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28일 일요일

비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은 카트리지 형식의 제품이다.즉, 미리 잉크가 채워져 있는 잉크 카트리지를 마치 캡슐 삽입하듯이 만년필에 삽입해서 사용한다. 잉크병에 만년필 끝을 넣어서 잉크를 빨아들여 사용하는 약간은 고전적인 만년필과는 다르다면 다른 그런 제품이다.

어제 한참 사용을 하다 잉크가 떨어졌다. 원래 들어있던 카트리지가 작긴 했지만 이처럼 빨리 잉크를 다 사용할줄은 몰랐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일이지만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만년필의 중심부를 양쪽으로 돌려서 분리해 냈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텅 비어있는 카트리지. 분명 그동안 조금씩 내부의 잉크가 줄어들어 갔겠지만 처음 넣을때 이후에는 한번도 열어본적 없기 때문에 내게는 꽉차있던 잉크가 어느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고 투명한 재질의 카트리지만 남아있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손으로 잡아 뽑자 마치 곤충이 벗어놓은 허물이 떨어져 나오듯 빈 카트리지가 떨어져 나왔다.

길이 3센티미터, 두께 5~7밀리미터.

사실 이렇게 비어버린 필기구의 소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얼마전까지도 많이 사용하던 볼펜들 중 볼펜의 잉크를 이처럼 투명한 재질에 담아서 내놓는 것들이 많았으며 이중에서도 볼펜의 겉 케이스는 불투명 하고 잉크를 담는 심은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어느순간 다 쓴 볼펜을 열어보면 가늘고 긴, 투명한 심을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을때의 상실감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야말로,

[비어있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지독한 상실감까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와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했을까? 늘상 볼 수 있는 작은 사건, 필기구의 잉크가 다 떨어져 버렸다는 작은 사건일 뿐일텐데.

아마 난 그 잉크 카트리지의 두께로 인해 내부에 있던 무엇인가가 비어버렸다는 느낌을 극도로 많이 받은것 아닌가 싶다. 가는 볼펜심이 아닌, 무언가를 담아 놓았던 것이 분명하게 생긴 비어버린 잉크 카트리지의 형태로 인해. 그때문에 비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버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담겨있던 무엇인가가 비었다는 것은 상실이다. 상실감이란 것은 항상 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혹은 사람)이 사라졌을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사라질 것(혹은 사람)이 사라졌을 때도 찾아온다. 물론 서로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벽을보고 잠드는 것과 천장을 보고 잠드는 것과의 차이와 같이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결국엔 이처럼 잉크가 다 소모되서 비어버린 카트리지를 버리는 일에도 익숙해 지겠지? 아무런 상실감 없이.

비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

어제부터 계속 온 세상이 황사에 뒤덮여 있다.

2002년 4월 27일 토요일

4월 이야기

지독히도 몰아치던 황사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었던 4월이 어느새 끝나간다. 오늘은 4월 27일이고 4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몇년만에 걸려보는 지독한 목감기로 이틀정도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가 어제 밤부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해서 오늘 점심때까지 이불을 뒤집에 쓰고 있어서인지 지금은 어느정도 나아졌다. 아직도 목이 따끔거리긴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고. 지금은 학교에서 꿀차를 마시고 있다. 시험기간에 체력 보강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마시기 시작했지만 정작 시험기간에는 그다지 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냥 맛있어서 계속 마시고 있다. 시험이라고 해도 평소와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일관했던 만큼 특별히 체력을 더 소모하고 말고의 건덕지도 없었으니까.

누군가를 인정 한다는 것은 언뜻 좋은 해석을 가져오기 쉽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누군가가 어떻다 라고 ‘인정’ 한다는 것은 바로 그사람은 그렇다 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격이나 행동, 특성에 대해 단정지어 버리는 것 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변한다는 사실에 대한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는 사람..그것도 젊은 사람에 대한 단정이야 말로 그사람에 대한 가혹하리만치 잔인한 대처일 것이다. 그러한 단정을 받아버리는 것으로 인해 내 행동이 제약을 받는 것은 불을보듯 명확한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늘 단정을 내려 버린다. ‘저사람은 참 착해.’ 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사람이 스스로를 착하다고 인정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착하지 못하게 행동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 순전히 자기 자신만의 기대요 단정이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대해 단정을 내리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의 기대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그 사람이 나에대해 실망하든 화를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모를 말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행동에 있어서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속박이 된다.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어른들이 들으라는 듯이 “아유..착하기도 해라” 라는 식으로 얼르는 것이 그런 한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별히 반항 이라는 것이 심성에 자리잡기 이전의 어린아이 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어른 앞에서는 착하게 행동하려 하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난 누군가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한건 불과 몇개월 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본 것과 판단에 의거해 이렇다 저렇다 참 많은 단정을 내렸었다.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하지만 틀렸었다. 난 틀렸던 것이다. 결코 그렇게 단정을 내려선 안되는 거였다. 그리고 어제밤 난 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단정. 자기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때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그로인한 단정이야 말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 놀라움에 난 어제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냉수를 몇잔 벌컥벌컥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들중 상당수는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생각, ‘난 이래’, ‘난 원래 이란 사람이야’ 라는 식의 생각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려 하고 행동의 판단이 서지 않을 경우에 자신도 모르게 참조하게 된다. 실로, 누구도 그렇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속박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나서 지난 내 행동들과 납득이 가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돌이켜 보았다. 전부 다 라고 말할수는 없었지만 상당수가 납득을 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의 행동에 대한 원인은 스스로에 대한 단정.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생각하려 하자 상당부분을 납득할 수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해온 자기암시와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자기암시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질줄은 나역시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암시. 물론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행동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경우라면 나쁘다는 말을 거기에 붙여도 무리가 될 것은 없지 않을까?

약간은 무더운 날씨에 학교를 걸어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우선은 나 스스로에 대한 단정부터 철회하자. 그런것들 모두 잊고 나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들을 모두 치워 버리자 라고. 수영장에서의 수영과 바다에서의 수영이 다른점은 소요한 물에서의 수영과 달리 바다에서의 수영은 수면의 상황에 따라 몸의 균형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빠른 속도를 직진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해서 무조근 그렇게 수영하려 했다가는 옆파도를 만났을때 몸의 균형을 잃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의 속박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고자 하는 일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한단계 앞으로 나서기 위해 나한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

내 머리속을 지배해온 자기암시와 단정과 굴레들 부터 벗어 던지자.

제대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상쾌함과 자유로움이 전신을 휘감고 있다. 오늘까지 난 꿈을 꾼 것이다.

2002년 4월 17일 수요일

두 미란 오스발 에레로아

폴라리스 랩소디를 두번째 읽을때까지는 항상 율리아나 공주의 입장을 바라보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오스발의 입장에서 바라보고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율리아나 공주의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파킨스 신부가 한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주는 감동에서 벗어나고도 한참 남을만한 충격이었다.

오스발은 율리아나 공주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는 건 내가-혹은 읽는이가- 율리아나 공주의 입장에서 읽기 때문이다.

[두 미란 오스발 에레로아]

결국 다섯번째 검이 부러질때까지 이어진 율리아나 공주의 ‘독백’일 뿐이었다.

2002년 4월 6일 토요일

2시간 반 혹은 버튼 3개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은 아무래도 낯선 곳으로 간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래서 내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에 매력이 있지 않다면 무엇에 매력이 있을까.

3년만에 정동진에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의 일반화된 생각으로는 기차를 타고 역에 내려야 하겠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을 하고있는 차에 6,7시간이나 걸리는, 그것도 밤기차를 타고 갈만큼의 여유가 허락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버스를 타고 강릉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정동진에 도착했다. 예전의 그 꼬불꼬불한 대관령을 수년간의 공사를 거쳐 7개의 새로운 터널과 수많은 다리를 이용해 거의 직선으로 만들어 두었기에 서울에서 4시간은 족히 걸리던 강릉까지 직통은 2시간 반 그렇지 않고 중간중간에 서는 시외버스를 타면 3시간여가 걸릴 만큼 단축이 되어 있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단 한차례의 급커브도 없는 도로를 보면서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끔 높은 고가다리를 지날때 아래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옛길에서 그 흔적을 찾을 뿐이다.

원래가 탄광촌이었던 곳, 정동진.원래가 매마르고 척박한 곳이었던 이곳에 매마르고 척박한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찾는 사람이 나 뿐일까. 하지만 굳이 매스미디어의 힘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이제 그곳에서 석탄가루를 발견하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원래가 정동진역이 목적이 아니었던 까닭에 입장료를 내고 해변으로 내려섰다. 여름바다나 겨울바다와 달리 봄의 바다는 따뜻함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겨울바다처럼 차갑지도, 여름바다처럼 뜨겁지도 않은 백사장에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거니는 많은 연인들의 모습에서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이 아닐거라 생각이 들었다. 북적거림과 썰렁하다는 단어 사이의 `한적한’이라는 느낌에 취해 나역시 신발을 벗어들고 발목을 간지럽히는 파도와 백사장 사이의 경계를 걷고 싶었지만 목적지가 그곳이 아님을 상기하면서 그저 신발밑으로 느껴지는 모래의 사박거림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길게 늘어선 해변을 지나 자연회손에 대한 비판여론도 없지는 않다는 조각공원으로 들어섰다. 사진기를 가져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여러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겼겠지만 흐린 날씨에 지레 겁을 먹고 맨몸으로 갔기에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조각공원으로 가는 와중에 만나는 모래시계, 모래가 모두 떨어지면 정확하게 1년이 지난다는 커다란 그 시계의 모습은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조각공원의 배모양 카페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며 마신 한잔의 차, 오롯히 나있는 산길에 여러 형상들의 장승들을 늘어놓아 마치 장승들의 축제에 초대되어 가는 듯한 장승길 그리고 조각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돌에 적혀있는 여러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까지. 모두가 따뜻하게 어루만져지는 것들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흐릿한 풍경을 몇시간이나마 잊을만큼 충분하게.

나는 무엇을 찾아 정동진까지 갔는가? 그곳에 있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결코 내가 도달했던 장소에 함께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도달했다 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곳은 따뜻함이라는, 나만의 형이상학적 장소였으니까. 사람이라는 약간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서울로 오는 버스는 정확하게 2시간 반의 시간의 흐름뒤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난 그녀가 불룩하게 만들어 버린 가방과 손에 남아있는 부드러움과 그녀가 매워버린 또 한군데의, 이젠 잊혀진 상처의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내 모든 상처를 매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일까.

집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누른 전화기의 버튼 3개. 온갖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난무하는 요즘 거리를 거리 자체로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2시간 반 혹은 버튼 3개. 그 이상은 결코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