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6일 일요일

쵸콜렛 우체국

어느덧 2월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매년 그렇지만 이맘때가 되면 난방이 되지 않는 건물은 건물 안이 밖보다 훨씬 춥다. 해가 제대로 들지 않는 위치의 경우라고 한정을 지어야 하지만 내가 지내는 곳은 한낮이 되도 해가 정확하게 드는 정남향은 아니기 때문에 제법 추위를 느낀다. 그리고 커피를 한잔 하러 건물 밖에 있는 벤치에 나와 앉을 때마다 오히려 밖이 더 따뜻하다는 사실에 문득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입춘도 지났고 이제 경칩만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봄이 오고 있다.

밤이 제법 늦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자취방에 돌아와 창문을 열어놓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창문이 활짝 열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시간에 창문을 열어두고 있을 수 있게 된게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시원해서 무척이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한밤중에 상쾌함을 느낀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표현이 없겠지만 냉기가 묻어나는 아침의 상쾌함보단 요즘이라면 차라리 밤늦은 공기의 상쾌함이 더 깔끔하다고 난 믿는다. 어쩌면 그러한 기분좋음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음악이 있었으면 싶지만 리모콘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움직이기 귀찮다. 그냥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소음을 음악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아직도 참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구나 싶다.

온 세상이 쵸콜렛으로 뒤범벅이 되는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쵸콜렛을 포장하기 위한 바구니와 상자들이 더 난리지만. 팬시점 들을 지나가다 보면 거리에 하나가득 내놓은 발렌타인 데이용 바구니와 상자들 때문에 시선을 잠깐씩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SIMPLE” 이라는 영어 단어로 표현이 가능한 내 기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 복잡하고 화려한 바구니로 치장된 쵸콜렛 보다는 쵸콜렛 자체를 그냥 깔끔하게 포장해서 받는 선물이 더 좋을 것 같다.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처럼 발렌타인 데이의 쵸콜렛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제부터인지 쵸콜렛을 주고받는 날이라기 보다는 쵸콜렛을 얼마나 화려하게 포장해서 주는가가 중요해진 기념일이 되고 만 것은 개인적으로도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그런것은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그 내면보다는 겉의 화려함과 치장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곁에 가까이 할 생각도 없으니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던 적던 나와는 별개의 일이다.

얼마전에 장거리 버스를 탈 일이 있어서 터미널에서 Paper 라는 잡지를 샀다. 온통 날적이같은 문체로 이루어진 잡지. 한때는 대학가에서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4천원이 육박하는 가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격을 보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려있는 내용들이 좋은 것들이라는 생각에 그냥 눈을 질끈 감고 5천원짜리 지폐를 내밀어 잔돈과 함께 돌려 받았다. 출발하는 버스에서 펴본 첫 인상은 반가움. 변한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구나..라는. 그냥 가볍게 넘어가는 페이지들 사이에서 내 눈길을 잡아끈 기사가 있었다. 제목은 쵸콜렛 우체국. 누군가..과거의 누군가에게 쵸콜렛을 배달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 소녀들이 아니라(이들은 반드시 배달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겠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든...사람을 만나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본. 그리고 그런 만남과 이별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면 어떨런지. 난 그 글을 읽고나서 한참을 버스의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봤다. ‘아, 누구에게 배달시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이 사람에게 배달을 시켜도 될까..’ 라는 걱정. 마치 그 글의 주인공이 예전의 그녀에게 쵸콜렛을 배달시키라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는 것처럼 내 기억속의 누군가에게 현재의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망설여 지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에 지연이가 내게 빌려갔던 CD를 돌려주기 까지가 5년이 걸렸던 것일테고. 우스운 일이다. 고작 지어낸 동화같은 이야기를 읽고서 그렇게 진지한 고민을 했다니.

결론은?

난 배달시키지 않는다. 내가 머리속에 떠올렸던 그와 그녀들이 내게서 그러한 선물을 받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기꺼워 한다고 해도 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혹은 그녀들은) 내 추억속에 있는 사람들이고 현재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혹 그 동화같은 이야기에서 처럼 5년, 10년전의 내가되어 5년, 10년 전의 그들에게 배달을 시킬 수 있다면 또다시 고민에 빠져야 하겠지만.

오늘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는길에 길거리에 있는 우체통을 우연히 봤다. 예나 지금이나 붉은색인. 간혹 연말,연초면 밀려드는 연하장등으로 특별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바빠지는 우체국 집배원들의 이야기가 특집 프로로 TV에서 방영되곤 했었다는 생각이 난다. TV를 접하지 않으면서 살게된지 무척 오래되긴 했지만 요즘엔 그런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누군가에게 소포를 보내본게 언제였지? 1년은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도 아직까지 그렇게 각박하게 사는건 아닌가 보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그녀’ 에게 이번엔 쵸콜렛을 배달시켜 볼까? 과거의 사람이 아닌 그녀는, 내게서 받는 쵸콜렛을 손에 들고 무척이나 기뻐해 줄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