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25일 금요일

기억은 감정의 해석이다

아침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온통 스모그로 뒤덮여 있다. 항상 그렇지만 난 뿌옇게 변한 서울의 아침을 안개낀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희뿌연 대기는 오후까지도 지속이 되고 안개가 생길 지형이라고는 한강이 유일한 이런 대도시에 그런 짙은 안개가 낀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2년반동안 안개의 도시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거다. 깨끗한 공기에서 느껴지는 안개는 상쾌하다. 약간의 상쾌함과, 차가움 그리고 감각이 아닌 상상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서울의 안개, 아니 스모그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답답한 가슴뿐.

예전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답답하다고 느꼈었는데 어느새 강릉 해안의 그런 해무를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마치 여기서부터 안개 라고 주장을 하는 것 같이 검은색의 안개가 꾸역꾸역 해안가로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써야 했던게 불과 몇년전인데. 그때와 지금의 난 도대체 어떤 기억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일까? 기억하고 있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 기억을 해석하는 내 내면의 무엇인가가 변했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는 그렇게 보기 힘든 상황은 아닌 듯 하다. 분명 좋았거나 나빴던 기억 자체가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 변한것은 정말 무엇일까? 잠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눈을감고 음악에 생각의 흐름을 맡겨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변한것은 그 대상에, 그 기억하고 있던 사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감정은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경험한 시간들의 길이에 의해 변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사실들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감정에 의해 과거를 그리워 하고, 미소짓고, 대상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마지막으로 잊어간다. 비록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감정의 변화 순서는 제각각 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같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라도 기억을 돌이키는 시간대의 내 감정에 따라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나 혹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려 해도 감정과 기억 모두가(엄밀하게 말하면 감정이 기억을 변화시키는 것이니 감정이라고 해야 하겠지 만) 한쪽으로 흐르는 이상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혹은 거스르면서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비참해진다. 나만 그런것은 분명 아닐것. 나를 기억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현재 감정에 의해 과거의 날 자신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하고 판단한 뒤 증오하고 사랑하고 또 잊어갈테니. 슬픈일은 아니다. 스스로가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와 우리가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재단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사실에 대한 인정일 뿐이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돌려서 좋게 표현한다. 무엇이 이성적인 판단이란 말인가. 고작해야 감정으로 인한 변화에서 수반되는 찌꺼기일 뿐인것을.

...

차한잔과 함께 즐기던 사유의 시간에 취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고 있었다. 이젠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점. 기억이 어떻든, 감정이 어떻든.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성을 한번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더이상 감정과 기억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성으로 기억을 잘라내 버릴 수 있다. 원망도 사랑도 필요없다. 그런것들은 모두 마음의 평온과는 거리가 있는 것. 학교에 가면서 음악을 듣고 싶다. 학교 아침방송이 끝나기 전에 어서 집을 나서야 겠다. 이렇게 뿌연 스모그가 온세상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고 해도 소리는 우리에게 찾아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