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7일 금요일

퇴근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화정은 지하철 3호선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사가기 전까지만 해도 지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곳이며 그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 곳에 지금 살고 있고 제법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다름아닌, 화정까지 가는 지하철 3호선이다.

서 울 중심을 지나는 3호선을 따라 움직일때는 지금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압구정과 을지로를 가로지르는 도심지하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화정으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구파발을 기점으로 지하철 역간 거리가 3,4분 혹은 그 이상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경’ 이 달라진다.

빼곡히 들어선 빌딩들은 모두 사라지고 얕으막한 산과 들판, 듬성듬성 혹은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 단층짜리 민가들. 마치 어딘가 먼 시골로 내려가는 듯한 풍경을 불과 서울의 중심부인 을지로에서 20분정도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길은 신도시로 유명한 일산구로 향하는 노선이다.

난 이 구간들을 지나는 것이 좋다. 책을 읽다가도 구파발 역을 지나는 순간부터는 지하철이 땅 위를 달리는 순간순간마다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둑어둑해진 이후에야 별 수 없지만 적어도 해가 그 꼬리를 감추지 않고 있는 시간동안 만큼은 그곳은 복잡한 도시가 아니다.

어제는 줄곧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듯이.

비 록 해가 지기전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지만 벌써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흐린 하늘을 탓하며 창 밖의 풍경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은 바로 그런 와중에 찾아왔다. 이창국 님의 수필을 읽고 있었고 귀로는 Kevin Kern 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글을 읽어 나가던 그때 내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가 헤드셋에서 흘러 나왔다. To sleep on Angel’s wings 라는 곡으로 예전에 늦장마 라는 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었던 곡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곡은 부슬비가 내리는 풍경과 참 잘 어울린다. 어쨌든 그 순간 이 곡을 듣고 처음 썼던 ``늦장마’’ 라는 글이 생각이 났고, 이제 슬슬 비가 내리려나...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어둑어둑해져가는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그런것처럼 온통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산봉오리 하나를 중심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손가락 세개 정도의 넓이로 구름이 흩어져 있었고 바로 거기에서 붉은 노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주말 저녁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텅 비다시피 한 상태였고 그렇게 드문드문 서있는 사람들 어깨 사이로 자그맣게 흩어진 구름과, 노을이 있었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반가움은 무척 새로운 느낌을 준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유난히도 차분한 글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각적인 차분함을 아쉬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심 기대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풍경은 나에게 순간이긴 해도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읽던 수필의 글을 마저 읽고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 글의 마지막 부분을 마저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땐 놀랍게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불과 1분 정도의 사이였을까. 아마 지하철이 따라 움직이던 선로의 방향이 정확하게 서쪽을 향했으리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난 책을 덮어 무릎에 얹어두고 이미 노을을 볼 수 없게 된, 어둑어둑한 풍경만이 가득한 지하철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