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9일 토요일

구글뉴스 의 단점

난 사람이 인위적으로 기사 목록을 편집하는 포털의 뉴스 서비스보다 구글뉴스를 선호한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기사들을 메인으로 배치하는 현재의 포털 사이트는 썬데이 서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미성년자들에게도 오픈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 이하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구글뉴스를 이용하다 보면 가끔 한숨이 나올때가 있다. 이쪽은 프로그램이 기사 목록을 수집하다 보니 그것이 해당 언론사에 공식적으로 업로드 된 '기사' 인지 독자 게시판에 등록된 독자들의 '의견' 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클릭해서 읽어나가다 사설도 아니고 기사도 아닌 어정쩡한 내용에 의아해서 웹페이지 상단을 살펴보면 대부분 독자의견을 올리는 게시판의 게시물 들이다.

일반 기사와 사설이 구분되어야 하듯이 독자 의견과 기사 역시 구분되어야 한다. 웹봇이 그걸 구분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웹페이지에 태그를 하나 삽입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구글 뉴스가 좀더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언론사들과 논의하여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07년 9월 23일 일요일

문 밖에서 노크하는 예수님 (이 그림의 작가를 아시는 분?)


장모님께서 끓여주신 전복죽을 맛있게 먹던 중 "문 밖에서 노크하는 예수님" 그림을 그린 작가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검색해보니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의 작가가 Revelation 3:20 구절의 내용을 토대로 여러 스타일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 중 위에 올려놓은 그림이 장모님께서 보신 그림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링크되어 있는 저 그림에 정작 작가가 누군지 저작권 표시를 해 놓은 사이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찾아봐야 할런지.

부탁말씀.
이 그림을 그린 작가를 아시는 분께 코멘트 부탁드리겠습니다. :-)

2007년 9월 18일 화요일

가구 재배치?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업주부들은 대청소를 하거나 집안 가구들을 재배치 한다고 들었다.

아래에도 포스팅 했듯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블로그 디자인을 뜯어 고쳤다. 가구를 재배치 했다고나 할까.

잘 쓰지 않는 유투브 뱃지는 떼어 버리고 링크 항목도 없애 버렸다. 원래 계획은 방명록도 없애는 것이었는데 없애려는 순간 노구 녀석이 글을 적어서 얼결에 남겨두게 됐다.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 내 컴퓨터에 감시 프로그램이라도 설치해 놓은 것인지. ㅡ.ㅡ

어쨌든 디자인을 모두 뜯어 고치긴 했는데....색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흰바탕에 검정글씨가 제일 좋았을까? 그래도 이왕 바꾼거 몇달간은 이대로 써봐야 겠다.

ps
불여우에선 모양이 예쁘게 나오는데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는 조금 이상하다. 흠....뭐,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막막함

한시간쯤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시질 않는다.

어느정도의 불안감과 걱정은 요즘 달고 사는 것이니 익숙하긴 하지만 지금의 이 답답함과 막막한 느낌은 이유도 알 수 없다. 심장을 무엇인가가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가방에 필름을 가득 담고 카메라를 손에 움켜쥐고는 어딘가 사진찍으러 훌쩍 다녀오고 싶다.

우기

기후가 변한게 확실하다.

7월 말부터 시작된 비가 8월 내내 내리더니 9월이 되서도 그칠줄을 모르고 있다. 심지어 추석을 앞둔 요즘 연이은 태풍으로 남부지역이 초토화 되어 버렸다. 뉴스에서 '장마' 가 아닌 '우기' 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두달간 지속된 우기 후 한가위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올라온 초강력 태풍이라니...일조량이 부족해서 곡식들이 제대로 익지도 못했을텐데 그나마도 전부 폭우와 강풍에 쓰러져 버리겠지.

농민들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서민들도 그다지 기쁘지 않은 한가위가 될 것 같다. :-(

2007년 9월 16일 일요일

명성황후, 약간의 곤란함

9월 29일과 30일 양일간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뮤지컬 명성황후를 볼 수 있다.

평소 아내에게 장인어른께서 음악이나 공연쪽에 많은 관심이 있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던 탓에 대형 뮤지컬 공연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조금 무리해서 R 석을 네장 예매했다. 그리고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모시고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분명 예매하던 날에도 시간 괜찮다고 하셨던 장인어른께서 우리가 티켓을 예매한 29일 근무를 도저히 못바꾸시겠다면서 티켓을 취소하는게 어떠냐고 전화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었다.

그 당황스러움이란.

아내도 장인어른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공연이었는지 세상에 전화로 그날 근무를 어떻게좀 바꿔보라 면서 "졸랐다"고 한다. 아내는 흔히 말해지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탓에 크면서 부모님게 떼를 쓰거나 뭔가를 위해 조르는 것을 금지당하고 컸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졸라 봤다고 했다. 통해야 할텐데. 그런데 장인어른 역시 개인적인 이유로 그런 근무를 바꾸실 성격이 아닌지라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큰 마음 먹고 내 한달 생활비를 훌쩍 넘는 돈을 들여 예매한 명성황후. 약간 곤란하게 됐다. 취소하면 수수료만 몇만원인데. ㅡㅜ

2007년 9월 9일 일요일

간만의 나들이

아내는 비글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캐릭터 스누피를 무척 좋아한다.

오늘 모처럼 아내와 드라이브도 하고, 한남동에 가서 맛있는 샐러드와 스파게티도 먹었다. 그리고는 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피너츠 전시회에 가서 스누피와 그의 친구들에 관련된 미술 작품과 상품들을 감상했고 마지막에 예술의 전당에서 가까이 있는 국제전자상가(국전이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한)에 들려 새로나온 콘솔용 게임들을 살펴봤다.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아직도 필름이 15방이나 남아 있어서 언제 현상할지 알 수 없다. 지난번 을왕리에서 찍은 초롱이 사진도 업로드 해야 하는데.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요즘 정신없이 바빠서 도통 카메라를 갖고 다니지 못했다.

ps.1
우리나라 최대의 콘솔게임 매장인 국전에서조차 이제 playstation 2 용 게임들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아직 쓸만한 게임기인데...거의 매장에서 철수되다 시피 했다. 좀 씁쓸했다.

ps.2
몇주 전부터 초롱이의 젖꼭지가 이상해서 오늘 병원에 데리고 갔었는데 상상임신이란다. 보통 2주면 끝나는데 이녀석의 경우엔 정도가 심하고 기간도 오래되서 약을 먹이기로 했다. 정말 골고루 하는 녀석이다. ㅡ0ㅡ;;;

강변북로

금요일 아침, 동아리 졸업생 중 한명에게 문자가 왔다. 다름아닌 자기 동기중 한명인 oo 의 아버지께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부고 알림이었다.

문자를 받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집 아버지께서 무척이나 엄하셨다는 것, 그래서 그 후배는 항상 통금시간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는 것, 딸만 둘인 집이라는 것 등등. 그리고 덧붙여서 내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 청주까지 내려와서는 내 손을 붙잡고 얼마나 힘드냐면서 유독 마음 아파 했었다는 기억도 떠올랐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손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동아리 졸업생 메일링 리스트에 부고를 알리고 동아리 홈페이지에도 게시물을 올리고...발인은 언제며, 상주는 누구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 들었던 생각. 부모님을 잃기엔 아직 어린 나이들인데....하는 안타까움.

'살아가다'는 행위 자체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십대의 나이는 그런 이별을, 그것도 가족과의 갑작스런 이별을 경험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통증을 호소하시고 병원에 간 후 이틀만에, 그것도 절반은 의식이 없어 가족과의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탓에 그 후배와 가족들은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그랬었지. 예고된 죽음을 맞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잃었을 때 나 역시 그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장례의 모든 절차...위로하는 사람들과 그때마다 괜찮다며 답하는 형식적인 인사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어머니를 잘 챙겨야 한다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을 끊임없이 충고하는 친지들의 걱정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빨리 지나가 버려서 좀 혼자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혼자 있으면 속 시원하게 울 수 있을 것 같았었다. 결국 장지에서 입관을 마치고 손님들이 식사를 하시는 건물 뒷편에 혼자 앉아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물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었던 기억이 날 괴롭게 했다.

어제 저녁 거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과 친척들간의 갈등을 눈치채고 돌아오는 운전대는 유난히 무거웠다. 생각이 지나치게 외부로 나돌았기 때문일까. 늘 다니던 길을 두번이나 잘못 들어 빙빙 돌아 겨우 성수대교 앞에 도착했다. 그리곤 차마 강변북로로 진입하지 못하고 성수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들어갔다. 아마...다시 한동안은 강변북로를 타지 못할 것 같다. 청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오던 날,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정체가 심해서 진저리 쳐질만큼 초조했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물 밑에서 떠올라 버리고 말았으니까.

2007년 9월 2일 일요일

선택

사람마다 자신의 삶에서 어디까지 미래를 내다보면서 사는지는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기 위해 자신의 현재를 냉정하게 분석해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신이 걸어갈 길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여건등을 종합해서 생각하고 여기로부터 무언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무척 어려운 일들이다.

나는 몇 년 후의 미래까지 내다 보는가?

만일 나와 남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같다면 지금 한 발 먼저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많이 알아보고, 많이 고민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