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Good bye 김문수

안상수씨의 보온병 포탄 해프닝 이후 소재가 변변치 않아 무릎을 치게 만드는 풍자를 못하던 네티즌들에게 김문수 도지사가 대어급 소재를 던져줬다. 아마 2011년 최고의 풍자거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다양한 풍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재미를 떠나서 이 사건은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한 도지사가 실제로는 얼마나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문수 도지사 측에서 찾아낸 변명거리는 "관등 성명을 대야 하는 규정을 어겨서 당황했다" 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손발이 오그라 들 정도로 민망한 변명거리다. 상식적으로 긴급상황 신고 전화로 전화한 사람이 용건도 밝히지 않고 계속 자신이 도지사라며 상대의 관등성명만 물어본다면 장난전화라고 인지하는게 당연하다(규정이야 어떻든). 쉽게 말해서 당장 자기 부모가 쓰러져서 119에 전화했는데 상대가 관등성명을 대지 않았다고 해서 용건도 말하지 않고 수차례 다시 전화해서 관등성명을 요구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나라면 오히려 관등성명을 대느라 시간 끄는 상대에게 화가 날 것 같다. 무슨 김수환무거북이와두루미 찾을 일도 아니고). 더욱이 김문수씨가 전화해서는 관등 성명 요구에 앞서 '도지사입니다' 를 수차례 강조했다는 점(알아서 좀 기어라 라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그리고 실제 긴급 상황이 아닌 정치 행보(시설 방문) 중 일종의 보여주기식 돌발 행동의 일환으로 전화를 했다는 사실로 비춰볼 때 '관등 성명을 대고 안대고'를 이번 사건의 주요 이슈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당사자를 불러서 사과를 했든 안했든가를 떠나서 그 자신이 갖고 있는 태도 자체의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대중에게 사과하지 않은 이상 이 문제는 정치인 김문수씨에 대한 평가 수준을 대폭 낮추는 일종의 기준선이 될 것이다. 아마 이후의 모든 정치적인 행사, 즉 선거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귀찮고 어려운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그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여럿이어서 투표를 통해 선출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에 나서서 일을 하는 것보다 뒤에서 결과를 놓고 비아냥 거리거나 비판하는게 비교할 수 없이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 그 일을 짊어진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주는 것 자체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선출직 공무원들이 약간의 권력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자체는 적절한 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보상 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항상 선출직 공무원은 시민의 아래'에 있다는 표면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김문수씨는 바로 그 지점을 넘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민의 위에 있는 최고 권력자라고 인지하고 있는 듯한 그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소방헬기 이용 건수와 같은. )

이전에도 그다지 높은 순위는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을 빌미로 김문수라는 이름을 아예 정치인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유권자가 비단 나 한명 뿐은 아닐 것이다.

Good bye 김문수씨. 당신이 유시민을 이기고 도지사에 오른 그 날이 어쩌면 당신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는가 봅니다. 솔직히 당신에게 표를 줬다면 좀 열불이 나겠지만 당신에게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이기에 나 자신의 선견지명에 대한 만족이 더 크게 다가오는군요. 부탁이 있다면 2012년 이후엔 정치판에서 당신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2012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출근 버스. 운 좋게 출발지가 집 앞이어서 일찍 움직인 날은 좋은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출발하기를 기다릴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몸담은 그룹의 세부 조직 및 운영 방침이 오늘 발표된다. 어제 그룹장과 면담을 하면서 알게된, 실질적으로 내게 부여될 예정인 많은 책임과 인력을 어떻게 유기적인 조직체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왜냐하면 그중엔 나보다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어서 자칫 힘 겨루기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룹장이 그리고 회사의 보스들이 원하는 건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는 직무와 조직 체계라는 건 알겠는데 한국 사회에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피할 일은 아니겠지만.

2011년이 내게 있어 삶의 큰 전환점을 만든 선택의 해였다고 한다면 2012년은 관리자로써의 내 역량을 -특히나 가혹한 환경에서- 시험하게 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아마 내게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지금 내가 맞이한 상황의 확장, 즉 내 아래 사람을 내 실질적인 업무 지시자로 앉히는 걸 주저할 조직 윗선들이 아니니까.

어쨌든 자의든 타의든 신나는 놀이기구로 가득한 놀이공원에 던져졌다. 2012년 한해 정말로 후회없이, 즐겁게 놀아보자.

Ps
그전에 물론 메리 크리스마스를 먼저 즐기고. :-)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1년

작년 이맘때쯤 상품기획으로 옮기겠다고 면담을 했으니 마음의 결정을 내린지 정확하게 1년이 지난 시점이 됐다. 부서를 옮기고 나서 제법 힘들었던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옮긴 건 3월부터였지만 부서 전배의 조건으로 해야 했던 양산TF로의 파견 근무까지 합쳐보면 1년이 됐다. 많은 질문을 받았었다. 왜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기획 부서로 가려 하느냐고. 운전 면허 있다고 해서 모두가 운수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내 반문을 이해해 준 사람은 아내를 포함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 밖에는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 선택은 옳았다. 비록 일은 더 힘들어졌고 생활도 그만큼 팍팍해 졌지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게 되는 과정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기도 했다. 중간에 너무나 불만에 차 있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행동들이 결국에는 내게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혼자 고군분투 했던 지난 1년과 달리 지금은 지시한 일을 조금의 부족도 없이 수행해내는 만점짜리 사원 한명과 업무 추진력이 너무 좋아서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선임 한명, 그리고 컴퓨터 같은 암기력으로 경쟁사와 우리회사의 모든 사항들을 즉각적으로 읊어댈 수 있는 지원부서의 사람들까지 평소 바랬던 조합의 팀을 이끌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더이상 바랄게 없다. 이제 남은건 조율하는 내 역량을 키우는 것 뿐.

다음주, 그리고 다음달이 되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구성이 크게 변할테고 그때가 되면 내 포지션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끄는 팀을 내가 없어도 혹은 누가 내 위치에 와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만큼 조율해 놓는 것 아닐까. 직급이 높다고 다 아는 척, 유능한 척, 어른인 척 하지 말고 서로의 역할이 있는 동료의 자세에서 일할 수 있게 끝까지 자중하자.

2011년 12월 3일 토요일

송년회 불참

어제가 팀 송년회였는데 주중에 신입사원들을 아예 업무에서 빼서 댄스 공연 연습 시키는 꼴을 보고는 불참해 버렸다. 그런식으로 놀고 싶어 한다고 해서 내가 말릴 방법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 틈에 앉아서 자원자들도 아니고 강제적으로 차출되서 공연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있기는 싫다.

나이가 어리다고, 신입이라고 막 대해도 되는 법은 없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에 때른 직무와 책임이 있을 뿐 회사에서 고참이라고 해서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고참 노릇을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주어진 업무가 커피 타는 일인 것과 업무가 그거라고 해서 놀러 가서까지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겨울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섰다. 갑자기 추워졌을 땐 추위에 익숙해진 한겨울보다 더 잘 껴입어야 한다며 아내가 꺼내준 두터운 겨울 파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날이 춥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추워진게 이상하진 않다. 누가 뭐래도 벌써 11월 말이니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유난히 감상적이 되곤 한다. 아마 제명씨가 살고 있는 캐나다 위니펙 같은 곳에서는 늘 감상적이 되어서 지내지 않을까? 며칠전 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로(블로그에 댓글 기능을 막아두었다. 댓글은 페이스북으로.) 제명씨의 메일이 왔을 때 유난히 반가웠다. 내게 있어서 그의 이름은 내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의 서표이자 멀리 사는 내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지판이다.

사실 난, 로또가 되면 무엇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타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할 만큼 이젠 쉽게 볼 수 없는 그들이 그립다. 그들 중 일부는 페이스북이나 온라인으로 연결이 되지만 몇몇은 그나마 연락되던 메일 주소마저 없어지고 이젠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힘들어 하는 한 친구와 간간히 주고받던 메일에 어느날 없는 메일 주소라는 시스템 회신이 답장으로 날아 들었던 날, 밤 새도록 그 친구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변하지 않은 내 메일 주소와 블로그 주소로 인해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들과 다시금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그들 역시 해피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겨울에는.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창의력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바로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다. 무슨 지수를 키워줘야 하고 무슨 교육을 해야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하고 등등...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런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러겠지 싶어서.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남들이 지난 천년간 해온 물리학에서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깨달은 것은 아주 간단한 명제다.

"창의력은 축척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창의력이라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어느 순간 척 하고 새로운 것을 내놓는 능력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걸 바라는 것도 본인에게 해가 된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찰의 끝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런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남들이 이미 다 해봤던 고민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학부때 배우는 과목들을 철저하게 습득하지 않은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해야 하거나 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창의력은 꾸준함의 산물이지 조기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터치(Touch)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는 책 제목을 보곤 별 생각없이 집어들고 온 책이 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라는제 제목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었다.

피터 드러커의 명저인 "매니지먼트"를 이해하기 쉽게 각색해서 쓴 책인데 사실 제목을 읽는 순간 내용도 모르고 "고교 야구 여자 매니저" 라는 문구에서 미쓰루 아다찌의 만화 "터치" 가 떠올랐다. 이 만화를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이 느낌. Touch, H2, rough 등등...

책 자체도 읽을만 했지만 읽는 내내 다시 '터치'가 보고 싶어졌다. 구해서 읽어 봐야지. :-)

2011년 10월 8일 토요일

가족 그리고 꿈

Steve Jobs.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의 창조적인 두뇌와 장기적인 비전, 실행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들은 좋아했지만 그가 가진 폐쇄성은 동의하기 어려운 정도였고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박수쳐주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에 대한 호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만들어 내는 물건들로 인해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고 그런 측면에서 그가 이루어낸 것들에 대해 큰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마지막을 보낸 방식을 지켜보면서 요즘 많은 생각에 빠져 있다. 마지막 몇주간을 그는 오로지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가족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그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고 전기작가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많이 안타까울 것 같다. 가족은 마지막에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에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나갈 때 조차도 돌아 갈 수 있는 곳이 가족이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평소에는 가족을 떠나 있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왜 가족을 떠나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일까? 적어도 가정을 이루고 살고자 했던 사람에게 말이다.

그와 나의 가치관 차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정진하더라도 가장 최우선 순위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어쩌면 그 우선 순위의 차이 때문에 그는 내 나이에 글로벌 기업의 CEO로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일지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내 성공을 위해 날 서포트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님은 명확한 진리라고 믿기에 나는 가족을 희생해서까지 내 꿈을 이루고 싶은 욕심은 없다. 당연히 꿈을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야 하는 목표이지 내 꿈이 내 가족의 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결과물은 함께 나누되 도달은 내 힘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간에 서로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20년 후, 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내 꿈을 이루고 있으며 그 꿈의 결과물을 가족과 나누고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아이폰4+s 에 대한 몇가지 생각

떠들썩 하다. 실망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프리젠테이션을 잘못한 거로 생각된다. 혁신은 있었다. 그게 너무 사소하게 취급되며 지나가서 그렇지.

이번 발표의 핵심은 아이폰이라는 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 시스템인 Siri 에 있다. 3GS의 S가 speed였다면 4S의 S는 Siri가 아닐까? 실제로 써봐야 알겠지만 내 블랙베리에 있는 기초적인 음성인식 기능을 토대로 몇가지 추정을 해봤다.

1. 초보적인 음성 명령
내가 운전중일때 주로 사용하는 블랙베리의 음성 명령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기계 측면의 음성명령 버튼을 누른다)
블베:명령어를 말씀하세요.
나:전화 홍길동
블베:홍.길.동 맞습니까?
나:네
(등록된 전화번호가 여러개일 경우)
블베:어느 전화로 연결하시겠습니까?
나:휴대폰
블베:홍.길.동. 휴대폰으로 연결합니다
(자동으로 전화를 걸고 연결되면 스피커폰으로 대화한다)

실제로 인식률이 대단히 높은데 내 음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학습을 시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을 하면서 이러한 학습이 지속되서 사용하면 할 수록 명령어 인식률이 좋아진다. 전화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기능들도 다 음성으로 할 수 있다.

아마 siri 는 이러한 초보적인 음성 인식을 더 확장 구현한 것일 것이다. 단지 이런 정도라면 별로 주목받지 못할게 뻔하다. 이미 이런정도 기능은 작년을 기준으로 보편화 되어 있으며 각종 앱으로도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것은 집이건 직장이건 개인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만 사무실에서도 개인 공간을 확보해주고 자동차 문화인 미국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 들고 나온 siri 는 무엇이 '달라야만' 할까? 답은 인공지능이다. 단순히 음성 명령을 해석해서 앱에 명령어를 전달하는 수준이 아닌 '자연어 분석과 판단, 제안'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다음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2. 배터리
상시 음성인식이 가능하려면 전화기가 항시 음성인식 대기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배터리 소모를 야기한다. 실제로 각종 웰컴 기능과 같은 stand-by 기능에 대한 요구가 많음에도 제조사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건 배터리 소모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시 음성 인식이 특히나 배터리 소모가 많은 것은, 각종 소음과 음성 명령을 구분해야 하며 항상 마이크로부터 들어오는 소리들을 분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저전력 AP를 필요로 한다. 아이폰4S가 A5라는 저전력 AP를 사용하고도 연속 대기 시간이 아이폰4의 300시간에 100시간이나 모자란 200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시간은 3시간 정도에 불과한 대기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전에 반드시 충전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사실상 충전기를 떠나서 쓸 수 없다는 말이 된다.

3. 무선 자유도
내가 운전중 전화하는 용도 말고 음성인식 기능을 자주 쓰지 않는 것은 음성인식을 사용하려면 전화기를 집어 들고 음성인식 버튼을 눌러 활성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운전중과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 이왕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면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하기보다 그냥 앱을 실행시켜서 보는게 빠르고 간편하다. 따라서 전화기를 손에 쥐거나 가까이에서 명령하지 않아도 될정도의 무선 자유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아이폰4S는 경악스러운 연속 대기시간으로 인해 거의 항상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지간한 거리, 사무실내 정도에서는 전화기를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만큼 무선 자유도가 있어야 한다.

4. 빠른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
단순히 사전 약속된 음성 명령을 앱에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어를 분석하고 어떤 앱에 어떤 명령어를 전달해서 어떤 결과물을 사용자에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인공지능 행동을 위해선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을 극대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령을 내린 후 회신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기능 자체가 쓸모가 없게 된다.

5. 결론
자, 이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4S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보자.

A5를 비롯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발표엔 3D구현 능력으로 설명 되었지만 같은 말이다)을 극대화 하는 하드웨어 구성으로 바뀌어 있다. 기존의 A4로는 도저히 siri를 구현하는데 충분한 속도와 전력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구현이기 때문에 하드웨어 종속적이지 않은 siri 기능이 4S에서만 동작하는 걸로 제약을 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을 30%나 줄여야 했다. 애플 입장에서는 배터리 크기를 늘리고 싶었을 테지만 배터리를 키우면 같이 화면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전력 소모율로 봤을 때 화면을 키워봐야 배터리 크기를 키운 만큼 효과는 크게 보지 못하고 가격만 올라갈게 뻔하다. 그렇다고 두껍게 만드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터. 아마 아몰레드가 굉장히 탐났을 걸로 짐작된다. (대신 조만간 low Vf S/V LED에 대한 요구 수준을 올리겠지. OTL)

따라서 새로운 4S는 항상 충전용 도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럼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하는 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애플이 찾은 답은 블루투스4.0 이다. 이녀석의 수신 반경은 50m 정도로 사실상 사무실이나 집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범위다. 즉,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다니면서 텍스트 메세지부터 전화기 동작, 음성통화 등 모든 조작을 음성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사실...이 블루투스 헤드셋이라는게 생각보다 불편하다. 너무 작은 크기도 그렇고.)

결론만 놓고 보면, 기기의 경쟁력을 위해 siri를 넣었다가 아니라 siri를 넣기 위해 기기의 사양을 결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beta버전에 불과한 상태에서. 이는 제품의 완성도를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애플의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만일 siri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라면 어느정도 납득은 간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시켜주는 학습으로 인해 정식 버전에서는 시스템의 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테니. 아마 아이폰5에서 정식 버전으로 탑재되겠지.)

조만간 아이폰5가 발표될 것인가? 나는 무조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배터리 문제 때문에라도 폰의 크기를 키워야 하며 그럴경우 디자인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 하다. 또한, 커진 만큼 할 수 있는 짓도 늘어난다. 아마도 내년 상반기가 아닐런지.

6. Siri의 또 다른 의미..
이번 행사에 페이스북이 초대받지 않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애플은 앱 생태계를 키우고자 하지만 페이스북과 다른 경쟁자들은 '웹앱' 을 키우고자 한다. 그런데 siri를 사용하려면 웹은 어렵다. 즉각적인 반응을 위해서는 앱이 기기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Html5에는 단언하건데 음성 명령에 대한 tag가 전혀 정의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애플은 siri를 통해 사용자들이 앱에 종속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적어도 단기간에 안드로이드에서 추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애플이 작년에 인수한 siri는 인공지능에 대해 지구상에서 가장 앞서 있던 회사였다. 음성 인식은 흉내낼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 깔린 인공지능은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하여금 다시 지루하고 힘든 follow-up의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애플은 siri를 통해 그동안 구글에 종속됐던 모바일 검색을 통제할 수 있다. 이제 무엇을 검색하고 싶을때 사람들은 그저 siri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Siri가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오든 그건 관심 밖이며 검색엔진에 대한 통제권은 완벽히 siri에게, 아니 애플에게 있다. 또한 이런 인공지능 시스템에 어떻게든 광고를 적용할 방법을 찾아내는 순간 이 시장의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 컴퓨터 관련해서 정보를 요청하면 결과를 말하기 전에 인텔의 "딩딩딩딩" 하는 로고음을 한차례 들려주기만 해도 되고 siri에게 정리해 달라고 한 페이퍼의 아래에 한줄 회사 이름을 넣어도 된다.

그리고...그 무엇보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siri는 축복이 될 것이다. 이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마 잡스가 있었다면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잘 버무려서 연출을 해 냈을 것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이러한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와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감동적으로 연출한 뒤, "이것을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폰4의 몇가지 부품을 업그레이드 했다." 는 식으로 가볍게 말했을 것이다. 별거 아니라는 업그레이드가 사실 A5라는 걸 알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발표의 기술.

그가 떠난 지금, 그래서 더욱 그립다. 내가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때마다 아마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

Good bye Jobs. Thank you so much.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책상

오늘 아침,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려서 돌아오면서 문득 내 책상이 눈에 띄었다. 온통 공학과 경영학, 금융에 대한 책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필요한 것들임에는 분명했지만 시집 한권 없는 그 모양새가 무척 한심해 보였다. 시 한편 읽고 사색에 잠길 여유도 없이 살고 있었다니...항상 책장에 시집과 수필집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어디로 간건지.

오늘 점심시간, 간만에 서점을 들려봐야겠다.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이력서

마지막으로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 한 것이 생각해보니 박사 학위 취득 하기 전 지금 회사에 입사 준비를 하면서가 마지막이다. 벌써 몇 년이 자난 일. 사실 그동안 이력서를 업데이트 해야 할 이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오늘 직장 선배(...라기 보단 인생 선배. 지금 회사에는 내가 먼저 입사했으니.) 한명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눈 여러 대화중에 "직장인의 가슴 한켠엔 사직서가 아니라 오늘 아침 업데이트한 자신의 이력서가 들어 있어야 한다." 는 말을 들었다. 당장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함께 근래에 들은 가장 인상깊은 말.

오늘은 퇴근하면 묻어 놨던 내 이력서를 꺼내서 먼지를 털어봐야겠다. 나름 나 자신의 커리어 패스를 관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이력서를 방치했었다는게 조금 충격. 그래도 그 선배의 조언 덕분에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현상 실패

간만에 필름 현상을 했다. 뭐,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실패. 촬영 자체도 오랜 시간 여러 장소해서 해서 노출 환경이 제각각이었고 현상 자체도 너무 마음 편하게 집중하지 않고 했더니 교반도 평소같지 않고 자잘한 실수가 많았다. 아무래도 중형도 아닌 35mm 필름을 현상할 땐 주의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사람 마음이란...

그래도 마무리 다 하고 건조까지 시키고 있다. 필름 스캔까지 진행 하려고 생각중인데 최종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하다. 언뜻 봐도 군데군데 제대로 안된게 눈에 띄지만 그래도 현상을 하고 릴에서 필름을 빼서 건조 시키기 위해 널어 놓을땐 기분이 상쾌했다.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가 즐거운 취미를 갖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자, 어서 어서 잘 말라라. 저녁 먹고 나서 필름 스캐너에 넣어 줄테니 결과를 보자꾸나. :-)

2011년 9월 8일 목요일

금융 시장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

어제 신입사원 한명이 투자 관련 이야기를 하길래 세가지를 이야기 해줬다.

이것저것, 이쯤저쯤, 나름대로 투자를 해 오면서 깨달은 한가지 사실. 금융 시장에서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시기별로 자산별로 멀리 내다보고 분산투자 하는 것" 이 유일한 방법이다.

분할 매수를 하고, 자산 위험도에 따라 분산 투자를 하고, 몇 년 후에 쳐다봐야 할 정도로 길게 투자 호흡을 가져가는 것 만이 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공포심으로 오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투자 액수가 적다고 고수익률에 목을 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다. 투자금의 많고 적고를 떠나 분할/분산/장기 투자하여 자산을 관리하는 습관을 몸에 들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분산 투자를 해 놓고 시장 상황에 따라 무게 중심을 조금씩 움직여서 손실최소/이익극대를 추구하는 것은 연습해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묘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금이 소액일 때 이 연습을 해보지 않고 바로 큰액수의 투자를 하게 되면 당장의 손실액에 눈이 가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다. 연습이 안되어 있을땐 소액이라도 특정 금융 자산의 폭등에 눈이 돌아가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 무시하고 쫓아가게 되니 말 할 필요도 없다.

금융 자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월급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말자. 부족한 월 수입으로 인해 고수익 상품에 욕심이 생기는 경험은 나도 지긋지긋하게 해 봤지만 그런 여건의 사람일수록 아무리 욕심을 내 봐야 금융 투자로 매달 자신이 받고 있는 월급만큼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은 자신이 벌고, 금융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의한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데 집중하자.

둘째는, 적금을 우습게 보지 말자. 수익률은 돈을 모은 다음에 생각해야 할 대상이고 적금 만큼 마음 편히 돈을 잘 모으는 투자 상품은 없다. 그리고 소액 적금을 들어 보면 술자리에서 몇만원씩 쉽게 쓰는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영 못미덥다면 우선 1년짜리라도 들어 보라. 1년 뒤에 "우와" 하게 될테니.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셋째는, 보험을 잘 들어 두자. 매주 로또를 살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매달 보험료 내고도 남는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수백만분의 일'이지만 암에 걸릴 확률은 '30%나' 된다. 암에 걸리면 수천만원 날아가는 건 우습다. 그러니 암보험은 당첨 확률 30% 의 수천만원짜리 복권이나 마찬가지다. 어느게 현명한 투자인지는 물어보나 마나. 로또는 이런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끔 생활의 활력을 위한 재미로 즐길때 그 가치가 있다.

거액의 자산가들을, 부동산 부자들을 부러워는 하자. 부러운 건 부러운거지 그걸 부러워하지 말자는 건 불가능한 소리다. 하지만 부러워는 하되 그 때문에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하지는 말자. 대신 그 부러움을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원동력으로 삼자. 그게 현명한 투자고, 금융 시장의 공포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이다.

2011년 9월 2일 금요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당신들 같은 자가 함부로 가져다 쓸 문구가 아닙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강용석 의원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오셨나요?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이봐요 김형오씨. 당신이 말하는 강용석씨는 소위 '취중실언'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고 오히려 '인감제출'발언을 한 사람입니다.

"만약 이만한 일로 강용석 의원이 제명 처분된다면 우리들 중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허....그 수준이었나요? 그럼 다 그만 두시고 다시 선거 해야죠. 하긴 돌이켜 보면 국회의원들이 일으킨 '성 논란' 이 한두건이 아니었죠?

김형오씨. 정치인들은 잘 모르는 듯 한데 궤변은 스스로를 만족시킬 뿐입니다. 자중하세요.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변화

나 자신은, 스스로는 변화에 대해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날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 할 만큼 인간의 불변성을 믿는 입장이 아니기에 나 자신이 분명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구체적으로 그걸 집어 낸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혹은 몇년간의 시간 후에 날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분명 내게 전에 알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면이나, 혹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면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는지.

...그런데 사실 그걸 또 굳이 알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알아서 뭐하게? 중요한 건 지금이지.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신용 그리고 저축은행

투자 시장에서 높은 위험은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에 따른 피해자들은 고위험을 무릎쓰고 높은 금리를 찾아 저축은행을 투자처로 선택한 투자자일 뿐이다. 이들의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은 법을 고쳐서까지 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할 대상이 아니다. 비록 이번 사건이 금융 감독 기관의 부실에서 기인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애초 위험 자산에 투자한 선택이 희석될 순 없는 법이다.

저축은행 국조 위원들이 사고를 쳤다.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예금액을 법이 정한 5천만원이 아닌 6천만원으로 상향하여 보상해주는 것도 모자라 후순위채까지도 보상해 주겠다는 전무후무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후순위채와 같은 초고위험 고수익 자산의 투자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는 말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샀는데 그 기업이 상장 폐지되면 투자액을 세금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적어도 신용 이라는 말이 금융 거래에서부터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금융 시장에서 이처럼 법과 원칙을 마음대로 어기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의 해결 권한을 주어서는 안될 일이다.

2011년 8월 17일 수요일

인생이라는 레이스

아침 사내 방송에서 '지금 우리는 인생이라고 하는 한번도 뛰어보지 않은 레이스를 뛰고 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지 말자.' 는 이야기가 나왔다.

맞는 말이다. 내가 앞으로 몇km를 더 뛰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페이스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연히 레이스가 짧을 수는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우연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기를 내 인생에서 어떤 시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 항상 되뇌이지만 일상에서 경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 하게 된다.

심호흡 심호흡. 생각한대로 살자.

리더

리더에 대한 신뢰를 잃는 다는 것 만큼 조직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그냥 투덜거림이나 적당한 뒷담화가 아닌 말 그대로 실망과 신뢰감의 상실.

나나 내 동료가 세계 최고의 인재는 아니지만 분명 더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터무니 없는 조바심과 무지(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의 반도 못한 결과를 내놓아야 할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리더가 요구한 소설을 기획서랍시고 쓰고 나서는 발걸음. 정말 무겁기 그지 없다. 오늘 저녁 단 몇시간만에 억지 협의를 거쳐 만든 그 2페이지짜리 기획서로 우리 회사의 경쟁력은 몇년을 후퇴할 것인지. 아니, 어쩌면 항상 그렇듯 그 내용은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또 새로운 소설을 요구하게 될지도.

이젠 제발 CEO놀이, CTO놀이는 관두고 자기 본연의 업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블랙베리 9700용 OS6 사용감

일주일 가량 내 블랙베리 bold 9700에 이번에 발표된 정식판(!) Bold 9700용 OS6를 설치해서 사용해 보았다. 다시 OS5로 복귀하신 했지만 나와 같은 시도를 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리를 한다. (물론 대부분은 직접 설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나와 같은 절차를 밟으리라 생각하지만.)


1. 설치 프로세스

RIM사의 운영체제 정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블랙베리의 모든 관리를 할 수 있는 데스크탑 매니저(애플의 아이튠즈에 해당한다) 라는 PC용 관리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으로 OS6를 설치할 수 없다. OS6의 9700용 정식 한글판 설치 파일을 다운받아서 별도 설치를 하고나서 데스크탑 매니저를 실행시켜야 OS6를 내 블랙베리에 설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RIM은 사실상 블랙베리 유저들이 기기가 생산될때 설치된 OS의 메이저 버전업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내 9700에 설치된 OS는 5이고 이 버전에서 나오는 모든 업데이트들은 데스크탑 매니저에서 자동으로 체크하여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 과정이 복잡하지도 않고 애플의 아이폰처럼 업데이트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OS6로 업그레이드 하려면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를 필요로 한다. 만일 RIM이 유저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OS6로 이전하게 하고 싶었다면 데스크탑 매니저에서 손쉽게 업데이트를 하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방식을 통해 RIM은 "OS6를 당신의 기기에 설치하는 것은 우리가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당신이 직접 우회로를 통해 설치한 것이므로 대부분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당신의 선택권을 위해 당신 기기에서 동작하는 버전을 만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고 이야기 하고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9700 사용자들이 OS6를 모르고 넘어가 주길 원하고 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에 익숙하고 뉴스등을 통해 OS6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처럼 OS 버전업 됐다고 떠들썩 하게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2. 용량

보편적인 블랙베리 유저들처럼 나 역시 메모리 잔량을 체크하는 것이 일상적인 습관이 됐다. RIM은 애플이 선택한 '기기의 확장성을 통해 추가 가능한 앱으로 사용자가 가치를 찾게' 하는 정책이 아닌 '기기와 연동된 잘 설계된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공' 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 애플은 앱스토어를 제공하고 RIM은 BIS와 BES를 제공한다. 물론 과거와 지금의 승자가 각각 누구인가는 명확하다. 중요한 건 이런 정책 탓에 블랙베리의 가치 중 상당 부분은 BIS나 BES에 치중되어 있다. RIM은 이를 통해 단말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었지만 앱으로 확장성을 확보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단말기 메모리가 모자라서 앱을 설치하는데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블랙베리 유저들은 항상 메모리 잔량을 체크하고 다닌다.(특히나 구형일수록.)

내 bold 9700은 256MB의 용량을 갖고 있고 OS5를 설치하고 나면 120MB정도로 용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OS6를 설치하고 나면 메모리 잔량이 50MB 이하로 줄어든다.(실제로 내 경우엔 35MB까지 줄어들었었다) 말이 쉬워서 50MB 이지 이 공간을 앱과 운영체제의 동작을 위한 공간으로 함께 사용해야 하는데 앱 하나 설치하는 것이 잔여 용량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오며 앱을 하나 설치할 때마다 시스템이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부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메모리가 보다 여유로운 9800이나 최소한 9780 정도는 되어야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9700 에서 OS6를 사용하는 것은 보다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3. 웹브라우저

OS6 의 베타버전부터 시끄러웠던게 webkit 을 적용한 웹브라우저의 속도였다. OS5까지의 거북이 뺨치는 웹브라우저 속도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며 RIM은 OS6에 기본 포함된 웹브라우저를 통해 이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직접 사용해보니 빨라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OS5로 복귀한 지금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 의심을 하고 있다. 블랙베리 웹브라우저의 속도를 결정했던 것은 웹브라우저의 성능이 아니라 BIS나 BES의 데이터 압축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근 RIM은 BIS 서버 이용료를 12000원에서 5000원으로 대폭 낮췄다. 그와 함께 체감 데이터 사용량이 늘었다. 나는 이것을 BIS압축 리소스를 줄여 요금을 낮추고 속도를 개선해서 얻은 비용 절감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블랙베리는 모든 데이터를 BIS 서버에서 일단 압축해서 전송하기 때문에 아이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적은 데이터 사용량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늦어지고 BIS서버의 부하가 늘어난다. 더군다나 무제한 요금제가 나올만큼 데이터 서비스 이용 요금이 저렴한 지금에 와선 압축은 거의 불필요한 서비스가 된 것도 사실이다. 웹킷은 우수한 플랫폼이다. 그렇지만 이번 속도 향상은 그것만은 아닌 듯 하다. OS5의 기본 브라우저 성능도 함께 향상된 듯 하므로. 물론 이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의심이다.

속도 이외에 달라진 점이라면 기존 열보기 기능이 확대 기능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는 점. 예전에는 메뉴에서 열보기를 선택해 줘야 했으나 이젠 간단하게 확대하면 웹브라우저가 판단해 열보기가 필요하다면 자동으로 적용된다. 적어도 이론 적으로.

국내에서는 모바일 전용 웹페이지들이 대부분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최적화 되어 있다. 말이 좋아 최적화지 전용이나 다름없다. 화면 크기, 폰트 크기 등이 블랙베리에선 맞지 않아 깨알만한 글씨를 감내해야 한다. 전에는 이럴 경우 열보기 기능으로 좋은 가독성을 확보 가능했으나 강제 열보기 기능이 사라진 지금 모바일 전용 페이지들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열보기 기능으로 인해 지금 방식의 웹브라우저는 모바일 페이지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물론 이건 RIM의 잘못은 아니다. 다수만을 위한 서비스만 고려하는 국내 웹서비스 업체들의 질낮은 IT마인드 탓이다. MS종속국가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지난 십년을 보내고 나서 많은 돈을 들여 간신히 그런 웹체제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 다시금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언제쯤 우리나라가 IT약소국을 벗어날 수 있을지. 다수(혹은 강자)만을 생각하는 마인드에는 미래가 없다. 그게 IT든 사회 정책이든.

4. 소셜피드, 유튜브, 팟캐스트

OS6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소셜피드라는 기능이다. 소셜 피드를 이용하면 본인이 가입된 모든 페이스북 등의 소셜 서비스에 동시에 포스팅하고 업데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RSS리더도 내장하고 있어서 상당히 편리하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전용 앱이 포함된 건 대단히 반가웠다. 특히 OS5에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 하려면 유료 앱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OS5로 복귀한 지금 이들이 무척이나 아쉽다.

5. 검색기능

아이폰과 같은 풀터치폰은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기능은 바로 홈화면 직접 검색이다. 터치폰은 주소록으로 이동해서 검색해야 하지만 블랙베리는 홈화면에서 그냥 검색어를 키보드로 누르면 바로 주소록 검색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찾아낸 사람에게 메일,전화,문자,페이스북,구글톡 등 바로 서비스를 골라 연락할 수 있다. OS6는 이 기능을 강화해서 구글검색,지역검색 등 십여개가 넘는(다 세어보지 않았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한글 입력 처리가 불완전해서 예전처럼 바로 입력하면 첫 글자의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을 검색하면 'ㅎㅗㅇ 길동' 으로 입력된다. 2바이트 언어 처리 부분을 신경 안썼기 때문인데 꼭 검색어를 입력하기 전에 스페이스바를 눌러서 검색창을 불러낸 다음 입력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불편했다. 습관은 무서운 것. 특히 이 부분은 RIM에서 업데이트 한 페이스북 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검색하는 서비스 목록에서 선택 사항을 아무리 변경해도 다음번에 재부팅 하거나 한 후에 보면 리셋되어 있다. 이 두가지는 내 생각에 엄연히 버그인데 마름질이 부족한 티가 났다.

6. 기타..

인터페이스도 좀 더 미려하게 바뀌었고 참담했던 설정 부분도 좀 더 친절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자잘하게 더 신경 쓴 티가 났다. 하지만 결국 OS6는 9800이나 9780등 신기종을 사용할 때 장점이 부각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단점을 다 떠나서 내 9700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OS5로 돌아온 지금, 다시 즉각적인 응답을 보이는 내 블랙베리를 만지면서 최신 기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래도 한가지. 유튜브 기능은 OS5로도 만들어서 업데이트 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 동영상 찍은 것을 올려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불편하다.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우유 급식비

25년정도 전쯤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때 어머니께선 매년 새학년이 되면 담임을 찾아가서 우유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수를 담임에게 받아와서 매달 내던 우유 급식비를 그 아이들 몫까지 내 손에 들려서 보내시곤 했다. 누가 그 돈으로 우유를 먹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지만 제법 수가 많았었고 어쨌든 우리반은 늘 학생 수만큼 우유가 들어왔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얼마나 사려깊은 행동이셨는지를 요즘서야 깨닫고 있다.

애들 밥 한끼 눈치 보지 않게 먹이자는 일에 돈 없어서 나라 망한다고 난리치던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총선이 다가오자 0세부터 무상 보육을 시키자며 설레발을 치고 있다. 이들이 꿈꾸는 보육 시설은 0세 아기들을 돌보기는 해주지만 분유는 주지 않는 곳인가보다.

의무교육은 국가가 강제하는 교육이다. 받지 않으면 보호자가 처벌을 받는다.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며 아이를 보내게 하고 하지만 밥은 줄 수 없으니 밥값을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요청한 적도 없는데 찾아와서 보호해 줄테니 포장마차 보호비를 내놓으라고 을러대는 동네 양아치가 생각난다.

다른 무상 복지 시리즈 다 필요 없으니 의무 교육이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교육 받으러 모인 아이들 눈치보지 않게 밥이나 잘 먹였으면 한다. 25년전 우유 값으로 대여섯명 몫의 급식비를 매달 손에 쥐어주시던 분께 교육받으며 자란 내 생각엔, 적어도 그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의 자세다.

필요하다면 세금 더 낼테니 제발 애들 밥 좀 먹이자. 아이들 보기 낯 부끄러워서 못살겠다.

2011년 8월 7일 일요일

블랙베리 9700용 OS6 업그레이드

얼마전 공식 릴리즈 된 블랙베리 9700용 OS6로 내 블베를 업그레이드 했다. 뭔가 엄청난 변화를 기대 했던 건 아니고 그저 웹킷 적용되었다는 웹브라우저의 속도만 만족스럽기를 바랬었다. 다른걸 다 떠나 OS5의 웹브라우저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느려서....(초고속 인터넷 쓰다가 모뎀 쓰는 기분이랄까..)

업그레이드 하고 보니, 일단 소문대로 웹브라우저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개선이 됐다. 이 점은 대 만족. 그리고 생각도 못했던 소셜피드 라는 새로운 기능. 페이스북등의 소셜 서비스들과 블로그 구독을 위한 rss리더 등이 한데 묶여 있어서 내가 사용중인 모든 소셜 서비스들과 블로그들을 하나의 앱에서 처리할 수 있다. 뭐, 그렇지만 현실적으론 소셜 서비스는 페이스북만 하고 있고 RSS리더는 어차피 구글 리더로 보던 터라...그냥 페이스북과 rss리더를 한 앱에서 이용 가능하다는 장점 말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OS6로 바꾸고 나서 블랙베리 앱월드에서 이용 가능한 앱들이 많이 늘었다. 그동안 한국 앱들이 너무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대부분 OS6이상부터 지원을 했었나보다. 서울버스 같은 앱이 등장할 줄이야.

단점은 일단 OS 가 먹는 메모리가 많다는 것. 내 기기에 남아있는 메모리가 50메가 정도다. 원래 기기의 기본 메모리가 256메가 정도 뿐이라서...50메가도 채 남지 않은 메모리가 주는 심리적 압박이 제법 크다. 그리고 홈 화면에서 바로 주소록 검색할 때가 좀 불편해 졌다. 전에는 그냥 이름을 바로 입력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글자가 깨져서 스페이스바로 입력창을 불러내서 해야 한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사실.

그 밖에도 자잘한 장단점이 더 있는데 그런 것들은 아직 더 써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웹브라우저 빨라진 걸로 현재까진 만족. :-)

2011년 8월 6일 토요일

통합, 융합, 통섭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해요....(중략)...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고, 통섭은 그냥 거기 섞여 있는 상태로, 녹아 있는 상태로 멈춘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번식하는, 생물학적인 어떤 합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발효가 되어서 전혀 새로운 맛이 나는 김치나 장 정도는 되어야 통섭 아니겠습니까?"

<인문학 콘서트 | 새롭고 낯선 유혹, 통섭 | 최재천>

개념이 나오고 어휘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어휘를 듣고 개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대게 후자는 나처럼 들으면 알고 있었던 당연한 개념처럼 받아들이지만 내면으로는 그동안 그런 개념을 내 생활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11년 8월 4일 목요일

삶을 바라보는 태도

지난 한달간, 아니 어쩌면 지난 반년간 여러가지로 생각이 참 많았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 1년처럼 힘들었고 또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그런 생각과 고민으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한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만족스러울 만큼 변화한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움직였다고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자리에서 '옆으로' 비켜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5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날 본다면 누군지 기억도 못할 만큼 인지하지 않고 무시했으리라.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날 봤다면 아마도 숨쉬는 고철 덩어리 취급을 하며 분노했으리라. 그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열정의 가치만을 인정했었으니까. 열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분노했었으니까.

열정.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활활 타오르는 열정은 남이 보기에 멋있어 보일 뿐 스스로에겐 그만큼의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하는게 남에게 멋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면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차분함이다. 자신의 생각과 목적과 의지를 안으로 잘 갈무리해서 쟁여 둘 수 있는 차분함.

젊은이는 마음이 급해서 허둥대다 시간을 낭비하고 나이든 사람은 시간이 부족해서 차분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차분함으로 멀리 본다면 그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

멀리, 길게 내다보는 사람은 활활 타오를 수 없다. 눈 앞의 어떤 일에 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데 그러겠는가. 100미터에서의 순위에 절망하는 마라톤 선수도 없고 200미터까지 전력 질주하는 마라톤 선수도 없다.

지난 몇달의 고민 끝에 남의 평가가, 남의 시선이,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남을 넘어서는 결과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낀다.

조바심을 버리고 멀리 보자.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과 믿음은 여름 한철 미친듯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떠나 보내자.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플라즈마(plasma)

길지도 않은 심플한 단어다. 이게 뭔지 자세히 설명하는 건 귀찮고, 문득 오늘 점심을 먹다가 이게 생각났다. 학부 4학년때 받은 수업의 제목이었는데 말 그대로 플라즈마에 대한 내용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이 과목이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게 공부했다는 것 때문이다. 흡사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다음 페에지에 나올 미분방정식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궁금해서, 또 그 다음엔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서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기 싫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공부했었다. 추리 소설과의 차이가 있다면 한페이지 넘기는데 몇시간씩 걸린 적도 있을만큼 오래 걸렸다는 것. 결국 수식 1-1을 적어놓고 책의 맨 뒤에 나오는 수식까지 줄줄 유도해 가면서 설명할 수 있을만큼 내용에 심취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시험에 임했는데 문제를 풀려고 보니 문제에서는 수식을 외우고 있다는 가정 하에 문제가 출제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식은땀이 주륵 흘렀는데 도저히 수식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것. 유도 하라면 유도할 수 있는데 단순 암기는 못하고 있었다. 어떤 형태인지는 기억 나는데 세세하게는 기억하고 있지 못해서 혹시 틀릴까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수식 1-1부터 유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1번 문제를 드디어 풀고(전체는 4문제)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험 시간을 50분만 준다고 하셨다.(우리과는 전공 과목은 특별히 시간 제약이 없었다. 특히 3,4학년은.) 시간을 더 달라고 하자 시계를 한참 보시더니 5분 더 주겠다고 하셔서 그냥 답안지 내고 나왔었다. 이런 제길슨. 덕분에 4학년 학점이 안드로메다로 갈 뻔했었다. ㅡㅡ;

어쨌든 그때 익힌 지식은 대학원 전공이었던 플라즈몬(plasmon)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었지만 그 당시에는 투덜투덜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오늘 밥을 먹다 그 생각이 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잠자기 싫을만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그렇게 재미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분명 공부보다는 쉬운건 분명한데 말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하는 사람은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1인)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남 탓 하지 않기.

누구를 탓 하기는 참 쉽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못났다. 일이 잘못 되거나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을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물론 정말로 외부적인 요건이 따라주질 못해서 일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비율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내 경우엔 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외부적인 문제로 일이 안풀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크던 작던,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가정이든, 회사든.

며칠전 위에서 일을 시키곤 아무런 권한 이양을 해주지 않아 오히려 일이 제대로 안되고 보고 하느라 시간 낭비가 많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회사는 임원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임원들의 업무가 너무나 많고 그래서 오히려 의사결정 권한을 아래에 나눠주고 싶어하는 임원들도 많다. 중요한 건, 내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 증명해 보이는게 먼저라는 사실. 세상에 권한을 먼저 주고 그 사람을 키워가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효과적이지도 않고.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다는 것 역시 우스운 변명. 업무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에게 한단계 더 중요한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나 자신에게도 매일 아침 거는 주문. 제발 남 탓을 하지 말자. 남 탓을 하면 그도 날 향해 탓을 하게되고 그 순간 협업도, 성과도, 고객도 모두 떠나버린다.

2011년 7월 8일 금요일

돈(money)

돈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세상엔 많아서 나쁠게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좋은 벗과 마찬가지로 돈 역시 많아서 나쁠게 없는 것들 중 하나다. 아, 물론 그걸 제대로 못써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칼과 같이 잘못 사용하는 일부에 국한된 말이니 돈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돈이 많으면 좀 더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 수 있는게 현실이다. 억지로 꼭 그런거 아니고 운운하지 말고 생각해보면 사실이 그렇다. 재미있게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범위는 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 범위가 넓어진다고 더 즐거운 건 아닐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즐길 거리를 찾는 그 사람의 능력 탓이지 범위가 넓어지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게 아닌 이상 돈이 많기 위해선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현재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일해야 한다는,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줄어들 경우의 행복 수치는 로그 함수로 감소한다. 그게 문제다. )

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가끔씩 '구경' 하듯 쳐다보는 내 일상을 보면서 조금 회의감이 드는 요즘이다. 내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 길을 달리기로 결정했을 때, 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었다.

행복을 위해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기간을 언제까지로 가져가야 하는 걸까? 분명한 건 '당장'은 아니라는 것과 '먼 훗날' 이어서도 안된다는 것. :-(

2011년 7월 7일 목요일

아내의 생일

오늘은 아내가 만으로 서른을 찍은 날. 어제 오후에 올라오신 어머니께서 잡채부터 동그랑땡까지 생일상을 봐주신다고 분주하셨던 덕분에 간만에 집에 기름 냄새가 진한 잔치집 분위기가 났다. 그 와중에 케�까지 챙겨 오셨으니 내가 멋적을 정도. 어쨌든 덕분에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나도 잘 얻어 먹었다.

아내에게 만으로 서른을 넘긴 소감을 묻자 남들과 어울려야 나이가 실감날텐데 늘 아이들하고만 집에 있으니 나이가 별 의미 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는 말.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 더이상 하루종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다시 나이를 인식하게 되는, 밖에서 사람들하고 함께 일하는 때가 오겠지. 나이가 더 들더라도 그건 좋은 일일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살 더 나이를 먹은 오늘. 진심으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혜성.

2011년 7월 1일 금요일

5%의 개선과 100%의 혁신

오늘 제품의 나아갈 방향과 개선점에 대한 토론을 벌이던 중 함께 일하는 대리 한명이 터무니 없게 들리는 말을 하면서 내게 그랬다.

"과장님, 때론 5%의 개선보다 100%의 혁신이 쉬울 때가 있는 법이에요. "

순간 한대 맞은 느낌.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 말을 곱씹고 있다. 방법을 찾아보면 당장은 어렵더라도 내년엔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뒤집어 놓고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프로그램이 복잡해지면 디버깅보다 처음부터 작성하는게 더 좋은 결과를 낼 때가 있는 법이니까.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인내

20대의 난 그랬다. 대화 주제와의 연관성에 관계없이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 약점은 찾아내 '사냥'하듯 몰아 붙였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날 변호하기 위한 '논리'로 내 주장을 구성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논쟁에서 이겼고 토론의 마지막 발언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그게 결코 이기는 것도, 내 자존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쟁에선 이길지 몰라도 공감은 얻을 수 없었고 공감없는 토론은 이기든 지든 내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이와 함께 철이 들었다.

이후엔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를 이해했다면 사소한 논리적 모순 정도는 모른척 넘어갈 줄 알게 됐고 상대방과의 관계 그리고 결론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내 변호를 포기할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내 변호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지금 내 변호를 하지 않으면, 논쟁에서 지면 남들이 두고두고 손가락질 할거라는 건 내 착각이요 오만이었다. 마치 셔츠 아래쪽에 묻은 얼룩과 같이. 나는 죽도록 신경쓰지만 남들은 그런 얼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알게 된다해도 곧 기억에서 잊혀진다. 그 얼룩..내게는 창피한 존재일지 몰라도 나 이외의 사람들에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자존심 또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얻었고 만족해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스스로 그런 생각을 완전히 체화하진 못한 것 같다. 그 순간엔 분명 과거와는 다른 행동으로 잘 대처하고 넘어가면서도 한참 후에까지 속에서 열이 오른다. '이 말은 이렇게 받아쳤어야 하는데', '이 말은 꼭 해줬어야 하는데' 등등의 생각들과 함께. 내가 복기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상대를 논리적 코너로 몰거나 상처를 입히는 말들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못해준게 열받고 짜증이 난다. 물론 동시에 한켠에선 그런 짜증을 스스로에게 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는 것도 피할 도리가 없다.

40대가 되면 이런 내면의 갈등까지도 제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50대까지 가야할까? 아니면 삶을 정리하는 시기가 되어야만 이런 내면의 갈등을 부드럽게 넘길줄 알게 되는 걸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

2011년 6월 20일 월요일

핸드드립

최근 깨달은 건데, 내 핸드드립 솜씨가 제법 늘었다. 아마 회사에서 매일 한두잔씩 내리면서 여러모로 숙달이 되었기 때문일 걸로 생각된다. 그 동안은 내 핸드드립 솜씨가 늘었는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내가 나더러 늘었다고 해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늘었다.

아무리 티가 안나도 꾸준함은 결국 결과를 보이는 법이다.

어쨌든, 별 것 아닌 일인데 괜시리 기분좋은 밤이다. :-)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출장 복귀

아프리카 케냐로의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사실 이틀 전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어 당초 계획했던 여행기를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해야할 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암튼, 장기간의 출장이 힘들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던 지난 열흘이었다.

출장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로인해 하나의 고민을 하게된, 조금 색다른 의미에서 고마운 출장이기도 했고. 어쨌든 열흘만에 확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11년 5월 1일 일요일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에 대한 Reply

이 포스팅은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포스팅을 읽고 댓글을 달던 중 너무 길어져서 제 블로그 포스팅으로 바꿔서 올리는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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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님,

토요일 아침 일상이 인상적입니다. "느즈막히 일어나 뭐라도 주워먹게 배려해 놓는" 문화가 말이죠. 요즘 제 가족의 문화? 암튼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중이라서요.

저는 요즘 말로 "타이거 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휴일도 예외없이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으니까요. 휴일 늦잠이 당연시되면 평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게 되어 버린다는게 어머니의 생각이셨지요. 그래서 평일 휴일 구분없이 늘 기상 시간은 같았습니다.(제 기억에 초등학생때도 늘 그랬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런데 5시반에 일어나면 제가 가족중에 제일 늦잠을 잔 거였습니다. 아침 운동갈 준비와 그 전에 가볍게 허기를 달랠 음식들까지 모든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조금 자라고 난 후 그게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깨달았지요.)

하지만 그게 자라면서 완전히 (몸과 마음 양면에서)습관이 되어 버린 탓에 내색을 하진 않지만 결혼 후 늦잠을 즐기는 아내의 생활 습관이 심적으로 잘 받아들여 지지 않았었고 요즘은 아이들을 몇시에 일어나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중입니다. 아직 어린 아가들이라 일어나는 습관에 대해 말할 단계가 아니라 이야기 안하고 있지만 말이죠.(제가 가진 생활 습관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구요.)

정작 저 자신은 울트라 초 슈퍼 아침형 인간으로 교육 받느라 힘들어 했으면서도 막상 아이들이 생기고 나니 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고민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early bird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가지로 유리합니다. 일단 아침형 인간이 되기만 하면 일상의 시작이 확실히 덜 힘들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주위를 보면 다들 힘들게 아침을 시작하고 약간의 짜증속에서 침대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몸이 아프거나 피로가 지나치게 누적되어 있지 않는 한 아침은 늘 기분이 상쾌합니다. 업무 시작할 때쯤의 컨디션은 최고지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일찍,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항상 성공한다는 법칙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강한 적응력을 발휘하는데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지요. 제가 만일 늦잠을 즐기는 스타일(늦잠으로 상징되는 생활 패턴을 말합니다)이었다면 지금의 제 생활이 불행하게 받아들여졌을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힘들어 하는걸 보면서 제 아내도 같이 힘들었을거고 집에서 웃음을 짓기가 서로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는 힘들어서, 아내는 안쓰러워서 말이죠. 어쨌든 지금의 일을 제가 잘 적응해내고 있기 때문에 요즘같은 세상에 아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저 자신은 힘든것을 잘 견디도록 배우고 자란 사람의 습관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라온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할지, 또 아내도 얼마나 힘들어 할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지금 힘들더라도 생활 습관을 다잡자'는 생각을 실행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이 두 가지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느 한쪽이 틀리고 맞는 정답이 있는 것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됩니다. 차라리 정답이 있는 문제였으면 좋겠네요.(이과 전공자의 특징이지요.)

그 두가지 길 중, 다른 한쪽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이 두렵습니다. 아내를 통해, 주위 사람을 통해 그 길을 걷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는 지장 없다는 것은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들어본 것과 직접 걸어보면서 그 길에 숨어 있는 돌뿌리나 비탈 등을 느낀 것은 하늘과 땅 차이겠지요. 걸어보지 못한 길은 아무리 들어도 모른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과연 제 아이들이 그 길을 선택하게 한 후 아이들이 그 길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그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제가 아버지로써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역할에 대해 일찌감치 접어놓는 행위가 되는 것 아닐까요? 제 고민과 두려움의 근원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고민을 저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찌감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전개하려다 보니 글만 길어지고 핵심이 없어졌네요. 댓글로 쓰면 James 님의 댓글창을 망가뜨릴 것 같아 제 블로그로 옮겨서 포스팅합니다.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비를 맞은 기억

기억에 남는 비가 지금까지 두 번이 있었다.

첫번째는 중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하교시간 버스를 놓치면 한두시간 이상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온 날이었고 친구들과 텅 비어버린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다 그냥 "비 맞고 가자" 는 의견의 일치를 보곤 폭우속을 우산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집까지 한시간 반을 걸어오면서 친구 넷이서 흠뻑 젖어서는 목청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웃고 떠들면서 텅 비어버린 도로를 뛰고 걷고 하면서 집까지 왔었다. 같이 비를 맞으며 걸었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그 날의 자유로움은 아직도 기억한다.

두번째는 대학생때 국토종주를 하던 중 장마비를 만났을 때다. 판초 우의를 입고 있어서 흠뻑 젖지는 않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던 아스팔트의 열기에 지쳐있던 심신에 활력을 되돌려 준 고마운 비였다. 첫번째 비 보다 더 세찼고, 가슴 깊이 느꼈던 자유로움은 더 컸다. 아마 그만큼 더 구속되는 것이 더 많은 나이여서 그랬으리라. 이후 며칠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맑은 날 보다는 비가 오는 날이 더 반가웠었다.

오늘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더불어서 방사성 오염 물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산성비라 맞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눈총을 받는 요즘의 비일진데 방사성 오염 물질이라는 덧붙임 덕에 이제 비를 맞는 건 정신나간 행동으로 분류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기에 이런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언제 또다시 비를 맞으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청정 지역중 한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전엔 요원한 일일 듯 싶다.

2011년 4월 17일 일요일

은퇴 후 제주도

평소 은퇴하면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자고 아내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 하다 요즘 갑작스럽게 진담으로 급격하게 무게추가 쏠리고 있다.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려면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적어도 20년은 더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사실 그 이후에도 은퇴라기 보다는 여기저기 옮겨가면서 일을 하게 될 건 명확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 하는 은퇴는 바로 그 시점이다. 치열하게 20년을 살았으면 그 이후는 공기 좋은 곳에서 그냥 어디 손 안벌리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월 수입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 그걸 위해서 노후 대비를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고.

어쨌든 그 때가 되면 미련없이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자고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요즘엔 정말로 제주도에 나 같은 직종의 경력자가 일 할 만한 곳이 있는지까지 알아보곤 한다. 지금 당장 사표 던지고 제주도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때가서 내 경력을 살릴 수 있을까? 적어도 지역사회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이 그때까지 거기서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공상의 끝이 어디로 가든 은퇴 후 가족과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사는 꿈이 기분 나쁠리 없다. 그 때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도 하고 짬을 내서 제주도에 대해서도 좀 검색해 보고. :-D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정물 110327


정물 110327

Kodak HC-110 을 테스트 중인데 아직 약품 특성 파악이 안된다. 기대했던 것 보다 중간 톤 표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입체감을 표현하는데 있어 로디날과 어떤 차이점을 보여줄지.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과물로만 놓고 보면 합격선은 넘었다.
(현상시간이 짧은데서 일단 한점 먹고!)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Whare are you.....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나온 발자국이 조금씩 파도와 바람에 지워져 돌아보면 아득한 백사장만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지난 하루 하루를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기억이라는 것의 속성이 원래 시간의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을 뿐더러 밀려왔다 되돌아 가는 파도처럼 한결같은 모습도 아니기에 그렇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감정으로 성큼 다가선다. 서랍속에 넣어 둔 물건처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다가 뜻밖의 순간에 눈앞에 나타나 난처한 기분을 느낄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감정의 모습을 하고선.

하루종일 마신 커피가 과했는지 마지막으로 내린 커피는 입에서 걸려 더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입에서 넘어가지 않는 커피를 억지로 한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지나온 시간속으로 감정이 휩쓸려 버렸다. 우울함과는 다른, 굳이 표현하자면 쓸쓸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속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미소가 지어지는 쓸쓸함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고요함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라면.

약간의 나른함과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발걸음.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아 기억을 보듬고 있던 감정까지. 자그마하게 틀어놓은 루시드 폴의 음악이 유난히도 어울리는 밤이다.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일본 지진

지난 며칠간 일본 지진에 대한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희생자 수가 집계되기 시작하고 피해 상황이 기사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진 관련 기사를 읽지 않고 있다. 도저히 그 기사에서 그리고 있을 참혹함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

지금의 내 삶이,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그곳에도 일상과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고 살았을 어린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본적 없었을 그 아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지를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모든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초라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지금 거기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그네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그것은, 그 아무리 자연이 거대하고 나는 초라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 거대함이 의미를 갖는 것은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존재 가치와 의미를 갖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기원한다. 나를 바라봐 줄, 그래서 내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는 이웃이 한명이라도 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핸드드립 커피" 그리고 "사이먼&가펑클"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그라인딩한 신선한 원두향을 맡으며 핸드드립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직장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끓인 물이 아닌 정수기 물로 내려서 마신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운이 좋은 직장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커피를 즐기는 사람 기준으로.) 핸드 드립을 하는데 필요한 용품들을 사무실 책상에 가져다 놓고 종종 즐기고 있는데 보통은 출근해서 바로가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야근할 때 한잔씩 즐기곤 한다. 모닝 커피 한잔이 아쉽긴 하지만 출근 시간대 정수기 근처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거기서 커피를 내리고 있기는 미안하기 때문. 그렇지만 오늘처럼 휴일에, 그것도 평소처럼 8시 전에 출근하면 사무실에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커피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게 내려졌다. 굉장히 흡족할 만큼. 그렇게 내려진 커피잔을 들고 브라질 원두 특유의 깔끔함과 진한 향취를 즐기고 있자니 평일과 휴일 구분없이 일에 치어 살고 있는 요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바쁜 시즌이 정해져 있으니 요즘만 잘 견디면 되지 않을까?
 
어제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사이먼&가펑클" 특집 방송을 했다. 평소 라디오를 듣는 편이 아니어서 누가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집까지의 20여분 동안 이들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주차장에 들어서면 방송이 끊길 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잠깐 주차장 입구에 이면 주차 해두고 시동을 껐다. 모든 소리들이 차단된 어둡고 조용한 차 안에서 그들의 감미로운 미성으로 듣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 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사무실을 나와서도 계속 업무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리속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온 차분함으로 편안하게 물드는 느낌. 노래가 흘러나오는 5분여의 시간 동안 그 편안한 느낌을 더할 나위없이 만끽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 힘든 건 큰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문제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길을 걷던 이를 넘어지게 만드는 건 집채만한 바위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뿌리다. 힘든 순간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작은, 그리고 사소한 문제다. 주위에선 "뭘 그런 것 갖고 그렇게 오버하냐"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넘어진 사람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발 끝에 채인 돌뿌리의 크기가 아니라 무릎에 난 큼지막한 상처다. 상처가 아닌 돌뿌리를 보면서 "별 것도 아닌걸로" 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도, 쓸모도 없고 적절하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내게는 어제 밤 주차장 입구 옆 이면도로에서 내 마음을 채우고 지나간 "사이먼&가펑클"의 음악이, 오늘 아침 평소보다 맛있게 내려진 커피 한잔이 바로 그런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무너질 만큼 힘들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요즘의 내 마음을 편안하게 그리고 약간은 나른하게 풀어준.. 작고 사소한 것.
 
행복은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금방 손에 잡히기도 한다. 금방 손에 잡힐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에 쉽게 쥘 수 있을만큼 작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4일 금요일

기러기 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집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내리는 순간 머리 위에서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늘이 너무 어두워서 보일까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V 자 대형을 이룬 기러기 무리가 나타났다. 놀라울 정도로 낮게 날고 있었는데 아파트 꼭대기에서 본다면 불과 십여미터 위를 날고 있을 것 같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가는 기러기 무리를 보게 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러기 무리를 제대로 본건 5,6년 전. 물론 그때는 '수십만' 마리의 군무를 본 것이니 지금처럼 십수마리를 본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모든 감동의 근본은 의외성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머리위를 날아가는 그 몇 초 동안 난 얼어붙은 듯이 고개를 들어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도 않고 울음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된지 한참이 되도록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일상은 누구나 의지와 관계없이 헛없이 흐를때가 있기 마련이고 반대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꼭 어느 한 순간, 조금은 나른하고 조금은 지루한, 그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순간이 오면 우린, 늘 눈앞에 펼쳐져 있던 익숙한 일상의 다른 모습을 낯설어 하며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곤 한다. 감정의 한 귀퉁이에 약간의 감동을 담아서.

"꽃샘 추위가 한창이던 어느날 이른 저녁. 집 앞에서 우연히 삶에서 마주치기 힘든 의외성을 주웠다."

2011년 2월 13일 일요일

하바방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를 보다가 하바방 출신들을 모아보곤 참 많이들 변했다...싶어 조금 감상적이 됐다.


자바 책을 사들고 와서 전자기학 실험실에서 밤새던 수석 입학 선환이가,
하바방에 모여 시험 공부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랑 같이)유유히 맥주 마시던 선영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던 신입생 미옥이가,
전시회에 다녀와서 감상문 대신 자작 기타 연주곡을 녹음한 테이프로 레포트 대체했던 성호가,
순대국을 처음 먹어본다며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냐고 물어보던 후영이가,
웃으면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선영이한테 놀림받던 울트라 슈퍼 범생 길환이가,
항상 엄마가 아이들 챙기듯 후배들(가끔 선배도) 돌보고 야단쳐가며 챙기던 주원이가,
후배들에게 연습문제 풀어주며 타고난 학자처럼 생활하던 정호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선배들에게 귀여움 많이 받던 경민이가,
말이 느리다 못해 듣다보면 앞에 이야기 까먹게 만들던 과대표 성훈이가,
도깨비 같은 얼굴 하고 항상 후배들 잡아먹을 준비하던 양도가,
농구공과 혼연 일체가 되어서 학교 다니던 재홍이가,
이름보다 거북이라고 불러 달라고 노래하고 다녔던 승원이가,
현대물리 수업을 양자 수업으로 바꿔 버렸다고 동기들의 지탄을 받던 재혁이가,
생긋 웃고 다니는 얼굴로 모든 사람과 잘 지냈던 민우가,
책임감이 너무 강해 뭘 맡으면 항상 심각한 얼굴 하고 다니던 재환이가,
항상 액티브 하고 겨울이면 스키장이라고 얼굴에 써놓고 다니던 창우가,
반박자씩 느리긴 해도 매사에 열심히 노력해서 극복해 나가던 병철이가,
(헥헥..너무 많아서 동기나 선배는 생략)


이 모든 사람들이 하바방이라는 공간에서 어울리던 그 때, 지금의 모습들을 난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몇몇은 대충 짐작한대로 살고 있긴 하지만. ^^)

우리가 각자 걷는 길이 그 시절 그 공간에서 겹쳐졌었다는 사실이 정말 너무나 기적같다. 그리고 그 기적을 이 사람들과 함께 누렸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하바방이라는, 지저분한 쇼파 두개와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4인용 책상 하나 그리고 낡은 책장 두개가 놓여있던 그 공간이 무척 그리워지는 날이다.

2011년 2월 9일 수요일

둘째 만나는 날 확정

오늘 의사가 수술 일정을 확정 지었다. 날짜는 2/16 일로 예정일보단 한달 가량 빠르지만 인큐베이터는 면할 수 있단다.

요녀석, 나오면 엉덩이를 때려 줘야지. :-)

2011년 2월 8일 화요일

토론의 기준

모든 주장에는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는 극단이 존재한다. 이 극단은 말 그대로 극단적인 경우이며 이러한 부분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토론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입다물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러한 상대와의 토론은 더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치인은 능력보다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그렇다면 무역이 뭔지도 모르지만 아주 도덕적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혀야 하는 거냐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토론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은 토론에 너무나 자주 등장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궁색하게 하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이클 샌델과 같은 이시대 최고의 철학자들 마저도 반대 논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까지 상대의 논리를 계속 밀고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우리가 토론을 할 때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상대 주장의 극단에 받아들이기 힘든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상대의 주장이 갖고 있는 보편적 판단 기준이 어느 선에서 그어지고 있느냐이다. 그리고 그 선이 바로 타협의 기준선이 된다.

물론 형이상학적 논리에 실제로 접하게 되는 많은 개별 상황들에 대한 기준선을 일일이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민은 최소한 우리로 하여금 서로 접근 가능한 타협의 언저리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토론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결론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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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샌델이 그의 저서 Justice에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기 결정권에 기반한 안락사 옹호를 비판하면서 합의하에 서로가 먹고 먹혔던 2001년 독일에서 발생한 브란데스&마이베스 사건을 예로 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1년 2월 7일 월요일

공교육

연합뉴스 :: 체육수업 합법적으로 몰아서 한다
m.media.daum.net/media/sisa/newsview/20110207053206558

아침 뉴스에 체육 수업을 합법적으로 몰아서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기사가 떴다. 읽으면서 참 한심했다. 나 때도 분명 체육 수업은 형식적으로 진행됐지만 이제 대놓고 그런 짓거리를 하게 됐구나. 공교육의 질적 정상화에 대한 이슈가 지난 십년 넘게 있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 관계자들의 수준은 일보도 전진하지 못한 듯 하다.

학부모들의 시선이야 근시안일 수 밖에 없다 쳐도 그들을 설득하고 멀리 내다봐야 하는 교육 관계자들의 수준도 같은 근시안이라는 사실은 한숨을 쉬게 만든다.

2011년 2월 6일 일요일

페이스북 소셜 댓글을 기다림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댓글을 디스커스 서비스를 이용하여 붙이고 있는데 실제로 댓글이 주로 달리는 곳은 페이스북이다. 블로그에 포스팅 되면 페이스북에 자동으로 뜨도록 설정해 놓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인들이 페이스북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쪽에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댓글 시스템을 통합하고 싶다.(지금은 디스커스, 버즈, 페이스북의 세곳에 댓글이 달린다)

최근 소셜 서비스를 이용한 소셜 댓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조만간 페이스북에서도 이러한 소셜 댓글 서비스를 내놓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럴경우 블로그에 페이스북 소셜 댓글 시스템을 부착할까 고민중이다.

악성 댓글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고, 분산된 지인들의 댓글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을테니까.

2011년 2월 2일 수요일

공증 문서 정치의 시대

정치는 말로 하는 싸움의 가장 높은 단계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최고의 덕목은 신뢰이다. 자신의 말에 일일이 증거를 대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설득을 하는 것이 백배는 효율적이며 바람직한 정치 행태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찬성하고 반대하고를 떠나 상대방의 주장이 토론 후에 갑자기 바뀐다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따라서 정치 행위가 불가능 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이야기 했던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못하겠느냐" 라는 발언이나 "충청권의 표를 위해 했던 (발언)공약일 뿐 공약집에도 없다" 라는 말을 신년 좌담에서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공약집에 없다는 것으로 면피가 된다는 그의 발언에는 "주어가 빠졌던" 과거 사례처럼 법적으로 인정되는 증거만 없다면 정치인의 발언은 언제든 뒤집어도 된다는 천박함이 담겨 있다. 더군다나 그는 손학규나 안상수같은 잔챙이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바로 아래이자 모든 정치인들의 정점의 자리에 서 있는 대통령이다.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 주장대로라면 이제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든 발언은 법적 효력이 있는 공증 문서로 남겨야 하는 시대로 가야 하는가?"

2011년 1월 31일 월요일

컬러테스트 결과 - 폭발의 왕?

컬러 테스트. 재미삼아 한번씩 해보시길.

내 결과는 제일 아래에.


 
 
 
나는 폭발의 왕 이라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