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시간싸움

코흘리개 시절부터 수영장에 끌려 다녔던 나는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지 오래다. 피곤하거나 한 경우가 아니라면 5시 30분 알람에 정신을 차리는 편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얼어나는 만큼 일찍 자야 하기도 하다. 11시면 벌써 의식이 혼미해 지기 시작한다. 농경시대에 어울리는 성향이다.

아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 늦게 퇴근하고, 늦게 저녁을 먹고, 늦게 잠든다. 그만큼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저혈압이라 이른 아침 움직이는 걸 힘들어 하는 탓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아내는 한참 꿈나라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는 나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내와 졸려서 제정신 못차리는 나 사이에 투닥거림이 생기고, 아침에는 먼저 일어난 나와 조금이라도 더 이불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내 사이에 투닥거림이 생긴다.

오늘은 토요일.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뜨고 있다 일어나보니 아내가 이불을 걷어찬 채로 자고 있었다. 몸을 토닥여 주고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자 아내가 살짝 깼는지 손을 벌려 안아달라는 표시를 했다. 몸을 굽혀 볼에 뽀뽀를 해주고 침대에서 나오려 하니 어디 가냐고 한다. 화장실에 간다고 했더니 일어나자마자 화장실 가냐며 변태란다. 그래서 내가 아까 일어나서 잠 깨 있었다며 항변했더니 잠시 침묵하다 다시 한번 변태라고 한다. 결혼한지 4년이 지났지만 잠들기 전과, 일어난 직후의 이 실랑이는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ㅎㅎ

그나저나...나야 놀토지만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이제 깨워야 할텐데. 아내를 불렀더니 침대 밑에서 초롱이만 기어나와 기지개를 켜고는 내게 달려온다. 어이구 ㅋ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Scenes

Scene #1

대관령을 넘다 차가 멈춰 버렸다. 미션에 문제가 생긴 듯 엔진소리만 우렁차지 힘이 차에 전달되지 않아 차를 몰고 갈 수 없었다. 비상등을 켜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견인할 차량을 요청했다. 아내와 차 안에서 견인 차량을 기다리며 30분간 본의 아니게 대관령을 넘는 차들을 구경하게 됐다. 평소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면 늘 오전에 움직여서 차가 거의 없었는데 확실히 오후가 되니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대관령을 넘고 있었다.


Scene #2


강릉의 대우정비사업소 까지 차를 견인한 후 수리를 의뢰해 놓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휴일이어서 차 수리가 안되는 탓에 천상 강릉에 차를 두고 다음주나 그 다음주 주말에 강릉에 한번 더 가서 차를 찾아올 수 밖에 없게 됐다. 어차피 강릉에 한번 더 내려가야 했으니 상관은 없지만 덕분에 이번주와 길면 다음주까지 차 없이 지내게 됐다. 횡계에 있는 애니카 서비스 센터와 강릉 대우정비사업소를 거치면서 입을 벌리고 정비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봤다. 문득 새끼 펭귄들이 생각났다. 지나친 연상 작용인가.

Scene #3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 안을 둘러보는데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보따리씩 무언가를 들고 짐칸에 그것들을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버스 창 밖을 바라보니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버스를 둘러싸고는 버스 안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밖의 어르신들과, 버스 안의 젊은이들. 짐칸에 싣느라 낑낑거리는 저 검은색 비닐로 쌓여 있는 큼지막한 사각형 물건이 김치통일 것이라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다.

Scene #4

화정 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들고 건물을 빠져 나오면서 흘깃 둘러본 터미널 대합실에서 오도카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옆에는 여행용 슈트 케이스를 세워놓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봤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도착해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TV 화면의 불빛이 그 여자의 얼굴에 비춰져 어딘지 모르게 창백해 보였다. 그 여자의 기다림이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기를 스쳐가는 수초의 시간동안 바래 보았다. 떠나기 위한 기다림은 너무 슬프다.



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적과의 동침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 가 끝났다. 총 127명의 선수가 팀을 만났고 어느 팀은 대규모로, 어느팀은 최소 인원만 선발하며 팀간 운용 인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강원FC 가 과연 어떤 선수를 지명할 것인가였다. 이미 우선지명권을 행사해서 미포조선의 N리그 우승 주역 4인방을 데려간 강원FC 최순호 감독이 추가적으로 어떻게 선수를 구성할 것인가가 관심이었는데 예상대로 수비수를 1지명 하면서 팀 전력 구성을 마무리 하는 수순을 보여 주었다.

대전의 이번 드래프트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팀 리빌딩을 위해 팀내 잘나가는 선수들의 상당수를 타 팀에 이적시켜야 했던 대전이기에(시민 구단의 슬픔...ㅡㅜ) 이번 드래프트에선 그 빈자리를 메울 선수들을 데려올 필요가 있었다.

우선 일본에서 뛰다 돌아온 박정혜 선수를 지명하는데 성공했다. 김형일 선수의 빈자리를 메울만한 대형 수비수의 영입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실 올시즌 대전의 수비 라인은 안습이었다. ㅡㅜ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운 선수는 두번째로 지명한 김성준 선수다. 17세 대표팀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홍익대 재학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프로 진출을 위해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중앙부터 측면까지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보물이다. 고종수(내년 시즌에도 대전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권집 - 김성준 으로 이어지는 미드필더 라인은 약간만 다듬으면 리그 최고 수준의 끈끈한 패싱게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약간은 노쇠한 대전의 허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든다. 번외 지명까지 합치면 대전은 12명이나 뽑았다.(그래! 많이 뽑아서 잘 키운 다음에 비싸게 파는거야!)

대전은 예상대로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보강하는데 중점을 뒀다. 자금력이 부족한 시민구단인 만큼 국내 선수로 안정된 허리와 수비라인을 구축해 놓은 후 공격수로 용병을 영입하는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14명의 우선지명을 강원FC 에게 부여한 연맹의 처사에 대해서는 좀 불만이다. 우선 지명권이 너무 많다. 혜택을 줘야 할 신생팀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ㅡ_ㅡ;;; 강릉 출신이고 축구 광인 탓에 강원FC 창단을 누구보다 반겼던 아내는 14명이나 지명권을 받았다는 소식에 나한테 메신져로 자랑할 만큼 좋아했지만 솔직히 내 속은 쓰리다. 좋은 선수를 너무 싹쓸이 해갔다. 최순호 감독.....이 여우 같으니라구;;

처가가 강릉인 입장에서 강릉의 축구 열기를 잘 알기에 강원FC 의 창단 소식을 반겼지만 드래프트까지 모두 마친 지금에 와선 이제 이겨야 할 13팀의 적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내는 당연히 강원FC 주주가 되고 싶어 했지만 다음 시즌 까지는 어림도 없는 소리. FC대전 시민주 사려고 할 때 못사게 했으니 나도 복수다. ㅡㅡ+

특별히 응원하는 구단이 없어 심심해 했던 아내에게 목에 핏대 세워가며 응원할 팀이 생겼으니 이제 2009 시즌은 우리 부부에게 적과의 동침이 되리라 예상한다. 음...축구 응원할 때 아내는 좀 무서운데. ㅡㅡ;;;

ps
그런데 건대 정정현 선수가 지명을 받지 못한 것은 정말로 뜻밖이다. 번외 지명으로라도 반드시 지명될 선수라고 생각 했었는데. 선수에게 문제가 있는건지...아니면 각 팀의 공격라인이 그 정도로 포화 상태인건지. 100미터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준족 공격수는 정말 보기 드문 자원인데 지명이 안되다니 이해가 안된다. 다음은 각 팀별 선발 명단.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

▲강원=전원근, 박종진, 이창훈, 윤준하, 신현준, 황대균/번외- 추정현, 이강민, 이성민

▲경남=송호영, 이재일, 김주영, 이용기, 정명오, 김동효/번외-박민, 이용래, 이훈, 노용훈, 박규호, 이한수 윤성근, 조민, 김종수, 이슬옹, 황병인

▲대구=이슬기, 김창희, 이상덕, 김오성, 김민균, 정우성/번외-차정민, 김명룡, 이현창

▲대전=박정혜, 김성준, 김다빈, 양정민, 유민철, 노경민/번외-신준배, 김민섭, 윤신영, 김한섭, 이제규, 김경도

▲부산=임경현, 한상운, 김익현/번외-정지수, 김기수

▲서울=정형준, 서승훈, 박영준/번외-정다훤, 김의범, 이화섭, 안정구

▲성남=김성환, 서석원, 임재훈, 이경민, 정의도/번외-박격포, 류형렬, 박성수

▲수원=이재성, 김선일, 김홍일/번외-최재필

▲울산=김신욱, 김동민, 박준태, 변웅, 최용선/번외-박준오, 정영진, 장석환, 여광수

▲인천=유병수, 장원석, 정혁, 오세룡, 한덕희

▲전남=김해원, 고차원, 강기중/번외-김민겸, 박은철, 이종민

▲전북=임상협, 한종우, 김영종, 용효중/번외-김성재, 김태현

▲제주=전태현/번외-양세근, 권용남

▲포항=조찬호, 황재훈, 김대호, 강대호/번외-김범준, 송제헌, 정형호, 송순보





허균-허난설헌 생가에서


[Pentax KX | K50.4 + Red Orange 041 | TMY 400 | V700]
@강릉 허균-허난설헌 생가


여유가 없어 사진을 찍는 것도, 현상소에 다녀오는 것도 못하고 있다보니 예전 사진만 자꾸 뒤적거리게 된다. 사진전에 낼 작품도 찍어야 하는데. :-(



2008년 11월 19일 수요일

현상 용품 도착

필름 자가 현상을 위해 주문한 현상 용품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타블로이드 현상액이라 불리는 Diafine 이 도착했고 이번주 초에는 정착, 수세등에 쓰일 약품들과 현상통과 암백 등이 도착했고 오늘 마지막으로 비커와 클립등의 자잘한 용품들이 도착했다.

당장은 사진 찍을 여유가 없어서 현상할만한 것들이 없지만(찍어놓은 필름은 diafine 으로 현상하기 좀 어렵다. 약품 특성상...) 조만간 자가현상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암실 만들어서 인화까지 가야.......ㅡ_ㅡ

어쨌든 자가현상이 가능해 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갑자기 업되고 있다. ^^



겨울..?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내 경우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는 시점은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그리고 첫눈 소식이 드디어 들려왔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아직 눈이 오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할 듯 싶지만 공중파보다 앞서 각 지역의 날씨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의 날씨를 알기란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해결될 만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날이 추워지면 당연히 눈이 내리는 대관령 지역보다 중부 이남 지역의 눈 소식이 좀 더 인상적이다. 대관령 눈소식을 들으면 '이번주에는 강릉 처가에 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대설 지역으로 자리 잡은 충남의 눈소식을 들으면 '겨울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어제 그 지역에 올해 첫눈이 왔다.

드디어, 겨울이 온 것이다.

이번 겨울은 느낌이 남다르다. 유달리 많은 일이 있었던 한해였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는 겨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어학연수나 유학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민을 나가려는 지인들의 발길이 올 한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 지인들 중 벌써 네 팀이나 이민을 선택했고 어학연수나 유학은 세어 보기도 귀찮을 정도다. 유학을 선택한 선후배 동기들 중 상당수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말하고 떠났다. 세계적인 경제 대란으로 어렵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내가 예전에 우려했던 것처럼 이공계 고학력자에게 이민이라는 것은 선택 가능한 옵션들 중 하나일 뿐 결코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현지 정착이 쉬운 것은 아닐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그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중 하나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이왕 선택한 것, 성공해야 하지 않겠나.

한국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이번 경제 위기는 그야말로 찬바람이다. 연구실을 봐도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석사 후배들의 취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취업 걱정 안한 선배들 없었지만 사실 '걱정' 만 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남보다 수월하게 좋은 회사에 취직들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의 한파는 남다르다. 10년 전 IMF 를 겪은 회사들은 위기 대응 속도가 현저히 빨라졌고 그 첫번째 조치로 채용 시장이 얼어 붙었다. 당연한 말이다. 위기에 대비해 체중 조절을 하려면 있는 살 빼기보다 먼저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아예 사람을 적게 뽑거나 안뽑는게 나중에 정리해고를 하는 것보다 비용과 부담 면에서 훨씬 이득일테니.

내년 여름 졸업 예정자로 분류되고 있는 나 역시 이번 추위에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난 수시채용 대상자라 내가 채용 발표를 검색하고 회사마다 맞춘 입사 신청서를 작성하는 등의 1차적인 조치를 건너뛴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내 경우엔 입사냐 아니냐가 아니라 입사시 연봉이나 처우 등의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한데 처음엔 입사해주신다면...하는 태도로 굽신굽신 하던 어떤 회사는 채용 시장이 얼어붙자 '그 전공으로 입사할만한 곳이 내년 상황으로 봐서 국내에선 저희 회사밖에는 없지 않나요?' 라는 대담한 발언으로 속에서 불꽃이 튕기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 발언을 한 채용 담당자는 내 전공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이미 쏟아놓은 말로 그 회사의 생각을 알 수 있었기에 지금 그곳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다.

한 곳이 아니라 몇개의 줄을 쥐고 이쪽 저쪽 당겨보는 협상은 간혹 초조해 지기도 하고 약간은 지루하기도 한 협상이다. 내가 한번 조급해하는 눈치를 보일때마다 다른쪽 줄을 잡고 있는 이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져 최대한 느긋하게 보이려 애 쓰고 있다. 언젠가는 모두 내가 자신의 경쟁사와도 동일한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텐데 그때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궁금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은 어느 회사로 입사할지가 결정이 되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결정 안되고 지루한 그리고 약간은 조바심 나는 겨울을 맞이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사 문제에, 취직 문제. 거기에 더해져 졸업 준비까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만큼 미리 예상 못했던 고민들은 역시나 춥다.




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내 코가 석자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에서 어느정도 지위를 갖게 되면 지고 싶지 않았던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기게 마련이다. 그 그룹이 회사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하다못해 친구들간의 모임일지라도 누군가는 모임 날짜를 주도해서 잡고, 장소를 섭외하는 등 발품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

대학 연구실이라는 곳은 그런 면에서 참 특이한 곳이다.

사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상대방을 책임져 줄 수 없다.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애매하고 가르쳐 주기도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같은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선배가 무조건 후배들의 레포트를 봐주고 스터디를 지도해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서로간에 연구 테마도 다른 입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어색함을 넘어 웃기는 행위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에서 선후배간의 서열 관계나 돌봐줌이 존재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쳐서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오늘까지를 한계로 정한다 할지라도 누가 날 나무라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언제까지 세살짜리 후배를 돌봐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늘부로 넌 '아웃' 이다.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관점

정말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과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와 동료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정도의 못마땅함을 감수해 가며 지내는게 고작이다. 굳이 지적해서 충돌해 봐야 서로 어색해 지기만 할 뿐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극명한 차이로 인해 공동체 생활이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행동을 지적하게 되는데 많은 이들이 여기서 실수를 범한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넌 잘못했어 라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그 사람의 행동이 크게 잘못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굳이 지적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지적을 한다는 행위에는 상대의 행동이나 관점을 잘못이라고 느낀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상대방과 나는 서로 다르다?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잘못을 참아주느냐 참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다름을 인정하고 개운하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다. 나 역시 결코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다.

더욱 나쁜 상황은 누군가 단호한 태도로 내가 잘못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경우다. 이러한 지적을 받은 경우 난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분명한 이유가 있는 행동일 때 생기는 반발감은 결코 작지 않다. 바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웃지 못할 감정의 대립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상대방이 내게 어떤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지적은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상대방에게 반발하게 만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반발이나 지적 모두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의사 소통의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은 잊어서는 안된다.

...

알았지?

나도 앞으로는 네 잘못을 꾸짖는 것을 최대한 자제할테니 너도 내 옷에다 오줌 지려 놓는 보복 행위는 이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때가 되지 않았니 초롱아.

오줌 지려놓은 빨래 하는거 너무 힘들어.

ㅡ___________ㅡ

ps
분명 오해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어제 너 잘 때 발바닥 간질러서 못자게 괴롭힌거 내가 아니야. 내 죄라면 네가 눈 떴을 때 그 앞에 앉아 있었다는 것 뿐. 진범은 네 뒤에 있었단다. ㅡㅜ


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나만의 북카페

아침을 먹고난 후 피곤해서 집에서 쉬겠다는 아내를 두고 책과 카메라를 챙겨 들고는 파주 출판단지로 혼자 차를 몰았다. 아울렛 매장과 극장이 들어선 덕에 예전보다는 오가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긴 했지만 휴일의 출판단지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장소다. 갈대 축제를 할 만큼 갈대숲이 우거진 하천을 따라 걷는 것도, 그곳에 차를 대 놓고 책을 읽는 것도 모두 행복한 일이다.

극장이 있는 건물 1층에서 커피를 한잔 사들고 나와 갈대강가에 차를 대 놓고 음악을 틀어 놓고는 책을 읽었다. 바람이 갈대밭에 스치는 소리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곳은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다. 운전연수 나온 사람들의 차만 가끔 옆을 지나칠 뿐. 커피향과 갈대 소리에 취할 수 있는 그곳에 차를 대 놓는 순간 그곳은 세상에서 비교할 곳이 없는 최고의 북카페가 된다.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태백산맥

머리가 채 여물기 전에 읽고 치워 두었던 '태백산맥' 을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고는 있었지만 소설 자체의 방대함에 쉽게 손을 못대고 있다가 몇주 전부터 보기 시작해 이제 절반 정도 봤다.

정말...대한민국은 그때와 비교해서 하나도 발전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 몇년이 더 지나야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것인가? 내가 죽기 전에는 가능할까? 민주항쟁을 통해 전두환을 몰아내고 다음 대통령으로 노태우를 뽑는 황당한 사람들이, 그깟 신문 쪼가리 몇장의 선동질에 넘어가서 노무현 다음 대통령으로 이명박을 뽑는 어이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진정으로 희망이 있을까?

정말 이명박씨를 보면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도와주는 거' 라는 우스개 소리가 진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말은 이명박씨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라면 인물 안보고 무조건 투표하는 일부 유권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2008년 11월 7일 금요일

약속 지키기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까지 무엇을 해주기로 한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 무엇이 부탁받은 일일 수도 있고 전화 연락일 수도 있으며 물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한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을 때 난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약속을 한 상대방이 어려운 상대이거나 혹은 무척 존중하는 상대라면 우리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약속을 어길 경우 자신이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에도 우리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와의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난 그게 싫다. 그래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분노를 느낀다. 상대가 나를 존중한다면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을 때 미리 양해를 구할 것이다. 양해 없는 약속 위반은 무시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 제법 화가 나 있다. 세상 일이라는게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오히려 꼬이기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삭히려 애쓰고는 있는데 이 화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남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ㅡㅡ;



2008년 11월 4일 화요일

은사(銀沙)


[Pentax KX | K50.4 + Red Orange 041 + ND400 | 400TX | V700]
@강릉 경포




2008년 11월 1일 토요일

정화의 바이올린 공연


[Pentax KX | K135/3.5 | 400TMY | V700]

2주 전 사촌동생 정화의 바이올린 공연에 다녀오면서 찍은 필름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정화를 찍어 주기에 앞서 연습삼아 찍어본 컷만 의도대로 나왔고 막상 정화를 찍은 사진들은 전부 노출 부족으로 노이즈가 장난이 아니다.


[Pentax KX | K135/3.5 | 400TMY | V700]

배경을 검게 날려 버리는 것도 어설프게 실패했고 그러면서도 노출은 노출대로 부족으로 나와 암무 노이즈가 장난 아니다. 지금서 생각해보니 그냥 적당한 노출로 찍고 배경은 인화할 때 닷징해서 날려 버려도 될건데 그랬다. ㅡㅜ

ps.
(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의 늘씬한 아가씨가 이날의 주인공 사촌동생 정화인데 직장 다니면서 주말마다 짬짬히 바이올린을 연습해서 아마추어 바이올린 공연 무대의 어엿한 축으로 섰다. 하고 싶은게 있을 때 시간이 없다며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꾸준히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이루는 자들은 늘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이날 다시 한번 깨닫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