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간극 [間隙]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상실의 시대'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윤정아.

너와 우리 사이에 벌어진 이 거대한 간극 [間隙]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12년의 추억을 아무리 끌어올려 메워도 좁혀지지 않더구나. 앞으로 무심히 지내지 말고 서로서로 연락하고 살자는, 빈소 앞 침통한 표정의 동기들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말투로 이야기한 정현의 한마디가 이토록 가슴에 사무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결혼, 출산 등 좋은 소식 있을 때 마다 한번씩 모이면 될 줄만 알았지 누가 이런일로 동기들 얼굴을 마주할 줄 상상이나 했겠니.

10년전 어느 날, 작대기 하나짜리 계급장의 내게 동기들 소식과 연락처를 모두 정리해서 보냈던 편지가 내게 보낸 네 유품이 될 줄이야.

세상엔 올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단다. 굳이 배웅하러 오지 말라고 동기들의 발을 잡아 놓으려 네가 한 것이니? 그런다고 모이지 않을 녀석들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

동기들 누구나 인정했던 천사 윤정아. 이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인사 밖에 없구나. 잘가라 그리고 편히 쉬렴.

2007년 마지막 날
기영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끝을 가진 모든 것들


Hwajung_061029,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질녘, 연말, 책의 마지막 페이지, 영화의 엔딩 크레딧, 기차의 종착역 안내 방송, 토요일,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크리스마스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며칠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24일 저녁이 될 때까지 크리스마스라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 보면 정신없긴 없었나보다. 크리스마스를 스쳐 지나가 버렸으니 연말 연시 분위기나 내볼까..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는게 연말 연시 분위기를 내는걸까?

...

앨범을 뒤적거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 중 하나를 찾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사진. 좀 더 잘 찍고 싶어도 이젠 저 자리에 고가도로가 건설되어 버려서 저 모습을 찍을 수가 없다. 저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에 세상은 온통 황금빛이었고 아내와 초롱이는 내 주위를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이었구나 싶다.

이런저런 많은 일을 겪었던 2007년. 아직 며칠 남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해피 뉴 이어. 모두들.

2007년 12월 24일 월요일

답장

지금은 너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말고,
둘이 함께 서로 위로하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삶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가 있듯이
니가 경험한 이번의 아픔이 앞으로 남은 더 긴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추가적으로 나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실까라는 긍정적인 생각.

이 세가지를 꼭 가슴에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너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근 :-)

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퇴근길


퇴근길,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다.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낙서


기록,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벽에 남겨진 낙서에 좋지 않은 이야기란 없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 무슨 일에 대한 것이든 어떤 장소에 기록해 놓고 싶은 이야기들은 행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지 좋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벽에 남겨진 낙서는 늘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낙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보' 라는 단어에도 친근함과 애정 이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깨끗한 벽에 처음으로 남겨진 낙서는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 한다 하여도- 정말로 보기 흉하지만 이후 사람들에 의해 많은 이야기들이 덧대어진 낙서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행복한 이야기들도 많은 이야기가 모여야 아름다워 진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낙서가 모이면 그중 일부가 가슴아픈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 낙서는 보기 좋아진다.

산다는 것도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리 가슴 깊이 아픔을 가로새긴 일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그 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덧대어 지면 그것은 결국 슬픔이 아닌, 그저 하나의 보기좋은 낙서가 될 뿐이다. 그 사람을 표현하는 거대한 낙서 말이다.

지금은 벽 한귀퉁이에 말줄임표를 찍으며 힘들어 하는 사람일지라도 먼 훗날에는 그 말줄임표를 어디에 찍었었는지 찾지 못해 곤란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산다는 건 결국, 하루하루 내 이야기로 낙서하는 것일 테니까. :-)


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세상살이


거리,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다.

...

그저 한숨을 쉬는 수 밖에. 고작 한달 앞의 일이 이토록 뿌옇게 보일 수가 없다.

UPDATE 2007.12.18.
하긴, 사는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야간운전에서 1 km 앞을 내다보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다. 20 m 앞을 보면서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는 수 밖에. 중요한 건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것. 힘내자.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아내와 함께 출근 + Coffee & Bagle


아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제부로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 홍대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다. 덕분에 마을버스로 가능했던 출퇴근이 광역버스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려야 할 만큼 멀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 한가지는 아내와 같이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난 2호선을 타야 하니 홍대입구까지는 버스를 타면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그렇게 나오면서 던킨에 들려 커피와 플레인버터를 바른 베이글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출근길도 평소보다 훨씬 기분 좋았고. ^^

멀어진 회사 탓에 이사갈때까지 아내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아침 시간에만 평균적으로 30분이나(!) 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만세!

(^______________^);;

나눔 배너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Donors Camp 배너를 달기로 했다. 심플한 블로그가 좋아서 최대한 이것저것 빼려 노력하는 터라 배너를 다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오랜기간 망설인 끝에 다는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학 1학년 때 달동네 공부방 아이들에게 중고 컴퓨터를 수리해서 보급해주는 봉사 활동을 했었다. 컴퓨터와 모니터를 짊어지고 달동네를 걸어 올라가는 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었지만 공부방에 가서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아이들의 환호성을 듣는 기쁨에 입대를 위해 휴학하고 고향에 내려올 때까지 '배달' 이 있을때마다 참석했었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라 '배달' 이 자주 있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의 대부분은 피드리딩을 하겠지만 간혹 있을 방문자들에게라도 노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페이지 제일 상단에 달기로 했다. 이왕 달기로 한거, 페이지 제일 상단에 달기로 결정. 아쉬운 점은 사이드 메뉴용 배너밖에 없어서 상단에 달았더니 영 뻘쭘하다는 것. 도너스캠프측에 긴 배너 제작도 요청을 해야겠다.

전업 블로거도 아닌 이상 애드센스 등을 다는 것 보다 이쪽이 훨씬 의미있지 않을까?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모임 만들기

내가 "네 취미생활은 사람 만나기지?" 라며 종종 놀리곤 하는 사촌동생 우정이의 블로그에 올라온 모임결성에 대한 포스트를 읽다가 미소를 짓고 말았다. "또 하나 벌렸군." 하면서. :-)

최근 몇년간은 많이 자중하고 있긴 하지만(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7일. 그런데 최기영은 단 한명!) 나 역시 모임을 만들어서 한가지 주제를 향해 여럿이 뜻을모아 노력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 아무래도 집안 내력이긴 한 것 같다. 특이점이라면 우리대의 여러 사촌들 중 이런 성격은 나와 우정이 뿐이라는 것. (그렇게 본다면 집안 내력이 아니라 그저 개체의 특성인지도??)

본문보다 긴 덧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온라인 그룹은 메일을 이용한 '능동형' 그룹이다. 웹브라우져를 실행시켜서 반드시 '방문' 해야 하는 웹페이지 형태의 '수동형' 그룹은 일상에 쫓기다 보면 자칫 방문이 소홀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지나 누군가의 글을 방문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칫, 포스팅과 리플사이의 간격이 며칠씩 벌어질 수 있다. 의사소통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는 모임은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의견이 올라오는 간격은 멀어도 되나 의견에 대한 회신은 빨라야 한다. (경험상)

그래서 난 누군가가 의견을 내면 그 의견이 나머지 회원들에게 실시간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전달' 되는 메일링 리스트가 가장 효율적인 온라인 소통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뉴스그룹의 의견보관 기능과 메일링 리스트의 실시간성, RSS 기능에 웹페이지 형식의 기존 모임 형태까지 버무려 놓은 구글 그룹스 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굳이 구글 계정이 없어도 중요한 그룹 기능들을 이용해 활동하는 것에 아무런 지정이 없는 오픈그룹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Can't you hear me?




오늘 한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 내내 영화 바그다드 카페 OST 중 Calling you 가 귓가를 멤도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었다.

I’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m calling you.
I know you hear me.


너무나 가슴아픈, 하지만 너무나 와닿는 가사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으나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그것은 결코 행복이기 어렵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만으로 어찌 안되는 존재인가 보다.

댓글 설정의 자유

오픈아이디로 댓글 다는 것을 설정하다가 발견한 문제점.

http://www.blogger.com 으로 으로 접속해서 현재 템플릿의 의견 설정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익명 사용자를 포함한 모두 를 선택하면 댓글 다는 부분이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특별히 구글 계정이 없더라도 닉네임 을 이용해서 댓글을 쉽게 달 수 있다. 오픈아이디를 설정하기 위해 http://draft.blogger.com 으로 접속해서 의견 설정란을 보면,

와 같이 OpenID 설정 항목이 추가되어 있다. 그런데 OpenID 를 포함한 '등록된' 사용자 에게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허가하는게 문제다. 즉, 이렇게 설정을 한 후에 댓글을 달고자 하면,


와 같이 OpenID 혹은,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거쳐야만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버린다. 스팸 때문이라지만 기존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폐쇄적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인증받지 않은 유저의 댓글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한 지저깨비님의 글을 읽을때만 해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었는데 이런식이라면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아직 draft 상태의 기능이니 정식으로 런칭 될 때는 달라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년 12월 10일 월요일

오픈 아이디. 부디 성공하길.

오픈아이디로 댓글을 달 수 있게 블로거 기능이 업데이트 되었다는 지저깨비님의 포스팅을 읽고 신이나서 대시보드를 열었지만 내가 사용중인 템플릿은 구형이라 그런지 오픈아이디 댓글 기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 블로그 주소를 오픈아이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매력이기 때문에 곧 수많은 블로거들에게 오픈아이디가 퍼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제발 성공했으면.

그나저나 오픈아이디 지원 템플릿으로 또 교체해야 하나....

ps
오픈아이디를 지원하는 심플(!)한 템플릿 추천 받습니다. :-D

2007년 12월 8일 토요일

여 자 김 혜 수



모처럼 둘 모두 여유가 생긴 주말 오후, 내심 세븐 데이즈 를 보고 싶어서 찾아간 극장에서 아내가 보고 싶다고 지목한 11번째 엄마 로 급선회 했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현역 최고의 젊은 여배우로 생각하는 김혜수의 작품이라 나 역시 그다지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매 작품마다 이전 작품과 전혀 다른 연기변신을 해 온 김혜수 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에서 요구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 내는 모습이었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며 지루하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갈등도,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클라이막스도, 교훈과 감동을 같이 주기 위해 머리 쥐어짜 이야기를 구성하려 노력한 듯한 모습도 없다. 마치 8월의 크리스마스 처럼.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내가 받은 감동의 가장 큰 부분은 영화가 끝난 후에 있었다. 잔잔한 결말을 보고 자리를 정리하던 중 올라가는 cast 소개에서 김진성 감독이 준비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다름아닌, 배역 소개 부분에 이르러서 김혜수의 이름이 나올 때

여 자 김 혜 수

라고 나온 것이었다. 그랬다. 영화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인물은 단 한번도 이름이 나오질 않았었다. 그저 '그 년'으로 불리웠을 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채 '그 년'으로, '아줌마'로, 하지만 마지막에는 '엄마' 로 불리웠던 극중 인물에게 감독은 '여자' 라는 이름을 붙여준, 아니 돌려준 것이다.

여자, 그리고 엄마.

쉽게 표현하기 힘든, 하지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짙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 듯 하다.

2007년 12월 4일 화요일

새것 과 헌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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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있는 내 컴퓨터 duloc]

지금 내가 연구실에서 쓰고 있는 컴퓨터는 2000년 봄에 구입한 것으로 CPU 는 펜티엄3 를 장착하고 있다. 내가 PC 게임을 즐기는 편도 아니거니와 좋은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라 아직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냥 이렇게 학위취득할 때까지 쓰다 버려야 겠다고 마음편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리 문제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교수님께서 연구실원들 컴퓨터를 듀얼 모니터를 포함한 최신 컴퓨터로 전부 바꾸라고 하신 것.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 했지만 지름신의 내방을 받으신 교수님의 뜻을 바꿀수는 없었다. 졸지에 듀얼모니터에 듀얼코어 시스템을 쓰게 됐다.

새로운 전자제품이 생긴다는 것이 기분 나쁜건 아니지만 예상했던 연수보다 1년이상 앞당겨 처분해야 하는 기존 컴퓨터로 인해 고민이 생겨 버렸다.

이걸 어째야 하나.

굉장히 정이 든 녀석이라(duloc 이라고 이름까지 붙여놓은 녀석인데) 가능하면 좀 더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는데. :-(

UPDATE 2007.12.10.
사촌동생 정화가 일단 간단한 웹서핑 용도로 써보겠다고 했음. 컴퓨터 성능이 정화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그런데 언제 가져다 주지???

크리스마스 시즌?

D1000010.JPG

어제 아내와 밤 늦게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오면서, 올해는 유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몇군데 전기장식이 걸려 있을 뿐, 거리에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오지도 않고 꼭 붙어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보이지도 않는다. 아내는 경기 불황 때문이라고 했고 나는 어차피 그런 것들은 젋은 세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거 아니냐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유난히 조용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 듯 하다. 어차피 나야 연말이라고 더 분위기를 냈던 적도 없지만 남들이 분위기 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2007년 12월 1일 토요일

'암' 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

난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 결혼한지 한달만의 일이었으니 내 아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그저 침대에 누워 계시던 모습 말고는 없으리라. 우리 가족중 취향이나 성격이나 여러가지가 아내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던 사람이 아버지였던 터라 어머니께서도 이 둘의 만남이 길지 못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아쉬워 하고 계신다.

요즘은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은게 사실이고 정부 지원과 각종 보험으로 인해 예전처럼 암 치료의 높은 비용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세상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공포는 결코 작은게 아니다. 감정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암에 걸려 죽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온 우리의 기억 세포에서 암은 저승사자의 손짓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저께 장인어른의 검사 결과가 악성종양으로 나왔다. 하지만 암의 크기가 아직 작을 때 발견했고 발견한 그 자리에서 외과적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고 한다. 암병동에 존재하는 두가지 병실, 외과병동과 내과병동의 분위기(수술로 가볍게 치료가 가능한 사람들과 이미 외과적 치료 방법으로는 손 댈 방법이 없는 사람들)를 기억하는 나는 '수술'을 받으셨다는, 그것도 우연히 발견한 그 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할 정도의 종양이었다는 것에 무척 큰 안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내와 장모님으로써는 쉽게 안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상황이 나쁜게 아니거늘 그 공포감이 주는 무게에 아마 지금 많이 괴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전이 여부에 대한 검사가 아직 남아 있지만 난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검사는 어차피 모든 암 환자들이(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받아야 하는 의례적인 검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간병을 하셨던 어머니도 사실 '암' 이라는 진단이 확정되자 무너지셨었다. 겉으로는 의연하신 듯 행동했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정말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게 바로 그날 부터고 어머니께서 옆에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 지셨던 것도 바로 그때 부터였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 두 분 모두 짓눌리셨던 것이다. 나라고 크게 달랐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공포를 이기는 것이다. 어제까지 그래왔다고, 치료하기 어려웠다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자포자기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공포는 쉽게 전염되고 그 공포는 병을 악화시킨다. 이것은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아마, 암이라는 말에 하얗게 질려버린 나와 어머니의 얼굴빛은 아버지께 죽음 이후를 생각해보게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걱정이 많으신 장모님이 난 오히려 걱정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배우자의 공포에 질린 얼굴만큼 환자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위에도 암을 고친 사람들은 많다. 굳이 애써 예를 찾지 않더라도 어느 집안이든 암을 치료한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오늘 저녁때 아내와 강릉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는데 난 솔직히 별 것 아닌 일에 자식들이 너무 호들갑 떠는것 같기도 하다. 장인어른이 아니라 장모님이 걱정되서 가야 한다는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제쯤 인류가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0년? 20년? 그것보다 오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장모님의 걱정을 덜어 드릴 수 있을까. 난 위로하 것에는 무척 서툰 사람인데. :-(

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아침

웹브라우져를 켜면 rss 리더로 쓰고 있는 구글리더 홈페이지가 제일 먼저 뜬다. 관심있는 주제와 지인들의 블로그 업데이트, 심지어 뉴스까지도 RSS 로 구독해서 보는 관계로 내 모든 웹서핑의 90% 는 구글리더에서 이루어 진다.

정보의 홍수...그것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아침에 와서 접속한 구글리더에서는 지인들의 블로그 업데이트가 4건, 경제관련 뉴스가 256건, 전공분야 논문이 897편이라는 표시가 볼드체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울러 도착한 메일은 9통. 한숨. 분명 어제 퇴근하기 전에 모든 발표 논문과 뉴스, 메일등 전부 확인했는데.

일단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는 메일부터 확인하는데 내가 매달 일정액씩 후원하고 있는 사랑밭회에서 운영하는 사랑밭 새벽편지 가 한통 도착해 있었다. 솔직히 이 편지는 그다지 받아보고 싶지 않은 편지중 하나다. 열어보면 너무나 가슴아픈,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할 뿐 마음 따뜻해지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접하고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자책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 편지다.

나는 부자가 아니며 매달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라는 주장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으며 그들을 위한,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저, 멋쩍게 웃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며칠전 아내와 장을 보러 방문했던 마트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있었다. 세상은 또다시 크리스마스 시즌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고 길거리에선 그놈의 지긋지긋한 '서민' 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선 가정을 갖지 못하는 고아가 이다지도 많으며 소위 소외계층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받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바꿔보려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럴수록 여러가지가 참으로 가슴아픈, 그리고 재미없는 세상이다.

아침마다 마시던 모닝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날이다.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사이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철저한 훈련을 거친 외교와 협상 전문가들이 아닌 이상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행동은 그 속내를 거진 드러내기 마련이고 감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주변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눈치채곤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대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그것대로 아픔과 어려움이 될 수 있겠지만 속내를 아는 것은 그 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내가 그것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아는 것도, 또 전혀 그러지 않게 모른척 하는 것도(거의 불가능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생각했었다. 완벽한 감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속이려 드느니 차라리 아무리 그게 사소한 약속일 지라도 원칙을 지키는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깨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게 우리네 사람이고 보면 제아무리 굳건한 사람이라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럴경우 그 잘못을 지적해주고 바르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 크게 어긋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십대에서 이십대 중반까지의 믿음이었다.

....

그런데 사람 사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픈 진실을 외면하고자 그 진실을 지적하는 날 적으로 삼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게 뻔히 드러나는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리로 논리를 무기삼아 그들을 사냥하려 드는 내 공격적 토론 성향까지. 어정쩡한 자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내 직설적인 사실 지적과 진실에 대한 인정 요구는 그들에게 있어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으리라. 공포의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빠져나갈 곳을 차단한 채 숨쉴틈 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여 버렸으니까.

원리와 원칙 그리고 진실됨. 어쩌면 내가 물리학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곳에선 시스템적으로 거짓을 걸러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원리와 원칙 아래 진실을 검증받아 가며 경쟁하니 말이다.(뭐, 모두가 그런건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내 주위에 남은 사람들은 남에게 솔직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뿐이지만 그 숫자는 결코 많아질 수가 없었다. 친구의 수가 많은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라고는 하나 세상은 친구들과만 살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소수의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큼 다수와 원만함을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원리 원칙과 논리로 무장한 논객이 아니라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와 잘못을 웃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어째서 잘못을 용납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인정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이십대 초반에서 그걸 이해하기 시작한 삼십대 초반까지의 시기가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을 벗어나는 이제서야, 남의 잘못과 약점을 모른척 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정말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세상을 다시 배워 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 노력이 결실을 맺었으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소리


Light drops,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가 되면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는다. 조임쇠가 낡아서 소리를 내는 스팀, 거리를 채우는 크리스마스 캐롤, 아내와 마주앉아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의 그 소리들.

눈까지 내린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12월도 되지 않은 지금 거리의 소란스러움을 흡수해서 내 주위의 소리만 잘 들리게 만들어 주는 함박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전에 서울에 눈이 내렸다.

지난 몇년간 해가 바뀌도록 첫눈이 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실망, 혹은 안도하게 만들었던 그 첫눈이 11월이 끝나지도 않은 이번주 초에 제법 많이 이 도시에 내렸다. 정작 당일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쳤는데 오늘, 아직 그늘진 곳에 하얗게 남아 있던 그날의 흔적 위로 하루종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인식해 버렸다.

'아...며칠전에 눈이 왔었지.'

...라면서.

사람의 인식 체계란 참으로 간사해서 언제나 풍족할 때보다는 사라지거나, 아쉬워 질 때에야 대상에 관계없이 강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소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중간 삽입곡보다 엔딩곡이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고 운전중에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동차의 시동을 끄기 전에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같은 이유로 연말이 되면 난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된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 지금 이 순간 내리고 있는 첫번째 겨울비가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모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저녁이 될게 분명한 오늘은 퇴근길의 아내를 픽업해서 차분한 분위기와 좋은 선곡 덕에 기분좋게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둘 모두 좋아하는 카페로 향해야 겠다. 여름철의 장마와 달리 적당히 내리는 이 겨울의 빗소리만큼 대화를 나누기 좋은 소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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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도 벌써 중순.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벌써 끝이 되어간다.

2007년 11월 4일 일요일

이상한 출근길.

모처럼 움직이지 않는 주말이기도 하거니와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주말인 어제와 오늘 연달아 출근을 했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처가와 본가를 방문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놀러다니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온전히 집에서 뒹굴 수 있는 휴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다. 아내에게도 하루종일 집에서 강아지와 뒹굴며 쉴 수 있어서 좋고, 나 역시 밀린 일이나 밀릴 걸 대비해서 미리 해놓으면 좋을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으나 난 휴일 출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한 선배는 그런 날 보면서 일중독 가능성 수치 만땅! 이라면서 혀를 차기도 했었지만 휴일 출근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것과 일중독에 빠지는 것은 좀 다른 것 아닌가? 나도 되도않는 상사의 신경질이나 할일도 그다지 없는데 회사 분위기 유지 차원이라면서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말이다. (전에 그랬을 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청량고추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었다.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속병이 날때까지 그랬으니...미쳤었지.)

그런데 오늘따라 출근길이 유난히 길었다. 지루하고 멀게 느껴졌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책장에서 아내가 찾아준 "행복한 나의 도시" 라는 책이 재미있어서도 아닌 것 같다. 아, 재미있기는 했다. 지루한 걸 모르고 시간을 보냈으니. 하지만 지하철 의자에 앉아 정말 오랜 시간을 읽은 것 같은데 아직도 목적지는 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디선가 뒤틀려 버린 시간감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치 지하철이 느리게 움직여서 한 두시간쯤 지났는데 책에 빠져서 내가 그걸 인식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정말 그랬을 리는 만무하지만. 휴대폰 시계가 소목시계처럼 태엽을 감아 시계바늘을 나 몰래 뒤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행복한 나의 도시" 는 오래전에 아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며 내게 권해줬던 책인데 책장에 자리잡게 해놓고 잊고 살다가 사촌동생에게 추천을 받고 다시 읽어볼 생각을 했었던 책이다. 그런데 아내가 한번 권해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서점에 갔을 때 아내에게 그 책 이야기를 했다가 면박을 받았었다. 음...무심한 남편 같으니라구.

그런데 그러고도 또다시 잊고 있다가 어제 저녁 아내와 들린 삼청동에 있는 북카페 '내서재' 에서 책장에 꼽혀 있는 이 책을 보고 아내가 '재미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먼지 수북히 쌓여 있던 머리속 책장에서 끄집어 냈다. 맞아, 읽어보려고 했었지. 밤의 삼청동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난 낮에 가는게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린 어제 저녁이었다. 특히나 요즘같이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계절에는 더욱. 내서재에서 시간을 좀더 보내고 싶은 아내를 졸라 걷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은행나무 가로수와 돌담을 끼고 걷는 그 길에 고즈넉함은 없었다. 밤이니 노란 은행잎이고, 짙은 갈색의 낙엽들이고 간에 뭐가 보여야 운치를 느끼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따뜻한 녹차라떼를 한잔 더 시켜놓고 내서재에서 시간을 좀더 보낼 걸 그랬다. 다음에 언제 기회를 봐서 낮에(!) 아내와 함께 신발이나 악세사리등을 사러 한번 더 삼청동에 들려야 겠다.

어쨌든 그렇게 긴 출근길 동안 내 양 옆으로는 술에 떡이된 두명의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서로 일행은 아니었다. 지하철에 탑승한 역이 서로 달랐으니까. 다만 신기한건 구파발 같이 외진 곳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게 신기했다. 홍대나 압구정도 아니고...친구와 놀았다면 친구집에서 자고 일어나도 될텐데 집에가서 쉬려고 움직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자다 나왔다고 보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뭐, 덕분에 술 냄새는 노땡큐 할만큼 실컷 맡을 수 있었다. 당분간 술 마시고 싶어지진 않을 것 같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침에 면도하다 살짝 베어 상처가 난 턱의 쓰라림과, 좌우에서 풍겨오는 술냄새 그리고 책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버무려 아이팟에서 틀어놓은 이루마의 음악이 이어폰으로 귀를 괴롭히면서 출근한, 그러면서 묘하게도 시간이 엉켜버린 참으로 이상한 출근길 이었다.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남이섬 헛걸음


차 안에서,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남이섬 단풍숲을 찍고 싶어서 아내와 일부러 새벽같이 일어나 춘천 남이섬을 향해 지난 주일에 차를 달렸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을 시간대에 남이섬에 들어가 그곳 잔디밭에서 초롱이를 뛰놀게 해주고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까지 빌려서 가슴 설레여 하며 갔던 나들이었다.

결론은 대 실망.

서울 근교는 이미 붉게 물들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이제 겨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을 뿐 붉은색 기운은 전혀 없었다. 선착장에서 남이섬을 바라보고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근처를 배회하다 차를 돌렸다.

남이섬까지 가는 길에 차멀미를 참지 못하고 아내의 옷에다 전날 저녁때 새벽에 먹은 사료를 올려버렸던(남이섬 주차장에 도착하기 1분전에 올렸다. 매표소에서. ㅡㅜ ) 초롱이는 결국 극심한 차멀미로 돌아오는 길에는 뻗어 버렸고 아내가 배게 취급 해도 죽은듯이 가만 있었다. 불쌍하긴 했지만 즐거워 하는 아내를 보면 웃음이 나기도 했고....;;;

2주 정도 지나면 제대로 물들 것 같긴 한데, 그때는 제주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으니...결국 올해도 단풍구경은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채색


홍대입구,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가장 화려한 시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이라는 계절은, 그리고 겨울로 가는 계절에는 알록달록함 보다 무채색이 어울린다.

ps
날이 추워지니 얼큰하면서도 따뜻한 버섯 칼국수가 생각난다는 아내의 말에 퇴근 후 일산에서 홍대까지 일부러 찾아왔던 이날, 맛있는 버섯 칼국수(수제비에 더 가까웠지만)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아내는 새 신발을 얻었으며 난 휴대폰 카메라를 재 발견했다.

2007년 10월 21일 일요일

안면도 나들이

지난주 금요일 저녁 시간에 아내에게 메신져로 메세지가 왔다. 안면도에 놀러 가자는 거였다. 원래는 다음주로 예정되어 있었던 여행인데 시간이 괜찮을 것 같으니 그냥 오늘 가자는 거였다.

별다른 준비를 할 것도 없이 집에 들려서 갈아입을 옷 한벌씩과 카메라를 챙겨들고 아내 회사 앞으로 가 픽업, 그대로 안면도를 향해 서해고속도로를 달렸다. 10시 정도에 안면도에 도착해서 모텔을 하나 잡았다. 펜션 같은 예쁜 곳에 머무는 곳도 나쁘지는 않지만 예쁜집에서 하루밤 자보는 낭만을 즐기는 것 보다 저렴한 모텔에서 하루 지내고 아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한번 더 먹는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하루밤 머무는 돈이 두배 이상 차이가 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솔직히 난 다음날 아침 일찍 안면도로 출발하는게 어떨까 했지만 늦잠을 즐기는 아내에게 새벽 출발은 무리한 요구긴 했다. ^^

다음날 일어나서 아내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맛있게 하는 꽃지해수욕장 근처 통나무집 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맛있기는 변함 없었다. 그리고는 자연휴양림에서 시간을 보냈다. 3년전에 왔을때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던 건지, 이후에 추가로 공사한 건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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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으로 대하축제가 한창인 백사장항에 들려서 대하로 배를 채웠다. 자연산이 아닌 양식으로 달라는 우리 주문과 이것저것 많이 안시키고 대하만 먹고 일어나는게 기분 나빴었는지 종업원들이 대놓고 우리에게 짜증과 홀대를 해서 기분이 무척 상했었다. 3년전에 무척 좋은 서비스를 받아서 좋은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 다시 찾았던 식당이었는데 축제기간에 원래 이리도 야박한건지, 그동안 돈 좀 벌어서 식당 분위기가 바뀐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 식당은 가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안면도 호박고구마를 한박스 사서 청주에 들려 어머니께 드리고 올라왔다. 어머니께서 겨울마다 고구마를 사다 놓고 종종 구워 드시는 모습을 유심히 봐 둔 듯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사다 드리자고 하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정작 아들인 난 그런 곳까지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청주까지 돌아 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많이 피곤하진 않았다. (요즘은 아내가 운전을 곧잘 해서 피곤할 때 교대할 수 있다.)

번개불에 콩을 볶아 먹듯 다녀온 여행이긴 했지만 사실 여행은 이렇게 다녀야 한다. 이거저거 따지면 어디 쉽게 출발할 수 있던가. ^^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대전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관련 스케치

원래...남의 글이나 사진을 퍼오는 건 싫어하지만 이 기사와 사진들은 링크 걸어두고 두고두고 봐야겠다.

솔직히 어제 대전이 수원을 꺽고 6강 진출을 확정했던 그 순간이 우리나라가 월드컵 준결승에 올랐을 때보다 더 기뻤다. 월드컵때 응원하고 승리의 순간 패배의 순간에 감동을 느낀 사람이라면 K리그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하러 4년에 한번씩만 그런 감동을 느끼는가? 바로 옆에선 늘 그런 감동의 순간들이 펼쳐지고 있거늘. ^^

링크 : 경기 종료 후 스케치

그리고 경기 종료후 두번 놀랐다. 세상에 대전 선수들이 수원 서포터석 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주장인 최은성 선수가 다른 선수들을 이끌고 가는 것으로 보였는데 너무 놀라웠다. 다른 팀도 아닌 수원에게!

그런데 그 이후 더욱 놀랐던 것은, 2천명 정도 되는 수원 서포터즈들이 그런 대전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이 아닌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리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수원과 대전은 견원지간이다. 라이벌..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수원의 라이벌은 지금은 없어진 안양 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원은 유독 대전 징크스가 있었고 경기때마다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심지어 양팀 서포터즈들끼리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고 그로인해 경찰까지 출동한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양팀의 경기에는 매번 서포터즈 홈페이지에 총동원령이 내려졌었다. 나 역시 퍼플크루 정회원은 아니지만 수원과의 경기만큼은 지는 걸 싫어했다. 송종국, 김남일이 부상당해서 경기에 못나오기를 정말로 간절하게 바랬던 적도 많았으니까(솔직히 이날도 전반전에 송종국이 크레이지 모드 돌입하는 바람에 정말 가슴 졸였다. 정말 잘하더라. 쏭...ㅡㅡ;; )

그리고 경기 후 김호 감독님을 중심으로 양팀 서포터즈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는 경천동지할 기사를 접했다.

링크 : [취재diary] '견원지간' 김호표 소주 한잔에 화해

세상에나. 이것들이 단체로 머리에 뭘 맞았나...싶었다. 하지만 이건 진정으로 바람직한 변화다. 앙숙인 이상 사이가 좋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한다. 축구팀 서포터즈들은 서로를 미워해야 하고 상대팀의 패배를 진정으로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 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해서는 안된다.

김호 감독님의 힘인지....어쨌든 분명 이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대전이 울산을 꺽고 수원의 홈그라운드인 '빅버드'에서 수원과 다시 맞붙게 된다면 이들은 다시금 90분 내내 욕설과 고함과 함성을 질러대며 서로를 미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경기장 안으로 한정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분명 K리그 자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

안양이 없어진 지금, 대전과 수원이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를 두고 볼 일이다.

2007년 10월 14일 일요일

대전, 기적의 6강

아내와 대전 퍼플아레나를 찾아 대전과 수원의 2007 K리그 26라운드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지난 2년간 봤던 경기중 가장 손에 땀을 쥐었던 경기. 한일전이 이에 비할까.

결과는 1:0 대전 승리. 서울의 패배로 기적의 6강 진입.

조금전에 집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해서 이정도로 그만. 정말로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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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2일 금요일

대전 10주년 동영상



돈 많은 기업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구단.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다. 수원이나 서울같이 모기업의 막강한 재력으로 선수들을 사모을 수 없지만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경기 모습만으로도 이들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대전 시민도 아닌 날 골수 팬으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홈경기를 이틀 후면 볼 수 있다.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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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차전까지 D-2 일


10월 14일 오후 3시 수원전이 열리는 퍼플 아레나.

E 석으로 예매 완료했다. 아...심장이 뛴다.

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신한은행 & 매킨토시

신한은행 인터넷 뱅킹은 매킨토시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웹브라우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ezplusformac 이라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방식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계좌이체, 관리부터 펀드의 수익률 조회 추가 매수 등 일반적인 이용은 모두 가능하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미래에셋에 있는 모든 펀드를 환매해서 신한은행 쪽으로 옮기고 싶은 것을 보면 나도 반골 기질이 유난히 강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신한은행도 홈페이지 자체는 맥에서 이용이 불가능하며 어떤 금융 상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로그인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것 조차도 안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중요한 것은, ezplugformac 등과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웹표준 규약을 지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져에 관계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언제쯤 가능해 질런지.

굳이 책임을 물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사고방식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HSBC 도 한국 홈페이지는 윈도우가 아니면 이용 못하는 걸 보면 정부 방침에 문제가 있는게 확실하다.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빨리 인터넷이 보급됐다. 지나치게 빠른 경제성장이 문제를 야기하듯이 충분한 사회적 마인드 보급이 이루어 지기 전에 퍼져버린 초고속 인터넷은 '표준' 이 무시되는 기형적인 웹환경을 만들고 말았다.

정말 '은행은 검정색 양복을 입은 사람만 이용해야 한다' 는 법령이라도 나와야 사람들이 다수만을 고려하는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할 것 같다. :-(

2007년 10월 10일 수요일

2007 K리그, 드디어 마지막 26 라운드에 도달.

오늘 전국에서 일제히 열린 25라운드 후 중위권 상황.

5위 FC 서울
승점 : 37점 / 골득실 : 8
잔여일정 : 대구

6위 포항 스틸러스
승점 : 36점 / 골득실 : -5
잔여일정 : 인천

7위 대전 시티즌
승점 : 34점 / 골득실 : 6
잔여일정 : 수원


8위 전북 현대
승점 : 33점 / 골득실 : 3
잔여일정 : 광주

9위 인천 Utd
승점 : 33점 / 골득실 : -1
잔여일정 : 포항

1. 일단 서울은 이기거나 비기면 무조건 진출 져도 대전이 수원을 3점차 이상으로 이기지 않으면 포항이 이겨도 6위로 6강진출

2. 포항은 인천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무조건 진출 만약 비기고 대전이 승리하면 탈락. 만약 지면 무조건 탈락

3. 대전은 수원에게 무조건 이겨놔야 하고 포항이 비기거나 지면 올라감

4. 인천은 포항을 이기고 대전 전북이 다져야 올라감

5. 전북은 광주를 이기고 인천이 포항을 이겨줘야 하고 대전도 져야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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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이 찬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팀이 결정되는 마지막 26 라운드에서 대전에게 중요한 경기는 포항-인천 전과 대전-수원 전. 포항이 울산을 꺽을줄은 정말 몰랐는데 울산을 꺽는 바람에 일이 복잡하게 됐다. 포항-인천 전이 포항 홈에서 열리는 것도 불안. 서울과의 경기에서 진 인천과 울산을 꺽은 상승세의 포항이라...

어쨌든 14일 대전 퍼플아레나 에서 열리는 수원과의 마지막 경기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결정짓는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알레 대전~!

2007년 10월 9일 화요일

가을로 걷는 길

태풍이 올라온다며 여름의 끝자락이 아직도 길게 남았음을 호들갑 떨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도, 주말이 지나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을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대화를 멈추고 그저 듣는것에 만족하게 만드는 터질듯한 매미 소리가 여름을 알리는 신호라면, 그 여름의 끝을 알리면서 가을을 이끄는 신호는 과연 무엇일까.

장마가 아닌 우기라고 불릴 만큼 지독하게도 내리던 여름비가 그친곳에는 알록달록 물들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나뭇잎들이 수북히 쌓이고 있었다. 어떤이는 가을의 색을 붉은색이라 할 것이고, 다른이는 노란색이라 하겠지만 짙은 초록이 여름의 색이듯 가을의 일부 시기에만 접할 수 있는 붉은색과 노란색 보다는 한결같이 접할 수 있는 짙은 갈색이 분명 가을의 색이 아닐런지.

발 아래로 느껴지는 낙엽과 나무길의 감촉이 나도 모르게 카메라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만든 그곳 남이섬에는, 가을로 걷는 길이 있었다.

2007년 10월 7일 일요일

사진 업로드

주말에 아내가 졸업한 연구실 정기 모임이 강릉에서 있다고 해서 함께 강릉에 다녀왔다. 단 이번에는 경춘국도를 타고 남이섬에 들렸다가 가기로 해서 춘천을 거쳐서 강릉에 갔고 화정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여주에 들려서 프리미엄 아웃렛과 명성황후 생가를 둘러보고 왔다. 지금은 둘 다 파김치가 되어 있고(아내는 벌써 잠들어 버렸다.) 나는 현상해온 필름들을 업로드 하느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두달치 필름이라 그런지 70장이 넘는 사진들을 정리하느라 조금 귀찮을 지경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은 그 많은 사진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건지 궁금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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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은 제법 볼만 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일찍 배를 타고 다시 나오긴 했지만 여유만 있었으면 하루종일 놀 수도 있는 곳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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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에 잠시 섬에 있는 밤나무 아래를 뒤지고 다니면서 아내는 밤을 주웠다. 하나를 줍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하나 두개 줍기 시작하더니 결국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두배는 많이 주웠으니 말이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몇개 까먹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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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에는 다음에 단풍이 들 때쯤에 다시한번 새벽 첫배를 타고 들어가 봐야겠다. 사진을 찍을만한 곳들은 넘쳐나는 곳인데 반면에 사람이 없는 곳도 찾기 어려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여주 명성황후 생가는 마침 공사중이어서 기념관이나 문화 전시실 같은 곳들은 보지 못했고 생가만 둘러볼 수 있었다.(대신에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내 카메라 필름이 다 되서 여기서는 아내의 Kobica 35 BC-1을 빌려 찍었다. 참 다루기 어려운 카메라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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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업로드 한게 고작. 사진 태그 정리나 그룹분류 등은 천천히 해야겠다. 오늘 업로드한 사진은 여기를 클릭!

아, 요즘 열심히 자동차 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 아내가 어제와 오늘에 걸쳐 300km 가 넘는 거리를 처음으로 운전했다. 국도, 지방도, 고속도로, 시내, 아파트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환경을 다 경험한 의미있는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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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스누피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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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에 아내와 같이 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스누피 전시회' 에 갔었다. 스누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였기에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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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포토존과 함께 있는 체험 공간은 스누피 만화도 볼 수 있고 4컷만화를 직접 그릴 수도 있었으며 다양한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서 좋았지만 나머지 미술작품 전시회는 너무 아쉬웠다. 만원이나 하는 입장료가 아까울 정도로 볼 거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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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존을 제외한 나머지 미술 작품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 중 몇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

ps
사진찍으러 다니면서 번번히 느끼는 것인데, '사진촬영 금지' 라는 안내문이 분명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걸 무시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를 작품 옆에 세워놓고 안내원의 만류를 무시한채로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어째서 원칙과 약속들을 지키지 않는 것인지 정말 부끄러울 지경이다. 무단횡단 하면 위험하다고 아이를 야단쳐 놓고 며칠 후 아이의 손을 잡고는 빨리 뛰라고 짜증을 내면서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몰지각한 부모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엔 너무 많은 듯 싶다. :-(

바다가 무서운 초롱

지난 8월에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을 오늘서야 현상했다. 36방짜리 필름 한롤이 이렇게 많게 느껴졌던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 게시물에서도 언급했듯이 초롱이는 수영을 기가 막히게 하면서도 힘들어서인지 수영하는걸 싫어했다. 세번째 바다에 들어가자고 했을 때 울먹거리기까지. 이게 그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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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수영은 굉장히 열심히(초롱이 입장에선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이었으니 열심히 수영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겠지만;; ) 수영했고 또 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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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느낀건 아무래도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초롱이는 사냥개라고는 해도 지구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 뭐, 사냥개로 훈련시킬 것도 아니니 크게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웠었다. ^^

이날 깜짝 놀랐던 것은 '개도 강렬한 햇볕에 화상을 입는다' 는 것. 우리 부부와 같이 일광욕을 즐긴 초롱이는 콧잔등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벗겨졌었다. 결국 놀러갔던 두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가 모두 일광욕 후 화상을 입었던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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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4일 목요일

도시


City,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질녘 하늘을 찍으면서 알게된 것 중 가장 의외였던 사실은 하늘색이 다채롭게 나타나는 순간은 해가 지는 순간이 아니라 해가 지고나서 20~30분 정도 지난 다음이라는 사실이다. 해가 진 직후는 위 사진처럼 아직 하늘의 색온도가 높아 고운 빛을 잡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충분히 하늘 빛이 곱게 물들기 전에 이미 도시는 어둠으로 물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 시간대의 도시는 참으로 대조적인 빛을 띤다. 아직 밝은 하늘과, 어둡기 그지없는 도시로 나뉘어 지는. 그래서 노을과 도시를 동시에 찍으려면 다중노출 기법을 써야 하지만 내 pentax kx 는 다중노출 기능이 없다. :-(

사진기를 들고 건물 옥상에 서서 노을을 기다릴 때면 난 이렇게 어둠으로 물들어 가는 도시를 내려다 보는 것을 즐긴다. 언젠가 삼각대까지 갖추고 강변역 테크노마트 전망대로 가봐야 하는데. 언제가 될까. 생각해보면 아내와 연애할 때 가보곤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