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1일 일요일

무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든,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인 비교는 명백하게 의미가 없는 자신만의 삶의 무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라면 그 무게는 참으로 감당하기에 쉽지 않다.

2006년의 마지막 날이다.

한해를 가만히 뒤돌아 보면 조금은 상심이 된다. 이런저런 일들은 참 많이 겪고 또 벌였으면서 막상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더욱이 재작년에 날 괴롭히던 것들이 올 한해동안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내년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진다.

요즘은 밥을 먹는것도, 연구실에 출퇴근 하는 것도 싫다. 심지어 뒷골 한 쪽을 무엇인가가 꾹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대바늘이 천천히 가슴을 찔러 들어오고 있는 듯한 통증에 숨쉬는 것마저 싫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 괴롭히는 일들 중 내가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는 것을. 더군다가 가장 큰 괴로움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살면서 지속적으로 내 어깨를 짓누를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로 힘이 빠져 버린다.

새해를 맞이하는 날의 기분이 뭔가 벅차고 가슴에 희망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긴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참으로 우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별 수 있겠는가.

행복한 결혼생활은 다른 것들을 덮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하지만 역시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아무리 한쪽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다른 쪽의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는가 보다.

의사소통 부재

내가 주로 사용하는 클러스터는 우리 연구실과 다른 대학의 한 연구실이 공동출자하여 구입한 32노드 짜리 클러스터다. 그쪽 연구실의 출자가 더 많았기에 그 연구실의 소유로 되어 있고 사용만 공동으로 한다.

그런데 올 가을학기부터 그 연구실에 적을 두기로 한 외국 학생으로 인해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전에 정해놓은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사용으로 큐잉 시스템을 자꾸 엉키게 만들어 놓는 바람에 멀쩡히 놀고 있는 노드를 사용 못하게 만들어 놓기 일쑤다.

몇번이나 메일을 보냈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는 그 학생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도 답답하기 그지 없다. 연휴 내내 돌아갈 정도로 많은양의 계산을 사전에 의견조율도 없이 큐잉 시스템에다 다 밀어넣어 버리고 연락두절이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큐에서 대기중인 계산들은 짧게 잡아도 내일 저녁은 되어야 끝날 것 같다. 분명 전체 노드를 전유해야 할 계산은 사전에 서로 조율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 클러스터 관리를 내가 하고 있다면 관리자의 권한으로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제제를 가하겠지만 막상 그 연구실에서 관리 책임자라고 있는 학생은 리눅스의 리자도 잘 모르는 학생이고....그 성능좋은 녀석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달에 그냥 한두개 노드를 붙여서 작은 클러스터를 만들어 놓고 사용해야 겠다.

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신정 연휴

신정 연휴의 시작인 주말 아침 7시.

메일을 확인 하는데 어제밤 11시쯤 수신된 것으로 되어 있는 교수님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내용인 즉슨,


"....을 정리해서 1월 2일에 같이 논의하자."



...

결국 지금 위치는 연구실 내 책상. 음악이나 좀 크게 틀어야 겠다.

2006년 12월 25일 월요일

Irish & Celtic Music Podcast

Celtic music 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podcast 를 찾았다.

Irish & Celtic Music Podcast

찾은지 5분도 안되서 Lifetime membership 을 결재할 뻔 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을 iTunes 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단일 곡들을 따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Lifetime membership 은 매우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iTunes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이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링크 하나.

http://odeo.com/channel/6585/view


ps
요즘 들어서 ipod video 가 다시금 땡긴다. video podcast 로 영어공부 할 때 참 좋았었는데. 어디서 하나 안떨어 지나. :-(

2006년 12월 24일 일요일

입대 후 10년

어제 아내와 이야기 하다가 문득 알게 된 사실.

1996년 12월 23일 에 군대에 입대 했었으니 어제가 꼭 10년이 되는 날이라는 것.

머리 박박 밀고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던 그 날로부터 10년이라. 어떻게 지나온 10년인지가 아득할 지경이다.

송금 원인관계 조사 의무?

굉장히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ATM 이나 인터넷 뱅킹 혹은 휴대폰 뱅킹이 일반화 되면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하여 송금을 잘못하게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 역시도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을 할 때면 몇번씩이나 계좌번호와 수신자 이름을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잘못 송금한 돈에 대해서 은행이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기사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판결문이 올라와 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면 "계좌이체는 법률적으로 시행되고 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이다. 그러면서 "예금채권의 성립 여부가 송금을 하게 된 원인관계의 존부에 따라 좌우된다면 은행은 송금의뢰인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의 송금 원인관계가 존재하는지를 일일이 조사할 의무를 부담하게 돼 다수인 사이의 자금거래가 신속히 이뤄지는 송금거래의 '동적(動的) 안전'을 해칠 뿐만 아니라 예금채권 법률관계가 불안정해지고 거래실정에도 맞지 않게 된다" 라면서 이러한 법에 대한 정당성을 밝혔다.

무슨 고스톱 판도 아니고 한번 내놓은 패는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지금껏 내가 그런 금융 서비스를 받아왔다는 것인가.

기사를 한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은, 하필 잘못 송금된 계좌가 부도난 회사 계좌였고 그 돈을 채권자인 국민건강보험 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서 꿀꺽 하려고 했고 그걸 돌려달라고 하자 K은행(국민은행이겠지. 이것도 어처구니 없음. 왜 은행명은 밝히지 않는가?)이 짝짜꿍 해서 거부하여 벌어진 소송이라는 것이다.

지저분하다.

구입한 물건도 물건의 운송에 드는 비용만 지불하면 일정기간 안에는 환불이 가능한게 요즘 세상이며 또 그것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어째서 은행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예금 상품들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은행은 그 송금이 잘못된 것이든 잘된 것이든 무조건 수수료를 받는다. 만일 은행으로 하여금 그렇게 잘못된 것에 대해 되돌려야 하고 그래서 원인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을 수수료에 더해서 청구하면 그뿐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은행은 돈과 힘이 있고 일반 업체들은 돈과 힘이 없다는 것?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껌 몇통을 사더라도 현금 영수증을 발행하게 하면서 지하철 공사에서 수만원 어치 승차권을 구입해도 신용카드는 커녕 현금영수증 조차 이용할 수 없는 나라.

공정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잘못 흘러가는 한젬마 씨의 대필작가 논란

대필작가에 대한 논란이 채 식기도 전에 다시 한건의 대필작가 논란이 일어났다. 여기에 대한 기사를 읽던 중 다음의 블로그를 보게 됐다.

한젬마씨 왜 그랬습니까?/안희환

그러나 나는 안희환 씨의 비판에 대해 긍정할 수 없다. 긍정과 부정을 넘어 다른 칼럼등에서 이름을 접했던 안희환 씨마저 이와같은 시선을 갖고 있는데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정지영 아나운서의 대리번역 사건은 정지영씨와 출판사가 애초에 대리번역을 시켜놓고 인기인의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것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젬마 씨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다시금 수백 페이지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문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더욱 수가 적다. 그렇기 때문에 도입되는 것이 구성작가 라는 제도이다.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책의 뼈대와 내용을 초고 형식으로 잡아서 넘겨주면 구성작가가 그것을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맛깔스럽게 문장을 다듬고 살을 붙이는 것이 어느 면으로 보나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걸 금지한다면 독자들은 읽기에 거북한 문장으로 구성된 서적이나 전문지식이 결여된 말끔한 문장의 책을 접하는 수 밖에 없다.

전문가와 구성작가의 결합이 특정 분야의 책을 내는데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면 이는 분명히 권장 받을만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성작가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한젬마씨 논란에서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림자 작가` 양지로 끌어낼 때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다음의 문단이다.

...샘터사 측은 "편집자가 저자와 함께 자료조사를 하고, 교정.교열.윤문을 하거나 필요하다면 구성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 역할을 프리랜서 구성작가에게도 맡기고 판권에 명기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샘터사에서 나온 책의 판권 면에는 '구성 지OO'라는 항목이 있다. 샘터사 측은 "이 책의 구성작가 역할을 맡았던 지모씨에게 한씨에게 지급된 인세 10%와는 별도로 2%의 인세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정지영씨의 경우엔 본인은 책에 손을 대지도 않았을 뿐더러 대필작가의 이름이 아예 묻혀 있었다. 그러나 샘터사에선 한젬마 씨의 문장 구성력을 뒷받침 하기 위해 프리랜서 구성작가를 고용 했으며 이 사람에게 댓가를 지불 했고 책에도 그 부분을 분명하게 명시 해놨다. 그런 부분에 동의했기 때문에 프리랜서 작가인 지모씨(이부분도 답답. 어째서 그 프리랜서 작가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가?)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야 "내가 더 많은 부분을 썼으니 대필이 분명하다" 는 주장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본인도 인정 했듯이 한젬마 씨는 분명 초고를 작성해서 지모씨에게 넘겨 주었다.

전문 작가들은 인정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나 수필등이 아닌 특정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말끔하면서 읽기 좋은 '문장'인가, 아니면 그 책에 담겨있는 '내용' 인가? 더 말할 것도 없이 '내용' 이다. 문장력이 부족한 전문가들이 내용의 뼈대를 구성해 주면 그저 문장을 다듬고 살을 덧붙이는 것이 구성작가들의 일이다. 거칠게 말해서, 지모씨가 없었어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할 뿐 한젬마 씨의 책은 출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젬마씨의 초고가 없었다면 지모씨 혼자의 힘으로는 출판이 불가능 하다. 지모씨는 그저 '전문 글쟁이' 일 뿐이지 그림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대필작가가 쓰고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그림자 작가" 들의 대필과 정확하게 책에서 존재 여부를 밝히고 대가를 지불한 구성작가의 집필 참여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법원에서 판결이 나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공정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어렵다면 최소한 미디어들과 그에 준하는 칼럼가들이라도 그 논조에서 공정함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 미디어들은 일제히 '대필작가' 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달았으며 안희환씨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을 정지영씨의 사건과 동일한 문화적 도둑질로 몰아가고 있다. 어느쪽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기사들도 모두 논조는 부정적이다. 정당한 계약에 의해 명확하게 구성작가의 존재를 밝힌 이런 책조차 '그림자 대필' 의 문제점 부각에 이용한다면, 어떻게 진짜로 문제시 해야 하는 '그림자 대필' 에 대한 공정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부당함을 호소하더라도 그 호소에 힘을 싣기 위해 끌어들인 증거가 어처구니 없게도 정당한 것이라면 그 호소는 그 한가지로 인해 정당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만일 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샘터와 한젬마 씨의 손을 들어 준다면 이 사건을 디딤돌 삼아 끓어 올랐던 대필작가 논란은 일제히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디딤돌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인가.

미디어들과,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 블로그들의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기대한다.

-. 추가(2007.01.05.)
본문에 대한 안형영 기자의 백링크를 추가합니다.
http://majorblog.hankooki.com/document/acoa45554

본 게시물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 정리
http://anecdotist.blogspot.com/2007/01/blog-post_05.html

2006년 12월 22일 금요일

스키 생김

뜻하지 않게 스키가 하나 생겼다.

그런데 말 그대로 '스키' 만 생겼음. 폴도 없고 부츠도 없다. 이번주에 지나가는 길에 용평에 들려서 한타임 타더라도 부츠와 폴이 없으니 쓰긴 좀 어려울 것 같고...다음에 갈때나 생각해 봐야지. 그런데 이사하고 나면 스키장 다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길런지. 대출 받은거 이자 갚기 바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짐만 차지할 것 같은데.....이거 완전히 계륵이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Blogger beta?

오늘 내 블로거의 대쉬보드에 로그인 하려는데 페이지가 바뀌어 있었다.

그러면서 상단 메세지에 "이제 베타를 벗어났다" 는 문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베타 블로거로 전환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는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을 해 봤다. 전에는 구글로 로그인 하는 것과 blogger 계정으로 로그인 하는 것이 차이가 있었는데 오늘 로그인을 해보니 두 계정이 통합되어 있었다.

문제는!

내 블로그 설정 화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레이아웃을 설정할 수 있는 설정화면도 나타나질 않고 아카이빙된 것을 리스트로 보여주는 기능도 구현 불가능 했다. 레이블 설정은 당연히 불가.

그저 속도만 빨라진 것인가;;;

내가 베타 블로거로 전환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카이빙된 것들을 클릭을 통해 리스트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과 레이블 설정의 두가지였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지금 안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안되는 건지...아니면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건지. 화면 어디에도 변환 관련된 버튼이나 링크는 보이질 않는다.

낙심중........

추가.
다시 확인해보니 구글계정으로 로그인 하면 분명히 다른 형태의 대쉬보드와 설정이 가능했다. 아직 계정들 통합까지 이루어 진 건 아닌듯 싶다. 전환이 되겠지? 안되면 매우 서운해 할테다. ㅡㅡ;;

2006년 12월 19일 화요일

YouTube 동영상 등록



일전에 만들었던 동영상을 유투브에 등록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편했다. 앞으로 만드는 것들 있으면 이용해야지. :-)

Old Game

연구실 창고(?) 정리하다가 내 오래전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책상 서랍을 찾았다.

여러가지 물건들이 나왔다. 그중엔 하드 디스크도 두개가 있었고 잘 포장된 시거도 하나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주제에 시거는 왜 가지고 있는 건지. 누구한테 받았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하드 디스크 하나는 40G, 하나는 20G 인데 40G 짜리는 성능에 문제가 없는 녀석일테지만 Playstation2 에 리눅스 설치해서 사용할 때 썼던 녀석으로 희한한 플레임이 겉에 고정되어 있어서 사용하려면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20G 짜리는 기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소음이 너무 커서 쓰지 못했던 것일테고.

하지만 서랍에서 나온 것중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게임CD 였다. 출토된 녀석들의 목록은,

Rainbow Six - Takedown
Dungeon Siege
Warcraft3
Forgatten Realms - NeverWinter Nights

takedown 의 경우 한창 rainbow six 시리즈에 빠져 있었을 때 샀던 게임이었고 dungeon siege 는 드물게 엔딩까지 도달했던 게임이다. warcraft3 는 배틀넷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 모드로 엔딩에 도달했었고 시나리오 자체를 무척이나 즐겼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있는 Neverwinter Nights 의 경우엔 리눅스에서 된다는 말을 듣고 사서 영문판으로 잠깐 즐겼었다. 아마 게임 구입 시기가 대학원 입학 후라서 그렇게 오랜시간을 투자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거나 다시 설치해서 주말 같은때에 좀 즐겨 볼까..싶기도 하지만 아마 여유가 쉽게 나진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뜻밖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 탓에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

2006년 12월 18일 월요일

겨울


D1000010.jpg,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2006년 12월 17일.

화정에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렸다. 화정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 내린 눈이었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내가 사는 곳에 내렸다는 것만이 의미를 갖는 것을.

결국 앞으로 2년을 더 화정에 살기로 했다. 참 좋은 동네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좀더 오래 살고 싶지만 내가 학위를 받고 나면 아마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겠지.

같은 화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화정2동에서 화정1동으로 다음달에 이사를 간다. 오늘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왔다. 아직은 한달여가 남은 기간, 이사를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rop & Flip


Canvas,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뒤집어서 바라보기.

Flickr 용량 증가됨

사진 블로그로 사용중인 http://www.flickr.com 의 한달 업로드 용량이 기존의 20 MB 에서 100 MB 로 다섯배 증가됐다.

그동안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용량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100 MB 의 용량이면 내가 한달동안 찍는 필름을 전부 다 스캔해서 올린다고 해도 다 사용하지 못할만큼 많은 용량이다. 기본 사진을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는 기능만 생긴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을텐데.

어쨌든 기분좋은 업그레이드임에 분명하다. ^^

2006년 12월 14일 목요일

남성의 인식 변화 : 연인에서 엄마로.

어제 우연히 한 지인으로부터

"남자들은 결혼 전에는 여자가 자신의 연인으로써 행동해 주길 바라지만, 결혼 후에는 여자가 자신의 엄마로써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라는 말을 들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도 그랬었지만 결혼 전에는 자기 여자친구가 일반적인 연인처럼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예쁘게 꾸미고 애교도 부리며 내 보호본능을 만족시켜 줄 만큼 내게 의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이전의 그런 바램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 여자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당연히 청소는 물론 집안 살림을 도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은 방만하게 구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와 사랑과 용서로 한없이 받아줄 것도 기대한다. 엄마에게 굴듯 조금은 떼쓰기도 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모두 그 여자가 엄마처럼 받아주기를 바란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많은 남자들이 이 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결혼이라는 기준점을 놓고 연인과 엄마로 나뉘는 남자들의 인식변화.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여자를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동일한 태도로 대한다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 여자가 직접 그렇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노력해 봐야겠다. 내가 내 아내를, 연애할때와 똑같이 내 연인으로써 대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 아내가 남에게 자신의 남편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똑같이 자신을 대해준다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아내는 내 아이의 엄마이지, 내 엄마는 될 수도 없으며 또 되어서도 안되는 존재이다.

2006년 12월 13일 수요일

아비투스(habitus)

아비투스(habitus)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들어낸 신조어로, 개인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획득한 ‘지속적인 성향체계 를 의미한다. 개인의 취미나 습관, 버릇 등과는 다르게 쓰여야 하는 말이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단어라고 해야 할까.

나라는 사람을 남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같은 연주곡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듣고 성공서적 같이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지침을 명시하는 책 보다는 다 읽고 난 후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소설이나 수필등을 더 좋아한다.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선호하며 의외성과 어처구니 없음으로 웃기는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유머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사소한 것을 크게 부풀리는 속좁은 이들을 경멸하지만 적극적으로 일에 대처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대한다.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는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나를 포함해 전체 인원이 두명을 넘어서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여행을 다니는 편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볼 때 꼭 누군가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으며 보고 싶은 영화는 혼자가서 맘편히 보고 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밥먹을 때 소리내는 사람을 싫어하고 젓가락질을 정확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쌀이 찌푸려진다. 내가 남에게 잘보이려 노력하지도 않지만 나에게 잘보이려고 지나치게 아부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혐오한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아 자신도 모르게 앞 뒤 말이 모순이 되어 버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공격해 공황상태로 빠지게 만들고자 하는 공격성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떳떳함과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곁에 두고 싶어한다.

어지간한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며 문제시 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어서면 경고없이 화를 내며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흔히 섹시함으로 통용되는 성적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여자는 천해 보여서 싫어하고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하지만 내가 가진 아비투스와 유사한 아비투스를 가진 여자를 좋아한다.

...

단순히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나라는 사람을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저러한 모든 내 모습들은 내가 자란 가정과 이후 경험한 사회화 과정등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수많은 내 모습을 한단어로 압축하면 '아비투스' 라고 부른다. 역으로 내가 가진 아비투스를 알면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유추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아비투스를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은 일일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내 기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며 나에게서 대단한 호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인의 미니홈피에서 '아비투스를 정확히 감지하는 사람들' 에 대해 언급한 문구를 읽고 한참을 생각해 봤다. 나와 식사를 하거나 잠시 대화를 나눠 보더라도 내 아비투스의 상당한 부분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내 호감을 사기 위해 자신의 아비투스를 감추고 행동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지해야 하는 것일까. 4,5년전 자신의 본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내 아비투스를 감지하여 모든 행동을 거기에 맞췄던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경험을 돌이켜 보자면 이는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내가 호감을 얻고 싶은 상대에게는 마찬가지로 행동하고자 애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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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itus 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간단히 습관 이라고 나와 있었다. 어처구니 없음. 왜 영한사전은 모든 것을 '단어'로 번역하려 하는 것인지. :-(

2006년 12월 7일 목요일

인사동

지난 일요일, 여름 휴가를 받지 못했던 대신에 겨울 휴가를 받은 아내와 정말로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갔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데이트를 했던 곳이 바로 인사동 이었으니 나름대로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찍은 필름을 오늘서야 현상하고 스캔을 했다.)

인사동

밤의 인사동은 낮의 인사동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낮의 인사동이 활기참과 북적거림이라면 밤의 인사동은 그 북적거림은 여전하되 사람이 만들어 내는 북적거림을 압도하는 인사동 특유의 분위기가 거리를 잠식한다.

인사동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인사동을 좋아한다. 옷과 숄을 하나씩 사고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왜 평소에는 그렇게 여기에 나오는 것이 어려운지.

인사동 쌈지길

이날 쌈지길을 처음 가봤다. 말로만 듣던 쌈지길. 내부를 뒤덮은 우산들이 눈길을 끌었다. 건물의 각 층을 계단이 아닌 나선형 복도를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과 그 복도를 끼고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배치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인사동에 오면서 거리에서 보는 것이 아닌 건물 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무척 아쉬웠었는데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순수하게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밤에 들어갔기 때문에 노출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 그래도 이날 얻은 소득이라면 1/30 에서 흔들림 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 조리개를 좀더 조일 수 있었다면 좀더 다양한 컷을 담아볼 수 있었을 텐데 최대개방에 가깝게 조리개를 열지 않으면 1/30 아래로 셔터속도가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찍은 많은 사진들이 노출 부족으로 인해 이상하게 나오거나 무리하게 노출을 확보하기 위해 구도를 잡아서 이상하게 나와서 무척이나 속상했다.

쌈지길에서 나와 우정이와 정화를 만나서 함께 귀천을 들렸다. 귀천에 처음 와본다는 두 동생들에게 천상병 시인과 귀천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 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두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필름이 다 되서 이때의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필름을 넣어서라도 새로 확충한 인사동의 두번째 귀천 매장과 목순옥 여사님의 사진은 찍어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동 쌈지길 지하

마지막으로 유용한 정보. 쌈지길 지하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 식당(이름은 생각 안남)의 순두부와 청국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다음에 인사동에 가면 꼭 식사시간을 맞춰서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ps
지금은 퇴근후 족욕을 하면서 노트북으로 포스팅을 하고 있다. 족욕기와 노트북.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는 두 사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연애시대 13화

뜻밖에 보게 된 연애시대 13화.

또다시 가슴 한켠을 움켜쥐고 숨쉬기 고통스러워 하고 말았다.

아 젠장. 고작 드라마일 뿐인데.

오랜만에 영화를 보다

어제 오후에 종로에 렌즈 수리를 받으러 나간김에 아내와 영화를 봤다.

영화 제목은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인 김지수와 한석규 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정말 놀랍게도) 기대한 것 이상 만족을 하고 나왔다. 기대하고 본 영화에서 만족감을 얻은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무표정한 상태에서 호흡과 눈망울로 감정 표현을 하는 김지수의 감정 터치법을 '여자 정혜' 이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 격한 감정의 흐름이 아닌, 너무나도 잔잔한 목소리로 영화의 크라이막스를 이끌고 또 소화해 내는 한석규의 연기를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강요하지 않는 결말.
교훈을 주려 애쓰지 않는 이야기.

그저 '보여주기' 만 할 뿐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영화에 대한 내 편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뭐 어때? 봐서 좋으면 그걸로 된거지. :-)

2006년 12월 2일 토요일

12월의 첫 사진 업로드


000019.JPG,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어제 iPhoto 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눈에 확 들어온 사진.

10월말에 청주에 내려갔을 때 찍은 사진들 중 하나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사진인데 어제는 내 눈을 사로잡아서 놓아주질 않았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아내와, 뒤로 펼쳐진 베란다의 밝은 창.

사진을 보면서 참 따뜻하단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사진.

이미 두달전의 사진이지만 갈수록 추워지는 12월 첫번째 flickr 업로드로 주저없이 이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따뜻함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내가 추구하는 사진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진을 막 찍기 시작했던 이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진이 지금은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겠지.

2006년 11월 28일 화요일

렌즈 도착

기다리고 기다리던 24미리 광각렌즈가 도착했다.

음...주말에 출사를 다녀와야 하는건가. ^^

2006년 11월 26일 일요일

베사메무쵸

오디오 연결선을 사려고 용산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멕시코 공연단의 자선공연을 보게 됐다. 시간이 많지 않아 오랜시간 지켜보지는 못하고 공연의 초반부 두곡만 듣고 사진 몇장을 찍은 다음 돌아왔다.

두번째 곡은 베사메무쵸.

영화로도 나왔었고 이래저래 많이 들어본 곡이었지만 이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아리랑'과 비슷하다고 할까.

'베사메무쵸' 라는 말은 '열정적으로 키스해 줘요' 라는 뜻이라고 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인의 심정을 그린 노래임에도 이다지도 다를수가 있을까. 정서의 차이,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한가지 아쉬운 것은 노래를 담당했던 여가수가 좀 열정적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것. 열의가 없어 보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건반을 맡은 남자의 표정은 정말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D100002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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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5일 토요일

단풍 보케 연습

며칠전에 다른 곳에서 단풍 보케를 예쁘게 담은 사진을 보고는 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우연히 보케가 배경에 깔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부러 보케를 만들려고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촬영 장소는 한양대학교 본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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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으로 찍기 위해 그늘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광량이 많지를 않았다. 무엇보다 필름이 centuria 100 이어서 셔터스피드 확보가 어려웠다. 조리개 값은 f5.6 에 셔터스피드는 1/120초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정신없이 찍느라고 컷 순서와 노출정보 기록을 깜빡 했다. 필카의 최대 단점. 촬영 데이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력이 유난히 나쁜 나로써는 더욱. ㅡㅜ) 뒤쪽에 있는 배경까지의 거리가 어중간 해서 오히려 예쁘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배경과 보케가 한데 뒤엉켜 있어서 깔끔하게 나오지 않았다. 뭐, 배경의 붉은색이 곱게 뭉개진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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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보케 사진을 본 것 중에 마치 알록달록한 금붕어가 붉은 물감이 적당히 풀어져 있는 물을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의 느낌을 흉내내고 싶었던 사진. 배경의 단풍잎들이 심하게 뭉개지고 그자리로 밝은부분이 치고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조리개는 최대개방에 가깝게 하고 단풍과 하늘의 비율에서 하늘이 좀더 많이 차지하도록 구도를 잡았다. (아직 감이 없어서 찍으면서 어떻게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꼭 현상해봐야 아니까 DSLR보다 습득이 많이 느리다. dslr 이면 그자리에서 '아, 이렇구나' 하면서 공부할 수 있을텐데.)

D1000023.JPG

내가 삼각대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셔터스피드, 1/30 초 까지 낮춘 후 여기에서 한스탑 오버가 나오게 노출을 결정해서 찍은 사진. 이 사진에서야 드디어 내가 원했던, 각진 모양이 선명한 보케를 얻을 수 있었다.(완전히 운이다. 운) 조리개 날 수가 그대로 표현되었다. 배경이 녹색과 흰색으로 된것이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듯 해 이날 현상한 컷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이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것은, 보케는 조리개를 최대개방하거나 조이거나에 상관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배경이 너무 밝거나 혹은 밝은 빛 부분의 비율이 높아도 개별적으로 구별되는 보케를 표현할 수 없다는 점. 물론 어떻게 하는게 가장 예쁜 보케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 같은 것은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을 표현하면 그 뿐.

오늘 이것 말고도 Fuji auto 400 필름으로 용산역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상대로 보케를 표현하고자 몇장의 사진을 더 찍었지만 아직 컷이 남아있어 현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나올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

그나저나 오늘 오후에 용산역을 배회하면서 여러가지 사진을 찍었다. 마침 공연도 있어서 공연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표현을 많이 해봤는데, 야외라고는 해도 그늘진 곳에서 iso 100 필름으로는 셔터스피드 확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필드 촬영 말고는 거의 사용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1/15 초 까지 손으로 셔터스피드를 잡아만 줘도 좋을텐데. 1/30 도 간당간당 하니 노출 결정에 많은 제약이 있다. :-(

ps
아...그나저나 내일도 연구실 출근. 음...하지 말아 버릴까. ㅡㅡ^

2006년 11월 24일 금요일

Meditation


D1000008.JPG,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호흡을 멈추고,

하나

셋.

찰칵.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포착한 거위


거위,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일산 호수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뜻밖에 포착한 거위다.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과자등 먹을것을 얻어 먹는 것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망원렌즈라고는 135mm 준망원 밖에 없는데 이처럼 가까이에서 포착할 수 있다니 정말로 운 좋은 하루였다.

올가을, 유일한 단풍잎 사진


Autumn Red,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가슴 한구석의 답답함을 털어내지 못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닌 끝에 한장 건졌다. 이번 가을에는 단풍도 은행도 제대로 보러 다니지 못했는데 정말 우연히도 곱게 물든 단풍잎을 동네에서 발견했다. 눈으로 볼 때와 사진으로 볼 때의 느낌이 이렇게도 다르다니.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은 것은, 보기싫은 것은 뷰파인더 밖으로 몰아내고 내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것들은 모조리 아웃포커싱 시켜서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

ps
노출을 잘 맞춰서 색감이 잘 나온건지, ISO 400 필름의 위력인건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2006년 11월 16일 목요일

시험삼아 만들어 본 iMovie 샘플

http://anecdotist.blogspot.com/2006/12/youtube.html

원본 필요한 사람은 따로 연락을. 원본은 948MB 에 달하는 거대한 녀석.
나중에 동영상 본격적으로 만들때가 되면 외장형 DVD RW 를 하나 사야하나;;

그나저나 iTunes+iPhoto+iMovie+iDVD 의 iLife 조합은 정말 끝내준다.
어째서 맥을 팔면서 애플에서 iLife 를 함께 준다는 걸 그토록 내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2006년 11월 15일 수요일

Flickr Smiley.











Flickr Smiley.

대단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다. :-)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Trackback 에 대해 누가 설명좀...

blogger 에서 쓰는 개념인 backlink 에 대해선 완전히 개념이 잡혔다.

"원본 포스트를 가리키는 링크를 누군가의 포스트에서 걸어 놓는다면 검색엔진이 이를 찾는대로 원본 포스트에 링크가 걸려있는 포스트를 알리는 내용을 추가"

한다는 것이다. 백링크를 걸면 곧바로 알려지게 되는 건 아니고 검색엔진이 이를 찾아낼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반대로 누가 내 글을 링크 걸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고(몰래 거는것도 불가능 하다) 사용하기도 손쉽다. 물론 blogger 도 link to this post 버튼을 클릭해서 링크생성을 요구하면 로그인 창이 뜬다. 하지만 그럴 것 없이 주소창에 있는 URL을 긁어다가 그냥 자신의 포스트에 붙여넣고 글을 써도 된다. 검색엔진이 알아서 찾아서 백링크를 걸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trackback.

돌아다니면서 다른 블로그를 볼 때 trackback 을 걸고 싶을때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자 하면 로그인을 요구하는 곳도 있고...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건지 모르겠다. 누가 trackback 에 대해서 이용방법과 특징을 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

두시

Albinoni 의 Adagio 에 취해서 아직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

환장하겠군. 벌써 두시가 되어 버렸는데.

잠이 안오는 것은 아닌데 저 곡을 계속 듣고 싶은 욕심에 잠을 자지 않고 있다.

...

한번만 더 듣고 자자. 내일 출근해야 한단 말이다. ㅡ.ㅡ;;

Adagio Karajan



현존하는 지휘자들중 adagio 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Herbert Von Karajan 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감히 Adagio 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음반은 Karajan 의 것이 유일한 듯 싶으니.

일전에 주문했던 Adagio - Karajan 앨범이 오늘 도착했다.

너무나 기뻤지만 연구실에서는 들을수가 없었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음악을 듣고자 하면 스피커 볼륨을 높이거나 헤드폰을 쓰는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볼륨을 높여봐야 하나의 소음을 추가하는 것 뿐이고 헤드폰은 없었기에 결국 집에 온 이후로 그 감동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술을 한잔 따라 옆에 놓아두고 음악을 듣고 있다.

...

만족. 대 만족이다. :-)

ps
사실 이 앨범을 산 가장 큰 이유는 8번째 수록곡인, albinoni 의 adagio 를 karajan 의 지휘로, 그것도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의 연주를 통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머지 곡들의 완성도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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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agietto, for orchestra (from the Symphony No. 5)
    Composed by Gustav Mahler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2. Canon and gigue, for 3 violins & continuo in D major, T. 337 Canon
    Composed by Johann Pachelbel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3. Méditation, violin & orchestra version and various arrangements (from opera "Thäis")
    Composed by Jules Massenet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4.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Unspecified excerpt
    Composed by Johannes Brahms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5. Sinfonia al Santo Sepolcro, sonata for 2 violins, viola & continuo in B minor, RV 169 Adagio molto
    Composed by Antonio Vivaldi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6. Peer Gynt Suite for orchestra (or piano or piano, 4 hands) No. 1, Op. 46 Ases Tod Aase's Death
    Composed by Edvard Grieg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7. Divertimento No. 15 for 2 horns & strings in B flat major ("Lodron Serenade No 2"), K. 287 (K. 271H) Adagio
    Composed by Wolfgang Amadeus Mozart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8. Adagio, for violin, strings & organ in G minor, T. Mi 26 (composed by Remo Giazotto; not by Albinoni)
    Composed by Tomaso Albinoni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with Leon Spierer, David Bell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9.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Allegretto
    Composed by Ludwig van Beethoven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10. Orchestral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 Air
    Composed by Johann Sebastian Bach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with David Bell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11. Valse Triste, for orchestra (from Kuolema), Op. 44/1
    Composed by Jean Sibelius
    Performed by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with David Bell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Backlink to ozzyz review:개신교 비판

개신교 비판


ozzyz 님처럼 나 역시 한국의 주류 개신교를 비판하는 사람중 한명이다. 그들은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젊은이들을..그것도 맑은 심성을 가진 젊은이들을 그들 자신이 가고 있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기독교의 하나인 천주교를 믿는 신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무엇하러 남의 종교를 배척하는가?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을 증폭 시키게 되는 것을.

개신교 목회자들이 초기 평양 장대현 교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전도가 아니라 단순한 신도수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욕망에 번들거리는 그 눈빛을 정화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런지.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주일을 지키라' 는 말을 '어디가지 말고 반드시 내가 있는 교회로 나오라' 라고 신도들에게 세뇌교육을 시키지 않고 '어디에 있든 가까운 교회에 가서 주일을 지키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정말로 듣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개신교 목회자들이 대부분인 것을 나는 안다.

도대체가...개신교를 믿는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판단력을 잃어가는 것일까? 정말로 답답하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의 하늘빛


Sunset,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해가 지평선 혹은 수평선을 넘어가고 나서부터 30분이 지나기 전까지의 시간.

붉은색부터 짙은 남색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가장 매력적인 자태를 뽑내는 때이다.

요즘 이 시간대의 하늘빛에 매료되어 있다.

은행나무 길


Gingko road,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집 근처에 있는 은행나무 길에서 노란색을 담으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조리개를 조이는 것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게 되었으니 훌륭한 공부가 되었지만 필름 한롤을 그대로 망친것은 영 찝찝한 일이다.

'과함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

잊지 말아야 할 말인듯 하다. 더군다나 내 카메라는 1/1000 가 셔터스피드의 한계가 아니던가. :-(

2006년 11월 11일 토요일

Link to jung-in


jung-in's mini-hom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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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예의바른 웃음을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꾼.

스스로는 이야기꾼이 아니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느낌은 받는이의 몫이니까.



3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사람들의 블로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폭발적인 포스팅을 보여주는 것에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06년 11월 7일 화요일

동네 한바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간에 생겨버린 여유시간에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제목 그대로 동네를 돌았다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찾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미니홈피의 경우엔 내가 싸이월드 자체를 거의 안하기 때문에 주소들을 알지 못해 친구들의 방명록을 뒤지고 1촌파도타기 기능등을 이용해 가며 어찌어찌 찾아갈 수 있었다. 어차피 알고 지내는 녀석들이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사실, 블로그를 운영하거니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것도 적성에 맞고 재미를 느낄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쪽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랜시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뭐, 나도 게으른 탓에 내 블로그를 열심히 업데이트 하는 편은 아니고 내킬때만 소나기처럼 퍼붓는 형편이니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긴 하다. 그럴 마음도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동네 한바퀴를 돌고나서 얻은 수확은, 지금 내가 찾고 있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정도만 꾸준히 방문하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 절망인 것은 그런 곳이 두세곳 뿐이라는 것.

아....재미없어. 한 다섯명 정도만 꾸준히 읽을거리나 볼거리를 제공해 줬으면 좋겠는데. 하루에 한명씩만 이야기를 해도 일주일이 지나갈 수 있게. :-(

2006년 11월 5일 일요일

휴일 출근

무척이나 조용한 연구실.

투명한 하늘의 일요일이고 일이 있어 연구실에 나와 있다. 일반적이라면 일이 있든 없든 휴일에 출근하는 것이 무척이나 짜증나는 상황이겠지만 난 그렇게까지 짜증나거나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휴일에 연구실에 나와 있게 되면 고요함을 누릴 수 있다. 음악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피커로 틀어 놓을 수 있고 또 마음껏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물론 '해야할 일을 어느정도 하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아침에 조금 뒹굴거리면서 책을 보다가 출근하려 했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곧바로 카메라 가방을 들고 집을 뛰쳐나오듯 빠져 나왔다. 집에서 걸어서 1,2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제법 볼만한 은행나무 길이 있다. 단풍이 너무나도 예쁘게 들었던 작년에 그 길 역시 상당히 볼만 했었다. 그 기억을 갖고 있기에 2006년도에는 꼭 그 길에서 사진을 찍고 말겠다는 나름대로의 결심과 기대로 1년을 지내왔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단풍잎과 은행잎이 물들기도 전에 말라 버려서 예년의 분위기를 맛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기대라고나 할까. 요 며칠은 그래도 비가 적당히 내렸었고 기온도 충분히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은행나무들은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많다.

열장하고 서너장을 더 그 길에서 찍었다. 아직도 푸른기운이 남아 있어 다음주 정도면 괜찮아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전해 놓은 필름에 남아있는 열컷 정도의 여분은 다음주를 위해 남겨둬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다음주중에는 학회가 있어 설악산에 다녀와야 한다. 아무래도 남아있는 컷이 다음주말까지 가지는 않을 듯.

디지털 바디가 아니라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확인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때문에 필름을 현상해서 스캔할 때까지 기다리는 '설레임'이라는 것이 있어 좋다. :-)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Pentax KX


Pentax KX, originally uploaded by necessary evil.

연구실에서의 스트레스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사진에 미쳐있다. 그리고 손에 쥐고 다니는 기종은 Pentax KX.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카메라다.

1975년도에 생산이 된 모델이고 내 핏덩이 시절부터 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으셨던 동안 꾸준히 나와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아왔던 그 카메라.

그리고 거의 유일하다 시피 했던 아버지의 개인 물건.

부품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부품이 고장나게 되면 더이상 수리가 불가능한 제품이다. 아직 필름 10롤도 채 찍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쨌든 K mount 모델들 중 최고로 손꼽히는 기종인데 이걸로 사진을 영 못찍는다면 그것도 웃긴 상황.

주위에서는 디지털 바디로 변경하라고 난리지만 아버지의 유품인 이 카메라를 내가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이 바디의 모든 성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지.

날씨 - 흐림

어제밤에 천둥 번개까지 쳐가며 요란스럽게 비가 내렸다.

많은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은 투명한 날이 펼쳐지기 때문에 기대를 갖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대 실망. 그처럼 요란스럽게 우르릉 쾅쾅 했으면서 정작 비는 그다지 내리지 않았는가 보다. 투명하기는 커녕, 화창하지도 않은 날이었다. 인물 사진을 찍기엔 더없이 좋은 노출환경이긴 했지만 모델이 출근하는 날인데 별 수 있는가.

하다못해 일몰이라도 그대를 했지만 평소 해지는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일찍 서쪽하늘 가득 끼어 있는 구름뒤로 넘어가서 지금은 온 세상이 그저 어두컴컴할 뿐이다.

내일은 날이 투명하려나?

비가 오고나서 그나마 나무들이 제 빛을 찾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노랗게 은행잎이 물드는게 아니라 곧바로 말라 비틀어져 갈 만큼 건조했던 지난 몇주. 남이섬은 노란색 축제를 벌였던 걸로 봐서 관리인이 열심히 물을 줬었나 보다.

카메라에는 일부러 노란색을 잡아내고자 하는 다짐에 코닥 GA36 을 장전해 놓았는데.

내일을 기대해 보자.

위에 올린 사진은 지난달에 찍은 사진. 아무리 생각해도 저 날 삼각대가 있었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모든 사진이 전부 언더가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전증이 있는지 1/60 이하는 죽어도 못잡아 내겠는걸. :-(

2006년 11월 3일 금요일

Hwajung_061029


Hwajung_061029, originally uploaded by Ki-young Choi(최기영).

지하철 일산선 화정-대곡 구간

Hye-sung & chorong at park

초롱이가 워낙 간만에 포즈를 잡아준 터라 흥분해서 다급히 셔터를 누르느라 노출정보 확인을 못하고 찍었다. 덕분에 언더가 나 버리긴 했지만 아내와 초롱이가 눈맞춤을 하고 있는, 참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장면을 잡은 것으로 대 만족. :-)

2006년 10월 29일 일요일

서해




주말을 이용해서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서해 남당리에 다녀왔다. 유달리 대하회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결혼 기념일 여행으로 다녀온거다. 결혼기념 여행이라면 둘이 가는게 보편적이지만 청주에서 늘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께서 평소 우리와 함께 어디든 여행을 다녀오시길 원하셨던게 기억나 마침 토요일 시간이 비는 걸 이용해 새벽같이 청주에 내려가 모시고 서해에
함께 갔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내 제안에 군말없이 방긋 웃으며 따라준 아내에게 너무가 고마운 하루였다.

그 고마움에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께 조금 눈치가 보이긴 했어도 대하회를 좋아하지만 스스로 껍질을 벗기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대하를 거의 입대 대지도 않고 쉴새없이 껍질을 벗겨 아내 앞접시에 놓아줬다. 2년전에 서해에 왔을때도 난 거의 먹지도 않고 아내에게 껍질을 벗겨줬던 생각이 났다.

착하고 현명한 아내와, 누구 못지않게 까다로우시고 너무나 정확하신 성격임에도 며느리에게 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머니.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내 가족을 바라보며 내가 참 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물론 내 어린시절에 지금 당신의 며느리를 대하시는 것처럼 그럴수도 있다는 끄덕임으로 어머니께서 날 키우셨다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어린시절이었을 거란 투덜거림도 살짝 해본다. 너무나 자로 잰듯한 생활을 강요하셨던 터라.)

이제 12시간 후면 결혼식을 올린지 2년째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결 혼한 지 2년. 날 가만히 지켜보면, 결혼식 올리고 다음날 서툰 운전 솜씨로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청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던 그 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은근히 물어본, 내게 서운했던 거나 고쳤으면 하는 것을 이야기 해보라는 말에 그런거 없다는 아내.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내 아내에게 서운했거나 고쳤으면 하는 점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그렇기 때문에 연애하면서부터 결혼후 2년이 지나기까지 단 한차례도 싸우기는 커녕 의견 충돌로 서로 얼굴을 붉힌 적조차 없는 것이겠지만.(한번쯤 일부러라도 긁어보고 싶다. 화가난 내 아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정말 궁금하다.)

워낙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내가 최고의 상대여서 그런 것도 있고 어지간한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내 성격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누군가 내게 내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아마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내 삶은 분명 달라질 것.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다시 결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수십년동안 세명 이였던 우리 가족이 딱 한달간 네명이었던 그 시절. 언젠가 내가 내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 다시금 네명, 다섯명이 되겠지만 결코 비교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 네식구였던 그 시절. 돌아간다면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중얼중얼




누군가 내게 무슨색을 좋아하느냐 라고 물어 본다면 난 두 말 없이 오렌지 색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오렌지 색을 떠올렸을 때는 늘 기분이 우울했던 때였다. 기분이 우울했기 때문에 색이라도 좋아하는 색을 떠올리고자 했던 것인지.

이번 추석때 처음 마셔봤던 16도 짜리 산사춘도 오렌지 색에 가까운 진한 빛이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14도 짜리 산사춘하고는 빛깔부터 달랐다. 맛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고. 처가에 선물로 사갖고 갔던 그 술의 맛에 반해 추석 연휴가 끝난 후 둘이 근처 마트를 돌아다니며 찾았지만 선물셋트로만 판매를 하는 듯 구할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그 선물셋트라도 구하고자 했지만 그 역시도 살 수 없었다. 내년 설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열셋트 정도 사놓자고 하지만 워낙 비싸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쉬운대로 14도짜리 산사춘을 반잔 따라놓고 홀짝이고 있다.

내일부터 모레에 걸쳐 서해로 아내와 둘이 주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람.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이 무렵의 꽃지 해수욕장 낙조를 사진에 담을 더할나위 없는 기회라고 좋아했었는데.

이제 삼일 후면, 결혼한지 어느덧 2년째가 되는 날이다. 일은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다. 억지로, 정말 억지로 오늘처럼 시간을 내서 술한잔 홀짝이면서 키보드 두드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지.

최근들어 너무나 머리속이 뒤틀려서는 글이 써지질 않는다. 그래도 답답할 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게 어딘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2006년 10월 24일 화요일

Flickr!

사진 관리는 매킨토시에 탑재되어 있는 iPhoto 를 이용해서 정리하고 있고
외부에 보여주는 갤러리로는 야후에서 운영하는 flickr 를 이용하고 있다.

Flickr 는 유료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면 한달에 20MB 의 용량제약을 걸어놓고
있지만 내가 뭐, 한달에 수십장씩 업로드할 사진들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이용하고 있다. 더욱이 웹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리사이즈 한 파일이
용량이 크다고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문제는, 사진을 선택했을 때 기본적으로 보여지는 크기가 flickr 서버에서
자동으로 리사이즈 한 medium 크기의 사진이라는 거다. 좀 화면 가득
사진을 띄우고 싶으면 꼭 우측에 있는 See different sizes 를 선택해서 large
를 클릭해야 한다는 거다. 요즘이 무슨 14인치 모니터 시대도 아니고...
이거 하나가 아쉬운데, 참 많이 아쉽다. 설정을 변경하는 것도 허락하질
않으니 거참. ㅡㅡ^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음반주문

지난 몇개월간 망설이다가 결국 아마존에서 음반을 주문했다.

다름아닌 Karajan: Adagio

같은 이름으로 두번째 앨범이 나왔으니 1집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Berliner Philharmoniker 의 연주로 녹음된 앨범이다!!!

언제쯤 도착할런지.

국내 온라인 음반 판매사들에 대한 불만.

제발 음악가와 제목만 나열하지 말고 제작과 녹음을 어디서 누가 했는지도

자세히 적어 줬으면 좋겠다. 특히나 클래식 음반들에 대해선!

가수와 작곡가, 제작자가 대부분 살아있는 가요 음반과 달리 역사가 있는

클래식 음악들은 누가 지휘했고 어느팀이 연주했고 누가 녹음을 맡았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한데 그런 정보들을 알려주질 않으니.

결국 만원이나 더 내고 해외주문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


2006년 10월 9일 월요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추석 연휴 내내 공지영 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
운전하랴, 친척들에게 인사 다니랴, 친구들 만나랴. 읽을만한 시간은 그다지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씩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오늘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조차도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읽지 못했다. 다름 아니라 끝 무렵에 주책 없이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려는 느낌에 당혹해 지하철 천정에 붙어있는 형광등에 문제라도 생긴양 뚫어지게 위로 고개를 젖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란더즈의 개, 어린왕자, 새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여하튼 책을 읽다가 눈물을 쏟을 뻔 했던 적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없었다.

누군가를 증오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지탱하는 것 중 하나는 특정인에 대한 증오였다. 그랬기에 이 책은 참으로 읽기 어려웠다. 매끄러운 문체, 어렵지 않게 스며드는 어휘. 그런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잘 쓰여진 문장들이 내게 강요하는 바로 그것이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 증오 그리고 용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을 억지로 꾸깃꾸깃 우겨넣으며 그처럼 열심히 읽어 나갔는데, 그러느라 시간을 너무 써버려서 연휴가 끝날 때 까지도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아직 다 먹지도, 먹은 것을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일상으로 내던져 지고 말았다. 지하철 역을 나와 연구실로 올라오는 5분동안 나는 빠르게 현실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길 옆을 덮은 수많은 플랭카드들. 누군가에겐 영어의 자동사와 타동사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일테고 누군가에게 FTA 는 절대로 막아야 하는 인생의 한시적 타도 대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일상들 속에서 나 역시 재치와 욕망이 수식으로 점철된 내 일상을 찾아내야만 했다.

며칠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그래서 책을 덮고 그 내용을 소화시킬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소용 없어지고 말았다. 언제쯤 다시금 문장을 곱씹으며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 아쉬운 순간이다.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거기까지

아~~~~~함.

거기까지. ;-)

2006년 9월 22일 금요일

자기 자신에게 한껏 관대해지기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요즘처럼만 살면.

...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넘게 이 상태라니. 할 말이 없다.

2006년 9월 14일 목요일

위스키 반잔 치즈 두 조각

지금시각 3시 43분. 그리고 충분한 위스키와 치즈 두 조각.

취기가 올랐고 너무나 많은 상념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 잠자리에 들고자 하면 충분히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다만, 글이 아쉽다. 거창한 시사 토론도 좋고 놀라운 뉴스들도 좋지만 나는 순수한 서정적인 글이 그립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의 포스트에 트랙백이나 백링크를 걸어 내 생각을 쓰고, 다시금 글에 달린 트랙백이나 백링크를 따라가 다른 사람들의 감성을 엿보고 싶다. 한문장 짜리 댓글이 아닌, 깊이 들이마신 심호흡 같은 긴 호흡의 글을 통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자아성찰도 좋고 치열한 자기고민도 좋지만 단지 고요한 산사를 바라보며 감상을 늘어놓거나 커피 한잔에 대한 서정시를 끄적일 수 있는 사람과의 긴 호흡을 통한 대화를 하고 싶다. 글에대한 갈증.

댓글이 싫다는 게 아니다. 다만 댓글과 같은 한문장짜리 대화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창문을 두드릴 정도로 거센 가을비가 내리던가. 이래저래 불만이 많은 밤이다.

우물

무척이나 가볍고 푸근한 기분의 저녁시간이었는데, 잠자리에 누웠을 때 떠오른 한가지 생각으로 인해 한시간째 뒤척이나 끝내 잠들기를 포기하고 컴퓨터를 켜고 앉았다. 차라리 낮이었다면 뭔가 다른것에 집중하면서 잊을수나 있었을 텐데 어둠속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그 상태에서는 모든 정신이 한쪽으로 집중되 버려 도저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마치, 태엽감는 새 에서 오카다 도루가 앉아 있던 그 우물에서처럼.

점점 더 또렷해지는 그 분노속에 급기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화가 나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시계를 확인하니 잠자리에 누운지 한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위스키를 반잔 따라서 책상앞에 앉고 보니 막상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술기운에 신경이 무뎌져서 다시 잠들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런지.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주저리 주저리

지난 며칠동안 열권이 넘는 책들을 읽었다.

새로운 책들을 읽은 건 아니다. 그동안 몇번씩이나 읽어서 구절구절 읊조릴 수 있을 정도가 된 책들을 또다시 읽었다. 그런 책들이기에 슬쩍 불어오는 바람에 책장 넘어가듯, 그렇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지만.

해거름녘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곱씹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한해의 해거름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을로 접어들 때면 난 책장의 먼지를 털어내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다시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게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모퉁이를 찾아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때문에 독서량에 비해 읽은 책의 권수는 그다지 늘지 않는 편이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번 가을은 살금살금 다가와 깜짝쇼를 펼쳤다. 책에 빠져 지냈던 잠시 잠깐의 그 며칠동안 살그머니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어제까지는 여름. 오늘부터 가을.'

숨죽이며 다가선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간만에 서점에 들려야 겠다. 내것도 한권, 아내에게 선물할 책도 한권. 그리고 그 다음 주말에는 둘이 한권씩의 책을 옆에 들고 조용하고 차분한 출판단지의 어느 북카페에라도 다녀와야 겠다. 내친김에 사진기도 함께. :-)

덧글.
이 글을 쓰는 동안 고추잡채를 한번 해보겠다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면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썰고 볶아대던 아내가 맛을 보라며 고추잡채를 한접음 내밀었다. 결국 한접시 가져다 놓고 먹기 시작. 내일부터는 정말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던가 해야지 이대로는 현상 유지 조차도 불가능 할 것 같다. 천고마비의 계절....조심 또 조심이다.

2006년 9월 3일 일요일

한숨

blogger.com 에서 제공하는 에디터를 이용한 글 작성을 한동안 했다. 문단 첫글자를 크게 한다든지 이런저런 기능을 쓰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전에 한시간 가량 생각을 하고 타이핑한 글을 날려 먹었다. 원인은 시스템 다운. 아 젠장. 이럴땐 윈도우를 욕해도 되는 것이겠지. auto draft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blogger.com 을 욕해도 되는 것이겠지. 특별히 멋낼 것이 아니었다면 그냥 gmail 에서 두드려서 메일로 포스팅 할걸. 그랬으면 시스템이 다운 됐어도 글을 날려먹을 일은 없었을 텐데.

어떤 글이든 또다시 두드린다는 건 못해먹을 짓이다. 똑같이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쓰기가 싫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도 않는다. 젠장. 욱 하는 성격의 나만 그런건지는 몰라도.

창 밖을 보니 벌써 많이 밝아졌다. 30분 정도 후면 해가 뜰 시간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현재 위치는 강릉.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에 가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동네다. 문제는, 지독한 길치인 내가 여기서 해안을 찾아가기 위해선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새벽잠에 푹 빠져 있고 깨운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일출이 보고 싶은데...대한민국에서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해맞이 동네에 와 있으면서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

2006년 9월 2일 토요일

물음표

버티기, 그래 버티기.

그런데 갑자기 든 의문.

왜 버텨야 하지?

정말로...왜 버텨야 하지?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필름


좋아하는 미술가를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몬드리안을 꼽는다.

그렇다고 몬드리안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composition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 시리즈에 담겨있는 색의 조합은 정말 멋진 유희다. 그렇지만 내가 그림으로 그의 작품을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색의 조합은 사진이 유일하다.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는 아버지께서 수십년 전에 쓰시던 pentax KX 로 당연한 말이지만 필름을 사용하는 SLR 이다. 오랫동안 사용 안해서 배터리 접지 부분에 녹이슬어 노출측정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흠이 있지만 그럭저럭 잘 사용할 수 있다.(시간 여유가 된다면 한번 A/S 를 받아야 할텐데.) 한가지 문제라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매우 훌륭한 스캐너가 주위에 없기 때문에 필름 카메라가 담아내는 사실적인 색감을 전혀 디지타이즈 할 수 없다는 사실. 위의 두장 사진역시 현상,인화를 거친 원본 사진의 색감에 비하면 정말 칙칙하게 스캔이 됐다. :-(

그렇다고 좋은 필름 스캐너를 사자니 괜찮은 DSLR 바디를 살 수 있는 돈이 나온다. 화각이나 색감 면에서 DSLR이 SLR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분명하지만 raw 이미지로 펑펑 찍어댈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필름스캐너냐 DSLR 바디냐. 색감이냐 비용이냐. 어려운 문제다. :-(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타이레놀

계절 중 여름이 무턱대고 좋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군입대 전까지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엔 여름이 좋았다. 아마도 그 시기가 가장 고민이 없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아예 없었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그래도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뛰고나면 간단하게 잊혀지는 그런류의 고민 수준에서 그쳤던 것들 뿐이리라.

름이 싫다. 왜? 라고 물어본다면 딱히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내가 여름이 싫다고 말했을 때 이유를 물어본 사람도 주위에 없다. 공감하거나, 공감의 필요성을 못느끼거나 혹은 무관심 하거나. 사실 그런 부분에 있어 내 행동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나도 혹은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여름이 싫다. 땀에 범벅이 되어 움직이는 것도 싫고 에어컨 바람도 싫다. 땀 한줄기로 털어버릴 수 없는 고민의 수가 점차 늘어난다는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차 적응을 못해 늘 새벽에 잠을 깨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번 여름은 상당수의 날을 새벽에 깨서 잠을들지 못해 고생을 했었다. 2,3시쯤 잠이 깼다가 간신히 잠이 들면 4,5시고 결국 아침에 늦어서 허우적 거렸던 날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그래도 5시 정도 까지는 시체처럼 잠을 자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걸까. 그렇지만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요즘 같아서는 일찍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생각과 상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게 뻔한 일.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힘들다. 대화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게 노력해야 가능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노역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참.... 굳이 따지고 들자면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된 고민이 이제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듯 하다. -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이 절정이라고. - 아마, 그래서 요즘 두통이 멎지 않는 것이겠지.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이틀전에는 타이레놀을 샀다. 태어나서 처음인 듯 싶다. 두통을 견디지 못해 내가 약국에 들어가 두통약을 산 것이. 한손에 들어오는 타이레놀 박스를 쳐다보면서 참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결론은 없다. 지금은 버티기. 그래 버티기.

면서 눈 질끈 감고 버텨야 할 시기가 몇번씩 있어왔다. 이런저런 다 필요없고 절벽끝에 선 사람처럼 온 힘을다해 버티고 서 있어야 할 시기가 있다. 앞으로 일보 전진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하게 버티고 서 있기. 지금은 버텨내야 할 시기다.

득 지리산 종주가 하고 싶어졌다. 중간쯤 너무 힘들어 졌을 때, 돌아가기 위한 길과 전진해야 하는 길이 엇비슷해서 어쩔 수 없이 버티게 되는 그 산마루 길이 너무나 그립다.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대한민국의 공교육

언론을 돌아보면,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그들은 말한다.
한국의 고교생들은 너무나 공부에 치어 산다고. 한국의 공교육은 죽었다 라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가엾기 그지 없다.

공교육의 개념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한,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그네들의 그런 마음가짐을 놓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나 역시 그 나이를 지날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때 내가 했던 공부는 공부도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천국이라는 환상을 갖고 미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아마도 1,2년이 지나기 전에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보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하는 나라이며 한국의 고등학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학생이 되기 이전에 이미 대학수준의 과목들을 이수해야 하며 그렇게 통과한 사람들 중 대학을 졸업하는 비율이 50% 가 채 못된다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그때문에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민들도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진실이 알려지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려야 할까?

2006년 8월 9일 수요일

나우누리가 그리운 날

가만히 머리를 들어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젠 몇가지 남아있지 않은 명령어들.

하지만 살면서 종종, 나우누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같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그곳에 대한 그리움.

아무리 똑같은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결코 그 당시의 나우누리와 같을 순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리운 것이겠지.

2006년 8월 2일 수요일

열대야증후군 [熱帶夜症候群]

구에게나 무기력함에 한숨을 내쉬다가 저녁을 맞이하는 날이 있다. 그리고 며칠간의 내가 그랬다. 오늘은 그나마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하기는 했지만, 내일도 그래야 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무기력함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리라.

랜시간 연락이 끊겨 있었던 친구와 얼마전에 연락이 되었다. 밥 한번 대접하고 싶다는 친구에게 아무말 않고 내 메일 주소만 적어 보냈다. 아직도 내게 미안함을 갖고 있다는 그 친구를 만나 무엇을 하겠는가? 사과를 받을 것도(또 그만한 일도) 아니고 언제쯤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오래전의 일을 다시금 꺼내들고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그때 이러저러 했었다고 추억을 곱씹을 것인가? 사과하기로 들자면 어디 그 친구만 내게 있을까. 나 역시도 똑같이 고개 숙이고 있게 될것을. 그런 상태에서라면 관심있는 것은 서로의 근황일게 뻔한데 만나서 얼굴을 마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글로 마주하는 것이 좋을때가 있다. 시간이라는 것은 때론 그런 모습이 어울린다고 나는 믿는다.

늦은 시간까지 잠드는 것을 거부하는 무기력증으로 인해, 그리고 조금 과하게 들어간 알콜의 기운을 빌어 온라인을 오르락 내리락 했던 내 흔적으로 인해 연결 고리가 생겨버린 또 하나의 인연에 불과한 것을. 아무리 더이상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말자며 발버둥을 쳐도, 길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것 이외에는 사람을 만날일이 없던 지난날들에 비해 온라인이라는 이 곳이 가져다 주는 다양성은 우리를 너무나 쉽게 사람들과 이어 버린다. 그저 나로 하여금 또다시 그렇게 지난날과 마주하게 만든 것이 날 그토록 괴롭히던 무기력 증이라는 사실이 우스울 뿐이다.

대야증후군 [熱帶夜症候群] 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불리는, 간단히 말해 더워서 잠 못자는, 현상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나를 지치게 만드는가 보다. 예년에 비해 유독 길었던 장마를 보상하듯, 딱 그만큼 끈적이며 그만큼 더운(그래서 매미 소리가 더욱 잘 어울리는) 여름이다. 유난히도 여름을 좋아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돌이켜 보기엔 일상에서 마주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음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순간이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지루함 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와 마주할지 모르는 기대감과 두려움 그리고 설레임이라는 작은 느낌이 가슴 한켠에 살아 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8월 1일 화요일

우울모드

제목 그대로.

우울모드.

아내가 곁에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밤.

답답하고 슬프고 한숨이 나온다.

2006년 7월 31일 월요일

인터넷 실명제

난 인터넷 실명제를 지지하는 쪽이다.

아무리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책임지는 분위기가 되어야 건강한 여론 형성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반대론자들의 주장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그들은 실명제를 실시하면 이로인해 온라인에서의 의견 개진이 위축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온라인에서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째서?

언론 및 표현의 자유가 있다 라는 것은 그것이 정당하기만 하다면 내가 하고싶은 말이나 생각을 남의 눈을 살피지 않고 주장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내가 누군지 숨겨야만 제대로 생각을 밝힐 수 있는 것을 그들은 언론의 자유라고 표현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들이 진정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걱정한다면, 실명제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명제를 실시한 이후 온라인에서의 정당한 주장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 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실명제가 실시되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을 건강하게 주장하고 토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로 펜에 의한 범죄는 칼에 의한 범죄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주먹으로 사람을 때린 것보다 칼로 찌른 것이 더 중한 처벌을 받듯이 말이다. 섣부른 추측기사로 한 개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언론사 기자는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감금, 고문을 한 경찰이나 검찰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하며 온라인에서의 근거없는 비방과 인신공격은 폭행죄보다 엄중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인터넷 실명제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2006년 7월 18일 화요일

비..그리고 고립

전국적으로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난생 처음 비에 고립이 되어봤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지붕으로 피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를 오가는 도로와 지하철이 모두 물에 잠겨 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출근도 못했었고...

인재가 되었든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되었든 이제는 그만 피해를 주고 장마전선이 물러갔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자연이 이처럼 호되게 굴지 않아도 사람들 그 자신들 때문에 충분히 힘들며 고된 시간이지 않은가.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남의 눈을 의식하기

난 개인적으로 선생이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겪어온 많은 선생들 중 물론 훌륭한 분들도 많았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서 알게된 많은 선생들은 내게 실망만을 줬으며 주위 친구와 선후배들중 선생을 하고 있는 이들 중에 내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사람은 한두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급한 학문적 수준은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보다 모르는 것이 당연한 나이어린 학생들을 상대하면서 스스로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처럼 인지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상식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어처구니 없이 처리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에게 어떻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불우이웃 돕기 성급을 걷은 후에 학교에서 가장 싼 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를 가진 아이에게 성금을 주는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는 아내 직장동료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를 들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사고로 죽고 장례식을 치르며 영정이 학교를 다녀간 바로 그날, 신나게 직원체육을 하여 제자들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은 사건이 뉴스에 떴다.

관련기사:
http://www.idomin.com/news/read.php?idxno=192309&rsec=MAIN&section=MAIN

답답하다. 학생을 가르침에 있어 소신껏,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지금껏 군사정권하의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선생의 가치였다면 이제는 제발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소신이 아닌 사회의 통념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작금의 선생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인 듯 하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남을 돕다

남을 돕는다는 것.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남들이 보면 무슨 컴플렉스라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여지를 충분히 줄 만큼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곤 했었다. 내가 조금만 시간투자를 하면 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내몰았다. 그래서 사소한 도움부터 달동네에 컴퓨터 보급하던 봉사활동을 하던 그시절 컴퓨터와 모니터를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 일도 그렇게 보람될 수가 없었다. 한양대학교 사회봉사단에서 교수님을 앞에두고 한양대학교 사회봉사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할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믿음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보다 강하게 들고 있다. '모르겠는데...', '글쎄...누구누구가 그 문제는 잘 알지 않을까?' 와 같은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 시간을 일부러 많이 투자해야 하는 바깥에서의 봉사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들. 내 시간을 5분만 투자하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에조차 손길을 아끼고 있다. 그 5분의 시간 조차도 아까울만큼 바쁘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일까? 흔히들 말하듯이....남을 돕는다는 것에 지친걸까?




2006년 6월 26일 월요일

K리그에 대한 축구인들의 구걸

세계인의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으나 우리의 월드컵은 모두 끝이 났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다음 월드컵을 위한 대책에 대한 논의로 뜨겁다.

그러한 논의중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바로 'K리그에 대한 관심만이 다음 월드컵에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는 식의 국내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에 대한 관심을 구걸하는 것이다.

반발이 있을 수 있으나 단어를 수정하진 않을 것이다. 난 그러한 행위를 구걸이라고 본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K리그의 K가 구걸의 영문 약자냐고 비아냥 거려줄 만큼 난 그 구걸이 싫다.

난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의 열성 팬이다. 퍼플크루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가급적 경기장을 찾아 내가 사는 지역으로 원정을 오는 대전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자 노력한다. 누가 내게 제발 대전을 응원해 달라고 사정해서가 아니라 내 발로 경기장을 찾는다.

남학생들이라면 학창시절 체육대회에 단골로 등장하는 반별 축구시합을 기억할 것이다. 반에서 대표 선수들을 뽑아 다른반과 시합을 하는 그것 말이다. 물론 모두가 다는 아니지만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반이 이기기를 바라며 응원을 한다. 지면 왠지 기분 나쁘고 이기면 기분이 좋다. 경기에 대한 몰입도 좋아 뛰는 선수들이야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라도 응원할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흐른다. 특히나 지고 있을때는 화살같이 시간이 흐른다.

내 친구들을 보면 적어도 K리그에 대한 관심과 몰입은 학창시절 반대항 축구대회만 못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K리그를 보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중에 프리미어리그 경기보다 경기력도 떨어지고 경기도 재미없어서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축구라는 것 자체를 다른 감정 없이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다 높은 수준의 경기를 관람하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 K리그 팬인 나조차도 이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 어째서 뭐라고 하겠는가? 그건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취미인것을. 이들을 욕하면서 먼저 K리그 운운 하는 것은 부끄러운 구걸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어째서 반대항 축구대회에 그처럼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사람들이 K리그에는 무덤덤 할까? 설마 학교 체육대회 축구시합보다 K리그의 경기력이나 수준이 뒤떨어 진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바로 '연고의식' 이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지역,나라를 대표하는 팀이 다른 단체,지역,나라를 대표하는 팀에게 지는 것이 정말로 싫어지게 만드는 그 연고의식 말이다. 관중을 이끌고 팀의 경기에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흥분하고 화내고 몰입하는 것은 경기력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연고의식이 가져오는 것이다.

나도 가끔씩 빅리그 경기를 시청하지만 그네들의 수준높은 경기에 감탄하고 탄성을 지를 뿐 대전의 경기를 볼 때 만큼의 절박함과 흥분은 없다.

K리그가 프리미어리그 수준의 경기력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하는 선수들은 빅리그로 빠져나가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므로. 하지만 축구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경기장을 가득 채운 열성팬들의 함성이 듣고 싶다면 가장 먼저 지역민들에게 팀에대한 연고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연고의식 없는 축구팬들에게 K리그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것은 구걸일 뿐이다. 어째서 내가 응원하지도 않는 팀의 경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단지 축구가 보고 싶은 것이라면 높은 수준의 경기를 TV 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연고의식을 만드는 것은 팬이 아닌 구단의 몫이다. 그러한 연고의식은 하루이틀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며 지역민들에게 그 구단이 정말로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때까지 오랜시간에 걸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당연히 지역민들이 그 팀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관심을 갖도록 이끌 수 있는 마케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팬들의 연고의식은 커녕 구단의 연고의식조차도 의심스러운 구단들을 여럿 보았다. 마케팅이 뭔지도 모르는 구단 관계자들도 여럿 보아왔다. 그처럼 자신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서 언론에서 K리그에 대한 관심 운운하는 것을 보면 난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사랑하는 리그를, 팀을, 어쩌면 함께 응원할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축구팬들로 하여금 비아냥 거리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어째서 K리그를 보지 않는 이들을 욕하는가?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팬들이 아니다.

축구인들은 더이상 구걸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프로축구리그를 학창시절 반대항 축구시합과 같은 수준의 연고의식을 갖는 리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경기력? 홈구장을 가득 채우고 함성을 질러대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을때 선수들은 결코 나태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2006년 6월 3일 토요일

Plasmons and Bear

요즘 늦게 들어온다며 불만인 아내를 토닥이느라 봐야할 책의 분량이 제법 됨에도 눈 질끈 감고 1시까지 시간을 보내 주었다. 뭐, 그다지 싫은 건 아니었다. 굳이 어느 쪽이었느냐를 구분하자면 좋았다...가 더 가까운 정도?

늘 그렇듯이 잠이 온다며 먼저 잠자리에 든 아내를 등뒤로 하고 스탠드의 불빛만 남겨 놓은 채 어둠속에서 책을 펴들었다. 어제처럼 3시쯤 자면 아침에 힘들텐데....하며 걱정이 드는 생각을 비웃듯 책상 한귀퉁이엔 맥주캔이 놓여 있다. 원래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내와 노닥거리는 와중에 무심코 딴 캔맥주가 어느덧 세캔째가 되고 있다.

그렇게 맥주 한모금 마시고 연필로 스슥 수식 전개하고를 반복하기를 1시간여. 술이 제법 오른다. 대충 상태를 판단했을 때 더이상의 공부는 효과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무리해봐야 뭐하겠나.

책을 덮고 한쪽에 밀어두었던 남은 맥주캔을 책 표지위에 올려놓았다. 책 표지는 Surface Plasmons 라고 적혀 있고 캔에는 Cass Fresh 라고 적혀 있다. 버드와이저 다음으로 좋아하는 맥주. 역시 공부는 술과 함께 시작해서 술이 적당히 오를때까지 집중력 있게 공부하는게 최고인 것 같다. 술이 오르고 나면?

술이 오르고 나면 과감히 책을 덮고 지금처럼 노닥거리는 수 밖에.

간혹 학부생이었을 때가 그립다. 그때는 새벽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나와서 술한잔 할 사람들이 무척 많았었는데. 지금은 그네들 모두 직장인이 되어 본인과 가족의 만수무강을 위해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어쨌든 보기는 좋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

취기와 수면욕구.

이제 나도 잠자리로 다이빙 해서 열심히 잠을 청해볼 시간인 것 같다.

2006년 6월 1일 목요일

6월...

정인 처형의 블로그에 5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나서 돌아보니 모든 시계와 달력은 지금이 6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까짓게 뭐 얼마나 중요한거라고 그렇게 칼같이 주장하는지.

아내는 침대에서 자고 있고 12시가 훌쩍 넘은 지금 시간까지 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늘 그렇듯이 맥주캔들만 책상에 쌓여가고 있다. 뭐, 그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책을 읽고, 시를 쓰고, 함축에 실패해 길게 글을 늘여쓰는 바람에 중수필이란 모함을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는가 보다. 6월.

6월....그래, 6월.

유난히도 가슴을 움켜쥐게 하는 사람들의 생일이 몰려있는 달이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왔다. 내 생일도 포함해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고,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랑했던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

요즘엔 글도, 시도 써지지 않는다. 괜시리 기억을 더듬어 봐야 감정만 복받힐뿐. 그래서야 글이 되지 않는것도 알면서....

2006년 5월 28일 일요일

필름 스캐너

어지간 해서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나지 않는 편인데...

최근 몇주동안 필름스캐너에 대한 욕심은 제법 난다.

참자. 내공이 제법 쌓일때 까지는. ^^

2006년 5월 24일 수요일

연애시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TV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 저린 느낌을 받았다.
본것보다 못본회가 더 많은 드라마. 그럼에도 이토록 와닿은 드라마.

루시트 폴 의 음악이 듣고싶은 밤인데 도저히 그 음반을 찾을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2006년 5월 18일 목요일

사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이라고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요즘들어 몸살나게 사진이 찍고 싶다. 사진을 생각하면 항상 고민에 빠진다. 이미 갖고 있는 pentax KX 를 그냥 쓸 것인가 아니면 DSLR 을 하나 구입할 것인가.

여러해 동안 사용할거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확실히 pentax 줌렌즈와 호환이 되는 DSLR을 하나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필름값과 현상비용만 따져보더라도 그리 만만한 돈은 아니니까.

어찌 되었든 이번 주말에는 카메라를 들고 한번 나서야 겠다.

2006년 5월 17일 수요일

아카시아

어느해 부터인가 아카시아 향기를 무척 좋아하게 됐다.

어제 아내와 인근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아카시아 향기가 무척이나 짙게 난다는 생각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아내도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는 잠시 미소.

어느덧 2006년도 절반을 향해 지나가고 있다.

2006년 5월 6일 토요일

Plug-In: Windows Gimp Deweirdifyer ::: zizukabi

Plug-In: Windows Gimp Deweirdifyer ::: zizukabi

디자인업에 종사하는 아내의 작업을 뒤에서 쳐다본 결과는 하나의 윈도우에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는 것보다 각각의 메뉴를 모두 별도의 창으로 만들어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좁은 화면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각각의 메뉴를 모두 꺼둔상태에서 작업을 하다가 필요한 메뉴가 있으면 단축키로 불러내서 사용을 하고 다시 닫아버리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더군요. 저도 평소 쓸때는 불편하다고 느꼈었는데 전문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분리가 되어 있는 것이 더 쓸모있는 것 같습니다.

2006년 5월 3일 수요일

공공기관 홈페이지의 국제표준화를 위한 행정소송 지지

http://forums.mozilla.or.kr/viewtopic.php?t=6767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대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계십니다.
그동안 수없이 문제제기가 되어 왔던 공공기관의 특정 플랫폼 종속 문제에 대한
첫번째 행정소송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당한 요구라도 메이저가 아니면 무시당하는 국내 분위기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동참합시다.


:: Love is a free bird: 기억되어 있던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음악

기억되어 있던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음악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는 법이고, 그래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한 것은 음악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음악들을 듣게 된다. 그중에는 가슴을 저미는 소리로 다가서는 것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삶을 버텨나가는 동안 그렇게 가슴시리게 들었던 음악을 잊고 살게 된다. 그 음악을 들을 당시에 겪었던 일들도 함께.

장소는 상관이 없다. 길을 걷다, 혹은 카페에서 혹은 TV 의 CF 배경음악으로. 기억속에 묻혀있는 그 음악이 들려오는 순간 "한꺼번에" 라는 말이 너무나 딱 맞을 만큼 그 음악, 그리고 함께했던 기억들이 넘칠듯한 홍수로 현실로 쏟아져 내려오게 된다. 슬픔, 기쁨 등의 감정들과 함께.

기억되어 있던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음악. 오늘은 퇴근후에 먼지가 수북히 앉아 있는 내 CD 케이스 박스를 뒤져봐야 겠다.


2006년 5월 1일 월요일

아내의 얼굴

요즘들어 난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내는 먼저 잠자리에 들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부쩍 많이 아내의 잠자는 얼굴을 볼 때가 많다. 사람의 잠자는 얼굴에는 그사람의 생활이 드러난다고 나는 믿는다. 인위적으로 표정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아내의 잠자는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행여 잠이 깰까봐 불은 켜지 못하고 창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미약한 불빛을 등대삼아 구석구석.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처럼 가슴 한켠이 아릴 수 있을까. 최근 심한 감기로 고생하는 아내의 얼굴은 결코 편안히 푹 잠든 얼굴이 아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늘 마음속에 있는 만큼 모든것을 해줄 수 없는 내 처지로 인해 안쓰러워 하던 터라 유난히 마음이 아프다.

분명 힘든 결혼 생활일텐데, 비좁은 단칸방도, 마음껏 쓰지 못하는 돈도, 쉽지 않은 시부모님과 조심조심 맞춰드려야 하는 친정 어머니까지. 어느것 하나 마음편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없을텐데, 그래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가슴이 아플만큼 사랑스럽다. 언제쯤 내 마음이 흡족할 정도로 아내에게 해줄 수 있을까. 아내의 잠자는 얼굴을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언젠가 운전을 하다 뜬금없이 아내에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결혼을 '누군가'와 하느냐 마느냐 의 선택에 대한 (내가 노력한다고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문제로 취급한다면 결혼에 대해서 만큼은 내 선택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이 선택을 위해서 지난 30여년의 시간동안 그 흔한 뽑기하나 제대로 뽑은적이 없었나 보다.


2006년 4월 30일 일요일

귀차니즘

이런저런 블로그를 검토하다 이곳으로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카테고리를 신경쓸 필요도 없고 내 블로그에 내가 원치 않는 이상한 문구나 링크들이 덕지덕지 붙는 것이 싫었고 또 (가장 중요한) 내 블로그를 내가 방문해서 글을 써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만들어 놓기만 하면 그저 메일로 두드려서 날려보내면 자동으로 포스팅 되는 시스템은 로그인과 게시판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이 있는 내게 정신없이 빠져들만한 요인이 되고도 남았었다.

그리고 오늘 야후의 flickr 서비스를 알게 됐다. 메일을 통해 사진을 보내기만 하면 자동으로 등록이 되는, 그리고 이를 blogspot 과 연계시켜 내가 링크를 걸어주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이 자동으로 보여주는 갤러리 블로그를 만드는 것도 성공했다. 그야말로 대 만족.

그런데 사람의 귀차니즘이란. :-(

글에 사진을 직접 넣고 싶을 땐 어쩔 수 없이 blogspot 에 로그인을 하던지 아니면 flickr 에 메일로 전송시킨 후 링크를 따오는 방법을 써야 한다. 이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런지. 사진과 함께 글을 쓸 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이왕 메일로 처리하게 해둔 거라면 사진 파일도 함께 처리되도록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2006년 4월 29일 토요일

사진 블로그 오픈

flickr 를 이용해서 blogspot 에 사진 블로그를 만들었다.

http://photos-kchoi.blogspot.com

사진찍는 일이 좀더 즐거워 질 것 같다. :-)


2006년 4월 27일 목요일

Dave & Rob Dircks - Acoustic Long Island

오늘 추가한 팟캐스트. :-)

정말로 마음에 드는 팟캐스트를 찾았다.

Piet Mondrian

http://www.artchive.com 에서 반가운 페이지를 찾았다.

다름아닌 Piet Mondrian의 작품에 대한 페이지였다.

몇해전에 몬드리안의 Composition No. 8 에 눈길이 머문 이후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의 시선을 거둘 방법이 없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에 빠진 것인지도. 직선과 교차점을 좋아하는 내 성격도 한몫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미술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 와 더불어 나중에 넓은 집을 갖게 되면 꼭 한폭 걸어두고 싶다.

여행이라는 것

( ANNA 님의 블로그 중 혼자하는 여행 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행은 많은 수의 사람보다는 적은 수의 사람이 적당하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혼자 다니는 여행이 가장 좋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여행이 아닌 단순한 관광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여행이라는 것은 내면의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이 얼마나 일상에 활력이 되는지는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기에 어딘가 가려고 하면 사람들을 모으고 혹은 합류해서 다녀오려 하고....그렇게 해서 다녀온 여행은 그저 함께 한 사람들과의 소통에 불과하다.

지난 십년의 세월동안 수없이 다녔던 여행중에 지금 이순간 유난히 국토종단을 하겠다며 걸었던 도보여행이 생각난다. 처음엔 통신수단이 없다는 것에 답답하고, 이후 며칠은 지난 과거에 대해 생각하면서 분노하거나 즐거워 하면서 지나가고 그리고 나서야 찾아왔던 눈길 닿는 곳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던 평온함. 아직도 그 느낌이 많이 그립다.

2006년 4월 26일 수요일

자연과학도

근 1,2년 사이에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게 있어서 물리학이라는 이 길이 박사학위를 받을만큼, 그런 노력을 들일만큼 큰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이 길을 걷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흥미있어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과, 그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난, 그런 능력에 있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돌아서야 하는가? 그 길고 긴 여정을 거쳐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 지금 이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면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보인다. 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자격 미달인 그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그리고 이미 받은 박사 학위를 달고 일선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내가 그들보다 모든면에서 우월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에 비해 많은 부분이 우월한 것도 아니다. 혼란스럽다. 분명,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은 있으되 많은 이들이 그렇지 못함에도 이곳에 발을 담그고 있다. 어느쪽이 정상인가.

흥미있어하고 즐거워 하며 반짝거리는 내 지성도 그 순간을 지나 무언가를 도출해 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해서는 빛을 잃는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는다고나 할까. 그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일이겠지. 나만 이런것인지, 다른 이들도 이런 것인지. 만일 다른 이들도 나와같이 능력의 한계를 깨달아 가며 가슴 답답해 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우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 때려치우고 오직 하나의 질문.

난 박사학위를 꿈꿀 능력이 되는가. 내가 보는 난 아니다. 그렇다면 남이 보는 나는?


2006년 4월 17일 월요일

예술과 디자인?

최근에 맥을 사용하면서 맥유저그룹(http://kmug.co.kr) 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껏 내가 활동하던 곳과는 다른것이 편집과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색다른 느낌을 받을때가 많다. 오늘도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원문 :원문링크

야근을 했습니다. 잠을 자기 전... 저 아래 디자인에 대한 얘기가 오가던 중
아티스트에 대한 얘기, 예술에 대한 얘기가 나와 소시적 고민했던 기억이 떠 올라 끄적이고 자 볼랍니다.


저는 미술대학 회화과 출신입니다.

회.화.과.

FineArt...

예술하면 떠 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환쟁이 하면 떠 오르는 것들...


세끼 꼬박 채워 먹는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지경이고

밥은 굶어도 술은 굶지 못하며

가끔씩 이해하기 힘든 말을 지껄이는가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버럭 화를 낸다거나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자기 그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림 그리는 자체만으로 좋다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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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략)

2006년 4월 7일 금요일

블로그, 이사

1년동안 도메인도 등록하고 호스팅도 받아서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결 론부터 이야기 하자만 그다지 좋지 못한 호스팅 업체였다. 안되는 것이 왜그리 많은지. 그렇게 이것저것 다 막아놓고 못하게 하면서 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면 누가 그런 사업을 못할까. 그런 서비스를 제공 받느라 돈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옮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국 이곳, blogger.com 으로 결정했다.(그런데 어째서 생성한 블로그들은 blogspot.com 이라는 도메인을 갖는지는 모르겠다.)

온 갖 기능을 제공하는 우리나라의 블로그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블로그다. 카테고리 생성도 안되고 일반 웹페이지 작성 기능도 없다. 그저 날짜별로 묶어서 꾸준히 아카이브 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밋밋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다름아닌 바로 그런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찾던 것은 최대한 내가 귀찮지 않고 내 글들을 차곡차곡 아카이브 하기만 하면 되니까. 분류하는 것조차 귀찮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로그에 로그인 하지 않고도 메일을 통해서 포스팅을 할 수 있다. 만세. :-)

그리고 보니 검색, 뉴스, 메일에 이어 이젠 블로그도 구글을 이용하게 됐다. 어지간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