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3일 화요일

보물찾기?

이사를 하면서 내가 애타게 찾던 물건들을 찾은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정말로 큰 보물을 하나 찾았다.

다름아닌, 2000년도에 내가 단독 저자로 출판을 했던 리눅스 서버관리에 대한 책의 초고를 찾은 것이다. 별 생각없이 동아리 서버의 내 계정을 정리하던 중 book.zip 이라는 파일을 찾았던 것. 그 순간의 희열이란.

10포인트 폰트로 A4 3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원고였다. 실제로 출판이 되었을 때도 내용에 대한 터치는 거의 없이 오타 수정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페이지 디자인이 추가된 최종 출판본은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으로 만들어 졌었다.

잠시 파일들을 열어 보니 저 많은 글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 쳐 넣었을까 하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 당시의 난 참 무모 했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나더러 책을 쓰라고 하면 손사래 부터 쳐야 할 입장이지만 그래도 무모했지만 열정이 있었던 내 흔적을 들여다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만일 누군가 나더러 책을 한번 더 써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럴 기회가 주어 진다면 이번엔 수필집을 하나 내보고 싶다. 아직은 무리고....좀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남에게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을 만큼의 연륜을 쌓았을 때 그 이야기들을 담은 수필집은 한권 내보고 싶다.

2년만에 그리고 태어나서 세번째로 시도해본 로또가 36개 숫자중 단 하나만 맞춘 지난 주말의 멋적은 난처함을 제외하면 기분좋은 일들만 연이어 벌어지는 요즘이다.

2007년 1월 22일 월요일

토닥토닥 그리고 방긋.

며칠전 그렇게도 기대하던 이사를 했다.

오늘 내일 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건강 상태로 인해 2년전에 집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급히 결혼식만 올렸었다. 덕분에 결혼후 두달동안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전전한 것이 도합 세번이었다. 참 힘들었었다. 나 뿐만 아니라 황망히 결혼하여 매주 이사짐을 싸야 했던 내 아내도 무척이나 힘들었으리라. 집이 너무나 좁아 혼수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넣을 공간도 없어 혼수를 가져오지 못했기에 너무나 속상해 하셨던 장모님께도 죄송하기 이를데 없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 보내면서 해주고 싶은 것조차 해줄 수 없으셨던 그 마음이 오죽 하셨을까.

그리고 2년만에 그 단칸방을 벗어나 이사를 했다.

이사한 곳도 방이 여러개인 집은 물론 아니다. 내가 아직 학생이고 연구비를 받는다고는 해도 사립대 이공계 대학원의 등록금을 해결하고 나면 남는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기 때문에 주거형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대신에 복층 구조여서 아래층으로부터 침대를 분리할 수 있다.(넓은 평수가 아니라면 쓸데없이 방을 나누고, 거실을 나누고 해서 좁은 공간 두세개로 쓰는 것 보다 넓게 하나의 공간으로 쓰는게 훨씬 효율적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이사도 참 어렵게 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3만원짜리 용달차 하나 불러서 침대등의 큰 가구들만 옮기고 나머지 짐들은 전에 살던 곳의 주차장에 전부 내놓고 지키는 사람이 하나 서있는 와중에 내가 마티즈로 몇번에 걸쳐 옮겼다.(2년전 청주 어머니께서 억지로 떠넘기시다 시피 사주신 그 승용차가 없었다면 역시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점심과 저녁 식사만으로 하루종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준 내 후배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술 한잔 사겠다는 내 제의를 일 핑계로 거절하고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만일 그날 날씨가 좋지 않고 비라도 왔으면 정말 어쩔뻔 했는지 아찔했던 날이었다.(전날 밤 화정동엔 가볍게 빗방울이 흩뿌려 졌었다.)

짐을 안으로 옮겨두고, 박스들을 풀어놓고 보니 너무나 썰렁했다. 전에 있던 집에선 온 집안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했었는데 좀더 넓어진 평수에 침대와 책상을 복층으로 옮기고 나자 가구라고 할 것들이 서랍장 두개 밖에 없었다. 어찌나 황량하던지.

이번주에 청주에 내려가면 우리 결혼식때 액자사진 찍어 놓은 것 부터 가져와서 벽에다 걸 생각이다. 그리고 손님이 왔을 때나 우리가 식탁으로 쓸 수 있는 테이블도 하나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마련해야겠지. 따로 분리된 서재를 갖는게 소원 이었던 내게 복층에 마련한 책상과 책장은 더없이 훌륭한 서재 역할을 해준다. 이미 봤거나 자주 보지 않는 책들을 치운다면 책장을 더 마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들 만으로도 더이상 바랄게 없지만 아내는 살면서 아쉬웠던 것이 분명 있겠지.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그런 것들을 채워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며칠동안 하고 있다. 살면서 팔베게 자주 안해준다는 것 빼고는 투정이라곤 한 적이 없는 사람. 분명 그 속에는 내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을테지.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하지만 결코 조급해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우리가 서로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단시일에 이룰 순 없는 것들이니 차분한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나는대로 흐름을 거스르거나 앞서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 나갈 것이다.

서로가 퇴근 후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면 종종 나는 아내를 품에 안고 손바닥으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그러면 아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토닥토닥 그리고 방긋.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말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가장 짤막하면서 분명한 방법이다.

2007년 1월 13일 토요일

노란뱀을 찾아서

돌아오는 목요일에 이사를 가기 때문에 짐 정리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잘 쌓아뒀던 것들을 다시 박스에 넣고 테이핑로 밀봉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기도 하고 버려야 할 물건들이 생기기도 한다.

어제 잠깐 일하면서 얻은 수확은 CD 두장(이루마, 루시드 폴)과 내가 예전에 쓰다 만 소설 프린트 한 것, 그리고 시 한편.

이루마와 루시드 폴의 CD 는 지난 2년간 참 열심히도 찾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찾자 마자 곧바로 아이맥에다 리핑을 떠버렸다. 지금도 루시드 폴의 음악을 듣고 있는 중. 그리고 소설 프린트 한 것은 고3때 스프링 노트에 썼던 소설로 대학에 입학 했을 때 워드프로세서로 다시 타이핑 해서 절친한 벗에게 교정 및 평을 부탁하기 위해 건네 줬었던 것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친구가 우편으로 되돌려 준 것이었다. 우편으로 받았던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역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겠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좀더 생각해 봐야 할 듯.

마지막으로 시는 '노란뱀을 찾아서' 라는 시다. 나우누리 다복솔 시절의 유일한 흔적 이라고나 할까. 성장하면서 수없이 읽었던 '어린왕자' 를 이때 만큼은 너무나 벅찬 감동속에 또 한번을 읽었었고 그 감동을 이기지 못해 그 느낌을 시로 적어보려고 했던 자국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시인데 어제 집사람이 뒤적거리던 파일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왔다.

이 시도 프린트 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던 것은 기억하고 있는데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는 그동안 수차례의 이사를 하면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녀석인데 어제 찾았다. 그 반가움이란.

구글 도큐멘트에 타이핑 해서 넣어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잃어 버리지 않도록. 그런데...소설은 어쩌지? 재타이핑 하기엔 분량이 너무 많은데;;;;

2007년 1월 11일 목요일

꼼꼼함에 대한 아쉬움

나는 그다지 꼼꼼한 성격이 되질 못한다.

프로그램을 작성하다 보면 어느순간 '왜' 해결됐는지 모르지만 계속 골머리 썩던 버그가 수정되는 때가 있다. 이럴때 나는 '동작하면 OK' 라는 생각으로 휘파람을 불며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상황이 돌아왔을 때 똑같은 문제에서 똑같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해결했을 때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원인분석을 했으면 고생하지 않을것을.

지금도 마찬가지. 1년전에 해결했던 문제가 또다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나를 약올리고 있다. 이번에 해결하면...기필코 노트에 정리해 둘테다.

...한가지 문제에 대한 디버깅만 5일째다....ㅡㅜ

2007년 1월 5일 금요일

한젬마씨 대필 논란에 대한 두번째 정리

한젬마씨의 책들에 대해 성급하게 '대필' 로 몰아가는 여론 기류에 반발하여 '아직은 판단하기에 드러난 사실관계가 적으므로 판단을 유보하자' 라는 글을 올린 후에 논박도 많이 받았고 안형영 기자 본인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게시물을 쓴 시점이 사건의 처음 부분이었고 이후 여러가지 상황의 변화가 있었기에 첫번째 게시물만을 놓고 논박을 하기 어려워 다시 한차례 정리하고자 한다.

내 글에 대한 댓글에서도 안형영 기자 본인이 밝혔지만 샘터사와의 통화에서 흥분한 상태에서 내 글과 댓글을 통한 논쟁들을 보고 감정적으로 폭발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유명 블로그도 아닌 내 블로그를 사건에 대한 자신의 블로그에 '생각이 다른 사람' 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링크를 걸어 둔 것은 그 때문이 아닐런지. 안형영 기자의 블로그 내용을 보면 지금의 상태가 마치 자신이 대단히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처럼 적어 놨는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나 말고 나와 같은 주장(무턱대고 한쪽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지켜보자는)을 펴는 블로그를 본 적이 없으며 언론기사도 본 적도 없다.더 있다면 내 블로그 말고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들은 어떻게 주장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으니까. 아니면 안형형 기자 의 기사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글이나 기사라도 보고 싶다.

난 사건에 대한 처음 기사들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급히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사실관계들을 '주장' 이 아닌 '증명' 하지 않는다면 특종을 겨냥한 한탕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했다. 이 주장이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안형영 기자의 블로그에도 언급했듯이 '한탕을 노리는 기자로 보지 말아달라' 는 요구는 그 때문이 아닌지.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의 블로그에 실린 내용들은 내가 보였던 의문에 대한 감정표출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내 의견을 그토록 심각하게 받아들여 줬다면 나로써는 고마울 따름이지만 언론사 기자가 개인 블로그에 대해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후속 기사를 통해 입증하면 그만이다. 더욱이 초반의 기사들이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나 증거취득 과정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만일 자신의 기사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글을 봤고 이것에 화가 난다면 끝까지 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증명하면 그만이지 어떤 독자 혹은 개인이 논쟁중에 있는 자신의 기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여기에 대해 기자 스스로가 감정의 평정을 잃는다면 이후 기사 작성이 객관적이지 않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어떻게 아니라고 반박을 할 것인가.


-. 논란에 대한 첫번째 게시물
http://anecdotist.blogspot.com/2006/12/blog-post_23.html

-. 이번 사건에 관련한 안형영 기자 블로그
http://majorblog.hankooki.com/document/acoa45554

-. 샘터사의 입장
http://www.isamtoh.com/separat_volume/sub_board07_view.asp?seqid=45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서 성급하게 비난을 하기 보다는 사건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내 첫 포스트에 달린 몇몇 댓글들은 내게 한국일보 안형영 기자의 첫번째 기사 내용을 근거로 '비난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 는 주장을 하긴 했지만 판단을 위한 사실관계가 부족하기는 그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이므로 내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안형영 기자가 의혹을 제기한 첫번째 기사는 사회적으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많은 논란이 일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많은 논란이 일었다기 보다는 각종 언론과 블로그들은 한젬마와 샘터를 비난하는데 일치 단결해 있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첫번째 기사는 의혹 제기일 뿐이지 명확하게 사실관계라고 입증된 것들이 부족하다고 봤다. 초고라고 주장된 내용들이 공개된 후 샘터사의 대응도 공식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샘터사의 반박이나 한국일보의 기사나 모두 자기 목소리만 내고 있을 뿐 설득력 있는 사실관계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최근에 보도된 한국일보의 기사이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0219260884210.htm

실명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안형영 기자가 첫 기사부터 한젬마 라는 이름을 언급한 것은 그를 죄인으로 단정지었다는 의미가 되며 기자의 인터뷰에 실명으로 응한 것은 그 사람이 자기가 한 말에 대한 법적인 책임까지도 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 인터뷰를 한 세명의 말은 지금껏 드러난 주장 중 가장 사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국일보 안형영 기자의 주장은 사실인 것이 되며 샘터와 한젬마 측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된다. 난 이번 기사에 대해서는 상당한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아울러 앞선 기사에 대해 안형영 기자에게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내가 보도를 보면서 받은 느낌은 사건을 터트려 놓고 나서 후속 기사들을 이런저런 자료와 근거마련을 통해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자료 조사와 근거 마련은 '한젬마' 라는 실명까지 언급했던 첫 기사를 쓸 때 이미 끝났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첫 기사부터 이번 기사와 같이 기사 내용에 대한 근거를 명확하게 댔어야 했다. 기사를 썼는데 차근차근 조사해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결과를 떠나 기사를 쓸 때 사실인지 아닌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운좋게 사실로 드러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카더라 통신' 일 수밖 에 없다.

여기에 대한 샘터사의 주장은 한결같다.

샘터사의 공식 입장 표명을 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샘터사는 지근화씨와 한젬마씨는 공동 작업을 한 것이며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일보에서 공개한 초고를 초고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지근화 씨가 보내온 원고 또한 그대로 출판하기에 무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샘터사는 이부분에서 논리적인 오류를 범했다. 가장 최근의 주장에선 지근화씨가 작업한 원고에 한젬마씨가 창조성과 전문성을 더했다 는 식으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동안의 논리는 이렇지 않았다. 한젬마 씨의 작업에 지근화씨가 전문 글쟁이로써 덧손질을 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한마디로, '한젬마와 지근화 사이에 오고간 원고에 대해서는 초고 여부를 떠나 우리는 알지 못하며 지근화로부터 받은 최종 원고를 출판사 차원에서 퇴고하고 한젬마씨의 최종 손질을 받았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사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말장난의 미궁속으로 사건을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한젬마-지근화 양인 사이의 작업의 흐름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샘터사에게 요구된다고 본다.

지근화씨든, 한젬마씨든, 샘터사든.

출판된 책과의 대조를 위해 자신이 작업한 후 갖고 있는 최종 원고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책이 출판 됐으니까 원고의 원본 파일을 관련자 모두가 지운다는 것은 있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사건의 무게는 한국일보 안형영 기자의 주장쪽으로 실리고 있다. 따라서 나는 양측에 두가지를 바란다.

-. 안형영 기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만일 사건을 단순히 보도하는 것에 그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인터뷰 당사자들의 실명까지 공개한 것에서 짐작해볼때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샘터사와 한젬마씨에게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지, 이 기회에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서 부당한 그림자 작가라는 제도 자체의 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이후 기사를 작성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형영 기자의 목적이 제도적 문제점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젬마-샘터 양측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선 까지이기를 바란다. 외부에서 간섭하여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안형영 기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터사측이 끝내 공개사과를 거부한다면 난 안형영 기자가 그간의 샘터사의 대응을 빌미로 민사 혹은 형사고발까지 가서라도 이 사건의 끝을 봤으면 싶다.)

-. 샘터사의 대응은 무엇인가?
샘터사에서는 법적 조치 운운하며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을 홈페이지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안형영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샘터사는 한국일보의 기사에 대해 반박이나 해명자료를 보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남의 홈그라운드, 즉 언론 상에서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되어 그러는 것이라면 자신들의 주장대로 하루라도 빨리 자료를 정리하여 법정으로 가야 한다. 한젬마씨나 샘터사가 한국일보 안형영 기자와의 인터뷰나 기사작성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자칫 불리한 보도자료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라면 법정 말고는 그 해결책이 없다. 지금과 같은 행동을 고수 해서는 기사 작성을 통한 주장의 전파면에서 언론사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없다. 법정으로 가지 않고 성명과 입장 표명만을 반복한다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길게 끌수록 샘터사에는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단순한 주장' 이 아닌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 를 먼저 들고 나선 쪽은 한국일보다. 이제는 샘터사도 언론을 통해 이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지 않고는 못견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법정으로 가는 수 밖에.

어느 것이 되었든 불분명하고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주장과 글들을 통한 논박에서 벗어나 명확한 사실관계의 자료들을 통한 주장에 접어들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실이 어느쪽에 있는지를 떠나 그림이라는 문화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 것만은 분명한 한젬마씨의 활동이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져온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2007년 1월 2일 화요일

"마음 한켠에 널 담아두고 산다"

"마음 한켠에 널 담아두고 산다"


친한 벗의 신년 인사 메일의 중간쯤 적혀 있는 문장이다. 자주 연락하진 못하지만 늘 마음 한켠엔 날 담아두고 산다는 그 친구의 말은 남자에게 듣기엔 조금 쑥스러울 수도 있는 말이지만 반대로 남자에게 들었기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 지는 말이기도 하다.


현명한 아내와, 믿음을 줄 수 있는 지기들.

적어도 사람 사이에 있어서 만큼은 그다지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파돌리기 송

http://kr.img.dc.yahoo.com/b13/data/cast/dc_loituma.swf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되었는데...소개해 준 사람의 충고처럼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듣다 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남자의 밤-바-범- 하는 화음과 함께 아차차~ 하는 여자의 노래에 아스트랄한 세계로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이거 정말 끄기 어렵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