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6일 일요일

어린왕자




“난 마치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여러해 전인 생땍 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왕자가 노란뱀에 의해 그의 소혹성 B612호로 되돌아 가기 전에 ‘나’ 에게 이야기 하는 말중 하나이다.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나이가 들수록 큰 감동으로 읽었던 소설은 몇개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 이 소설들 중에 가장 많은 횟수의 정독을 이끌어 냈지만 그 소설을 처음 접한 건 1996년 가을 이었고(그러고 보니 빌린 책인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원 주인은 돌려받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물론 그 소설역시 읽을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곤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몇년마다 한번씩은 꺼내서 읽게 되는 소설이라면 단연코 ‘어린왕자’ 이다. 지금껏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본다면 내 생에서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은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내 노트북을 켜면 로그인 화면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Welcome to minor planet B612

오늘 아침에 문득, 어린왕자의 여러 장면들이 생각이 났고 배경화면을 바꾼 김에 노트북의 이름까지 B612호로 변경했다. 지금껏 부르기 쉬운 명사로 해서 인격을 부여해 왔던 것에 비하면 부르기도 까다롭고 ‘어린왕자’의 내용에서도 나왔듯이 전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아서 이름조차 없고 그저 식별번호로만 불리우는, 그런 존재처럼 되어 버리긴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족감에 하루종일 내 노트북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했다.

공교롭게 지금은 홍순관님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 을 가사로 해서 부른 동명의 노래 ‘귀천’ 이 흘러 나오고 있다. 어린왕자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보니 참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달력을 보니 어느덧 5월이다. 이미 현재가 5월임은 알고 있었지만, 내 방 책상에 앉아 정면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아직도 4월이었다. 그리고 그에대한 반작용으로 난 현재가 5월임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인식하고 말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지난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에 나를 스쳐간 일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지금 내가 겪는 이 괴로움과 고통-내가 그 짧은 시간에 이처럼 변해 버렸다는 그 사실로 인해-은,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가려 했던 어린왕자가 겪어야 했던, 참아내야만 했던 노란뱀의 독인걸까. 그리고 지금을 견뎌내면, 소혹성 B612호를 떠나오던 그 시점으로 진정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상자안에 들어있는 양을 가지고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간 어린왕자처럼 나역시 내 방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끌어 않은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 한달간의 흔적들은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 것일까. 지울수는 있을까. 내가 잃은 것이 이토록 큰데도 불구하고 지울수는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난 ‘정말로’ 변했는가. 그렇지 않다면-그토록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지금의 이런 기만적인 느낌은 도대체 어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