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0일 수요일

San Diego Pier Café



집에서 사용하는 아이맥은 NGPodWallpaper 툴을 이용해서 National Geographic 의 Photo of the Day 에 올라오는 사진을 매일 바탕화면으로 바꿔가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며칠전에 너무나 반가운 사진이 올라왔다.

다름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 있는 San Diego Pier Café 의 사진이었다. San Diego-Coronado Bridge 가 뒷 배경으로 보이는, 그야말로 샌디에고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멋진 사진이다.

작년 SPIE Photonics & Optics 학회 참석차 갔던 샌디에고는 그 아름다움으로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학회 일정중 하루는 그날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저녁 식사도 해결하고 시간도 보낼겸 해서 샌디에고 만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트 계류정의 돌벽에 앉아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무작정 발길 닫는 대로 들어간 곳이 바로 사진에 있는 San Diego Pier Café 였다. 바로 사진에 보이는 바로 그 시간대였다. 적당한 저녁 노을과 멋진 항구. 그리고 유난히 높게 치솟았다가 내려오는 코로나도 다리. 혼자 있음이 너무 안타까울 만큼 멋진 카페였다. 음식맛은 엉망이었지만 단지 맥주를 한잔 마시더라도 앉아 있을 가치가 있는 곳이었으니 크게 불만은 없었다.

어쨌든 며칠째 바탕화면을 바꾸지 않고 있다. 다녀와서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듯이 정말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다. 내년에 논문을 한편 낸 후 교수님을 졸라서 한번 더 다녀올까.

2007년 5월 29일 화요일

기억 속으로.


휴식,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이 사진을 찍은 곳은 한양대학교 본관 앞의 쉼터다.

크지는 않지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길이 바둑판처럼 나있고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들이 있는 까닭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하고 공강 시간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는 곳이다. 아니, '곳이었다.'

얼마전부터 이 쉼터를 커다란 공사용 울타리로 둘러싸더니 드디어 중장비들이 들어와 파헤치기 시작했다. 건물을 짓는 것이겠지.

너무 아쉬웠다. 저 곳에서 데이트를 해본 기억도, 공강시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해본 적도 없지만 내가 오가는 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사진도 몇장 찍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몇해동안 계속된 공사로 학생들의 휴식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학부생 때 앉아서 뒹굴거리던 잔디밭도 없어졌고, 운동장도 하나로 줄어들었다. 벗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던 언덕은 자연대 2관으로 변해 버렸고 마침내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마저도 건물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정된 땅에 건물을 지어야 하는 학교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물질적인 성장에만 지나치게 치우치는 듯 하여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적어도 한군데 정도는 학생들이 나무숲을 거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남겨 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사진에 남은 그네식 벤치만 찍지 말고 길 전체를 사진으로 남겨 둘 걸 그랬나보다. 흔히 들리는 말로 남는 건 사진 뿐인것을.

오늘 또 한곳의 장소를 기억속으로 보냈다. 군산 앞바다의 개야도의 갈대언덕을 시작으로 이제 네번째인가?

2007년 5월 28일 월요일

구글에서 내 블로그를 검색하지 못하는 현상 발견

Zizukabi님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가 블로그스팟의 archive 가 구글 검색엔진에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다. 해당 포스트를 추적하다 보니 mwultong 님의 블로그까지 가서 글을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컴맹이여.

게시물들을 읽어보고 구글에서 site:http://anecdotist.blogspot.com 으로 검색을 해보니 왠걸, 정말로 내 블로그의 수백개의 글들중 검색되는 것은 열 대여섯개 밖에 없었다. 기필코 구글에서 검색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멀쩡히 있는 글들을 없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리 없다. 일단 지금의 바쁜 일만 끝나고 나면 다시금 글들을 꼼꼼히 읽어봐야 겠다.

관련글 :
-. 블로그가 이제 구글에 정상적으로 인덱스되고 있음
-. Zizukabi: Archives 순서를 원래대로 수정

그나저나 mwultong 님은 언제쯤 다시 그림을 그리시려는지 모르겠다. mwultong 님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는다. ^^

2007년 5월 27일 일요일

연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법이고 당연히 필기구에 대한 취향도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나는 연필을 좋아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필기구가 볼펜과 샤프펜슬로 바뀌고 난 이후 연필을 거의 쓰지 않았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오고 나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샤프와 달리 약간은 굵게 써지기 마련이지만 샤프와 달리 사각거리며 종이에서 필기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 감촉이 너무나 좋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그때처럼 어느곳을 가든 자동 연필깍기(흔히 샤파라고 불리웠던)가 있는 시대는 아니어서 연필을 쓰려면 오히려 문구용 커터칼로 조심조심 나무를 깍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했던 것 보다 기분좋다.

연필을 칼로 많이 깍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필을 깍을 때는 결코 욕심을 내선 안된다. 아주 숙련된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본적이 없으니) 보기 좋게 깍기 위해서는 느긋한 마음으로 조금씩 길게 길게 나무를 깍아내야 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처음엔 연필을 제대로 깍지 못해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거나 연필심을 둘러싼 나무가 보기 흉하게 모양이 나오거나 했었다. 쓰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연필을 깍을때의 느긋함이 필요한 요즘인 듯 싶다. 그래서 더욱 음악에 몰두하는 것일지도. 난 차분한 음악을 들을때면 숨을 깊이 내쉬는 습관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한숨을 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호흡 자체를 깊이 하는 것이다. 마치 연필을 깍을 때 호흡이 조심스럽고 길어지는 것 처럼.

지금 당장 확인해 봐야 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지만 호흡을 깊이 하고 내일 아침까지 미뤄볼 생각이다. 내일 아침 연구실에 출근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연필 한자루를 다듬어 놓고, 그리고 나서 다시금 일에 달려들어야 겠다.

긴 호흡을 만들어 주는 음악 그리고 사각거리는 연필. 여유를 가져보자.

Whispering Solo Piano Radio 재생바 설치

요즘 즐겨 듣고 있는 Whispering Solo Piano Radio 의 재생바를 블로그 우측 상단에 설치했다. 연구실에서 쓰는 컴퓨터는 너무 사양이 낮아 iTunes 를 항상 실행시켜 두기에는 좀 버겁기 때문에 내가 자주 접근하는 내 블로그에 아예 재생바를 달아 버렸다.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같은 음악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07년 5월 25일 금요일

다행이다

지난 며칠 이런저런 이유로 이적의 새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데뷰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적. 이번에 앨범을 무척 오랜만에 발표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상에 쫓겨 제대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지난 며칠간 계속해서 들을 기회가 생겼었다.

미소.

다행이다. 이런 음색을 가진 목소리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어서.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 제목처럼 정말로 '다행이다.'

간만에 CD 를 하나 사게 생겼다.

2007년 5월 23일 수요일

"그러니까 우리도 적극적으로 기술유출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적극적으로 기술 유출을 해야 한다"

금융권의 연봉이 많은 이유는 돈을 만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생활이 넉넉할 정도의 연봉을 주지 않으면 딴마음을 먹기 쉬워서가 아닐까 라는 연구실 사람들과의 대화끝에 내가 한 말이다. 우리 연구자들도 돈 많이 줄 때까지 적극적으로 기술유출을 해야 한다고. 단지 현찰을 만지지 않을 뿐이지 얼마나 큰 단위의 무형의 가치를 우리가 다루고 있는지 사회가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스개로 한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 포함되어 있기도 한 말이었다. 한국의 연구 개발직의 대우는 정말 요즘말로 '안습' 이다. 다른 직종들도 그렇다 라고 한다면 난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다. 나와 같이 하이테크를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어느 나라든 국경의 문턱은 매우 낮다. 비교 대상이 국내로 한정되기 쉬운, 그래서 국내 대기업들과의 비교를 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일반적인 직장인들에 비해 연구직에 있는 사람들은 선진국의 동일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과 국제 학회에서 1년에 두세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처우와 자신의 처우를 비교할 수 있다. 비교가 가능하고, 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국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내 주위 선배 동기들의 대부분이 언제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한국내 직장을 고려하는 것은 '가족'을 우선시 하도록 받은 교육과 문화 때문일 것이다.

나만해도 내가 해외로 나가 버리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선 혼자 지내셔야 하고 처가 장모님, 장인어른께서도 외동딸을 해외로 보내놓고 두분이서만 지내셔야 한다. 한달에 한번씩 양가에 꼬박꼬박 찾아뵙는 지금도 가시면 반가워서 어쩔줄 몰라하시고 전화가 하루라도 건너뛰면 무슨일 있나 걱정되셔서 안절부절 하시는 판국에, 해외로 나가 버리면 1년에 한번 들어오기도 쉽지 않을거다. 도저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학 등록금도, 대학원 등록금도 집에 손벌리지 않고 내가 벌어왔던 나는 어쩌면 부모님께 의지한 후 나중에 다시 모시는 한국의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내가 이럴진데 남들은 어떨까.

작년에 샌디에고에서 열렸던 학회 만찬장에서 우연히 한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영국 녀석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의 것, 내 인생은 내 것. 왜 고민하냐" 라고 했다. 당연히 그렇게 말할걸 예상했었기에 그냥 웃어 넘겼다. 뭐, 문화의 차이겠지. 어쨌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조금만 낮았어도 한국의 박사들의 대부분은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재작년에 회사 연구소에 있을 때 다른 박사님들이 하나같이 입에 달고 살던, "학위 받으면 나가라." 라는 말과, 실제로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들어올 생각이 없다고 하던 유학을 떠나 있는 후배들을 보면서 '참 많은 수가 떠나고 있구나' 라는 피부로 와닿던 느낌이 드디어 며칠전에 신문기사로 떴다.

동아일보 : 한국인 박사 70% 귀국 않겠다

아마 점점 가속화 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하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은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관리직' 을 중요시 하는 한국의 문화 때문이다. 관리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연구직으로 취직을 한 사람이라도 승진을 하려면 연구 업무를 떠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큰 고민이 여기에 담겨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남성이 박사학위를 받으면 30대 초반에서 중반이 된다. 국내에 국영 연구소나 대학교수 자리가 많은 것이 아니므로 사실 대부분은 대기업의 연구소에 취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재작년 회사에서 본 모습은 충격이었다. 40대가 부서장을 포함 단 두명이었다. 부서원은 50명에 육박. 학위를 받고 일선에서 연구 업무를 하며 실무를 경험하고 그 일에 대해서 베테랑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을 쌓으려면 국책 연구소에 있는 선배들을 봤을때 정말 빠르면 5년, 보통 10년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정도면 이제 어디가서 어깨 힘 줄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의 위치에 올라서는 듯 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 연구소에서는 그정도 기간을 버티기가 어렵고 그 기간을 버텨내려면 승진을 거듭해야 하는데 보통 수석연구원 부터는 연구업무를 하지 않는다. 회의와 서류로 싸우는 일반 관리직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수석 연구원이 되는게 일반적으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 근처라는게 문제다. 정말로 그 분야에서 베테랑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시기에 연구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나나, 박사학위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연구가 좋아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이 최고로 연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므로, 관리직으로 옮기시던가 회사를 그만두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바로 그 관리직들이 서류를 통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처참했다.

회사 연구소에서 그 현실을 보고 왔을 때 정말로 좌절을 했었다. 나가고 싶었다. 연봉은 관리직에 비해 적게 받더라도 장기간 연구직에 종사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가진 선진국으로 이민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34~35년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은 후 5년만 그 능력을 써먹고는 이후에는 서류작업만 하던가 은퇴해야 하는 이 한국이라는 사회가 저주스러웠다. 내가 그러할진데 남이라고 안 그럴까.

앞으로도 이와같은 과학자들의 이탈은 지속될 것이며 보다 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할때면 아마 후회해도 늦은 시기가 될 것이다. IMF 때 모든 국가,기업등에서 연구소들을 우선적으로 인원감축을 했었다. 당장의 수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배들이 하는 말은 그거였다.

"일반 사무직과 연구직은 다르다. 이사람들을, 이 팀을 해체하면 지금 이 수준까지 도달한 이 팀의 노하우가 흩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고되면 당연히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날테니 나중에 이 사람들을 다시금 모으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5년간 유지되었던 연구소를 해체하고 새로 시작하려면 전 세계적으로도 수가 부족한 고급 연구자들중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빼서 모으는데 2년에서 3년, 지금의 수준에 다시금 도달하는데 5년이 걸린다. 도합 5+8년을 낭비한 것이다. 그리고 그 13년동안 다른 선진국은 격차를 벌려 놓았을 테니 그 격차는 첨단과학 분야에선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첨단분야 연구에 무지한 서류작업자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잠깐의 직무인수인계 작업이면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고 해고한 것도 아닌데 해외로 유출되는 과학자들의 문제는 어찌보면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 지금의 이 유출은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경고를 해야 할지 모를 문제다. 정말로 모든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기술유출을 해서 경종을 울려야 하는걸까. 꼴 보기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이 사람들은 정말로 손쉽게 떠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떠날 경우 10년후의 한국은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받은 후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이런 한국 사회가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때문에 이 한국 사회를 떠나는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내가 너무나 안타깝다.

2007년 5월 19일 토요일

COOC 2007

2007 년도 COOC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 며칠 다녀왔다.

제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2003년도 photonics conference 학회가 마지막이었으니 햇수로 4년만이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도는 참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언제 꼭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며칠 일정으로 방문하여 돌아다니고 싶은 곳.

학회 자체는 엉망이었다. 2006년에 발표했던 내 논문이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어 다른 세명과 함께 학회 개회식때 상을 받기는 했지만 영어 발표를 선택해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내 구두발표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맘편히 하는 대화와 구두발표는 분명 달랐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힘들어 하는 성격은 아니라 에라 모르겠다...식의 조금은 무책임한 자신감으로 시작은 했지만 중간에 해야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럴까봐 다 외운 발표 원고를 일부러 들고 나가긴 했지만 내 위치가 지나치게 어두워서 빽빽하게 써놓은 원고를 빠른 시간안에 찾아서 읽기란 쉽지 않았다. 아예 들고 읽었으면 모를까 발표하다 중간에 말을 잊어서 원고를 보고 찾으려 하니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말이 빨랐다 느렸다 들쑥 날쑥. 그것도 염두에 둬서 처음부터 천천히 말한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좋은 경험. 하지만 영 성에 차질 않는다.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은 출발전에 가져간 전자책. 하필이면 '오체불만족'. 행복하라고 만족하라고 강요받는 듯 싶어 공항에서 좀 읽다가 결국 덮어 버렸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서 씻고 책상에 앉아 있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다시금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좀 쉬고 싶다. 피곤했던 지난 3일. 쉬어야 겠다.

2007년 5월 13일 일요일

아카시아

수수꽃다리 향을 느끼면서 봄을 인식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늘 연구실에 올라오면서는 아카시아 향에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오르는 138계단에서 왜 오늘 전까지는 아카시아 향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제 하루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그 하루만이 이토록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것인지. 다행이라면 오늘따라 한동안 들고 다니지 않던 카메라를 들고 왔다는 것.

연구실에 올라와보니 밤을 샜는지 우제가 혼자 책상에 발을 올리고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다. 본인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모로 안쓰럽고, 또 그만큼 미안한 마음이 많은 후배녀석. 좀더 규칙적으로 생활해서 건강도 신경썼으면 좋을텐데 수차례 이야기를 해도 '성격상 어렵다' 는 말과 미소로 그 순간을 넘기는 통에 뭐라고 딱히 더 조언을 하기도 머쓱하다. 지금은 그저 잠이나 깨우지 않는게 도와주는 것일테지.

요즘은 iTunes radio 채널중 Whisperings solo piano radio에 흠뻑 빠져 있다. 가끔씩 방송을 하지 않고 사이트 광고만 반복할 때도 적지 않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방송중이다. 음질이 64kbps 인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내가 직접 CD 리핑을 뜬 것도 아니고 이정도면 훌륭한 음질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깊이있는 소리를 좋아하는 성격탓에 CD 음질의 방송을 듣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이제 슬슬 오늘 나온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트를 펴봐야 겠다. 오늘은 몇시쯤 퇴근해서 집에 가게 될런지. 다행인건 날씨가 너무 좋다는 사실이다. 기분좋게 일과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Update : 2006.5.29.
우리가 흔히 보는 아카시아는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 나무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아카시아 라는 콩과 식물이 따로 있다. 좋은 정보를 준 혜성, 지훈 땡큐.

관련글 : 아카시아와 아까시

2007년 5월 2일 수요일

능력부족

능력 부족, 이해력 부족.

'일은 일, 생활은 생활' 이렇게 구분지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일상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으려 애는 쓰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던가.

세상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것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법이다. 살면서 자질구레하게 발생하는 스트레스들이나 해소법 운운할 수 있는 것이지 명확하게 원인을 정의할 수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해소법이라는 것이 사실 없다. 원인이 '해결'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뿐.

힘들다 힘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