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아침

웹브라우져를 켜면 rss 리더로 쓰고 있는 구글리더 홈페이지가 제일 먼저 뜬다. 관심있는 주제와 지인들의 블로그 업데이트, 심지어 뉴스까지도 RSS 로 구독해서 보는 관계로 내 모든 웹서핑의 90% 는 구글리더에서 이루어 진다.

정보의 홍수...그것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아침에 와서 접속한 구글리더에서는 지인들의 블로그 업데이트가 4건, 경제관련 뉴스가 256건, 전공분야 논문이 897편이라는 표시가 볼드체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울러 도착한 메일은 9통. 한숨. 분명 어제 퇴근하기 전에 모든 발표 논문과 뉴스, 메일등 전부 확인했는데.

일단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는 메일부터 확인하는데 내가 매달 일정액씩 후원하고 있는 사랑밭회에서 운영하는 사랑밭 새벽편지 가 한통 도착해 있었다. 솔직히 이 편지는 그다지 받아보고 싶지 않은 편지중 하나다. 열어보면 너무나 가슴아픈,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할 뿐 마음 따뜻해지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접하고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자책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 편지다.

나는 부자가 아니며 매달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라는 주장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으며 그들을 위한,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저, 멋쩍게 웃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며칠전 아내와 장을 보러 방문했던 마트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있었다. 세상은 또다시 크리스마스 시즌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고 길거리에선 그놈의 지긋지긋한 '서민' 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선 가정을 갖지 못하는 고아가 이다지도 많으며 소위 소외계층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받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바꿔보려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럴수록 여러가지가 참으로 가슴아픈, 그리고 재미없는 세상이다.

아침마다 마시던 모닝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날이다.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사이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철저한 훈련을 거친 외교와 협상 전문가들이 아닌 이상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행동은 그 속내를 거진 드러내기 마련이고 감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주변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눈치채곤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대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그것대로 아픔과 어려움이 될 수 있겠지만 속내를 아는 것은 그 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내가 그것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아는 것도, 또 전혀 그러지 않게 모른척 하는 것도(거의 불가능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생각했었다. 완벽한 감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속이려 드느니 차라리 아무리 그게 사소한 약속일 지라도 원칙을 지키는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깨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게 우리네 사람이고 보면 제아무리 굳건한 사람이라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럴경우 그 잘못을 지적해주고 바르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 크게 어긋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십대에서 이십대 중반까지의 믿음이었다.

....

그런데 사람 사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픈 진실을 외면하고자 그 진실을 지적하는 날 적으로 삼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게 뻔히 드러나는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리로 논리를 무기삼아 그들을 사냥하려 드는 내 공격적 토론 성향까지. 어정쩡한 자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내 직설적인 사실 지적과 진실에 대한 인정 요구는 그들에게 있어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으리라. 공포의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빠져나갈 곳을 차단한 채 숨쉴틈 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여 버렸으니까.

원리와 원칙 그리고 진실됨. 어쩌면 내가 물리학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곳에선 시스템적으로 거짓을 걸러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원리와 원칙 아래 진실을 검증받아 가며 경쟁하니 말이다.(뭐, 모두가 그런건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내 주위에 남은 사람들은 남에게 솔직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뿐이지만 그 숫자는 결코 많아질 수가 없었다. 친구의 수가 많은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라고는 하나 세상은 친구들과만 살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소수의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큼 다수와 원만함을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원리 원칙과 논리로 무장한 논객이 아니라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와 잘못을 웃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어째서 잘못을 용납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인정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이십대 초반에서 그걸 이해하기 시작한 삼십대 초반까지의 시기가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을 벗어나는 이제서야, 남의 잘못과 약점을 모른척 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정말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세상을 다시 배워 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 노력이 결실을 맺었으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소리


Light drops,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가 되면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는다. 조임쇠가 낡아서 소리를 내는 스팀, 거리를 채우는 크리스마스 캐롤, 아내와 마주앉아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의 그 소리들.

눈까지 내린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12월도 되지 않은 지금 거리의 소란스러움을 흡수해서 내 주위의 소리만 잘 들리게 만들어 주는 함박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전에 서울에 눈이 내렸다.

지난 몇년간 해가 바뀌도록 첫눈이 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실망, 혹은 안도하게 만들었던 그 첫눈이 11월이 끝나지도 않은 이번주 초에 제법 많이 이 도시에 내렸다. 정작 당일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쳤는데 오늘, 아직 그늘진 곳에 하얗게 남아 있던 그날의 흔적 위로 하루종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인식해 버렸다.

'아...며칠전에 눈이 왔었지.'

...라면서.

사람의 인식 체계란 참으로 간사해서 언제나 풍족할 때보다는 사라지거나, 아쉬워 질 때에야 대상에 관계없이 강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소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중간 삽입곡보다 엔딩곡이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고 운전중에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동차의 시동을 끄기 전에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같은 이유로 연말이 되면 난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된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 지금 이 순간 내리고 있는 첫번째 겨울비가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모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저녁이 될게 분명한 오늘은 퇴근길의 아내를 픽업해서 차분한 분위기와 좋은 선곡 덕에 기분좋게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둘 모두 좋아하는 카페로 향해야 겠다. 여름철의 장마와 달리 적당히 내리는 이 겨울의 빗소리만큼 대화를 나누기 좋은 소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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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도 벌써 중순.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벌써 끝이 되어간다.

2007년 11월 4일 일요일

이상한 출근길.

모처럼 움직이지 않는 주말이기도 하거니와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주말인 어제와 오늘 연달아 출근을 했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처가와 본가를 방문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놀러다니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온전히 집에서 뒹굴 수 있는 휴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다. 아내에게도 하루종일 집에서 강아지와 뒹굴며 쉴 수 있어서 좋고, 나 역시 밀린 일이나 밀릴 걸 대비해서 미리 해놓으면 좋을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으나 난 휴일 출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한 선배는 그런 날 보면서 일중독 가능성 수치 만땅! 이라면서 혀를 차기도 했었지만 휴일 출근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것과 일중독에 빠지는 것은 좀 다른 것 아닌가? 나도 되도않는 상사의 신경질이나 할일도 그다지 없는데 회사 분위기 유지 차원이라면서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말이다. (전에 그랬을 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청량고추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었다.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속병이 날때까지 그랬으니...미쳤었지.)

그런데 오늘따라 출근길이 유난히 길었다. 지루하고 멀게 느껴졌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책장에서 아내가 찾아준 "행복한 나의 도시" 라는 책이 재미있어서도 아닌 것 같다. 아, 재미있기는 했다. 지루한 걸 모르고 시간을 보냈으니. 하지만 지하철 의자에 앉아 정말 오랜 시간을 읽은 것 같은데 아직도 목적지는 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디선가 뒤틀려 버린 시간감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치 지하철이 느리게 움직여서 한 두시간쯤 지났는데 책에 빠져서 내가 그걸 인식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정말 그랬을 리는 만무하지만. 휴대폰 시계가 소목시계처럼 태엽을 감아 시계바늘을 나 몰래 뒤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행복한 나의 도시" 는 오래전에 아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며 내게 권해줬던 책인데 책장에 자리잡게 해놓고 잊고 살다가 사촌동생에게 추천을 받고 다시 읽어볼 생각을 했었던 책이다. 그런데 아내가 한번 권해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서점에 갔을 때 아내에게 그 책 이야기를 했다가 면박을 받았었다. 음...무심한 남편 같으니라구.

그런데 그러고도 또다시 잊고 있다가 어제 저녁 아내와 들린 삼청동에 있는 북카페 '내서재' 에서 책장에 꼽혀 있는 이 책을 보고 아내가 '재미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먼지 수북히 쌓여 있던 머리속 책장에서 끄집어 냈다. 맞아, 읽어보려고 했었지. 밤의 삼청동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난 낮에 가는게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린 어제 저녁이었다. 특히나 요즘같이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계절에는 더욱. 내서재에서 시간을 좀더 보내고 싶은 아내를 졸라 걷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은행나무 가로수와 돌담을 끼고 걷는 그 길에 고즈넉함은 없었다. 밤이니 노란 은행잎이고, 짙은 갈색의 낙엽들이고 간에 뭐가 보여야 운치를 느끼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따뜻한 녹차라떼를 한잔 더 시켜놓고 내서재에서 시간을 좀더 보낼 걸 그랬다. 다음에 언제 기회를 봐서 낮에(!) 아내와 함께 신발이나 악세사리등을 사러 한번 더 삼청동에 들려야 겠다.

어쨌든 그렇게 긴 출근길 동안 내 양 옆으로는 술에 떡이된 두명의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서로 일행은 아니었다. 지하철에 탑승한 역이 서로 달랐으니까. 다만 신기한건 구파발 같이 외진 곳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게 신기했다. 홍대나 압구정도 아니고...친구와 놀았다면 친구집에서 자고 일어나도 될텐데 집에가서 쉬려고 움직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자다 나왔다고 보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뭐, 덕분에 술 냄새는 노땡큐 할만큼 실컷 맡을 수 있었다. 당분간 술 마시고 싶어지진 않을 것 같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침에 면도하다 살짝 베어 상처가 난 턱의 쓰라림과, 좌우에서 풍겨오는 술냄새 그리고 책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버무려 아이팟에서 틀어놓은 이루마의 음악이 이어폰으로 귀를 괴롭히면서 출근한, 그러면서 묘하게도 시간이 엉켜버린 참으로 이상한 출근길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