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7일 수요일

세상은...

퇴근하려고 회사를 나서는 와중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와 놀다 들어올거라 좀 늦을 거라구요. 평소와 달리 집에오니 저 혼자더군요. 크리스탈 잔에 술을 반잔가량 따라놓고 한줌의 땅콩과 함께 제 아이맥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 틀어놓은 음반은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반입니다. 서울 시청 지하철역 “예음사” 에서 제작한 음반으로 다른곳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음반이죠.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들로 선곡해서 제작한 음반입니다. 5년전에 시청역 근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시청역을 오갈때마다 예음사에서 틀어놓는 음악들을 무척 좋아하며 들었었던 기억에 구입한 음반입니다.

가벼운 술한잔과 음악.

너무 좋군요.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TV 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TV 없이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TV 를 켜놓게 되고, 드라마를 보게 되고....조용히 술한잔과 함께 수필이나 시를 쓰거나 책을 읽던 생활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더군요. 결혼한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점이 많더군요. 하지만 가끔은...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히 누리는 것도 비타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그리고 단 둘이 아닌...식구가 여럿이 되는 그때가 되면 꼭 서재를 한칸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단은 당장 지금처럼 문 안쪽은 침실이고 반대편은 집 밖인 단칸방 생활부터 벗어나야 겠지요. 그래도...그래도 앞으로 몇년 후에는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문득 눈에 들어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았다며 전화로 투덜대는 아내에게 장미 한송이를 사들고 갔습니다. 5천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을 만큼 상관에게 스트레스 받고 입맛없어 했던 아내에게 해맑은 웃음을 짓게 할 수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


2005년 10월 7일 금요일

퇴근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화정은 지하철 3호선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사가기 전까지만 해도 지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곳이며 그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 곳에 지금 살고 있고 제법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다름아닌, 화정까지 가는 지하철 3호선이다.

서 울 중심을 지나는 3호선을 따라 움직일때는 지금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압구정과 을지로를 가로지르는 도심지하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화정으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구파발을 기점으로 지하철 역간 거리가 3,4분 혹은 그 이상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경’ 이 달라진다.

빼곡히 들어선 빌딩들은 모두 사라지고 얕으막한 산과 들판, 듬성듬성 혹은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 단층짜리 민가들. 마치 어딘가 먼 시골로 내려가는 듯한 풍경을 불과 서울의 중심부인 을지로에서 20분정도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길은 신도시로 유명한 일산구로 향하는 노선이다.

난 이 구간들을 지나는 것이 좋다. 책을 읽다가도 구파발 역을 지나는 순간부터는 지하철이 땅 위를 달리는 순간순간마다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둑어둑해진 이후에야 별 수 없지만 적어도 해가 그 꼬리를 감추지 않고 있는 시간동안 만큼은 그곳은 복잡한 도시가 아니다.

어제는 줄곧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듯이.

비 록 해가 지기전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지만 벌써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흐린 하늘을 탓하며 창 밖의 풍경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은 바로 그런 와중에 찾아왔다. 이창국 님의 수필을 읽고 있었고 귀로는 Kevin Kern 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글을 읽어 나가던 그때 내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가 헤드셋에서 흘러 나왔다. To sleep on Angel’s wings 라는 곡으로 예전에 늦장마 라는 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었던 곡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곡은 부슬비가 내리는 풍경과 참 잘 어울린다. 어쨌든 그 순간 이 곡을 듣고 처음 썼던 ``늦장마’’ 라는 글이 생각이 났고, 이제 슬슬 비가 내리려나...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어둑어둑해져가는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그런것처럼 온통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산봉오리 하나를 중심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손가락 세개 정도의 넓이로 구름이 흩어져 있었고 바로 거기에서 붉은 노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주말 저녁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텅 비다시피 한 상태였고 그렇게 드문드문 서있는 사람들 어깨 사이로 자그맣게 흩어진 구름과, 노을이 있었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반가움은 무척 새로운 느낌을 준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유난히도 차분한 글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각적인 차분함을 아쉬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심 기대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풍경은 나에게 순간이긴 해도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읽던 수필의 글을 마저 읽고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 글의 마지막 부분을 마저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땐 놀랍게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불과 1분 정도의 사이였을까. 아마 지하철이 따라 움직이던 선로의 방향이 정확하게 서쪽을 향했으리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난 책을 덮어 무릎에 얹어두고 이미 노을을 볼 수 없게 된, 어둑어둑한 풍경만이 가득한 지하철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

2005년 7월 7일 목요일

장마 시작

새벽에 잠에서 깼다.

예보되었던 것처럼 장마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밖에서 빗방울을 맞으면 멍이 들 것 같이 굵은 빗방울이 장대비로 내리고 있었다.

이랬었다.

장 마철의 비는 항상 이렇게 세차고 굵게 내렸었다. 드럼을 치듯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들의 소리를 들으며 작년 여름에도 이랬건만 어째서 잊고 있었는지 혀를 찼다. 그저 조금 귀찮은 수준의 비와, 장마비가 어떻게 다른지 왜 잊고 있었을까.

...

너 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마 작년 이맘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기 시작한 아버지의 몸속에선 암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한창 뜨거울 때 암 선고를 받으시고 그해 겨울이 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기까지...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잊고자 노력을 많이 했지만 사실 그게 어디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아직도 강변북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을때면 마지막 한가닥 희망을 잡아보고자 한방으로 해보자고 청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있는 한방 병원으로 올라오다가 강변북로에서 교통체증에 걸려버려 발을 동동 굴렀던 그때의 초조함과 안타까움이 떠올라 눈이 붉어질 때가 많은것을.

장마가 시작됐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 비가 그치고 난 후 연말까지 어머니와 내게는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아픈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로 힘든 시기가 되리라는 것이다.

2005년 5월 20일 금요일

상상


요 며칠동안 계속 한 ‘장소’ 에 대한 상상을 하고 있다.

바다와 바로 인접해 있는 곳이고 방파제 위로는 하얀 돌벽들로 둘러쌓인 집들이 가득한. 유리창 보다는 나무로 된 덧창이 어울리는...그런 집들이 가득한 해안가의 마을을 상상한다.

분명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어느 영화에서 보았거나, 혹은 만화영화에서 보았으리라.

어 쨌든 그런 상상속의 장소를 돌아다니며 난 꼭 한번 그런 곳에서 지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그리고 책상 앞에서. 갑작스럽게 그런 영상을 떠올리기 시작한건 며칠전부터 두번째로 읽기 시작한 냉정과 열정사이 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그 이야기들의 영향이.

이렇게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바래본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상상하기 보다는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겠지. 일은 너무나 바빠 하루가 부족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난 책 한권으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

오늘 새벽에도 3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난 지중해를 꿈꿨다. 어둡고 온통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만으로 가득한 그 좁은 곳에서 난 꿈을 꾸는 것도 아닌 상상에 파묻혀 있었다.

지중해의 어느 도시. 혹은 어느 섬.

언젠가 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실만큼의 그곳에서 몇개월이라도 삶을 누려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