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31일 목요일

세상, 여름을 찾다


[Pentax KX | Fuji reala @일산 호수공원]

'덥다'는 사실은 인지하더라도 사실 '여름' 자체를 인지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주위에서 여름은 단지 덥다는 사실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마, 매미소리, 풍성해질대로 풍성해진 나무그늘 아래에서의 휴식,휴가,우산,낮잠,시원함...그리고 여행까지.

우리에게 있어 여름은 단순한 더위가 아닌 무수히 많은 것들의 복합체로 존재한다. 온 세상을 뒤덮는 매미 소리를 듣고 감탄사와 함께 '여름이구나' 를 내뱉는 순간, 퍼붓는 장마에 의해 생긴 물구덩을 뛰어넘는 순간, 흰 포말과 함께 부서지는 파도를 찾아 도착한 해변을 바라보는 순간, 바로 그 모든 순간부터 '덥다'는 짜증은 '여름'으로 바뀐다.

난 항상 매미 소리로 부터 여름을 인지한다. 유난히 장마답지 않은 장마 기간이 지났고 예년과 달리 들쑥날쑥한 더위와 예보는 커녕 실황중계도 제대로 못하는 기상청 덕분에 조금 어색하게 맞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매미들의 울음소리로 뒤덮여 있고 바람 좋은 날엔 나무 그늘로 눈길이 향하는 것을 보면

2008년 7월의 마지막 날. 이제서야 세상이 여름을 찾았다.



2008년 7월 30일 수요일

블로그 템플릿 변경

사진을 블로그에 포스팅 하면서 항상 블로그의 좌우 넓이가 불만이었다. 피카사웹에서 제공하는 웹용 링크 크기중 가장 보기 좋은 크기가 800px 인데 이정도 크기의 사진을 넣을 경우 블로그가 꽉 차는 느낌에 조금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하다 문득 얼마전 지저깨비님의 블로그 템플릿 변경했다는 글이 생각났다. 어차피 구글 리더로 구독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었는데 오늘 그 글이 생각나면서 심플 템플릿에 하단을 다단으로 나누는 방식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났다.

예전 글을 쉽게 접근하기 위한 블로그 아카이브, 댓글 다는 것을 귀찮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명록은 분명 필요했기 때문에 없앨 수 없어서 블로그 아래에 다단을 만드는 방식은 내 요구와 주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판단 되었다. 아직 완전히 고친것은 아니고 조금씩 수정해야 하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완전히 지저깨비님 블로그를 따라하는 형식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마음에 들면 됐지. 30분 정도 키보드와 마우스 움직여서 고치고 났더니 제법 마음에 든다. 뭐, 블로그 디자인을 놓고 잔소리 할 사람이 몇명 떠오르긴 하지만 내 집 내가 고치겠다는데. :-)

사실 제일 카피하고 싶은 블로그 디자인은 나무님 블로그. 템플릿 카피해다가 좀 손봐서 좌우 폭 제한만 없게 만들면 좋겠는데. 혹시 달라면 주실런지 모르겠다. :-D

덧글.
요즘 몸이 무척이나 힘들다. 그래서인지 마음도 무척 힘들다. 블로그에 게시물을 쓰는게 2주만이라는 사실이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대부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에 글이 없었으니까. 어서빨리 회복되어서 다시금 블로그에 글을 꾸역꾸역 밀어넣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Update 2008.7.30. PM 10:48
지저깨비님의 도움으로 인라인 코멘트 폼 도입 성공! 이 포스팅 제목을 클릭해서 개별 페이지로 들어가 보면 인라인 코멘트 폼을 볼 수 있음.

Update 2008.7. 30. PM 6:50
방명록 없앴음. 노구야, 너만 적응하면 된다. ㅡ_ㅡ;;; 댓글쓰기 가서 이름/URL 클릭해서 이름 적고 위에다 댓글내용 적으면 된다. 널 위해서 스패머를 위한 확인 기능도 꺼놨으니까 어여 적응하렴. 영 적응 안되면 원상복귀 시켜 놓을게. :-)


2008년 7월 15일 화요일

KX 노출계 사망

32년 된 내 Pentax KX 는 노출계가 유일한 전자 부품이다. 나머지 부분은 전부 기계식이라 마땅히 고장날 가능성도 없지만 전자 부품인 노출계 만큼은 고장날 수 있다. 문제는 이 노출계가 고장날 경우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수리할 수도, 교체를 위한 부품을 구할 수도 없다. 멀쩡한 KX 를 구입해서 노출계만 떼어와 교체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차피 그 노출계도 30년된 녀석들일테니 언제 고장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않는다.

그 노출계가 사망했다.

마음의 준비를 늘 해왔었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도 했었지만 막상 그런 일을 닥치고 보니 마음이 참 묵직하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던 그 순간이 떠올라 어제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출계가 고장나면 사진을 찍기 위한 적정 셔터속도와 적정 조리개값을 알 수 없다. 노출계가 고장났다고 해서 아버지의 유품인 카메라를 버릴 수는 없으니 굳이 사용하겠다고 하면 방법은 두가지.

첫번째는 뇌출계라고 불리는...소위 말해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셔터속도와 조리개값을 정해서 찍는 것. 밝은 낮에 스냅사진 같은거 대충 찍는 수준이라면 가능하지만 내가 즐기는 복잡한 노출 환경에서의 촬영은 프로가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고난이도 촬영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두번째는 VC meter를 구입하는 것. 카메라에 거추장스럽게 달아야 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노출값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단은 노출계 없이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내 뇌출계 성능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사냥

나는 논쟁을 즐기는 편이다. 논리를 구성해서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즐겁고 상대방의 치밀한 반박도 즐겁다. 때문에 난 상대방의 주장이 옳다고 여겨지면 깨끗하게 승복할 줄도 안다.(어렸을 땐 잘 안됐지만..)

그런데 다른이와 토론을 할 때 나오는 나쁜 버릇이 있다.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판단되거나 조금전 주장과 모순되는 주장을 그저 자기 변명을 위해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그 즉시 상대방을 사냥하려 드는 버릇이 바로 그것이다.

나도 느낀다. 말로 상대를 사냥하려 들때의 내 주장은 날카로운 흉기 같아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이들 조차도 위화감을 느낀다는 것을. 그리고 제3자가 그 논쟁 자체를 억지로 중단시키지 않는 한 상대방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은채 몰아부친다. 말 그대로 사냥하려 든다. 논쟁에서 승리할 수는 있으나 결코 현명한 대화방법은 아니다.

억지 논리를 가져다 쓴다는 건 상대방 스스로도 자신이 틀린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므로 그 틀린 점을 정확하게 짚어서 공격하면 논쟁에서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상대방 스스로도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냥하려고 들지 않아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도 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대를 사냥하려고 들어서는 결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승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잘 알고 있던 사실이고 항상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한명을 말 그대로 '사냥'하려 들었다가 중간에 다른 이에게 제지 당했다. 그런데 1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냥감을 빼앗긴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면서 분을 참지 못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입 끝에 걸린 '촌철살인의 한마디' 를 어려움 없이 삼킬 수 있지 않는 한 다른이와 논쟁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던 노력이 오늘도 무너졌다. 바보같은 최기영.

2008년 7월 7일 월요일

아내의 생일

7월 7일.

아내의 생일이다.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생일상을 차려주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아마 지난 달 내 생일때 너무 바쁜 회사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해 절절매는 아내를 보면서 차마 챙겨달라고 할 수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고 했더니 그때일이 생각나서 똑같이 행동하는게 아닐까 싶다.

아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수준에서 오늘 무엇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며칠 전부터 계속 고민중인데 마땅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퇴근까지 앞으로 대략 12시간.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

2008년 7월 5일 토요일

희망


[Pentax KX / Kodak GA36 @한양대학교]

희망이라는 글자를 적어본다.

글자로는 존재하지만 우리는 희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은유와 비유 혹은 사건에 대한 예시를 들 수는 있어도 희망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직접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포근함이 있기에 희망이라는 말은 눈물을 머금은 기쁨을 가져온다. 언젠가 양귀자님의 소설 '희망' 을 읽으면서 처절한 현실에 그리고 그 구렁텅이에 깃드는 너무나 미약한, 그러나 포근한 희망의 느낌에 책을 덮고 한참을 펑펑 울었던 생각이 난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힘들었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계단참에 주저앉아 머리 위 가로등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았다. 희망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래야 한다.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 얼굴을 양손으로 몇번 문지르고 나서 무릎을 집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