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1일 일요일

무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든,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인 비교는 명백하게 의미가 없는 자신만의 삶의 무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라면 그 무게는 참으로 감당하기에 쉽지 않다.

2006년의 마지막 날이다.

한해를 가만히 뒤돌아 보면 조금은 상심이 된다. 이런저런 일들은 참 많이 겪고 또 벌였으면서 막상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더욱이 재작년에 날 괴롭히던 것들이 올 한해동안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내년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진다.

요즘은 밥을 먹는것도, 연구실에 출퇴근 하는 것도 싫다. 심지어 뒷골 한 쪽을 무엇인가가 꾹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대바늘이 천천히 가슴을 찔러 들어오고 있는 듯한 통증에 숨쉬는 것마저 싫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 괴롭히는 일들 중 내가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는 것을. 더군다가 가장 큰 괴로움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살면서 지속적으로 내 어깨를 짓누를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로 힘이 빠져 버린다.

새해를 맞이하는 날의 기분이 뭔가 벅차고 가슴에 희망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긴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참으로 우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별 수 있겠는가.

행복한 결혼생활은 다른 것들을 덮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하지만 역시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아무리 한쪽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다른 쪽의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는가 보다.

의사소통 부재

내가 주로 사용하는 클러스터는 우리 연구실과 다른 대학의 한 연구실이 공동출자하여 구입한 32노드 짜리 클러스터다. 그쪽 연구실의 출자가 더 많았기에 그 연구실의 소유로 되어 있고 사용만 공동으로 한다.

그런데 올 가을학기부터 그 연구실에 적을 두기로 한 외국 학생으로 인해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전에 정해놓은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사용으로 큐잉 시스템을 자꾸 엉키게 만들어 놓는 바람에 멀쩡히 놀고 있는 노드를 사용 못하게 만들어 놓기 일쑤다.

몇번이나 메일을 보냈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는 그 학생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도 답답하기 그지 없다. 연휴 내내 돌아갈 정도로 많은양의 계산을 사전에 의견조율도 없이 큐잉 시스템에다 다 밀어넣어 버리고 연락두절이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큐에서 대기중인 계산들은 짧게 잡아도 내일 저녁은 되어야 끝날 것 같다. 분명 전체 노드를 전유해야 할 계산은 사전에 서로 조율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 클러스터 관리를 내가 하고 있다면 관리자의 권한으로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제제를 가하겠지만 막상 그 연구실에서 관리 책임자라고 있는 학생은 리눅스의 리자도 잘 모르는 학생이고....그 성능좋은 녀석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달에 그냥 한두개 노드를 붙여서 작은 클러스터를 만들어 놓고 사용해야 겠다.

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신정 연휴

신정 연휴의 시작인 주말 아침 7시.

메일을 확인 하는데 어제밤 11시쯤 수신된 것으로 되어 있는 교수님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내용인 즉슨,


"....을 정리해서 1월 2일에 같이 논의하자."



...

결국 지금 위치는 연구실 내 책상. 음악이나 좀 크게 틀어야 겠다.

2006년 12월 25일 월요일

Irish & Celtic Music Podcast

Celtic music 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podcast 를 찾았다.

Irish & Celtic Music Podcast

찾은지 5분도 안되서 Lifetime membership 을 결재할 뻔 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을 iTunes 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단일 곡들을 따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Lifetime membership 은 매우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iTunes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이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링크 하나.

http://odeo.com/channel/6585/view


ps
요즘 들어서 ipod video 가 다시금 땡긴다. video podcast 로 영어공부 할 때 참 좋았었는데. 어디서 하나 안떨어 지나. :-(

2006년 12월 24일 일요일

입대 후 10년

어제 아내와 이야기 하다가 문득 알게 된 사실.

1996년 12월 23일 에 군대에 입대 했었으니 어제가 꼭 10년이 되는 날이라는 것.

머리 박박 밀고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던 그 날로부터 10년이라. 어떻게 지나온 10년인지가 아득할 지경이다.

송금 원인관계 조사 의무?

굉장히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ATM 이나 인터넷 뱅킹 혹은 휴대폰 뱅킹이 일반화 되면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하여 송금을 잘못하게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 역시도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을 할 때면 몇번씩이나 계좌번호와 수신자 이름을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잘못 송금한 돈에 대해서 은행이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기사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판결문이 올라와 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면 "계좌이체는 법률적으로 시행되고 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이다. 그러면서 "예금채권의 성립 여부가 송금을 하게 된 원인관계의 존부에 따라 좌우된다면 은행은 송금의뢰인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의 송금 원인관계가 존재하는지를 일일이 조사할 의무를 부담하게 돼 다수인 사이의 자금거래가 신속히 이뤄지는 송금거래의 '동적(動的) 안전'을 해칠 뿐만 아니라 예금채권 법률관계가 불안정해지고 거래실정에도 맞지 않게 된다" 라면서 이러한 법에 대한 정당성을 밝혔다.

무슨 고스톱 판도 아니고 한번 내놓은 패는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지금껏 내가 그런 금융 서비스를 받아왔다는 것인가.

기사를 한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은, 하필 잘못 송금된 계좌가 부도난 회사 계좌였고 그 돈을 채권자인 국민건강보험 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서 꿀꺽 하려고 했고 그걸 돌려달라고 하자 K은행(국민은행이겠지. 이것도 어처구니 없음. 왜 은행명은 밝히지 않는가?)이 짝짜꿍 해서 거부하여 벌어진 소송이라는 것이다.

지저분하다.

구입한 물건도 물건의 운송에 드는 비용만 지불하면 일정기간 안에는 환불이 가능한게 요즘 세상이며 또 그것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어째서 은행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예금 상품들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은행은 그 송금이 잘못된 것이든 잘된 것이든 무조건 수수료를 받는다. 만일 은행으로 하여금 그렇게 잘못된 것에 대해 되돌려야 하고 그래서 원인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을 수수료에 더해서 청구하면 그뿐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은행은 돈과 힘이 있고 일반 업체들은 돈과 힘이 없다는 것?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껌 몇통을 사더라도 현금 영수증을 발행하게 하면서 지하철 공사에서 수만원 어치 승차권을 구입해도 신용카드는 커녕 현금영수증 조차 이용할 수 없는 나라.

공정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잘못 흘러가는 한젬마 씨의 대필작가 논란

대필작가에 대한 논란이 채 식기도 전에 다시 한건의 대필작가 논란이 일어났다. 여기에 대한 기사를 읽던 중 다음의 블로그를 보게 됐다.

한젬마씨 왜 그랬습니까?/안희환

그러나 나는 안희환 씨의 비판에 대해 긍정할 수 없다. 긍정과 부정을 넘어 다른 칼럼등에서 이름을 접했던 안희환 씨마저 이와같은 시선을 갖고 있는데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정지영 아나운서의 대리번역 사건은 정지영씨와 출판사가 애초에 대리번역을 시켜놓고 인기인의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것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젬마 씨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다시금 수백 페이지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문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더욱 수가 적다. 그렇기 때문에 도입되는 것이 구성작가 라는 제도이다.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책의 뼈대와 내용을 초고 형식으로 잡아서 넘겨주면 구성작가가 그것을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맛깔스럽게 문장을 다듬고 살을 붙이는 것이 어느 면으로 보나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걸 금지한다면 독자들은 읽기에 거북한 문장으로 구성된 서적이나 전문지식이 결여된 말끔한 문장의 책을 접하는 수 밖에 없다.

전문가와 구성작가의 결합이 특정 분야의 책을 내는데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면 이는 분명히 권장 받을만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성작가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한젬마씨 논란에서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림자 작가` 양지로 끌어낼 때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다음의 문단이다.

...샘터사 측은 "편집자가 저자와 함께 자료조사를 하고, 교정.교열.윤문을 하거나 필요하다면 구성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 역할을 프리랜서 구성작가에게도 맡기고 판권에 명기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샘터사에서 나온 책의 판권 면에는 '구성 지OO'라는 항목이 있다. 샘터사 측은 "이 책의 구성작가 역할을 맡았던 지모씨에게 한씨에게 지급된 인세 10%와는 별도로 2%의 인세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정지영씨의 경우엔 본인은 책에 손을 대지도 않았을 뿐더러 대필작가의 이름이 아예 묻혀 있었다. 그러나 샘터사에선 한젬마 씨의 문장 구성력을 뒷받침 하기 위해 프리랜서 구성작가를 고용 했으며 이 사람에게 댓가를 지불 했고 책에도 그 부분을 분명하게 명시 해놨다. 그런 부분에 동의했기 때문에 프리랜서 작가인 지모씨(이부분도 답답. 어째서 그 프리랜서 작가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가?)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야 "내가 더 많은 부분을 썼으니 대필이 분명하다" 는 주장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본인도 인정 했듯이 한젬마 씨는 분명 초고를 작성해서 지모씨에게 넘겨 주었다.

전문 작가들은 인정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나 수필등이 아닌 특정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말끔하면서 읽기 좋은 '문장'인가, 아니면 그 책에 담겨있는 '내용' 인가? 더 말할 것도 없이 '내용' 이다. 문장력이 부족한 전문가들이 내용의 뼈대를 구성해 주면 그저 문장을 다듬고 살을 덧붙이는 것이 구성작가들의 일이다. 거칠게 말해서, 지모씨가 없었어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할 뿐 한젬마 씨의 책은 출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젬마씨의 초고가 없었다면 지모씨 혼자의 힘으로는 출판이 불가능 하다. 지모씨는 그저 '전문 글쟁이' 일 뿐이지 그림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대필작가가 쓰고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그림자 작가" 들의 대필과 정확하게 책에서 존재 여부를 밝히고 대가를 지불한 구성작가의 집필 참여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법원에서 판결이 나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공정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어렵다면 최소한 미디어들과 그에 준하는 칼럼가들이라도 그 논조에서 공정함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 미디어들은 일제히 '대필작가' 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달았으며 안희환씨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을 정지영씨의 사건과 동일한 문화적 도둑질로 몰아가고 있다. 어느쪽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기사들도 모두 논조는 부정적이다. 정당한 계약에 의해 명확하게 구성작가의 존재를 밝힌 이런 책조차 '그림자 대필' 의 문제점 부각에 이용한다면, 어떻게 진짜로 문제시 해야 하는 '그림자 대필' 에 대한 공정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부당함을 호소하더라도 그 호소에 힘을 싣기 위해 끌어들인 증거가 어처구니 없게도 정당한 것이라면 그 호소는 그 한가지로 인해 정당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만일 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샘터와 한젬마 씨의 손을 들어 준다면 이 사건을 디딤돌 삼아 끓어 올랐던 대필작가 논란은 일제히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디딤돌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인가.

미디어들과,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 블로그들의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기대한다.

-. 추가(2007.01.05.)
본문에 대한 안형영 기자의 백링크를 추가합니다.
http://majorblog.hankooki.com/document/acoa45554

본 게시물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 정리
http://anecdotist.blogspot.com/2007/01/blog-post_05.html

2006년 12월 22일 금요일

스키 생김

뜻하지 않게 스키가 하나 생겼다.

그런데 말 그대로 '스키' 만 생겼음. 폴도 없고 부츠도 없다. 이번주에 지나가는 길에 용평에 들려서 한타임 타더라도 부츠와 폴이 없으니 쓰긴 좀 어려울 것 같고...다음에 갈때나 생각해 봐야지. 그런데 이사하고 나면 스키장 다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길런지. 대출 받은거 이자 갚기 바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짐만 차지할 것 같은데.....이거 완전히 계륵이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Blogger beta?

오늘 내 블로거의 대쉬보드에 로그인 하려는데 페이지가 바뀌어 있었다.

그러면서 상단 메세지에 "이제 베타를 벗어났다" 는 문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베타 블로거로 전환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는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해 봤다. 전에는 구글로 로그인 하는 것과 blogger 계정으로 로그인 하는 것이 차이가 있었는데 오늘 로그인을 해보니 두 계정이 통합되어 있었다.

문제는!

내 블로그 설정 화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레이아웃을 설정할 수 있는 설정화면도 나타나질 않고 아카이빙된 것을 리스트로 보여주는 기능도 구현 불가능 했다. 레이블 설정은 당연히 불가.

그저 속도만 빨라진 것인가;;;

내가 베타 블로거로 전환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카이빙된 것들을 클릭을 통해 리스트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과 레이블 설정의 두가지였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지금 안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안되는 건지...아니면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건지. 화면 어디에도 변환 관련된 버튼이나 링크는 보이질 않는다.

낙심중........

추가.
다시 확인해보니 구글계정으로 로그인 하면 분명히 다른 형태의 대쉬보드와 설정이 가능했다. 아직 계정들 통합까지 이루어 진 건 아닌듯 싶다. 전환이 되겠지? 안되면 매우 서운해 할테다. ㅡㅡ;;

2006년 12월 19일 화요일

YouTube 동영상 등록



일전에 만들었던 동영상을 유투브에 등록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편했다. 앞으로 만드는 것들 있으면 이용해야지. :-)

Old Game

연구실 창고(?) 정리하다가 내 오래전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책상 서랍을 찾았다.

여러가지 물건들이 나왔다. 그중엔 하드 디스크도 두개가 있었고 잘 포장된 시거도 하나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주제에 시거는 왜 가지고 있는 건지. 누구한테 받았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하드 디스크 하나는 40G, 하나는 20G 인데 40G 짜리는 성능에 문제가 없는 녀석일테지만 Playstation2 에 리눅스 설치해서 사용할 때 썼던 녀석으로 희한한 플레임이 겉에 고정되어 있어서 사용하려면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20G 짜리는 기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소음이 너무 커서 쓰지 못했던 것일테고.

하지만 서랍에서 나온 것중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게임CD 였다. 출토된 녀석들의 목록은,

Rainbow Six - Takedown
Dungeon Siege
Warcraft3
Forgatten Realms - NeverWinter Nights

takedown 의 경우 한창 rainbow six 시리즈에 빠져 있었을 때 샀던 게임이었고 dungeon siege 는 드물게 엔딩까지 도달했던 게임이다. warcraft3 는 배틀넷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 모드로 엔딩에 도달했었고 시나리오 자체를 무척이나 즐겼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있는 Neverwinter Nights 의 경우엔 리눅스에서 된다는 말을 듣고 사서 영문판으로 잠깐 즐겼었다. 아마 게임 구입 시기가 대학원 입학 후라서 그렇게 오랜시간을 투자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거나 다시 설치해서 주말 같은때에 좀 즐겨 볼까..싶기도 하지만 아마 여유가 쉽게 나진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뜻밖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 탓에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

2006년 12월 18일 월요일

겨울


D1000010.jpg,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2006년 12월 17일.

화정에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렸다. 화정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 내린 눈이었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내가 사는 곳에 내렸다는 것만이 의미를 갖는 것을.

결국 앞으로 2년을 더 화정에 살기로 했다. 참 좋은 동네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좀더 오래 살고 싶지만 내가 학위를 받고 나면 아마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겠지.

같은 화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화정2동에서 화정1동으로 다음달에 이사를 간다. 오늘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왔다. 아직은 한달여가 남은 기간, 이사를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rop & Flip


Canvas,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뒤집어서 바라보기.

Flickr 용량 증가됨

사진 블로그로 사용중인 http://www.flickr.com 의 한달 업로드 용량이 기존의 20 MB 에서 100 MB 로 다섯배 증가됐다.

그동안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용량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100 MB 의 용량이면 내가 한달동안 찍는 필름을 전부 다 스캔해서 올린다고 해도 다 사용하지 못할만큼 많은 용량이다. 기본 사진을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는 기능만 생긴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을텐데.

어쨌든 기분좋은 업그레이드임에 분명하다. ^^

2006년 12월 14일 목요일

남성의 인식 변화 : 연인에서 엄마로.

어제 우연히 한 지인으로부터

"남자들은 결혼 전에는 여자가 자신의 연인으로써 행동해 주길 바라지만, 결혼 후에는 여자가 자신의 엄마로써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라는 말을 들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도 그랬었지만 결혼 전에는 자기 여자친구가 일반적인 연인처럼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예쁘게 꾸미고 애교도 부리며 내 보호본능을 만족시켜 줄 만큼 내게 의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이전의 그런 바램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 여자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당연히 청소는 물론 집안 살림을 도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은 방만하게 구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와 사랑과 용서로 한없이 받아줄 것도 기대한다. 엄마에게 굴듯 조금은 떼쓰기도 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모두 그 여자가 엄마처럼 받아주기를 바란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많은 남자들이 이 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결혼이라는 기준점을 놓고 연인과 엄마로 나뉘는 남자들의 인식변화.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여자를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동일한 태도로 대한다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 여자가 직접 그렇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노력해 봐야겠다. 내가 내 아내를, 연애할때와 똑같이 내 연인으로써 대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 아내가 남에게 자신의 남편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똑같이 자신을 대해준다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아내는 내 아이의 엄마이지, 내 엄마는 될 수도 없으며 또 되어서도 안되는 존재이다.

2006년 12월 13일 수요일

아비투스(habitus)

아비투스(habitus)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들어낸 신조어로, 개인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획득한 ‘지속적인 성향체계 를 의미한다. 개인의 취미나 습관, 버릇 등과는 다르게 쓰여야 하는 말이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단어라고 해야 할까.

나라는 사람을 남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같은 연주곡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고 성공서적 같이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지침을 명시하는 책 보다는 다 읽고 난 후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소설이나 수필등을 더 좋아한다.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선호하며 의외성과 어처구니 없음으로 웃기는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유머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사소한 것을 크게 부풀리는 속좁은 이들을 경멸하지만 적극적으로 일에 대처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대한다.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는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나를 포함해 전체 인원이 두명을 넘어서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여행을 다니는 편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볼 때 꼭 누군가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으며 보고 싶은 영화는 혼자가서 맘편히 보고 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밥먹을 때 소리내는 사람을 싫어하고 젓가락질을 정확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쌀이 찌푸려진다. 내가 남에게 잘보이려 노력하지도 않지만 나에게 잘보이려고 지나치게 아부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혐오한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아 자신도 모르게 앞 뒤 말이 모순이 되어 버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공격해 공황상태로 빠지게 만들고자 하는 공격성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떳떳함과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곁에 두고 싶어한다.

어지간한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며 문제시 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어서면 경고없이 화를 내며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흔히 섹시함으로 통용되는 성적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여자는 천해 보여서 싫어하고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하지만 내가 가진 아비투스와 유사한 아비투스를 가진 여자를 좋아한다.

...

단순히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나라는 사람을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저러한 모든 내 모습들은 내가 자란 가정과 이후 경험한 사회화 과정등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수많은 내 모습을 한단어로 압축하면 '아비투스' 라고 부른다. 역으로 내가 가진 아비투스를 알면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유추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아비투스를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은 일일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내 기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며 나에게서 대단한 호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인의 미니홈피에서 '아비투스를 정확히 감지하는 사람들' 에 대해 언급한 문구를 읽고 한참을 생각해 봤다. 나와 식사를 하거나 잠시 대화를 나눠 보더라도 내 아비투스의 상당한 부분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내 호감을 사기 위해 자신의 아비투스를 감추고 행동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지해야 하는 것일까. 4,5년전 자신의 본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내 아비투스를 감지하여 모든 행동을 거기에 맞췄던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경험을 돌이켜 보자면 이는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내가 호감을 얻고 싶은 상대에게는 마찬가지로 행동하고자 애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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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itus 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간단히 습관 이라고 나와 있었다. 어처구니 없음. 왜 영한사전은 모든 것을 '단어'로 번역하려 하는 것인지. :-(

2006년 12월 7일 목요일

인사동

지난 일요일, 여름 휴가를 받지 못했던 대신에 겨울 휴가를 받은 아내와 정말로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갔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데이트를 했던 곳이 바로 인사동 이었으니 나름대로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찍은 필름을 오늘서야 현상하고 스캔을 했다.)

인사동

밤의 인사동은 낮의 인사동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낮의 인사동이 활기참과 북적거림이라면 밤의 인사동은 그 북적거림은 여전하되 사람이 만들어 내는 북적거림을 압도하는 인사동 특유의 분위기가 거리를 잠식한다.

인사동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인사동을 좋아한다. 옷과 숄을 하나씩 사고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왜 평소에는 그렇게 여기에 나오는 것이 어려운지.

인사동 쌈지길

이날 쌈지길을 처음 가봤다. 말로만 듣던 쌈지길. 내부를 뒤덮은 우산들이 눈길을 끌었다. 건물의 각 층을 계단이 아닌 나선형 복도를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과 그 복도를 끼고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배치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인사동에 오면서 거리에서 보는 것이 아닌 건물 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무척 아쉬웠었는데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순수하게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밤에 들어갔기 때문에 노출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 그래도 이날 얻은 소득이라면 1/30 에서 흔들림 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 조리개를 좀더 조일 수 있었다면 좀더 다양한 컷을 담아볼 수 있었을 텐데 최대개방에 가깝게 조리개를 열지 않으면 1/30 아래로 셔터속도가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찍은 많은 사진들이 노출 부족으로 인해 이상하게 나오거나 무리하게 노출을 확보하기 위해 구도를 잡아서 이상하게 나와서 무척이나 속상했다.

쌈지길에서 나와 우정이와 정화를 만나서 함께 귀천을 들렸다. 귀천에 처음 와본다는 두 동생들에게 천상병 시인과 귀천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 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두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필름이 다 되서 이때의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필름을 넣어서라도 새로 확충한 인사동의 두번째 귀천 매장과 목순옥 여사님의 사진은 찍어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동 쌈지길 지하

마지막으로 유용한 정보. 쌈지길 지하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 식당(이름은 생각 안남)의 순두부와 청국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다음에 인사동에 가면 꼭 식사시간을 맞춰서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ps
지금은 퇴근후 족욕을 하면서 노트북으로 포스팅을 하고 있다. 족욕기와 노트북.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는 두 사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연애시대 13화

뜻밖에 보게 된 연애시대 13화.

또다시 가슴 한켠을 움켜쥐고 숨쉬기 고통스러워 하고 말았다.

아 젠장. 고작 드라마일 뿐인데.

오랜만에 영화를 보다

어제 오후에 종로에 렌즈 수리를 받으러 나간김에 아내와 영화를 봤다.

영화 제목은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인 김지수와 한석규 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정말 놀랍게도) 기대한 것 이상 만족을 하고 나왔다. 기대하고 본 영화에서 만족감을 얻은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무표정한 상태에서 호흡과 눈망울로 감정 표현을 하는 김지수의 감정 터치법을 '여자 정혜' 이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 격한 감정의 흐름이 아닌, 너무나도 잔잔한 목소리로 영화의 크라이막스를 이끌고 또 소화해 내는 한석규의 연기를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강요하지 않는 결말.
교훈을 주려 애쓰지 않는 이야기.

그저 '보여주기' 만 할 뿐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영화에 대한 내 편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뭐 어때? 봐서 좋으면 그걸로 된거지. :-)

2006년 12월 2일 토요일

12월의 첫 사진 업로드


000019.JPG,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어제 iPhoto 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눈에 확 들어온 사진.

10월말에 청주에 내려갔을 때 찍은 사진들 중 하나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사진인데 어제는 내 눈을 사로잡아서 놓아주질 않았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아내와, 뒤로 펼쳐진 베란다의 밝은 창.

사진을 보면서 참 따뜻하단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사진.

이미 두달전의 사진이지만 갈수록 추워지는 12월 첫번째 flickr 업로드로 주저없이 이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따뜻함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내가 추구하는 사진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진을 막 찍기 시작했던 이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진이 지금은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