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8일 수요일

영혼을 팔아버린, 일부 자칭 보수 지식인들을 바라보며

1. 이 땅의 보수를 위해
2. 지식인으로서의 의무

* 혹여 위 두 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신 분은 이 글이 아닌 해당 블로그에서 직접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 5월 26일 월요일

이명박씨, 결국 그가 선택한 사과의 방법이 이건가?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문제로 블로그가 시끄러워 지는 것이 싫어 시사관련 문제는 철저히 다른 곳에만 포스팅 하고 이곳은 내 개인 공간으로만 쓰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 조차도 이명박 정부와 집회에 대한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 포스팅 안할 수가 없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순간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경찰의 입장에서 불법집회를 용인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어섰다. 동영상에서 시위대는 분명 구호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를 진압하는 경찰은 방패날로 시위대를 내려찍고 있다. 어제 저녁에 본 다른 동영상에선 쓰러져 있는 여성을 향해 서너명의 경찰이 곤봉을 휘둘러 두둘겨 패고 있었다. 보고있던 내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시위대에서 무기로 쓰일 수 있는 죽창이나 화염병은 고사하고 돌이라도 하나 던졌다면 난 백보 양보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 주겠다. 그런데 이들은 어떠했는가. 그저 초를 들고 경찰을 등지고 앉아 있는 시민의 뒷목을 방패날로 내려찍어 버렸다. 진압용 곤봉으로 무저항의 시민을 두둘겨 팼다.

지금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리다. 이들은 80년대 화염병을 알지 못한다. 90년대 학번인 나도 몇번 본게 고작인 화염병을 그 어린 아이들이 봤을리가 없다. 따라서 곤봉과 방패를 들고 화이바와 진압복(중세 갑옷보다 튼튼한)까지 차려입은 전경과 맞서본 경험이 있을리 없다. 그저 종이에 구호 적어서 흔들고 촛불을 양손에 모아쥐고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방패날로 사람을 찍어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경찰은, 그런 아이들을 방패로 후려치고, 찍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방패날에 뒷목을 잘못 찍히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곤봉을 휘두를 때 맞는 사람이 머리를 제대로 감싸지 않으면 뇌진탕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을 부릎뜨고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모습에선 그런 부분에 대한 신중함은 보이지 않았다.

공권력은 신중해야 한다. 사회정의를 위해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국민이 허락해준 집단이기에 공권력은 그 폭력을 휘두름에 있어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돌맹이 하나 손에 쥐지 않은 나이어린 시위자들을 향해 총기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진압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그러한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언론에서는 체포 과정에 시위대가 폭력을 휘둘러 경찰 7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했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방패와 화이바, 진압복까지 갖춰입은 경찰을 맨손의 아이들이 어떻게 다치게 한다는 말인가. 아마 버스에 싣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손에 긁히거나 한게 고작이겠지. 자신들도 민망했는지 '경상' 이라는 단어를 썼다. 곤봉에 머리가 터져 병원에 입원한 여학생이나 방패에 찍혀 다친 시민들, 경찰을 피해 상가에 뛰어들어 숨겨달라고 하는 아이들...광주가 재현되고 있다. 현재 언론들의 철저한 외면이 난 더 기가 막힌다. 인터넷을 그다지 하지 않는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겠지. 그당시 광주 시민들이 얼마나 외로왔을지 상상이 간다.

정부는 점점 시위를 키우고 있다. 인터넷에서 비판하던 사람들을 자극해 촛불을 쥐고 거리에 나오게 만들었으며 거리에서 조용히 촛불집회를 하던 사람들을 자극해 도로를 점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거리에 나선 아이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민주화 투쟁을 해본적이 없는 시민들 만큼이나 정부도 그러한 시민들을 진압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일까? 적당히 강력하게 대응하면 움츠러 들 것이라 생각하는 듯한 저 안이한 태도는.

(흥분해서 두드리는 자판이라 다시 읽어보니 글의 논리가 없다. 중언부언. 그래도 수정할 생각은 없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 어디 글이던가.)

대중은 우매하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집단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그 대중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하면 혼란함속에 방향이 생긴다. 그렇게 생긴 대중의 방향성은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갖고 있다. 만일 점점 커지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몽둥이로 다스릴 생각밖에 못하고 있다면 이명박씨는 한 집단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진정한 리더란, '사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위의 고언을 들을 줄 아는자가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이명박씨는 국민과의 소통부재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면서 국민앞에 머리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무릇, 모든 사과라는 행동은 잘못했던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씨는 사과는 사과고 하던 행동은 변함이 없다. 행동의 변화가 없는 사과는 거짓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국민을 상대로(며칠전까지는 초중고생과 투쟁을 했으나 이제는 전 국민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서.

어디 어느선까지 국민들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려 하는지 지켜보겠다.

공연



학부 동아리 후배들이 축제에 주점을 열고 공연도 한다면서 초대를 해 간만에 졸업생들과 한데 모이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언제 저렇게 멋진 후배들이 들어왔을까.

비록 중간에 일어나야 하긴 했지만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준 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2008년 5월 23일 금요일

...그리고 추억



순간은 명확하다.

기억은 날카롭다.

하지만,

추억은 흐릿하다.

사람을 만나 기뻐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그 순간은 더 없이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일에 망설임 없이 기뻐하고 화가 날때면 주저없이 분노한다. 하지만 기억은 순간보다 날카롭다. 시간이 흐른 후, 분명 순간보다 명확하진 않지만 순간보다 날카로운 것은 자명하다. 망설임 없이 배설했던 순간의 감정들은 여과없이 시간에 스며들어 기억의 날을 섬뜩하게 세워 놓기에 과거에 대한 기억은 쉽게 가슴을 저민다. 그래서 기억은, 아프다. 줄곧 외면해오다 실수로 판 잠깐의 곁눈질로도 아프게 베인다. 우리가 기억을 외면하거나 그 상처에 아파는 건 그때문이다.

하지만 추억은 흐릿하다.

꼭 아름다워야만 추억은 아니리라. 시간의 세례를 받아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기억은 그 자체로 추억이 된다.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봐도 그저 피식 웃어버리는 웃음만 날 뿐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 곁눈질로도 아프게 베이기에 제대로 직시하지도 못했던 일이 아무리 똑바로 쳐다봐도, 미간에 주름을 잡아가며 살펴보아도 아프기는 커녕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날카로움을 잃은 기억은 흐릿함으로 그 의미를 강제한다.

그래서 터무니 없게도 흐릿함은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분명 너무나 아파했고 분노했던 기억임에도 흐릿하게 떠오르는 추억은 안타까움을 이끈다. 그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제 허탈해진다. 도대체 기억이란 무엇이고 추억이란 무엇인가. 분노란 무엇이고 안타까움이란 무엇인가.

그래, 기억이라는 존재는 어차피 그 순간의 감정에 의해 해석되는 과거의 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그리고 추억은 그렇게 잊혀져 가는 감정에 대한 우리의 안타까움일 것이고.

잠을 자지 못한지 40시간은 된 것 같다. 수면 부족이어서 그런지 자꾸 몽롱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통해 엉뚱한 생각을 펼쳐 놓는 듯.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기억...추억? 훗.

이 글을 읽는 모두, 행복한 밤이 되길. :-)



2008년 5월 21일 수요일

뒷모습


@충무로, 수타면을 뽑는 주방장


처음엔 촬영하는데 부담이 없다는 이유로 인물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했었다. 아무리 촬영을 허락받고 한다 하더라도 정면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뒷모습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허락을 해주기 때문에 정면보다는 뒷모습 촬영이 쉬운게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뒷 모습이 뷰파인더를 지나 내 가슴으로 와 닿고 있다. 표정이 없기 때문에 뒷모습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눈이 없기 때문에 뒷모습은 상대를 보며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사람의 뒷모습에는 남을 의식하지 않을때 드러나는 그만의 온전한 모습이 담겨 있다.

2008년 5월 20일 화요일

쓰촨성 대지진. 중국인들의 비극을 애도한다

동아일보 : 잔해더미 속 모성애 死神도 고개 숙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이런저런 문제로 다투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는 타국의 사람들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과 우린 같은 '사람' 이라는 것. '사람' 이라는 대전제 앞에 국경, 인종, 종교, ... 우리를 구분지을 수 있는 모든 경계들은 의미를 잃는다.

저들의 비극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2008년 5월 18일 일요일

사랑은 비를 타고

사촌동생 우정이가 아내와 함께 보라며 준 티켓으로 정말 오래간만에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봤다. 운좋게 걸린 그 뮤지컬은 '사랑을 비를 타고'. (링크는 이번에 본 공연에 대한 내용은 아님)

몇해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아마 초창기 공연때 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한 12년이나 13년 사이일 것인데 잘 모르겠다.) 오래전에 한번 본적이 있었던 공연인데 공연시작 전까지 장면이나 스토리 등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새로 본다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래도 중반부 부터는 모든 스토리가 기억나서 예전 공연과 비교해가며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장과 출연진, 연출가에 따라 전혀 색다른 작품으로 해석되곤 하는게 뮤지컬이니 만큼 어느 공연이 더 좋았다는 식의 단순비교는 의미없는 일이다. 양쪽이 모두 특색이 있었고, 즐거웠다.

아내와 나 모두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여차저차한 이유로 요즘에는 공연을 자주 접하지 못했었다. 이번에 비가 내리는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즐거운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되어 정말로 고마웠다. 우정양 땡쓰. ;-)

2008년 5월 9일 금요일

결혼식 사진 찍기



지난 연휴에 결혼식 스냅 사진 찍을 사람이 없다며 결혼식 3시간 전에 다급하게 전화해서 촬영을 부탁한 친구 때문에 그토록 하기 싫었던 결혼식 스냅 촬영기사 노릇을 했다. 이런저런 사건이 좀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촬영은 했고 두번 다시 남 결혼식 메인 스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찍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누군가에게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 단 한번뿐인 행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부담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필름 현상을 기다리면서 혹여 사진이 잘못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때문에 꿈까지 꿨다.찾아온 사진들이 전부 꺼멓게 나와서 망연자실 하는...)

재미있는 사실은 사진을 놓고 의견을 물어봤을 때 평가자의 성별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는 사실이었다. 내 주위 남자들은 모두 위에 올린 사진과 같이, 신부의 목선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약간은 신비롭게 표현된 사진들을 선택했고 여자들은 모두 신부의 얼굴이 예쁘게 나온 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도 신부 사진을 찍을 때 주력한 건 보일 듯 말듯하면서도 아름답게 선이 표현되는 사진을 담기 위해 애썼는데 다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그런 사진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진이지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라는 것. 얼굴이 예쁘게 나오는 걸 남자보다 여자가 더 신경쓴다는 사실이 좀 신기. 신부화장은 여자들을 위해, 웨딩 드레스는 남자들을 위해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샵에 필름스캔을 맡겼는데 엉망으로 나와서 집에서 일일이 자가스캔 하고 있다. 먼지만 아니면 직접 해도 되긴 할텐데...먼지와의 싸움이 너무 힘들다.

2008년 5월 6일 화요일

도보여행


@태안반도, 2007.10.


이번 여름 휴가때는 꼭 도보여행을 며칠 다녀오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요즘이다.

결혼 후 아내와 휴가가 맞지 않아 한번도 휴가 때 제대로 다녀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곰곰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차피 도보여행을 간다면 몸이 약한 아내와 며칠동안 땡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걷는 여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간다면 혼자 다녀오는게 가장 좋은 선택인 듯 싶다.

지난달에는 제주도나 거문도 같이 큰 섬으로 가서 며칠 걷다 오고 싶어했었으니 막상 출발할 때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며칠동안은 서해안으로 가고 싶어하고 있다.

어디가 되었든 올해는 꼭 훌훌 털고 숨이 턱에 닿고 발바닥이 물집으로 퉁퉁 부어오를 때 까지 걷고 또 걷고싶다.

2008년 5월 2일 금요일

여름

출근길에 한강을 지나면서 물비린내가 풍겨 오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오늘이 5월 2일인데 벌써 한강의 물비린내가 강변북로까지 흘러오다니. 세상에.

여름 초입은 되어야 맡을 수 있었던 한강의 물비린내가 벌써 나는 걸 보니 여름 날씨라는 언론의 호들갑이 그저 호들갑만은 아닌가 보다. 설마...산에 벌써 원추리가 피고 있는 건 아니겠지?

2008년 5월 1일 목요일

배경과 빛의 절제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3년이나 됐지만 그동안 그저 예쁜 빛과 풍경을 담기에만 골몰했었지 막상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지 조차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사진에서 색을 배제한 흑백 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야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특징은 바로 '배경과 빛의 절제'. 비록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보고 느낌이 좋은 사진들을 자꾸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남이 내 사진을 봤을 때 '배경과 빛이 적절하게 절제되어 사용됐다' 는 느낌을 받을 날이 오겠지.

빛의 사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요즘. 비로소 '빛을 그리다' 는 어원을 갖고 있는 사진, photograph 를 취미로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Pentax ME


어제 저녁 7시 30분을 기점으로 렌즈 교환식 필름 수동 카메라가 하나 더 생겼다. 펜탁스 클럽의 흑백방 방장 이지영님의 중매(?)로 입양한 녀석인데 사실 내 카메라가 아니라 아내가 사용할 카메라다.

목측식이고 고정화각을 가진 Kobica 를 쓰면서 측광 기능과 다양한 화각을 아쉬워 했던 아내는 측광이 되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에 대해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 펜탁스 클럽 흑백방 번개에서 ME 를 팔고자 하는 직장 동료가 있다는 지영님의 이야기에 귀가 번쩍! 일사천리로 어제 저녁에 인도 받았다.

내 주력기(주력기...라지만 사실 이거 하나밖에 없다. ㅡㅜ )인 KX 와 동일한 K마운트를 사용하는 ME 는 본격적인 사진을 위한 기종이라기 보다는 부담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스냅용 사진기라는 평을 달고 있다. 하지만 어제 만나본 ME 는 주력기로 쓰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모델이었다. 조리개 우선 모드 기본이라 조리개 값만 설정하면 셔터 속도를 자동으로 맞춰 주기에 아무 부담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펑펑 찍을 수 있으며 수동 노출 보정 기능을 갖고 있어서 노출을 보정해야 하는 상황도 대응할 수 있다. 스트로보 장착시의 동조속도도 내 KX 보다 더 빠르고 필름의 감도를 수동으로 지정할 수 있어 증감촬영도 가능하다.(이 기능 때문에 P50이 아닌 ME를 선택했다)

단점이자 장점인게 둘이 있는데 다름아닌 무게와 크기.

크기가 너무 작아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손으로 잡으면 제대로 잡기가 어려웠다. 어디를 잡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 양손으로 감싸면 카메라의 대부분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서 함께 영입한 유치원생 주먹만한 크기의 M50.4 렌즈를 마운트 해 놓으면 DSLR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SLR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다. 아내는 오히려 작아서 좋다고 하니 중요한게 아니지만.

그리고 또 하나는 무게. 거짓말 조금 더하면 보급형 DSLR 로 무게 역시 가볍다고 알려져 있는 캐논 300D 이나 니콘 D70 의 절반에 불과한 무게다.(조금전 자료를 찾아보니 바디 무게만 2/3 정도. 콩톨만한 M50.4 를 장착한 지금의 ME와 번들 줌렌즈를 장착한 이들 DSLR 의 무게차는 정말 두배정도 날 것 같다.) 이렇듯 지나치게 가벼운 바디 덕분에 촬영시 미러쇽이 그대로 손에 전달된다. ( '털렁~' 하는 느낌인데...ME의 셔터를 눌러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을 듯. 말 그대로 '털렁' 한다) 온통 쇳덩어리로 되어 있어 위급시 흉기로 사용 가능한 내 KX 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조금 당황했다. 더군다나 미러쇽이 아예 없는 렌즈셔터 방식의 Kobica 를 써왔던 아내도 이 부분은 제법 당황하는 듯 보였다. (익숙해 지면 크게 상관 없겠지만 당분간은 '털렁' 하는 그 미러쇽에 찍을때마다 피식 웃을 것 같다)

인도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품에 ME 를 꼭 끌어안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늘 회사가 오전 근무만이라고 오후에는 삼청동이나 한옥마을 쪽으로 해서 사진 찍으러 간다고 내 K135mm 렌즈까지 함께 가져갔으니 즐거운 시간을 보낼 듯 싶다.

그나저나....Kobica 35 BC-1, 2렌즈 토이카메라, 올림푸스 하이엔드급 디카(모델 기억 안남) 에 pentax ME 까지 아내가 보유한 카메라가 모두 4종류가 됐다. 난 쇳덩어리 KX 하나 뿐인데. 이참에 나도 컬러 필름용으로 사용할 서브 바디를 하나......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