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14일 토요일

Nowhere in Africa

언제부터인지 해가진 후의 노천극장에서는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온다.

한적한 휴일 오후나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앉아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된 듯 하다. 그게 한명인지, 아니면 몇명이서 부는 거라서 매일같이 부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은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 순간만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라볼 뿐 잠시후면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강하게 인상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노천극장 옆의 비탈길을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내려가다가 무심코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늦출 만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몇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조차도 귓가에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만큼 내 마음에 불쑥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있다. 조금전에 노트북으로 본 영화 때문에 더욱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Nowhere in Africa.

‘어바웃 슈미츠’ 이후에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접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면서 수확이 많은 것 같다. 비록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의 중요 장면마다 -정상적인 시점이라면 중요한 시점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지만 그런 장면마다 특정한 음향효과를 내는걸 보면 감독역시 의미를 부여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등장하는 나이어린 소녀의 허밍 두소절.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멈춰서서 들었던 오카리나 소리와 겹쳐서 들려왔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간혹, 몇해전의 국토종주때처럼 모든것을 잊고 그저 걷기만 했으면 싶을때가 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에 나오는 와타나베와 구미코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먼 곳으로 대학을 진학했듯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설속의 그들은 같은 시기의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또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당시의 나는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다는 곳에 왔다는 마음편안함 보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었으니까.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고, 같이 무언가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과 친해지는데 무척 서툴렀다. 그토록 필요성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맘편히 하기 시작한건 한학기가 지난 후, 더욱이 온라인 상에서 부터였을 만큼.

사람은 잊기 힘들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처럼 무작정 사람을 한명이라도 더 사귀고자 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왔던 사람들을 잊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6월은 그래서 내게 잔인한 달이다. 8일, 10일, 14일, 18일, 20일, 27일 에 걸쳐서 친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 연락할 수 없는 사람, 멀어진 사람, 그리움을 가져오는 사람등 생각이 떠오를때면 복잡한 심경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의 생일이 줄지어 있는 달이다. 한때 정말로 사랑했던 연인도, 정말로 가까웠던 친구들도 어째서 그들의 대부분은 6월에 생일을 갖고 있는 것인지. 덕분에 난 내 생일조차 6월에 있으면서도 6월이 싫다. 6월이 돌아오면 내가 절대로 떨쳐 버릴 수 없는 내 지난 시간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수면으로 떠올라 나로 하여금 과거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든다. 그들을 생각하다가 슬픔속에 빠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럴 나이도 아닐뿐더러 그만큼의 여림도 갖고 있지 않다. 나로하여금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그저 과거의 시간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내 발검음을 멈추게 하고 뒤돌아 보게 만든다. 이젠 그런것..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두가지 상반된 생각을 하게 만든 두 영화.

과거의 시간이 가져온 의미속에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떨쳐버린 후에 얻게되는 의미속에 살아야 하는 시간. 우리는 어느쪽이든 한가지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6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고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