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6일 토요일

Calling you

I’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m calling you.
I know you hea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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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너무나 슬픈 바그다드 카페의 OST 중 하나인 calling you.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머리속을 지배해 버린 멜로디지. 나만 그런것은 아니겠지? 아침에 눈을 떴을때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하루종일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말이야.

지금은 저녁 7시이고 연구실이야. 연구실에 나와있던 선배와 둘이서 저녁을 시켜먹고나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일요일의 일상은 참으로 단조롭지. 아침에 일어나서 주중에 거의 하지 않는 세탁물 정리를 하고 방안에다 널지. 어딘가 볕이 잘 드는 곳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방이 그런 공간을 갖고 있지 않고 더욱이 방이 북향이라 바짝 마른 옷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어. 마르지 않는건 아니지만 햇볕에 잘 마른 옷과 그냥 마른 옷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거든.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컴퓨터로 영화를 한두편 보다가 점심을 먹고나서 학교에 올라왔어. 특별한 약속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날은 이렇게 별 일 없이 학교에 올라와서 시간을 보내곤 해.

그리고 그렇게 학교에 와서, 다시말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오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Calling you 의 mp3를 찾아다닌 것이지. 워낙 유명한 곡이라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랄까.

간혹 음악에 취해있을때가 있어. 이것저것 한다기 보다는 하나에 몰두하는 성격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다른 곡을 듣지도 않고 그 곡만 계속 반복해서 듣지. 가장 처음은 조지윈스턴의 December 앨범이었어. LP 였는데 판에 기스가 날때까지 반복해서 들었지. 이후에 CD로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사지도 못하고 있다. 그 LP를 샀던게 내가 중학교때인가 그랬을텐데 말이야.

오늘은 하루종일 이 곡만 듣고 있어. 처음엔 멜로디에 취해서, 그 다음엔 가사에 취해서. 그리고 지금은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취해서. 언제 여건이 된다면 비디오를 빌려서 보든 DVD를 빌려서 연구실 사람들과 주말에 같이 보든 해야겠다.

짙은 회색과 어둠과 함께 깔리는 노을의 짙은색은 언뜻 생각하기에 비슷한 느낌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둘은 확연하게 다르지. 우울함? 절망? 슬픔? 글쎄... 이 노래와 영화에 스며있는 감흥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지. 단순하게 읽어보면 오히려 절망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양귀자님의 “희망” 이 내용을 음미하면서 두번째 읽을땐 그 이면에 숨어있는 희망에 대한 처절하리만큼 간절한 바램으로 인해 눈물이 날 것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마치 우유의 단맛을 확실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설탕이 아닌 약간의 소금을 넣는 것이라고나 할까? 설탕을 넣어서 단맛이 나는 우유와 소금으로 인해 우유 자체에 있던 단맛이 더 강조되어 나타나는 맛과는 확연하게 다르지.

살면서 감미로울 수 있는 방법은 참 많다고 생각해. 문제는 그러한 감미로움들이 그다지 오랜 시간을 가지 못해서 그렇지. 그래서 어떠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을 것임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위가 생겨났겠지. 만족에 비해 상실감은 곱절의 시간을 지배하기 마련이니까.

...

나는?

...

그리고 너는?

...

누굴 부르고 있는걸까,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짙은 물감으로 채색되어져 가고 있는 너의 캔버스는 누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2003년 11월 16일 일요일

Kiss the rain

[ Boris Blinov, Rain, 1997]

비에 어울리는 음악은 흔하지 않다.

곧게 내리는 그 형상만큼이나 비는 소리를 동반한다. 창문 너머로, 혹은 캔버스의 저편에서 보여지는 비는 마치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듯 그렇게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소리로 모습으로.. 그렇게 비는 우리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가끔씩, 비는 그러한 소리를 내게 보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적절한 음악이냐가 어려울 뿐이다. 단순히 비올때 들을만한 음악이라면 당장이라도 수십곡을 댈 수 있겠지만 비오는 것을 보고있는 바로 그 ‘순간’에 어울리는 곡은 그런 음악들 중에서도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림속 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는 일상은 바로 그러한 ‘순간’ 이지만 음악은 ‘순간’이 아닌 ‘시간’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비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은 날은 이처럼 기쁜 것이겠지만.

가을은 비가 온다는 사실이 상쾌함보다는 우울한 분위기를 내는 계절이지만 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으로 비의 소리를 대신하고 누군가와 함께 거리를 거닐 수 있다면, 가을비라는 단어가 주는 감성이 그렇게 우울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Boris의 그림속 두 남녀의 옷차림과 풍경은 쌀쌀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이 그림이 따뜻하게 보이는건 아마, 그 둘이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Kiss The Rain.

언젠가...그 언젠가가 ‘지금’ 이 되는 그 날엔 바람이 불지 않아 곧게 선을 긋는 차분한 가을비가 내리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인걸까?



2003년 10월 26일 일요일

Puzzle


가끔씩은...맞지 않는 조각때문에 고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잡고 있다 보면 결국은 완성되는게 퍼즐 맞추기이다.

...

하지만 이런 퍼즐 맞추기에 가끔씩 비교되는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은 퍼즐 조각이 몇개씩 없기도 하고, 똑같은 조각이 몇개씩 있기도 한 법인가 보다.

2003년 10월 19일 일요일

Omnibus



이틀간 하늘을 어둡게 하던 비구름이 물러갔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울의 마천루 사이로 파란 하늘과 상쾌할만큼 차가운 공기, 그리고 당연하지만 따가운 햇살이 여름의 초입을 그려내고 있다. 여름이라기 보다는 늦가을 차가와지는 공기와 따가운 햇살의 마지막 경주를 보는 듯한..그런 모습이다. 유일하게 그때와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나뭇잎의 색이 점점 푸르러 지고 있다는 사실뿐.

지금은 7시가 조금 넘은 저녁 시간이고 아직도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저녁이 항상 그렇듯이- 한낮의 뜨거움을 긴 아쉬움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반팔을 입기엔 조금 쌀쌀한 바람이 뜨거워진 아스팔트를 식혀주며 상괘함을 전해주고 있다. 마치 Kevin Kern의 음악을 듣는 듯한 경쾌함과 함께.

지금의 이 순간을 사랑한다.

의무감에 해야하는 일도 없고, 누군가와 만나야 하는 약속도 없는 저녁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고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는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을만큼의 상쾌함이 밀려들고 있고 스피커에선 요란스럽지 않은 경쾌함이 흐르는 지금의 이 시간을.

현재가 경쾌하며 편안한데 굳이 과거와 미래로 아픔과 희망을 떠올리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소리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때 삽입곡의 선율을 따라가느라 눈앞의 화면을 놓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영화의 장면보다 영화음악과 그 음악의 분위기를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려서 어머니께 받은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영화인 ‘미키 마우스’ 와 ‘딱다구리’를 볼때면 어머니께선 옆에서 항상 배경으로 나오는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또 집중해서 들을 것을 요구 하셨었다. 대부분이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었는데 그때문에 내가 지금의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는게 타당한 설명이겠지. 음악을 들어도 여러 장르의, 여러 음악가의 음악을 듣는 것은 못한다. 한가지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그 선율에 내 감정이 따라가기 때문에 여러 분위기의 여러 음악을 들으면 내 감정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때면 특정한 한 곡만, 그게 조금 지루해지면 한 음악가의 음악만을 듣는다. 그리고 곧 그의 색에 내 감정의 색을 맞춘다. 그게 어떤 색이든.

육성이 들어간 음악, 즉 노래 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내게 있어서 말은 글이며 글자이다. 음악은 소리로만 호소해야 한다. 하지만 노래는 가사가 있고 그런 노래에서 가사의 비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난 그런 음악이 싫다. 가사가 있다는 것은 느낌이 아닌 명확한 개념의 전달이기 때문에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속으로 그림을 그릴수도, 손가륵을 움직여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선호하는 곡들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연주곡이다. 진짜 멋진 음악이라면 선율만으로 작곡가나 연주가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화랑에서 그림을 볼때 그림의 아래에 작품설명을 자세히 붙여 놓는 것처럼, 멋진 선율을 갖고 있으면서 가사를 더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Kevin Kern은 참 멋진 음악가이다. 밤에 혼자 듣고 있으면 한없이 우울함속에 빠져들게 하는 몇몇 뉴에이지 음악가들과 달리 그의 음악은 따뜻한다. 밤에 혼자 듣고 있으면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사랑을 받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난 아직도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서툴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것에 익숙해 진것도 아니지만 마치 하늘 사진을 찍기 위해 하루종일 하늘을 바라보고만 살 수 없는 것처럼 언제 줄지 모르는 상대의 사랑을 잘 받기 위해 늘 그만을 바라보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어렵다. 최소한 주는 것은 내가 주고 싶을때 줄 수 있지 않은가.

난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들의 눈빛을 사랑하고 그들의 손끝에서 전해져 온 편지를 사랑하며 그들의 미소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 그들이 내게 주는 그 마음만큼 받아주질 못한다. 주는 만큼을 받지 못하고 덜 받거나 더 받고자 하면 상대가 손쉽게 내가 거북해 한다고 느끼거나 지나치게 요구한다고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있을까?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하고, 마음껏 사랑을 받아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있을까?

지금의 이 행복한 마음의 한귀퉁이를 떼어주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2003년 10월 16일 목요일

바람의 소리


형태가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환상 이라고도 부르고 혹은 신기루 라고도 부르지만 어쨌든 그 이면에 따라다니는 근본적인 바램은 형태가 없는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형상을 부여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바램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옛 이야기속의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간혹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물로 인식이 되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그러한 바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사물로 ‘바람’ 이 있다.

바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다. 누군가 바위를 굴린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공기가 기압차에 의해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을 부여해서 부른다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공기’ 라는 존재의 흐름에 의미를 부여했고 ‘바람’ 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이름을 부여했기에, 바람은 우리에게 고정된 감상과 형태에 대한 인식을 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에대해 우리가 익숙해질 정도로.

바람은 생명을 키우고, 기온을 유지시켜 주며, 간혹 모든것을 부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 를 낸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고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임을 고려해볼 때 그 매질 자체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다.(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연과학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

바람이라는 것이 고정된 형상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기에 따라 ‘바람의 소리’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람의 소리라는 것은 없다. 바람이 무엇인가에(관악기가 될 수도 있고 대나무 숲이 될 수도 있는) 휘돌아 가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바람만 있다고 해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바람의 소리 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음색과 음향을 갖고 있을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작된 사색이 그것의 색과 향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미소와 고개짓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긴 하지만.
무작위로 틀던 음악들 사이에서 오늘 잊고 있던 ‘바람의 소리’ 를 찾았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분명한 이유를 떠올리게 하는 모순된-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같은 곡을 한시간동안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한번의 동작이면 되었을 것인데도.

다른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을때 기쁜 것이겠지만.

난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고,그의 행동을 이해했고,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 자신이 납득을 했고,그래서 이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참 공교롭게도 연구실 선배가 지금 옆에서 calling you를 틀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공교롭다 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인지.

듣고있니?

내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듣고있니? 그리고 이해하니?

슬픔의 원인은 그것이 아닌데...그로인해 떠올린 일에 대해서는 막상 아무런 슬픔도, 기쁨도 혹은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조차 없다는 것이 슬픈것인데 어째서 난 슬픔속에 자꾸 그 일을 밀어 넣으려 하는 것일까? 정작 그 일은 이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건만.


2003년 10월 6일 월요일

7년

어렸을 때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집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던 시기부터는 단 한차례도 이사를 가지 않았고 그나마 이사를 다녔던 시기도 걸어서 30분 안쪽의 동네들 안에서(적어도 내 기억에는) 다녔던 것이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수년만에 찾아왔을때의 느낌 같은건 경험에 없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오늘 난 그런 경험을 했다.

95년 겨울부터 96년 겨울까지 정말로 많은 횟수를 찾았던 동네를 오늘 다시 찾아 갔다. 처음으로 그 동네를 찾아갔던 것과 비슷한 시간대에 두번째 찾아갔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7년전에 걸었던, 그리고 유난히도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길, 골목등이 다시금 눈에 띠면서 느끼는 감정들. 그건 반가움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그곳이, 비록 골목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가게들은 변했지만 풍기는 느낌과 구조가 변하지 않은채로 그냥 있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괜스런 즐거움에 주위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만들 정도로.

언젠가의 글에도 썼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감정의 해석이다. 7년전에 겪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한 지금의 내 감정이 평온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 곳의 기억이 반가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좀더 과거였다면 그건 굉장히 괴로운 풍경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더욱 확실하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흐름과 무관하게 반가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애써 그러한 즐거움을 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무엇이 지금의 날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분명 납득하기 어려웠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이해하고-납득해 버리는 이 모습은. 그리고 덕분에 난 나쁜 기억이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금 이순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물론 먼 훗날 지금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어째서 그때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는지를 화낼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건 현재지 미래에 내가 어떻게 느깔까를 고민하는 건 미래의 나한테나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난 즐겁고 편안하다.

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는 훨씬 춥기도 했지만, 그때 두리번 거리며 걸었던 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건 좀 복잡한 질문이다. 사람이 변했는가는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 그 사람의 모든면을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그때와 다른 모습인지, 아니면 그때도 있었는데 내가 못느꼈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7년의 시간동안 내가 많은 부분에서 변했듯이 다른 이들도 변했으리라 생각을 한다. 그 모습이 내가 느끼기에 좋은 쪽인가 나쁜 쪽인가는 이런 논의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 사람과의 만남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턱이 얼어버릴 것 같던 추위와, 난생 처음 들이켜본 소주병 나발에 대한 기억과, 20층을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그리고 올림픽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처음 먹어봤던 돌같이 딱딱했던 과자에 대한 기억까지.

넘치는 과거의 기억속에 휩쓸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릴 것 같은 밤이 다가오고 있다.

2003년 10월 5일 일요일

하늘빛



어렸을 때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하늘색' 이라는 색이 있었다. 옅은 파란색이었을 뿐인데 그 크레파스에는 분명하늘색’이라고 적혀 있었고 모두가 하늘을 칠할 땐 그 크레파스를 이용해서 색칠을 했기 때문에 항상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종류의 크레프스들 중 하나였다. 주황색을 놓고 가끔 오렌지색이나 귤색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색은 옅은 파란색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부르지 않고 항상 하늘색 이라고 불렀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하늘은 고정된 색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시각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카멜레온의 색이 무슨 색이냐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은 항상 옅은 파란색이라고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에 오기까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아리 후배 한명의 아이디를 접하기 전까지 내게 있어서도 하늘색은 그저 고정적인 색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 그림대회에 억지로 나가면 특이하게 그리는 것이 입상에 유리하다며 손발은 크게, 사람 얼굴이나 다른 색은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르게 그리도록 강요 받았을 경우에나 다른 색으로 칠했을 뿐이다.

그 후배의 아이디는 내가 하늘색 이라고 느끼고 있던 색과 어찌보면 같은 뜻이지만 어감은 전혀 다른 단어인 `하늘빛’ 이었다. 한번도 하늘의 색을 `빛’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표현을 접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그 단어는 무척이나 싱그러운 느낌으로 찾아왔다.

하늘색 과 하늘빛

하늘빛은 고정적이지 않은, 단순한 크레파스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크레파스 하나로 칠할 수 있는 하늘색 처럼 빛을 흡수해서 색을 내는 물감이나 크레파스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샐로판지처럼 빛을 투과시키는 성질에 의해 표현되는 그런 빛이다. 오늘 하루종일 고민을 했다. 하늘빛 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가 될 것인가. lucid 정도면 적당할까.

가을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며칠째 서울 하늘이 스모그를 벗어 던지고 있다. 그저 파란색뿐이 아닌, 햇살로 인해 반짝거리는 느낌마저 주는 그런 파란색. 이럴때가 `하늘빛’ 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때가 아닐런지.

어느새 야경이 멋지게 펼쳐지는 시간대가 되어 있다. 무심코 지어지는 미소. 이 역시 하늘빛 의 한가지가 아닐런지.

2003년 9월 26일 금요일

늦장마

어느덧, 매미소리가 잦아들어가면서 귀뚜라미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인식시키기라도 하듯,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비가 오고 있다. 혹자는 늦장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여름의 마지막 인사가.

유난히 더운날이 적었던 여름이었다. 온 세상이 떠내려 갈 것 같은 폭우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던 열대야도 없었다. 더울만 하면 비가 내려 이 도시의 열기를 식혀버리고, 그렇다고 긴 장마를 지나치지도, 여느해처럼 쉴새없이 올라오는 태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이 태풍이 일본열도로 갈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인지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 보듯 했던 시기도 없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참 “조용히” 지나간 여름이다. 남부지방은 비피해도 제법 있었다지만, 내 체감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인식하려 애쓰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지나가던 여름이 아차 싶어서 늦게나마 장마를 불러오고 있는 이유가. 며칠째...근 일주일이 넘도록 우중충한 하늘과 연일 쏟아붇는 빗줄기를 봐야만 했다. 공식적인 장마철에마저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서울 하늘의 먼지들이 많이 씻겨졌는지, 간간히 개인 하늘은 가을하늘이 무색할 만큼 파랗고 예뻤다. 지나치게 많이 나온 수리비 견적으로 수리를 포기해 버린 내 카메라가 아쉬울 만큼..그만큼 예뻤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다. 이 비가 끝나고 나면 이제 가을이 시작될 거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내어 말한다고 구박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사랑과 같이 다 아는 사실도 소리로 변화시켜 내보내야만 다가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그냥 멀어져 버리는 것들도 있다. 다시금 다가오긴 하지만, 계절은 분명..그런 존재다. 입밖으로 내지 않으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쳐서 멀어져 버리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매년 가을이 오면, 난 계절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계절을 멈추고 싶다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계절이라는 것을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

지금의 난 어떤가?

혼란스럽게 찾아온 2003년. 그 절반-6월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분명 한해의 절반은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다-을 보내고 있는 지금은 정 반대로 참으로 차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감흥은, 차가와 지는 공기속에서 구체화 된다.

지금의 난, 더할나위 없이 평온하다. 그 사실이 너무나 행복할 만큼.

2003년 8월 6일 수요일

매미


한달인가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라고. 그러면서 고향 집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정말 우습게도, 그런 생각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 기다려지던 매미 울음소리, 바람이 불때마다 들려오는 커다란 활엽수들의 음악까지도. 그저 덥다는 생각과,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구실과 집을 오갔을 뿐이다.

깨달음은 순간에 찾아온다.

책을 한권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나오기 위해 도서관의 회전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랄만큼 커다랗게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뒷사람이 회전문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내 등을 가볍게 밀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난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채 멍하니 서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매미 울음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것이. 혹시 내가 도서관에 들어갈때까지는 매미들이 울지 않고 있었다가 공교롭게도 내가 도서관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맞춰서 울기 시작한걸까? 상식적으로 그럴 확률은 너무나 작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지금 내 방의 달력이 아직도 6월인 것처럼, 난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 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만큼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1999년 겨울이 다가오는 것 역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고 이번에는 2003년의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면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력이 한달전것이니 양호한 편이다. 심할때는 세달 전인 경우도 있었으니까.

시간이 이토록 의식의 뒷면을 타고 몰래 흘러 버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다. 누가 했던 말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은 돌아보며 아쉬워 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쳐 보내야 할 대상이다. 어느책에 나와있는 말인지는 아니까 누구의 말인지 마음만 먹으면 정확한 문장과 함께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온 세상을 덮어 버릴듯이 울어대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고향집에 한번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의 토토로 에 나오는 그런 멋진 집은 아니지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등나무 덩쿨 그늘을 즐길 수 있으니까. :-)

2003년 7월 6일 일요일

어린왕자




“난 마치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여러해 전인 생땍 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왕자가 노란뱀에 의해 그의 소혹성 B612호로 되돌아 가기 전에 ‘나’ 에게 이야기 하는 말중 하나이다.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나이가 들수록 큰 감동으로 읽었던 소설은 몇개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 이 소설들 중에 가장 많은 횟수의 정독을 이끌어 냈지만 그 소설을 처음 접한 건 1996년 가을 이었고(그러고 보니 빌린 책인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원 주인은 돌려받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물론 그 소설역시 읽을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곤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몇년마다 한번씩은 꺼내서 읽게 되는 소설이라면 단연코 ‘어린왕자’ 이다. 지금껏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본다면 내 생에서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은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내 노트북을 켜면 로그인 화면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Welcome to minor planet B612

오늘 아침에 문득, 어린왕자의 여러 장면들이 생각이 났고 배경화면을 바꾼 김에 노트북의 이름까지 B612호로 변경했다. 지금껏 부르기 쉬운 명사로 해서 인격을 부여해 왔던 것에 비하면 부르기도 까다롭고 ‘어린왕자’의 내용에서도 나왔듯이 전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아서 이름조차 없고 그저 식별번호로만 불리우는, 그런 존재처럼 되어 버리긴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족감에 하루종일 내 노트북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했다.

공교롭게 지금은 홍순관님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 을 가사로 해서 부른 동명의 노래 ‘귀천’ 이 흘러 나오고 있다. 어린왕자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보니 참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달력을 보니 어느덧 5월이다. 이미 현재가 5월임은 알고 있었지만, 내 방 책상에 앉아 정면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아직도 4월이었다. 그리고 그에대한 반작용으로 난 현재가 5월임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인식하고 말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지난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에 나를 스쳐간 일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지금 내가 겪는 이 괴로움과 고통-내가 그 짧은 시간에 이처럼 변해 버렸다는 그 사실로 인해-은,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가려 했던 어린왕자가 겪어야 했던, 참아내야만 했던 노란뱀의 독인걸까. 그리고 지금을 견뎌내면, 소혹성 B612호를 떠나오던 그 시점으로 진정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상자안에 들어있는 양을 가지고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간 어린왕자처럼 나역시 내 방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끌어 않은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 한달간의 흔적들은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 것일까. 지울수는 있을까. 내가 잃은 것이 이토록 큰데도 불구하고 지울수는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난 ‘정말로’ 변했는가. 그렇지 않다면-그토록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지금의 이런 기만적인 느낌은 도대체 어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가.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Nowhere in Africa

언제부터인지 해가진 후의 노천극장에서는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온다.

한적한 휴일 오후나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앉아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된 듯 하다. 그게 한명인지, 아니면 몇명이서 부는 거라서 매일같이 부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은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 순간만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라볼 뿐 잠시후면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강하게 인상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노천극장 옆의 비탈길을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내려가다가 무심코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늦출 만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몇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조차도 귓가에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만큼 내 마음에 불쑥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있다. 조금전에 노트북으로 본 영화 때문에 더욱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Nowhere in Africa.

‘어바웃 슈미츠’ 이후에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접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면서 수확이 많은 것 같다. 비록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의 중요 장면마다 -정상적인 시점이라면 중요한 시점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지만 그런 장면마다 특정한 음향효과를 내는걸 보면 감독역시 의미를 부여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등장하는 나이어린 소녀의 허밍 두소절.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멈춰서서 들었던 오카리나 소리와 겹쳐서 들려왔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간혹, 몇해전의 국토종주때처럼 모든것을 잊고 그저 걷기만 했으면 싶을때가 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에 나오는 와타나베와 구미코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먼 곳으로 대학을 진학했듯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설속의 그들은 같은 시기의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또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당시의 나는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다는 곳에 왔다는 마음편안함 보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었으니까.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고, 같이 무언가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과 친해지는데 무척 서툴렀다. 그토록 필요성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맘편히 하기 시작한건 한학기가 지난 후, 더욱이 온라인 상에서 부터였을 만큼.

사람은 잊기 힘들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처럼 무작정 사람을 한명이라도 더 사귀고자 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왔던 사람들을 잊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6월은 그래서 내게 잔인한 달이다. 8일, 10일, 14일, 18일, 20일, 27일 에 걸쳐서 친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 연락할 수 없는 사람, 멀어진 사람, 그리움을 가져오는 사람등 생각이 떠오를때면 복잡한 심경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의 생일이 줄지어 있는 달이다. 한때 정말로 사랑했던 연인도, 정말로 가까웠던 친구들도 어째서 그들의 대부분은 6월에 생일을 갖고 있는 것인지. 덕분에 난 내 생일조차 6월에 있으면서도 6월이 싫다. 6월이 돌아오면 내가 절대로 떨쳐 버릴 수 없는 내 지난 시간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수면으로 떠올라 나로 하여금 과거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든다. 그들을 생각하다가 슬픔속에 빠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럴 나이도 아닐뿐더러 그만큼의 여림도 갖고 있지 않다. 나로하여금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그저 과거의 시간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내 발검음을 멈추게 하고 뒤돌아 보게 만든다. 이젠 그런것..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두가지 상반된 생각을 하게 만든 두 영화.

과거의 시간이 가져온 의미속에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떨쳐버린 후에 얻게되는 의미속에 살아야 하는 시간. 우리는 어느쪽이든 한가지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6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고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여름이다.

2003년 5월 6일 화요일

쟈스민, 꽃을 피우다


며칠전에 산 쟈스민이 꽃을 피웠다.

쟈스민을 샀다는 말에 친구가 인터넷에서 찾아준 재배법에는 쟈스민의 개화기는 7,8월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꽃이 가장 많이 팔리는 봄철에 내놓기 위해 하우스에서 키워온 꽃들에게 계절은, 크게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덥던 며칠의 시간이 지난후에 태어나서 처음, 내 손에서 꽃을 피운 화분을 보았다.

어느날 아침에 맞이한 그 경이로움.

그 경이로움을 기억속에 강제하고자 사진을 찍었지만 과연 그것이 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이 많다. 지나가 버린 사건은 ‘과거’에 남겨 두어야 하는것이 아닐까. 과거를 현재에 속박 시키면 그것은 미래에 고통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런 꽃에 대한 기억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고는 있지만, 머리속을 파고드는 한가지 생각은 사라지질 않고 있다. 모든것이 확실해져서 더이상 이런 시간들을 겪지 않아도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에 속박해서는 안된다는걸 나 자신이 이해가 아닌 납득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3년 4월 18일 금요일

Pen & Rain


중학교 졸업을 하던 그 해 겨울방학이 내게는 참 특별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항상 집에서 사주는 것만을 읽었던 아이에서 내가 읽고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에 가서 죽치고 앉아서라도 읽어야 하는 아이로 바뀌었고 그때문에 집에서 처음으로 등록해준 학원을 한달이나 빠져야 했다.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학원앞을 지나쳐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시내까지 걸어가 서점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서 책을 읽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그 서점의 출입구를 딱 막아 버리고 내가 그 안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을 때까지 나 혼자만 그 서점을 소유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책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시켜서가 아닌 혼자 쓰고 싶어서 처음으로 글 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수필이나 다른 것도 아닌 ‘시’ 였다. 멋진 시라는 것은 아름다운 어휘만을 골라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하나가득 내 생각에 아름다운 단어들만을 골라서 채워 넣었던...참 유치했던 시였지만 그 시로인해 난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절묘하게도 내가 진학했던 고등학교에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문학회가 있었다. 그리고부터 만으로 꼭 10년이 흘렀다.

그때 이후 내가 가장 많은 소재로 삼아왔던 사물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난 두말하지 않고 ‘비’ 라는 사물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감정이나 전반적인 풍경이 아닌 단지 어떤 사물 자체를 내 글의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 글의 가장 큰 소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난, 비가 온다는 것에 대해 유난히도 많은 감흥을 느끼는 것일가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비에대해서 나만큼의 감흥을 느끼는 것일까.

정말로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가 오고 있다. 며칠동안 오후의 햇살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낄정도로 날이 덥기도 했었고 다시 또 며칠은 머리를 빗기 신경질날 정도로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의 마무리인 것 처럼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항상 자연대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야 할 사람들도 모두 건물안으로 쫓겨 들어갔고 창문으로 내다본 곳에선 드문드문 한두개의 우산들만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복도쪽으로 나있는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비에 쫓겨 건물로 들어온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로 웅웅 거리는 낮은 메아리가 가득할거란 생각이 든다. 고작 한줄기 비가 한시간째 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런 기분이 든다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지금의 난...지난 수주일을 고민했던 것들, 아파했던 것들, 기뻐했던 것들 이런 모든 감정의 흔적들이 빗줄기에 씻겨 바닥으로 휩쓸려 내려가 버린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극도로 차분한 마음상태.

마음이 차분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유난히 향이 진한 원두를 골라 마시지도 않으면서 계속 향만 우러나고 커피 메이커를 켜놓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침대에 앉아 이불을 둘러쓴채 창 밖으로 들려오는 비의 흔적들을 듣는 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그 사람의 체취를 가슴 한가득 들여마시는 일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마음이 가라앉아 생긴 만큼의 여유공간을 행복이 가득차게 해주는...그런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런 차분함은 우울함과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흥은...우울함이 아닌 차분함이다.

2003년 4월 18일 오후 두시.

이유에 대한 상세한 근거를 들거나 상태를 묘사하기 힘든 마음의 차분함과 행복감에 젖어 비가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2003년 4월 6일 일요일

DAWN



아침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적용을 받지않는 일요일이다.

일어나긴 평소와 같이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한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이니까 신나는 음악을? 나한테 그런 음악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드디스크에 무작위로 들어있는 mp3 파일중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배의 컴퓨터에서 목록도 확인한하고 3기가 정도로 긁어온게 전부니까 아마 들어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 파일들은 잘 듣지 않는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 선배와 난 음악적 취향이 대단히 다르고 그런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이 일부러 모아놓은 음악 파일중에 마음에 드는게 많을리가 없다. 결국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파일들을 찾아야 했다. 실시간 음악방송 사이트들은 소용없다. 윈도우 전용으로 구성된 그 홈페이지들을 리눅스 환경을 사용하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Dawn.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벽, 여명 뭐 대충 그런 뜻이다. 다른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는 최근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리 정확하게 옮겨도 옮길 수 없는 것이 언어이다.

문득 창 밖을 봤고, 내 방 창문에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본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떠올렸다. 더욱이 눈이 덮인 서울의 새벽을. 서울은 대도시 답게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아마 어지간한 눈은 모두 내리다 녹아 버리겠지. 이 도시에서 소모해 버리는 열은 주위의 환경과 자연을 수십억번 바꾸고도 남을 만큼일테니까.

그렇게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새벽..이라는 단어가 아닌 dawn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중에 dawn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있던가? 우습게도 Third dawn이라는 부제로 발매된 온라인 게임인 Ultrima online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다지. 결국 웹사이트를 뒤지며 다녔다. 내가 기대했던 글이나 풍경보다 상업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검색 사이트에서는 의외로 새벽 기도회 같은 종교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지만 종교적 모임을 약간은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게는 그것들 역시 상업적인 사이트로 보였다. 결국 글은 포기하고 사진검색을 통해서 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새벽사진이 아닌, 황혼과의 구분이 가지 않는 사진.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이 둘일 수 없고 극한의 고통과 쾌락이 다른것일 수 없다. 그리고 여명과 황혼이 다를 이유도 없다. 시각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난 서로다른 두가지가 동일해 보이는 현상을 좋아한다. 그런 상황을 즐기고, 나 또한 그런 상황을 만들고자 애쓴다. 아쉽게도 이런 상황은 쉽게 만들어 지지 않으며 그 시간도 극히 짧다. 여명과 황혼이 구분가지 않는 시간이 하루를 통털어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할 듯 싶다. “같다” 라는 말은 시간이 아닌 순간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연속적인 시간속에선 그 어떤 것들도 서로 같을 수 없으며 순간속에서 같은 것들이라도 순간이 반복되면 결국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5년전의 나와 같은가?

며칠동안 나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이다. 변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그런 외향과 성격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느낌’ 이라는 것의 변화를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황혼과 같은 느낌의 새벽을 보고 기뻐하듯, 수년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후 다른 사람이 날 보고 달라진 내 말투나 모습등의 너머에서 수년 수십년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날 되돌아 봤을때 낯선 누군가가 놀란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내가 훗날 날 알던이를 만났을때 그가 처음보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렇게 날 바라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3년 2월 16일 일요일

쵸콜렛 우체국

어느덧 2월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매년 그렇지만 이맘때가 되면 난방이 되지 않는 건물은 건물 안이 밖보다 훨씬 춥다. 해가 제대로 들지 않는 위치의 경우라고 한정을 지어야 하지만 내가 지내는 곳은 한낮이 되도 해가 정확하게 드는 정남향은 아니기 때문에 제법 추위를 느낀다. 그리고 커피를 한잔 하러 건물 밖에 있는 벤치에 나와 앉을 때마다 오히려 밖이 더 따뜻하다는 사실에 문득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입춘도 지났고 이제 경칩만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봄이 오고 있다.

밤이 제법 늦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자취방에 돌아와 창문을 열어놓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창문이 활짝 열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시간에 창문을 열어두고 있을 수 있게 된게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시원해서 무척이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한밤중에 상쾌함을 느낀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표현이 없겠지만 냉기가 묻어나는 아침의 상쾌함보단 요즘이라면 차라리 밤늦은 공기의 상쾌함이 더 깔끔하다고 난 믿는다. 어쩌면 그러한 기분좋음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음악이 있었으면 싶지만 리모콘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움직이기 귀찮다. 그냥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소음을 음악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아직도 참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구나 싶다.

온 세상이 쵸콜렛으로 뒤범벅이 되는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쵸콜렛을 포장하기 위한 바구니와 상자들이 더 난리지만. 팬시점 들을 지나가다 보면 거리에 하나가득 내놓은 발렌타인 데이용 바구니와 상자들 때문에 시선을 잠깐씩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SIMPLE” 이라는 영어 단어로 표현이 가능한 내 기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 복잡하고 화려한 바구니로 치장된 쵸콜렛 보다는 쵸콜렛 자체를 그냥 깔끔하게 포장해서 받는 선물이 더 좋을 것 같다.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처럼 발렌타인 데이의 쵸콜렛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제부터인지 쵸콜렛을 주고받는 날이라기 보다는 쵸콜렛을 얼마나 화려하게 포장해서 주는가가 중요해진 기념일이 되고 만 것은 개인적으로도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그런것은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그 내면보다는 겉의 화려함과 치장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곁에 가까이 할 생각도 없으니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던 적던 나와는 별개의 일이다.

얼마전에 장거리 버스를 탈 일이 있어서 터미널에서 Paper 라는 잡지를 샀다. 온통 날적이같은 문체로 이루어진 잡지. 한때는 대학가에서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4천원이 육박하는 가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격을 보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려있는 내용들이 좋은 것들이라는 생각에 그냥 눈을 질끈 감고 5천원짜리 지폐를 내밀어 잔돈과 함께 돌려 받았다. 출발하는 버스에서 펴본 첫 인상은 반가움. 변한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구나..라는. 그냥 가볍게 넘어가는 페이지들 사이에서 내 눈길을 잡아끈 기사가 있었다. 제목은 쵸콜렛 우체국. 누군가..과거의 누군가에게 쵸콜렛을 배달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 소녀들이 아니라(이들은 반드시 배달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겠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든...사람을 만나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본. 그리고 그런 만남과 이별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면 어떨런지. 난 그 글을 읽고나서 한참을 버스의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봤다. ‘아, 누구에게 배달시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이 사람에게 배달을 시켜도 될까..’ 라는 걱정. 마치 그 글의 주인공이 예전의 그녀에게 쵸콜렛을 배달시키라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는 것처럼 내 기억속의 누군가에게 현재의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망설여 지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에 지연이가 내게 빌려갔던 CD를 돌려주기 까지가 5년이 걸렸던 것일테고. 우스운 일이다. 고작 지어낸 동화같은 이야기를 읽고서 그렇게 진지한 고민을 했다니.

결론은?

난 배달시키지 않는다. 내가 머리속에 떠올렸던 그와 그녀들이 내게서 그러한 선물을 받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기꺼워 한다고 해도 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혹은 그녀들은) 내 추억속에 있는 사람들이고 현재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혹 그 동화같은 이야기에서 처럼 5년, 10년전의 내가되어 5년, 10년 전의 그들에게 배달을 시킬 수 있다면 또다시 고민에 빠져야 하겠지만.

오늘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는길에 길거리에 있는 우체통을 우연히 봤다. 예나 지금이나 붉은색인. 간혹 연말,연초면 밀려드는 연하장등으로 특별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바빠지는 우체국 집배원들의 이야기가 특집 프로로 TV에서 방영되곤 했었다는 생각이 난다. TV를 접하지 않으면서 살게된지 무척 오래되긴 했지만 요즘엔 그런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누군가에게 소포를 보내본게 언제였지? 1년은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도 아직까지 그렇게 각박하게 사는건 아닌가 보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그녀’ 에게 이번엔 쵸콜렛을 배달시켜 볼까? 과거의 사람이 아닌 그녀는, 내게서 받는 쵸콜렛을 손에 들고 무척이나 기뻐해 줄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2003년 1월 1일 수요일

2003.1.1.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1999년 12월 31일을 집에서 혼자 보낸것 이후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해였던 것 같다. 정확하게 3년만이다. 원래 무슨 날이든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닌 관계로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는 날도 별다르게 의미를 두진 않았었다. 어렸을때는 집안에서 신정을 설날로 정해 모였으므로 다음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는다는 것때문에, 그리고 보기 힘들었던 사촌들과 만났다는 즐거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원래의 설로 챙기는 날을 집안에서 옮긴 이후로는 1월 1일은 그저 내게있어서 많은 날들중 하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날이 됐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종각에 타종을 보러 간다고 부선을 떨었지만 올해는 그것도 시큰둥. 특별히 누구와 만나고자 약속을 잡지도 않았고 그서 하루 집에서 푹 쉴 생각으로 영화와 소설들을 노트북에 챙겨서 집에 왔을 뿐이다. 너무 재미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재미란 상대적인 느낌. 자신의 판단 기준을 남에게 적용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드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근에는 매년 1월 1일을 기억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1월 1일을 챙겨서 글을 쓰고 있는건, 순전히 달력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3년이라는 숫자.

이유를 설명하라면 할 수 없지만 난 홀수가 좋다. 홀수를 좋아하는게 비단 나 혼자만의 특징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한다는 그런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2001년이 그랬고, 2003년이 그렇다. 난 홀수해가 좋다. 무언가 기분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 물론 내 예감이 맞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런 정확성을 요구했다면 애초에 좋은일이 있을 것 같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느낌은 느낌으로써 끝. 좋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2003년은 내가 학부를 졸업하는 해이며 동시에 대학원생이 되는 해이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작년으로써 내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필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졌고 대인관계에 대한 기준도 정립이 됐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물론 판단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진다고 어른이 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그렇지 못한 어른이 얼마나 많은가- 내 자신이 좀더 나이를 먹고 그로인한 영향으로 판단의 기준이 정립되어 가는 거라면 충분히 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른이 되어 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오늘 아침은 하늘이 맑다. 어제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서울에서 별이 보인다고 감탄을 할 정도였으니 아침에 맑은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2002년은 내게 있어서 참 의미있는 한해였다. 그다지 좋지 않은 느낌으로 찾아와 내게 많은 것을 안겨주고 사라진. 2003년은 어떨 것인가? 여러가지로 2002년을 맞이할 때보다 상황들도 더 좋아졌고 나 자신도 더 성숙했으니 이제 여기서 더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그런게 욕심이고 욕심이 나쁜거라면, 나쁜것좀 바라지 뭐.

올 한해도 작년처럼 내게 많은 것을 안겨주는 그런 한해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