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간극 [間隙]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상실의 시대'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윤정아.

너와 우리 사이에 벌어진 이 거대한 간극 [間隙]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12년의 추억을 아무리 끌어올려 메워도 좁혀지지 않더구나. 앞으로 무심히 지내지 말고 서로서로 연락하고 살자는, 빈소 앞 침통한 표정의 동기들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말투로 이야기한 정현의 한마디가 이토록 가슴에 사무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결혼, 출산 등 좋은 소식 있을 때 마다 한번씩 모이면 될 줄만 알았지 누가 이런일로 동기들 얼굴을 마주할 줄 상상이나 했겠니.

10년전 어느 날, 작대기 하나짜리 계급장의 내게 동기들 소식과 연락처를 모두 정리해서 보냈던 편지가 내게 보낸 네 유품이 될 줄이야.

세상엔 올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단다. 굳이 배웅하러 오지 말라고 동기들의 발을 잡아 놓으려 네가 한 것이니? 그런다고 모이지 않을 녀석들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

동기들 누구나 인정했던 천사 윤정아. 이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인사 밖에 없구나. 잘가라 그리고 편히 쉬렴.

2007년 마지막 날
기영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끝을 가진 모든 것들


Hwajung_061029,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질녘, 연말, 책의 마지막 페이지, 영화의 엔딩 크레딧, 기차의 종착역 안내 방송, 토요일,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크리스마스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며칠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24일 저녁이 될 때까지 크리스마스라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 보면 정신없긴 없었나보다. 크리스마스를 스쳐 지나가 버렸으니 연말 연시 분위기나 내볼까..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는게 연말 연시 분위기를 내는걸까?

...

앨범을 뒤적거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 중 하나를 찾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사진. 좀 더 잘 찍고 싶어도 이젠 저 자리에 고가도로가 건설되어 버려서 저 모습을 찍을 수가 없다. 저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에 세상은 온통 황금빛이었고 아내와 초롱이는 내 주위를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이었구나 싶다.

이런저런 많은 일을 겪었던 2007년. 아직 며칠 남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해피 뉴 이어. 모두들.

2007년 12월 24일 월요일

답장

지금은 너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말고,
둘이 함께 서로 위로하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삶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가 있듯이
니가 경험한 이번의 아픔이 앞으로 남은 더 긴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추가적으로 나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실까라는 긍정적인 생각.

이 세가지를 꼭 가슴에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너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근 :-)

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퇴근길


퇴근길,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다.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낙서


기록,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벽에 남겨진 낙서에 좋지 않은 이야기란 없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 무슨 일에 대한 것이든 어떤 장소에 기록해 놓고 싶은 이야기들은 행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지 좋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벽에 남겨진 낙서는 늘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낙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보' 라는 단어에도 친근함과 애정 이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깨끗한 벽에 처음으로 남겨진 낙서는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 한다 하여도- 정말로 보기 흉하지만 이후 사람들에 의해 많은 이야기들이 덧대어진 낙서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행복한 이야기들도 많은 이야기가 모여야 아름다워 진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낙서가 모이면 그중 일부가 가슴아픈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 낙서는 보기 좋아진다.

산다는 것도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리 가슴 깊이 아픔을 가로새긴 일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그 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덧대어 지면 그것은 결국 슬픔이 아닌, 그저 하나의 보기좋은 낙서가 될 뿐이다. 그 사람을 표현하는 거대한 낙서 말이다.

지금은 벽 한귀퉁이에 말줄임표를 찍으며 힘들어 하는 사람일지라도 먼 훗날에는 그 말줄임표를 어디에 찍었었는지 찾지 못해 곤란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산다는 건 결국, 하루하루 내 이야기로 낙서하는 것일 테니까. :-)


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세상살이


거리,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다.

...

그저 한숨을 쉬는 수 밖에. 고작 한달 앞의 일이 이토록 뿌옇게 보일 수가 없다.

UPDATE 2007.12.18.
하긴, 사는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야간운전에서 1 km 앞을 내다보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다. 20 m 앞을 보면서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는 수 밖에. 중요한 건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것. 힘내자.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아내와 함께 출근 + Coffee & Bagle


아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제부로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 홍대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다. 덕분에 마을버스로 가능했던 출퇴근이 광역버스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려야 할 만큼 멀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 한가지는 아내와 같이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난 2호선을 타야 하니 홍대입구까지는 버스를 타면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그렇게 나오면서 던킨에 들려 커피와 플레인버터를 바른 베이글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출근길도 평소보다 훨씬 기분 좋았고. ^^

멀어진 회사 탓에 이사갈때까지 아내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아침 시간에만 평균적으로 30분이나(!) 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만세!

(^______________^);;

나눔 배너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Donors Camp 배너를 달기로 했다. 심플한 블로그가 좋아서 최대한 이것저것 빼려 노력하는 터라 배너를 다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오랜기간 망설인 끝에 다는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학 1학년 때 달동네 공부방 아이들에게 중고 컴퓨터를 수리해서 보급해주는 봉사 활동을 했었다. 컴퓨터와 모니터를 짊어지고 달동네를 걸어 올라가는 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었지만 공부방에 가서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아이들의 환호성을 듣는 기쁨에 입대를 위해 휴학하고 고향에 내려올 때까지 '배달' 이 있을때마다 참석했었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라 '배달' 이 자주 있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의 대부분은 피드리딩을 하겠지만 간혹 있을 방문자들에게라도 노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페이지 제일 상단에 달기로 했다. 이왕 달기로 한거, 페이지 제일 상단에 달기로 결정. 아쉬운 점은 사이드 메뉴용 배너밖에 없어서 상단에 달았더니 영 뻘쭘하다는 것. 도너스캠프측에 긴 배너 제작도 요청을 해야겠다.

전업 블로거도 아닌 이상 애드센스 등을 다는 것 보다 이쪽이 훨씬 의미있지 않을까?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모임 만들기

내가 "네 취미생활은 사람 만나기지?" 라며 종종 놀리곤 하는 사촌동생 우정이의 블로그에 올라온 모임결성에 대한 포스트를 읽다가 미소를 짓고 말았다. "또 하나 벌렸군." 하면서. :-)

최근 몇년간은 많이 자중하고 있긴 하지만(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7일. 그런데 최기영은 단 한명!) 나 역시 모임을 만들어서 한가지 주제를 향해 여럿이 뜻을모아 노력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 아무래도 집안 내력이긴 한 것 같다. 특이점이라면 우리대의 여러 사촌들 중 이런 성격은 나와 우정이 뿐이라는 것. (그렇게 본다면 집안 내력이 아니라 그저 개체의 특성인지도??)

본문보다 긴 덧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온라인 그룹은 메일을 이용한 '능동형' 그룹이다. 웹브라우져를 실행시켜서 반드시 '방문' 해야 하는 웹페이지 형태의 '수동형' 그룹은 일상에 쫓기다 보면 자칫 방문이 소홀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지나 누군가의 글을 방문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칫, 포스팅과 리플사이의 간격이 며칠씩 벌어질 수 있다. 의사소통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는 모임은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의견이 올라오는 간격은 멀어도 되나 의견에 대한 회신은 빨라야 한다. (경험상)

그래서 난 누군가가 의견을 내면 그 의견이 나머지 회원들에게 실시간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전달' 되는 메일링 리스트가 가장 효율적인 온라인 소통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뉴스그룹의 의견보관 기능과 메일링 리스트의 실시간성, RSS 기능에 웹페이지 형식의 기존 모임 형태까지 버무려 놓은 구글 그룹스 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굳이 구글 계정이 없어도 중요한 그룹 기능들을 이용해 활동하는 것에 아무런 지정이 없는 오픈그룹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Can't you hear me?




오늘 한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 내내 영화 바그다드 카페 OST 중 Calling you 가 귓가를 멤도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었다.

I’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m calling you.
I know you hear me.


너무나 가슴아픈, 하지만 너무나 와닿는 가사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으나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그것은 결코 행복이기 어렵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만으로 어찌 안되는 존재인가 보다.

댓글 설정의 자유

오픈아이디로 댓글 다는 것을 설정하다가 발견한 문제점.

http://www.blogger.com 으로 으로 접속해서 현재 템플릿의 의견 설정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익명 사용자를 포함한 모두 를 선택하면 댓글 다는 부분이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특별히 구글 계정이 없더라도 닉네임 을 이용해서 댓글을 쉽게 달 수 있다. 오픈아이디를 설정하기 위해 http://draft.blogger.com 으로 접속해서 의견 설정란을 보면,

와 같이 OpenID 설정 항목이 추가되어 있다. 그런데 OpenID 를 포함한 '등록된' 사용자 에게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허가하는게 문제다. 즉, 이렇게 설정을 한 후에 댓글을 달고자 하면,


와 같이 OpenID 혹은,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거쳐야만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버린다. 스팸 때문이라지만 기존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폐쇄적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인증받지 않은 유저의 댓글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한 지저깨비님의 글을 읽을때만 해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었는데 이런식이라면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아직 draft 상태의 기능이니 정식으로 런칭 될 때는 달라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년 12월 10일 월요일

오픈 아이디. 부디 성공하길.

오픈아이디로 댓글을 달 수 있게 블로거 기능이 업데이트 되었다는 지저깨비님의 포스팅을 읽고 신이나서 대시보드를 열었지만 내가 사용중인 템플릿은 구형이라 그런지 오픈아이디 댓글 기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 블로그 주소를 오픈아이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매력이기 때문에 곧 수많은 블로거들에게 오픈아이디가 퍼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제발 성공했으면.

그나저나 오픈아이디 지원 템플릿으로 또 교체해야 하나....

ps
오픈아이디를 지원하는 심플(!)한 템플릿 추천 받습니다. :-D

2007년 12월 8일 토요일

여 자 김 혜 수



모처럼 둘 모두 여유가 생긴 주말 오후, 내심 세븐 데이즈 를 보고 싶어서 찾아간 극장에서 아내가 보고 싶다고 지목한 11번째 엄마 로 급선회 했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현역 최고의 젊은 여배우로 생각하는 김혜수의 작품이라 나 역시 그다지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매 작품마다 이전 작품과 전혀 다른 연기변신을 해 온 김혜수 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에서 요구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 내는 모습이었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며 지루하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갈등도,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클라이막스도, 교훈과 감동을 같이 주기 위해 머리 쥐어짜 이야기를 구성하려 노력한 듯한 모습도 없다. 마치 8월의 크리스마스 처럼.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내가 받은 감동의 가장 큰 부분은 영화가 끝난 후에 있었다. 잔잔한 결말을 보고 자리를 정리하던 중 올라가는 cast 소개에서 김진성 감독이 준비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다름아닌, 배역 소개 부분에 이르러서 김혜수의 이름이 나올 때

여 자 김 혜 수

라고 나온 것이었다. 그랬다. 영화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인물은 단 한번도 이름이 나오질 않았었다. 그저 '그 년'으로 불리웠을 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채 '그 년'으로, '아줌마'로, 하지만 마지막에는 '엄마' 로 불리웠던 극중 인물에게 감독은 '여자' 라는 이름을 붙여준, 아니 돌려준 것이다.

여자, 그리고 엄마.

쉽게 표현하기 힘든, 하지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짙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 듯 하다.

2007년 12월 4일 화요일

새것 과 헌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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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있는 내 컴퓨터 duloc]

지금 내가 연구실에서 쓰고 있는 컴퓨터는 2000년 봄에 구입한 것으로 CPU 는 펜티엄3 를 장착하고 있다. 내가 PC 게임을 즐기는 편도 아니거니와 좋은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라 아직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냥 이렇게 학위취득할 때까지 쓰다 버려야 겠다고 마음편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리 문제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교수님께서 연구실원들 컴퓨터를 듀얼 모니터를 포함한 최신 컴퓨터로 전부 바꾸라고 하신 것.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 했지만 지름신의 내방을 받으신 교수님의 뜻을 바꿀수는 없었다. 졸지에 듀얼모니터에 듀얼코어 시스템을 쓰게 됐다.

새로운 전자제품이 생긴다는 것이 기분 나쁜건 아니지만 예상했던 연수보다 1년이상 앞당겨 처분해야 하는 기존 컴퓨터로 인해 고민이 생겨 버렸다.

이걸 어째야 하나.

굉장히 정이 든 녀석이라(duloc 이라고 이름까지 붙여놓은 녀석인데) 가능하면 좀 더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는데. :-(

UPDATE 2007.12.10.
사촌동생 정화가 일단 간단한 웹서핑 용도로 써보겠다고 했음. 컴퓨터 성능이 정화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그런데 언제 가져다 주지???

크리스마스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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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와 밤 늦게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오면서, 올해는 유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몇군데 전기장식이 걸려 있을 뿐, 거리에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오지도 않고 꼭 붙어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보이지도 않는다. 아내는 경기 불황 때문이라고 했고 나는 어차피 그런 것들은 젋은 세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거 아니냐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유난히 조용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 듯 하다. 어차피 나야 연말이라고 더 분위기를 냈던 적도 없지만 남들이 분위기 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2007년 12월 1일 토요일

'암' 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

난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 결혼한지 한달만의 일이었으니 내 아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그저 침대에 누워 계시던 모습 말고는 없으리라. 우리 가족중 취향이나 성격이나 여러가지가 아내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던 사람이 아버지였던 터라 어머니께서도 이 둘의 만남이 길지 못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아쉬워 하고 계신다.

요즘은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은게 사실이고 정부 지원과 각종 보험으로 인해 예전처럼 암 치료의 높은 비용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세상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공포는 결코 작은게 아니다. 감정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암에 걸려 죽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온 우리의 기억 세포에서 암은 저승사자의 손짓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저께 장인어른의 검사 결과가 악성종양으로 나왔다. 하지만 암의 크기가 아직 작을 때 발견했고 발견한 그 자리에서 외과적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고 한다. 암병동에 존재하는 두가지 병실, 외과병동과 내과병동의 분위기(수술로 가볍게 치료가 가능한 사람들과 이미 외과적 치료 방법으로는 손 댈 방법이 없는 사람들)를 기억하는 나는 '수술'을 받으셨다는, 그것도 우연히 발견한 그 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할 정도의 종양이었다는 것에 무척 큰 안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내와 장모님으로써는 쉽게 안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상황이 나쁜게 아니거늘 그 공포감이 주는 무게에 아마 지금 많이 괴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전이 여부에 대한 검사가 아직 남아 있지만 난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검사는 어차피 모든 암 환자들이(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받아야 하는 의례적인 검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간병을 하셨던 어머니도 사실 '암' 이라는 진단이 확정되자 무너지셨었다. 겉으로는 의연하신 듯 행동했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정말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게 바로 그날 부터고 어머니께서 옆에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 지셨던 것도 바로 그때 부터였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 두 분 모두 짓눌리셨던 것이다. 나라고 크게 달랐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공포를 이기는 것이다. 어제까지 그래왔다고, 치료하기 어려웠다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자포자기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공포는 쉽게 전염되고 그 공포는 병을 악화시킨다. 이것은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아마, 암이라는 말에 하얗게 질려버린 나와 어머니의 얼굴빛은 아버지께 죽음 이후를 생각해보게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걱정이 많으신 장모님이 난 오히려 걱정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배우자의 공포에 질린 얼굴만큼 환자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위에도 암을 고친 사람들은 많다. 굳이 애써 예를 찾지 않더라도 어느 집안이든 암을 치료한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오늘 저녁때 아내와 강릉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는데 난 솔직히 별 것 아닌 일에 자식들이 너무 호들갑 떠는것 같기도 하다. 장인어른이 아니라 장모님이 걱정되서 가야 한다는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제쯤 인류가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0년? 20년? 그것보다 오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장모님의 걱정을 덜어 드릴 수 있을까. 난 위로하 것에는 무척 서툰 사람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