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8일 금요일

Pen & Rain


중학교 졸업을 하던 그 해 겨울방학이 내게는 참 특별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항상 집에서 사주는 것만을 읽었던 아이에서 내가 읽고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에 가서 죽치고 앉아서라도 읽어야 하는 아이로 바뀌었고 그때문에 집에서 처음으로 등록해준 학원을 한달이나 빠져야 했다.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학원앞을 지나쳐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시내까지 걸어가 서점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서 책을 읽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그 서점의 출입구를 딱 막아 버리고 내가 그 안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을 때까지 나 혼자만 그 서점을 소유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책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시켜서가 아닌 혼자 쓰고 싶어서 처음으로 글 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수필이나 다른 것도 아닌 ‘시’ 였다. 멋진 시라는 것은 아름다운 어휘만을 골라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하나가득 내 생각에 아름다운 단어들만을 골라서 채워 넣었던...참 유치했던 시였지만 그 시로인해 난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절묘하게도 내가 진학했던 고등학교에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문학회가 있었다. 그리고부터 만으로 꼭 10년이 흘렀다.

그때 이후 내가 가장 많은 소재로 삼아왔던 사물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난 두말하지 않고 ‘비’ 라는 사물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감정이나 전반적인 풍경이 아닌 단지 어떤 사물 자체를 내 글의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 글의 가장 큰 소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난, 비가 온다는 것에 대해 유난히도 많은 감흥을 느끼는 것일가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비에대해서 나만큼의 감흥을 느끼는 것일까.

정말로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가 오고 있다. 며칠동안 오후의 햇살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낄정도로 날이 덥기도 했었고 다시 또 며칠은 머리를 빗기 신경질날 정도로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의 마무리인 것 처럼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항상 자연대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야 할 사람들도 모두 건물안으로 쫓겨 들어갔고 창문으로 내다본 곳에선 드문드문 한두개의 우산들만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복도쪽으로 나있는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비에 쫓겨 건물로 들어온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로 웅웅 거리는 낮은 메아리가 가득할거란 생각이 든다. 고작 한줄기 비가 한시간째 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런 기분이 든다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지금의 난...지난 수주일을 고민했던 것들, 아파했던 것들, 기뻐했던 것들 이런 모든 감정의 흔적들이 빗줄기에 씻겨 바닥으로 휩쓸려 내려가 버린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극도로 차분한 마음상태.

마음이 차분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유난히 향이 진한 원두를 골라 마시지도 않으면서 계속 향만 우러나고 커피 메이커를 켜놓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침대에 앉아 이불을 둘러쓴채 창 밖으로 들려오는 비의 흔적들을 듣는 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그 사람의 체취를 가슴 한가득 들여마시는 일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마음이 가라앉아 생긴 만큼의 여유공간을 행복이 가득차게 해주는...그런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런 차분함은 우울함과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흥은...우울함이 아닌 차분함이다.

2003년 4월 18일 오후 두시.

이유에 대한 상세한 근거를 들거나 상태를 묘사하기 힘든 마음의 차분함과 행복감에 젖어 비가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2003년 4월 6일 일요일

DAWN



아침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적용을 받지않는 일요일이다.

일어나긴 평소와 같이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한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이니까 신나는 음악을? 나한테 그런 음악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드디스크에 무작위로 들어있는 mp3 파일중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배의 컴퓨터에서 목록도 확인한하고 3기가 정도로 긁어온게 전부니까 아마 들어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 파일들은 잘 듣지 않는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 선배와 난 음악적 취향이 대단히 다르고 그런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이 일부러 모아놓은 음악 파일중에 마음에 드는게 많을리가 없다. 결국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파일들을 찾아야 했다. 실시간 음악방송 사이트들은 소용없다. 윈도우 전용으로 구성된 그 홈페이지들을 리눅스 환경을 사용하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Dawn.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벽, 여명 뭐 대충 그런 뜻이다. 다른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는 최근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리 정확하게 옮겨도 옮길 수 없는 것이 언어이다.

문득 창 밖을 봤고, 내 방 창문에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본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떠올렸다. 더욱이 눈이 덮인 서울의 새벽을. 서울은 대도시 답게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아마 어지간한 눈은 모두 내리다 녹아 버리겠지. 이 도시에서 소모해 버리는 열은 주위의 환경과 자연을 수십억번 바꾸고도 남을 만큼일테니까.

그렇게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새벽..이라는 단어가 아닌 dawn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중에 dawn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있던가? 우습게도 Third dawn이라는 부제로 발매된 온라인 게임인 Ultrima online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다지. 결국 웹사이트를 뒤지며 다녔다. 내가 기대했던 글이나 풍경보다 상업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검색 사이트에서는 의외로 새벽 기도회 같은 종교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지만 종교적 모임을 약간은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게는 그것들 역시 상업적인 사이트로 보였다. 결국 글은 포기하고 사진검색을 통해서 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새벽사진이 아닌, 황혼과의 구분이 가지 않는 사진.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이 둘일 수 없고 극한의 고통과 쾌락이 다른것일 수 없다. 그리고 여명과 황혼이 다를 이유도 없다. 시각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난 서로다른 두가지가 동일해 보이는 현상을 좋아한다. 그런 상황을 즐기고, 나 또한 그런 상황을 만들고자 애쓴다. 아쉽게도 이런 상황은 쉽게 만들어 지지 않으며 그 시간도 극히 짧다. 여명과 황혼이 구분가지 않는 시간이 하루를 통털어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할 듯 싶다. “같다” 라는 말은 시간이 아닌 순간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연속적인 시간속에선 그 어떤 것들도 서로 같을 수 없으며 순간속에서 같은 것들이라도 순간이 반복되면 결국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5년전의 나와 같은가?

며칠동안 나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이다. 변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그런 외향과 성격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느낌’ 이라는 것의 변화를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황혼과 같은 느낌의 새벽을 보고 기뻐하듯, 수년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후 다른 사람이 날 보고 달라진 내 말투나 모습등의 너머에서 수년 수십년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날 되돌아 봤을때 낯선 누군가가 놀란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내가 훗날 날 알던이를 만났을때 그가 처음보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렇게 날 바라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