내 넷북 메모리가 모자라서 그런건지 메일 확인하고 회신하고 간단한 보고서 작성등은 불편이 없지만 파워포인트 파일을 편집이라도 할라치면 영 반응이 시원찮다. 여기에 가상 시스템에 3G 망으로 접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키보드나 마우스 반응도 빠른 편이 아니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작업이 되는게 아예 작업 안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방식. 소원이 있다면 데이터 로밍요금도 출장비 정산이 되는 것인데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그나저나 이번 출장때 여러 사람들의 각기 다른 노트북들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애플 제품도 맥북에어, 맥북프로 등 두가지에 넷북도 두세가지, 일반 노트북은 다수 있었는데 그 중 압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삼성전자 시리즈9. 맥북 에어와 비슷한 크기에 두께에 둘 다 디자인이 좋다는 등 괜찮은 제품들이었지만 정장이나 비지니스 캐주얼 옷차림을 하고 작업하는데는 시리즈9 이 최고의 포스(?)를 자랑했다. 회사에 이야기 하면 출장용으로 하나 사주려나...ㅎㅎㅎ

다음달에 돈이 좀 여유가 생기면 지금 사용중인 넷북 메모리를 2G 로 업그레이드나 해야겠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뭐.... 라고 위안을 삼자. ㅎㅎ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집단의 선택

선거 결과가 실망스럽지만 그렇다고 다른이를 원망하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내 뜻에 반하면 틀린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일이 그렇게 흑백으로 나뉘진 않는다. 아무리 내가 옳은 듯 해도 완벽하게 옳은 개인이란 없다. 우리가 느끼는 바른 선택이라는 것들은 사실 내 선택을 우연히 다수가 반박자 늦게 선택함에서 오는 착각에 불과하다. 어쨌든 내가 몸담고 있는 집단이 내린 오늘의 선택은 분명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렇게 역사는 발전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집단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안에서 개인으로써 어떻게 살아 남느냐 하는 문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있단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집단의 반향을 만든다. 그런 개인끼리 서로의 선택을 비난할 필요는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만을 걸러내면 그만. 돈 있는자가 보편적으로 이긴다면 그것 역시 규칙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나면 어떻게 이길 것인가 방향이 보이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불만만 쌓일 뿐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쉬움을 모두 삭힐 수가 없어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을 기다리며 한자 끄적여 본다.

2012년 4월 12일. 총선에서 이긴 새누리당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고 있다.

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일주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기억나는 것들을 정리하다보니 이 한장의 사진이 보였다. 스위스 상공을 날고 있을 때였다. 두툼하게 덮인 운해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멀리 섬처럼 보이는 구름이 있었다. 희한하게 생긴 구름이라고 자세히 보다 깜짝 놀랐다. 그건 구름이 아니라 산봉우리였다. 산봉우리가 하얗게 눈이 덮여 있어 마치 하얀 섬처럼 보이고 있던 것이었는데 그 때 높이가 높이이니만큼 산이라고 처음에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스위스 상공이었으니 알프스였겠지?

여러가지로 마음 싱숭생숭 했던 출장이지만 힘들었던 기억보다 이 한장의 사진이 더 기억에 남으니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

정말 저 동네 가서 몇년 살다 올까...

2012년 3월 3일 토요일

내가 보낸 편지

몇해 전... 말로만 듣던 사기를 당해 가진 모든것을 다 잃고 길거리에 나 앉게 됐을때가 있었다. 천만원이 안되는 현찰과 몇개의 가구. 그게 다였다.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다가왔다. 암담했던 그날 아내와 한 약속이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서로에게 화내거나 짜증내지 말자고. 여기서 우리가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순간 우리는 기댈 곳이 없다고. 그리고 그날 밤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간혹 삶에 대해 투덜거리는 나를 발견하면 꺼내서 읽어보곤 하는데 오늘 아침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 봤다. 그리고 먼지 쌓이기 전에 여기에 다시 한번 정리해 둬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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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 말이지만, 게임은 이기고 보는 거다. 왜냐하면 룰에대한 불평은 이긴자의 권리이기 때문이지. 축구 경기만 봐도 그래. 심판이 불공정했다고 진팀의 감독이 백날 떠들어 봐야 거기에 동의한다는 이긴팀 감독의 단어 하나만큼의 영향력도 없거든.

인생도 마찬가지야. 룰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승자가 되렴. 룰이 불공정해서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아? 그래서 선택한게 불평 불만이라면 방향이 틀렸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어떻게든 승자의 길을 향하는 틈새를 찾으려 포기않고 노력중이거든.

난 내 양심과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든 수단을 써서 이길거야. 행운도 바라지 않겠어. 반드시 내 손으로 이기기 위한 수단을 차근차근 쌓아 나갈거야. 젊은이는 인내심이 없어 실패하고 노인은 시간이 없어서 실패하는 법이지. 그러니 젊을때 인내심을 갖는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무기가 없어.

부익부 빈익빈? 웃기지 마. 가진자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망해서 없는자가 되고 없는자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가진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법이야. 그게 소수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그 소수가 될 테니까.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가능성을 논하는 순간 그건 불가능이 되지만 들어간다 못간다의 이분법으로 보면 절반의 확율이고 들어간 낙타에게는 100%의 시도인 법이지.

다시한번 말하지만 불공정 하다고 불평하기 전에 이길 방법을 찾아. 그리고 이겨. 룰에 대한 논의는 그때 해야 남이 들어줄테니까. 그러지 않고 주저앉아 불평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 가족은 영원히 불공정한 룰에서 패자로 살아야 한다는 걸 잊지마.

2012년 3월 1일 목요일

고민

내가 한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어지간히 얻는데 필요한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지식이 아닌 경험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내 시간의 값은 도대체 얼마인가?

파도가 슬슬 치기 시작한 요즘 파도를 잡아 탈 것인지 좀 더 기다릴 것인지를 놓고 많은 고민 중이다. 내가 원하는 지식을 어느정도 얻은 지금이 적기일지 아니면 한두해 좀 더 머물면서 얻을 인지도에 대한 투자를 한 후가 적기일지 모르겠다. 조급해지면 안됨을 잘 알면서도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기가 앞으로 십년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에 미음이 바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길게 보자고 하지만 사실 정말로 인생을 길게 보면, 지금의 이 순간들이 오히려 마음 바쁘게 만든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내 삶의 목표가 너무나 싱거운데 반해 현실을 살아가는 내 태도는 너무나 의욕적이라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인생의 로드맵을 다시 점검하기 위한 멘토들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사는 우물안 개구리. 비전이 없이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이다.

2012년 2월 18일 토요일

생각 정리

새벽에 잠이 깨서 뒤척이던 차에 그동안 메모해 오던 조직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을 블로그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1.
조직을 이끄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직급과 직위를 이용하는 것이며 가장 어리석은 방법 역시 직급과 직위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크건 작건 조직내에는 여러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며 간혹 아래 사람과 충돌이 생길 때가 있다. 이럴때마다 사실 내 직급을 이용해서 그냥 찍어 누르고 싶은 유혹이 드는 걸 막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한번 그러기 시작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1차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된다.

2.
조직은 보스가 아니라 가장 업무 영향력이 있는, 그리고 가장 인망이 높은 사람이 이끈다. 어느 조직이든 흔히 키맨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업무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주목을 받는다. 심지어는 보스 조차도 그의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 결정을 내린다. 이런 사람들을 살펴보면 직급이 높고 낮고 보다는 그 조직에서의 경력이 오래되고 관계 형성이 좋으며 항상 내 울타리를 챙기는 모습보다는 남의 마당을 다져주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 마당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다져준 사람에게 다시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조직은 직급이 아닌 영향력으로 이끄는 사람이 실질적인 리더가 된다.

3.
지금 당장 칭찬 받기보다 5년 후에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행동하는 사람이 이긴다. 의외로 '칭찬'과 '인정받는 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직에서 누군가가 칭찬하는데는 그 사람에 대해 인정하는 것 보다 당근책으로써의 의미가 강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아래 사람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결과물과 태도의 긍정적인 부분을 지속적으로 칭찬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그 사람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표현은 드러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런 부분은 천천히 내면에 쌓여 오다가 어느 순간 단단히 굳은 결정체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데 칭찬을 받는게 바로 인정받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지금 한 작업을 바로 칭찬받기 위해 그러는 과정에서 걸리적 거린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자기 실적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위 동료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설사 그가 온당치 못하게 실적에 무임승차 하려 했더라도)

왜냐하면 칭찬은 보스에게서 시작되지만 인정은 동료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칭찬은 보스 한명한테서만 받으면 되지만 인정은 조직 구성원의 대다수에게서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은 그 대상자와의 관계가 좋을 수록 쉽게 다가온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요한 것은 실적보다 관계다. 관계가 좋다고 해서 실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좋지 못하면 실적을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 그런 사람은 항상 업무 결과에 대해 칭찬은 받지만 조직내에서 인정받고 과실을 가져가는 역할은 하지 못하게 된다.

4.
조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쉬운 길은 비판적인 직원이 되는 것이며 가장 어려운 길은 긍정적인 직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과실은 수년 후 긍정적인 직원이 가져간다. 그게 현실이다. 나도 이 부분이 참 어렵고 잘 안된다. 박사 과정을 할 때 교수님 중 한 분이 내게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들으면 우선 반대하고 비판할 논리를 찾는데 이는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상대방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통해 얻는 것은 너 잘났다는 반감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어쩌면 똑똑하다는 수재들을 모아놓은 과학 분야에서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비판 없이 일을 하는 듯 보여도 그가 만일 멀리 내다보고 참아내고 있는 거라면 수년내에 그 사람이 내 보스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2012년 2월 5일 일요일

조직과 조직원

조직이 조직원의 수준을 만드는지 조직원이 조직의 수준을 만드는지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상식적으로 조직원들이 조직의 수준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 조직에 새로 합류한 전혀 다른 성향의(조직보다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그 조직의 수준에 맞게 변해가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말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예비군 훈련장을 가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인정하고 나면 이제 질문은 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과연 조직이 조직원의 수준을 결정하는가?

신규 사업을 수행하는 신생 회사에 있다 보니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한다. 설립 후 2년 만에 조직 구성원이 몇배로 늘어난 탓에 책상은 계속 늘어나는데 이 중 신입 사원 수는 별로 없고 상당수가 경력사원이거나 그룹내 전배 인력들이다 보니 각자가 갖고 있는 수준과 히스토리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어떤 경력의 사람이 입사를 하든 기존에 형성되어 가는 문화에 곧장 동화되어 버린다. 문제는 그 문화가 누구나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바뀌지 못하고 있는 문화라는 것. 그룹에서도 날고 기는 임원들을 전배 보내서 위에서부터 바꾸려고 하는데 항상 구호는 크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요즘 회사가 큰 변화를 겪고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변하지 않고, 일부 변화하는 부분도 개인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조직의 변화에 따른 성향이 크다. 일종의 컬쳐 쇼크라고나 할까. 그 와중에도 조직원들은 변하지 않기 위해 발버중 치고 있으니 쇼크가 맞긴 한 것 같다.

어제 동료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우리에게는 매트릭스의 '네오'가 필요하다는 것. 설득과 타협 없이 그냥 힘으로 각자의 집단을 평정하고 적대적 조직과 평화 협정을 맺어 버리는 존재가 없이는 조직의 수준과 문화는 쉽게 바꿀 수 없는 듯 하다. 여러 서적들에서는 그게 필수조건이라고 언급하고 성공 사례들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과연 그 서적에 나오는 성공 사례들이 정말일지 의심스럽다.

조직이 조직원의 수준을 결정하는가? 맞다. 그렇다면 조직원이 조직의 수준을 결정하는가? 모르겠다. 적어도 확실한 정답은 아닌 것 같다.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오늘 이래저래 집 배치를 바꾸면서 책장에 있던 책도 함께 정리를 했다. 기준은 다시 보지 않을게 확실한 책은 정리해서 버리든가 기증하기. 그런데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전공 관련된 물리학 서적들에 여러권 나왔다. 잠깐이지만 상당히 깊이 망설였다. 사실 그 책들을 다시 볼 이유는 없다. 기획 파트로 옮긴 지금 내가 물리학 서적을 뒤적일 일도 없고 설사 기획을 떠나 다시금 R&D 부서로 옮긴다 해도 양자역학과 비선형 광자결정 구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분야를 할 가능성도 없다.

그동안 그런 사실을 몰라서 전공 서적들을 남겨 두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남겨둔 가장 큰 이유는 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념품과 같은 역할을 이 책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4년이라는 시간동안 몸담아 왔던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생각의 되새김질을 하는데 이 책들이 필요했다. 불온 서적이 아니라는 군부대 도장이 찍힌 책들도 있으니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14년을 붙들고 있었던 책들이다. 그 시간이 나로 하여금 쓸데가 없으면서도 버리지 않고 갖고 있게 했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감상적인 행위가 내게 큰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증거는 박사 학위와 집 장식장에 놓여 있는 학위패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부로 그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책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공간은 지금부터의 날 위해 필요한 다른 책들로 채워 나가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책이든(요즘 같아서는 인문학 서적이어야 할 것 같기도) 한권 한권 다시 비어버린 내 책장을 채우자. 혹시 아는가? 그렇게 채우다 만난 책이 물리학 서적 만큼이나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을지. :-)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육아

얼마 전부터 출근 버스에 회사 어린이집에 가는 듯한 아이와 엄마가 같이 탄다. 아이는 이 추운 새벽에 외출하는게 그리고 엄마와 떨어지는게(당연히 알겠지.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싫은 듯 항상 울면서 타고 엄마는 버스 안 눈치를 보며 그런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집 첫째 또래로 보이는 그 아이는 말로 의사 표현도 정확히 못하면서 울먹울먹 옹알이를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절절함이 느껴져서 듣고 있자면 마음이 참 아프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매일 아침 그렇게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 엄마도 불쌍하긴 매한가지.

생각해보면 그나마 회사 어린이집에 당첨되서 엄마와 출퇴근을 같이 하는 아이는 행복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설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 집은 데려가고 데려오고가 하루하루 전쟁일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것도 어차피 구시대적인 마인드고 이직이나 동직장내 부서간 전배가 보편화 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육아를 위한 몇년의 휴직을 그토록 백안시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단지 법적으로 쉴 수 있다 없다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렇게 쉬고 나서 복귀 혹은 재취업을 하고자 할 때 넘어야 할 산을 낮춰주지 않는 한 현실은 법 조문의 글자처럼 그렇게 명확한 문제가 아니다. 졸업 후의 비전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아무리 장학금을 지원해봐야 이공계 기피 현상을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퇴근해서 문을 열면 아직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다~!" 하면서 달려와 안기는 첫째를 보듬을 때마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한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그래도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엄마가 끼고 생활하는 우리집 아이들은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란 생각도 든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 커서도 남을 보듬을 줄 아는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위해, 이젠 좀 육야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장기적으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투자를 할 시기가 아닐까? 육아로 인해 직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부모들에 대한 사회적 문턱을 낮추는 것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