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6일 금요일

조용히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내가 마음이 심란할때 조용히 이야기 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일이다. 특히 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상대일 경우엔 더욱.

어제부터 상당히 우울해 했었다.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여하튼 그랬는데 오늘 지연이 녀석 자취방에 들려서 차를 한잔 얻어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한달만에 보는 거라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한시간이 훌쩍 가버리긴 했지만, 음악도 좋았고 그래도 손님이라고 녀석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도 제법 맛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문득 얼굴에 미소가 돌면서 ‘즐겁다’란 생각이 들었다. 춥지 않은... 그런 비라니. 겨울에 어울리지 않아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척 반갑다는건 비단 나뿐만의 감정은 아니겠지.

좋은 대화와, 맛있는 커피 & 샌드위치. 그리고 기분좋은 보슬비.

모든게 멋지게 어울어진 밤인듯 싶다. 지금 듣고 있는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도 멋있고...

내일 내 컴퓨터를 학교 연구실로 옮긴다. 그리고 방에다가는 CDP를 하나 사다 놓을까 고민중이다. 컴퓨터가 내 방에 있느것도 좋지만 이제는 방에 와서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다. 컴퓨터가 있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니까. 이해할 수 없는 습관성 의무감에 이게시판 저게시판 오고가면서 글을 읽는것도 이제는 내게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앗아가고 있다. 집에와서 편하게 있는 것은 길게 잡아야 두시간가량? 그시간 만이라도 ‘혼자서’ 있고 싶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하면서 ‘날 위해 쓰고’ 싶다.

사이다가 다 떨어졌다. 내려가서 사올까?

커다란 컵에 사이다를 가득 따라놓고 스탠드의 불만 켜놓고는 침대에 기대 앉아 창밖의 비오는 풍경을 감상해야 겠다. :-)

2002년 10월 6일 일요일

풍 경

풍 경

멀리 늘어선 북한산 한쪽 귀퉁이로
왕십리역을 떠난 열차가 움직여가고
좁다랗게 벌어진 창문틈에서
저녁을 태우는 노을향이 느껴질때면
군청색으로 물드는 동쪽하늘의,
밤이 다가온다.

언제나 그렇지만
밤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것
술에 젖어버린 시간이 아닌 다음에야
소란스러움을 위한 자리는 없다.

차한잔의 향긋함과
그만큼의 고요함.

그걸로 좋다

홀로 있음이 이토록 크게 멍드는 밤이면
차라리 소란스러움은 독이지 않던가.

나의 하류를 지나

나의 하류를 지나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겨울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

언제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어스름 가득한 밤 소리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했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종이 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어떻게 세월을 거슬러
어떻게 산으로 돌아갈까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나의 하류를 지나

조윤석 : vocal, chorus, nylon-string guitar, keyboards고기모 : sampling

2002년 9월 6일 금요일

The Young Martyr




그녀는 천사인가?

그녀의 얼굴위에 위치한 “링”은 과연 공중에 떠있는 것인가 아니면 옆에 “놓여진”것인가.-이경우는 물에 떠있는 이 되겠지만-
만일,그녀의 링이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닌, 머리위의 상징적 위치에서 벗어나 그저 물에 떠있기만 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며 그녀의 손목을 얽어맨 끈과 그녀의 하얀 목덜미와 봉긋한 가슴을 보면 난 야릇한 성욕을 느낀다.

텀벙텀벙 물을 밟고 들어가 허리까지 잠기는 그녀 옆에 서서는 손을 적셔 가만히 그녀를 품에 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떨림에 몸을 맏기고 가만히 입술을 내밀어 그녀의 목에서부터 시작해 가슴을 지나 손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내 혀끝의 축축함을 선사할 것이다. 그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차가운 물과는 전혀 다른 축축함, 따뜻함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래서 그녀의 하복부를 애액으로 축축하게 적셔버리는 그런 축축함일 것이다. 천천히..아주 천천히 타고 흐르는.

그래서 성숙한 Ophelia가 맛보지 못한 그런 환희를 그녀에게 선사할것이다.

태초의 고향..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어줍잖은 찬송가 따위를 부르는 Ophelia보다 아무말 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속박마저도 무표정으로 넘기는...그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징표로 그런 환희를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물이 그녀를 잡아다니기 전에, Ophelia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을 거품이 물밖으로 나오기 전에 내 손에 힘을주어 그녀의 목을 졸라 저 바닥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그리고....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내 얼굴을 물속에 파묻고는 전신의 힘을 모아 비명을 지를 것이다. 울부짖을 것이다.

The Young Martyr…..

2002년 8월 29일 목요일

8월이 끝나가고 있다는

8월이 끝나가고 있다.

그동안 큰 비도 몇차례 지나갔고 태풍도 예년과 다름없이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며 방송국마다 난리를 치게 만들었다. 몇년만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으며 대관령 너머 강릉을 옆동네 오가듯 왕래를 했던 한달이기도 했다.내 방은 크게 바뀐것이 없다. 컴퓨터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고 전화기가 책상에서 침대 옆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유일한 변화이다. 옷걸이가 무척 좋은게 하나 들어왔다는게 오랜만에 내 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사건일까? 하지만 이건 8월이 아닌 7월에 찾아온 변화이니까 8월에는 컴퓨터와 전화기가 가장 큰 변화이다. 공교롭게도 두가지 모두 다른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도구라는 점도 주목할만한 점.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사실에 푹 빠져서 대학에 오고난 이후 그 어느 방학보다도 책상앞에 앉아서 논문과 노트를 뒤적거리는 시간이 길었으며 덕분에 지난 반년정도 지지부진하게 진행이 되었던 프로그램 작성이 엄청난 속도로 마무리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26편의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4차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았다. 그중 한차례는 애니메이션이다.

사람사이?

별로 말할만한 것은 없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 주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느쪽이냐 하면 난 특별하게 주위에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성격으로 인해 이래저래 관계를 맺고 만다. 그래서 난 항상 내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시기라면 시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언급할만한 것이 없는건 내가 그만큼 그런것에 익숙해져 버려서 그렇겠지. 한 모임과, 몇명의 사람들을 내 삶에서 지웠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게 필요해서다. 누군가를 특별히 의식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로인해 내가 피곤해 진다면 그냥 그를 내 삶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항상 나한테 들려주는 말이지만 사람 관계에서 중요한건 넓이가 아니라 깊이다.

그리고..그렇게 8월이 끝나간다.

9월에는 친구중 하나가 엄마가 된다. 나한테도 9월에는 큰 변화가 있을까?

2002년 7월 6일 토요일

10초의 환의

어제 아침에 왕십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강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한양대역을 벗어나는 순간 지하철은 땅 밖으로 나온다. 땅밑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나이기에 이 순간의 기분이라는 것은 크지는 않지만 무척 반가운, 그런 기분이다. 그리고 어제역시 그런 기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햇살이 너무나 강렬해서 잠시 눈을 찌푸려야 했다는 것.

그 햇살은 마치 ‘선물’ 같았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태엽감는 새’에 나오는, 우물을 비추는 10초가량의 햇살처럼, 내 전신을 따뜻하게 휘감으며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마치 마미야 중위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눈을 감고 그 햇살의 강렬함을 온몸으로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강렬하다란 느낌은 언제나 처음 찾아왔을때에만 허락되는 것이기에 고작해야 10여초가 흐른 후에는 그 햇살에 익숙해져 버린 날 찾을 수 있었다. BWV 1060-alegro에서 찾을 수 있는 환희. 그리고 정말로 짧은 허락.

문득 쇼팽의 nocturns가 듣고 싶어졌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던 그 소설이다. (이후에도 계속 불만이었던 것은, 어째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출판을 해야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루키는 이 소설의 제목을 비틀즈의 ‘Norwegian Wood’라는 곡에서 따왔다고 했는데 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비틀즈의 곡중에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곡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내가 이 곡을 들은것은 참 웃기게도 소설을 5번째인가 읽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곡을 들은 이후로 더욱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에 불만을 갖게 됐다.

하루키는 한국인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제가 이 소설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소설을 나타내는 단어로 ‘상실’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제목을 짓게된 비틀즈의 원곡도 어느정도의 상실-이것을 상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면-을 노래하고 있고 소설속의 주인공도 많은 상실을 겪긴 하지만, 그것은 결국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반대 급부로써 필요했을 뿐이다. 마치 우유의 단맛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약간의 소금을 타서 마시는 것처럼 ‘상실’이 들어갔기 때문에 하루키가 소설에서 상실의 반대쪽 끝에 위치시킨 ‘사랑’ 이라는 단어가 더 아련하게 가슴에 와 닿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의 반대급부는 상실이며 상실이 있고난 후에야 보다 확연하게 사랑을 깨닫는 것일까? 어차피 하루키와 나 사이엔 시각차라는 것이 존재하므로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내게 사랑이 가장 큰 화두인건 아니지만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어쩌면 난 나 자신의 해답을 얻기 위해 이 소설을 다시 읽고 노래를 듣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난 아직도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들이 몇군데 있다는 쪽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듣지 못하고 있는게 도대체 무엇일까.

2002년 6월 21일 금요일

휘발성 기억

전에도 느꼈지만 내 생각의 우물은 항상 해가 지고 난 이후에야 자신에게 글이라는 두레박이 드리워 지는 것을 허락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야 난 내 생각을 내면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일까? 어쩌면 단순히 습관일 수도 있다. 낮에는 밖을 돌아다니고 밤이되어야 집에 돌아와 키보드에 손을 얹게 되는..그런 습관의 결과.

뭐, 어느것이든 그 이유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침이라기엔 조금 늦고 낮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인간이 만든 규칙에 의하면 11시 30분이라는 굉장히 자주 말해지는 시간 단위로 설명할 수도 이겠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는 이르고 무엇보다는 늦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게 좀더 덜 어색한 그런 시간이다.

어제 밤에도 그런 휘발성 기억을 상당히 떠올렸고 오늘 아침이 되자 어제 어떤 생각을 했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손가락을 통해서 펼쳐지지는 않는다. 다행이라고 할까? 그다지 밝은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남과 해본적은 아무래도 없는 듯 하니까. 난 어떤 생각이 들때 단순히 그 생각이 아니라 그걸 글로 옮길때 적절히 표현이 될만한 표현들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머리속으로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학교오는 길에 문득 삼각김밥이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들려 김밥을 사들고 나오면서 껍질을 벗겼을때 그 김밥은 양념장이 김밥의 포장을 벗기는 반대쪽이 아닌 벗기는 쪽에 있었다. 지금껏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아마도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는순간 머리속에서는,

‘당연할 거라 기대한 일이 어긋날때, 비록 그 사실 자체가 지극히 사소하고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지 기대가 어긋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받는 느낌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느낌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혹은 그 느낌을 잡아내지 못할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기대를 멋지게 벗어난 이 삼각김밥의 형태에 대해 굉장히 미약하고 짧지만 당혹스러움과 어떻게 먹는게 보다 효율적이느냐-김이 양념장을 덮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는 대책에 대해 고민했다. 정도의 자이는 있을 수 있지만 난 이런 감정을 배신감 이라 정의한다’

라는 생각을 한다. 다행이 이 생각이 머리속에 남아있는 동안에 학교에 도착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다지 틀리지 않고 옮길 수 있었다. 물론 저런 단어들이 머리속에 글을 쓰듯 차례로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이쯤에서 난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글을 쓸때 충분히 단어로 연상될 만큼의 형이하학적 영상으로 머리속을 스쳐간다. 그래서 생각이 드는 시간은 불과 몇초지만 글로 쓸때는 몇페이지에 걸쳐서 쓸 수 있다. 문제는 이 생각들이 대단히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들고 한시간정도만 지나도 내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는 기억에 남지만 글로 옮길때 필요한 그 무언가는 사라지고 난 후다. 그럴때 나는 큰 실망과 함께 키보드를 옆으로 치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생각이 주로 머리속을 휘감는 밤시간에 나는 그 생각들을 글로 옮길 수 없고 그래서 아침에 학교에 오고나면 대부분을 잃고 만다는 사실이다. 어제는 책상에 앉아 직접 손으로 옮겨볼까도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머리속을 스쳐서 지나가는 생각의 속도를 볼펜을 움직이는 손가락의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올지 가능하다면 내 말하는 속도와 그다지 차이가 없는 타이핑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 기타 어떤 방법으로도 그 생각의 속도를 쫓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새 글을 쓰기 시작한지 15분이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오랜시간 글을 써본게 얼마만인지.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는 생각에 그래도 흐뭇하다. 대부분의 글에서 난 표현을 찾기 위해 고민하느니 대충 표현이 떠오르는대로 써버리고 마니까.

창밖은 이제 완전히 젖어 있고 일요일답게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다. 지금 자연대 앞은 온전히 바람과 비의 세상이다. 창문 너머에서 이렇게 그들의 파티를 바라보는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에게 이 멋진 풍경을 선물해준 하늘이 오늘따라 무척 고맙다.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아들 생일

내 방 책상 앞에는 달력이 하나 걸려있다.

올 초에 집에서 가져온 달력인데 집에서 가져오던 날 어머니께서 집안의 행사들과 어른들의 생신등을 표시해서 주신 덕에 여기저기에 동그라미와 함께 이런저런 말들이 적혀있다.

평소에 달력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자주 본다기 보다 거의 보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정도의 비중이라면 맞는 말일까? 워낙 집에 있는 시간이 짧은 탓도 있지만 날짜 보다는 요일로 시간을 따지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 답게 나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요일로 느낀다.

오늘은 월요일...오늘은 수요일..오늘은 토요일..

어쩌면 직장인들보다도 학생들이 더 요일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각 요일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드는 “시간표” 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생에게 1년은 7일일까? 1년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인식하는 시간단위의 핵심이 7일 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겠지.

그런 이유로 어느날 문득 달력을 바라보면 한달전인 경우는 물론이고 가끔씩 두달전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문제는 그걸 보고도 그저 피식 웃고는 넘어간다는 것. 오늘 아침의 내방 달력은 4월이었다. 어째서 4월일까를 고민하다가 중간고사때 날짜를 따져보느라고 달력을 자주 쳐다봤던 일이 기억났다. 아하, 그랬구나. 뜻밖의 사실을 알았을때의 유쾌함. :-)

그렇게 지난 시간에 잡혀 있는 달력을 들어서 묵은 시간들을 뜯어 냈다. 그러고 보니 5월달에도 집안 어른들 생신이 몇번 있었다. 내가 굳이 챙겨드릴 필요는 없는 분들이라 집에서도 별 말씀이 없으셨겠지만. 재밌는 사실은 분명 그런 메모를 남기신 분은 어머니인데 쓴사람은 나인것 처럼 되어 있다. ‘외숙모 생신’ 이라던가, ‘작은아빠 생신’ 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풋. 난 ‘아빠’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지 꽤 오래 됐는데. 어머니께는 아직도 내가 아빠, 엄마 할때의 모습으로 남아있나 보다.

그렇게 달력을 보면서 또 한차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건, 6월 10일에는 동그라미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들 생일’.

아마 당신께서도 인식하지 못하셨을거다. 애써 내 입장에서의 호칭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적어나가시다가 내 생일에 이르러서는 그런 생각에 앞서 아들생일 이란 단어가 앞서서 튀어 나오셨겠지. 나한테 아들이 있을리 없으니까. :-)

2002년 6월 10일.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맞이하는 8번째 생일이다.

2002년 6월 8일 토요일

6시간의 청주행,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야간버스

별안간 하게된 약속이긴 했지만 단비와의 생일파티 약속이 오늘이었다. 학교에서 볼일을 모두 마치고 저녁때쯤 도착하게 시간을 맞춰 터미널에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꼭 1주일만의 청주행인가.

조용한 파티를 원한다는 말에 다른 사람들도 부르지 않고 둘이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바에가서 쥬스와 술을 한잔씩 마셨다. 누군가와 차분하게 둘이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몇시간을 즐겁게 보낸게 얼마만의 일인가. 다른 이들과 편안한, 그리고 조용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본게 무척이나 옛날 일인듯 싶다.

이야기를 하던중에 버니니아 울프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들어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와 표현력에 동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주위 사람중 하나가 바로 단비였기 때문일까. 일전에 나를 절망하게 했던 일, 바로 글로는 순간을 표현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보기좋게 깨뜨려 버린 작가. 오히려 너무나 잘 표현을 했기에 글속의 인물을 내 자신의 가상인격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글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정도의 표현력. 그런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서로의 감탄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일면 즐거운 일이 아닐까.

2시 반에 청주행 버스에 몸을 실어 8시 반 동서울행 버스에 다시 탔으니 정확하게 6시간을 청주에서 보낸 셈인가? 아니, 청주에 있었던 시간은 4시부터 8시 반까지니 4시간 반을 있었던 것이 된다. 즐거운 ‘나들이’ 라고 할만한 시간 아닌가. 겨울답게 돌아오는 버스는 어둠속을 달렸다. 불이꺼진 버스 안에서 어두운 고속도로를 바라본게 얼마전 일인가. 기억이 맞다면 지선이를 만나러 포항에 다녀왔던게 마지막인것 같다. 그게 벌써 반년전 일이 되어가고 있는건가...

[의외의 공간에서 시간은 정해진 규칙보다 빨리 흐르는 듯 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어둠속을 달리는 버스는 기묘한 속도감을 준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속을 질주하는 어떤 가상의 물체와 같은 느낌 이랄까. 미처 어둠속에 주위를 스쳐가는 도로주변 풍경에 신경을 쓸 틈을 주지 않는다. 그때문일까? 야간버스를 탈때마다 상념에 빠져드는 것은.
감정과 현실이라...

인정할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그 두가지를 소재로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아직은 좀더 시간과 고민이 필요할 듯 싶다.

2002년 4월 28일 일요일

비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은 카트리지 형식의 제품이다.즉, 미리 잉크가 채워져 있는 잉크 카트리지를 마치 캡슐 삽입하듯이 만년필에 삽입해서 사용한다. 잉크병에 만년필 끝을 넣어서 잉크를 빨아들여 사용하는 약간은 고전적인 만년필과는 다르다면 다른 그런 제품이다.

어제 한참 사용을 하다 잉크가 떨어졌다. 원래 들어있던 카트리지가 작긴 했지만 이처럼 빨리 잉크를 다 사용할줄은 몰랐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일이지만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만년필의 중심부를 양쪽으로 돌려서 분리해 냈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텅 비어있는 카트리지. 분명 그동안 조금씩 내부의 잉크가 줄어들어 갔겠지만 처음 넣을때 이후에는 한번도 열어본적 없기 때문에 내게는 꽉차있던 잉크가 어느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고 투명한 재질의 카트리지만 남아있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손으로 잡아 뽑자 마치 곤충이 벗어놓은 허물이 떨어져 나오듯 빈 카트리지가 떨어져 나왔다.

길이 3센티미터, 두께 5~7밀리미터.

사실 이렇게 비어버린 필기구의 소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얼마전까지도 많이 사용하던 볼펜들 중 볼펜의 잉크를 이처럼 투명한 재질에 담아서 내놓는 것들이 많았으며 이중에서도 볼펜의 겉 케이스는 불투명 하고 잉크를 담는 심은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어느순간 다 쓴 볼펜을 열어보면 가늘고 긴, 투명한 심을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을때의 상실감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야말로,

[비어있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지독한 상실감까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와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했을까? 늘상 볼 수 있는 작은 사건, 필기구의 잉크가 다 떨어져 버렸다는 작은 사건일 뿐일텐데.

아마 난 그 잉크 카트리지의 두께로 인해 내부에 있던 무엇인가가 비어버렸다는 느낌을 극도로 많이 받은것 아닌가 싶다. 가는 볼펜심이 아닌, 무언가를 담아 놓았던 것이 분명하게 생긴 비어버린 잉크 카트리지의 형태로 인해. 그때문에 비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버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담겨있던 무엇인가가 비었다는 것은 상실이다. 상실감이란 것은 항상 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혹은 사람)이 사라졌을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사라질 것(혹은 사람)이 사라졌을 때도 찾아온다. 물론 서로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벽을보고 잠드는 것과 천장을 보고 잠드는 것과의 차이와 같이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결국엔 이처럼 잉크가 다 소모되서 비어버린 카트리지를 버리는 일에도 익숙해 지겠지? 아무런 상실감 없이.

비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

어제부터 계속 온 세상이 황사에 뒤덮여 있다.

2002년 4월 27일 토요일

4월 이야기

지독히도 몰아치던 황사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었던 4월이 어느새 끝나간다. 오늘은 4월 27일이고 4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몇년만에 걸려보는 지독한 목감기로 이틀정도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가 어제 밤부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해서 오늘 점심때까지 이불을 뒤집에 쓰고 있어서인지 지금은 어느정도 나아졌다. 아직도 목이 따끔거리긴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고. 지금은 학교에서 꿀차를 마시고 있다. 시험기간에 체력 보강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마시기 시작했지만 정작 시험기간에는 그다지 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냥 맛있어서 계속 마시고 있다. 시험이라고 해도 평소와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일관했던 만큼 특별히 체력을 더 소모하고 말고의 건덕지도 없었으니까.

누군가를 인정 한다는 것은 언뜻 좋은 해석을 가져오기 쉽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누군가가 어떻다 라고 ‘인정’ 한다는 것은 바로 그사람은 그렇다 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격이나 행동, 특성에 대해 단정지어 버리는 것 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변한다는 사실에 대한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는 사람..그것도 젊은 사람에 대한 단정이야 말로 그사람에 대한 가혹하리만치 잔인한 대처일 것이다. 그러한 단정을 받아버리는 것으로 인해 내 행동이 제약을 받는 것은 불을보듯 명확한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늘 단정을 내려 버린다. ‘저사람은 참 착해.’ 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사람이 스스로를 착하다고 인정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착하지 못하게 행동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 순전히 자기 자신만의 기대요 단정이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대해 단정을 내리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의 기대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그 사람이 나에대해 실망하든 화를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모를 말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행동에 있어서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속박이 된다.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어른들이 들으라는 듯이 “아유..착하기도 해라” 라는 식으로 얼르는 것이 그런 한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별히 반항 이라는 것이 심성에 자리잡기 이전의 어린아이 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어른 앞에서는 착하게 행동하려 하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난 누군가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한건 불과 몇개월 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본 것과 판단에 의거해 이렇다 저렇다 참 많은 단정을 내렸었다.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하지만 틀렸었다. 난 틀렸던 것이다. 결코 그렇게 단정을 내려선 안되는 거였다. 그리고 어제밤 난 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단정. 자기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때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그로인한 단정이야 말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 놀라움에 난 어제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냉수를 몇잔 벌컥벌컥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들중 상당수는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생각, ‘난 이래’, ‘난 원래 이란 사람이야’ 라는 식의 생각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려 하고 행동의 판단이 서지 않을 경우에 자신도 모르게 참조하게 된다. 실로, 누구도 그렇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속박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나서 지난 내 행동들과 납득이 가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돌이켜 보았다. 전부 다 라고 말할수는 없었지만 상당수가 납득을 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의 행동에 대한 원인은 스스로에 대한 단정.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생각하려 하자 상당부분을 납득할 수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해온 자기암시와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자기암시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질줄은 나역시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암시. 물론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행동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경우라면 나쁘다는 말을 거기에 붙여도 무리가 될 것은 없지 않을까?

약간은 무더운 날씨에 학교를 걸어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우선은 나 스스로에 대한 단정부터 철회하자. 그런것들 모두 잊고 나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들을 모두 치워 버리자 라고. 수영장에서의 수영과 바다에서의 수영이 다른점은 소요한 물에서의 수영과 달리 바다에서의 수영은 수면의 상황에 따라 몸의 균형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빠른 속도를 직진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해서 무조근 그렇게 수영하려 했다가는 옆파도를 만났을때 몸의 균형을 잃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의 속박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고자 하는 일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한단계 앞으로 나서기 위해 나한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

내 머리속을 지배해온 자기암시와 단정과 굴레들 부터 벗어 던지자.

제대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상쾌함과 자유로움이 전신을 휘감고 있다. 오늘까지 난 꿈을 꾼 것이다.

2002년 4월 17일 수요일

두 미란 오스발 에레로아

폴라리스 랩소디를 두번째 읽을때까지는 항상 율리아나 공주의 입장을 바라보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오스발의 입장에서 바라보고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율리아나 공주의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파킨스 신부가 한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주는 감동에서 벗어나고도 한참 남을만한 충격이었다.

오스발은 율리아나 공주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는 건 내가-혹은 읽는이가- 율리아나 공주의 입장에서 읽기 때문이다.

[두 미란 오스발 에레로아]

결국 다섯번째 검이 부러질때까지 이어진 율리아나 공주의 ‘독백’일 뿐이었다.

2002년 4월 6일 토요일

2시간 반 혹은 버튼 3개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은 아무래도 낯선 곳으로 간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래서 내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에 매력이 있지 않다면 무엇에 매력이 있을까.

3년만에 정동진에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의 일반화된 생각으로는 기차를 타고 역에 내려야 하겠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을 하고있는 차에 6,7시간이나 걸리는, 그것도 밤기차를 타고 갈만큼의 여유가 허락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버스를 타고 강릉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정동진에 도착했다. 예전의 그 꼬불꼬불한 대관령을 수년간의 공사를 거쳐 7개의 새로운 터널과 수많은 다리를 이용해 거의 직선으로 만들어 두었기에 서울에서 4시간은 족히 걸리던 강릉까지 직통은 2시간 반 그렇지 않고 중간중간에 서는 시외버스를 타면 3시간여가 걸릴 만큼 단축이 되어 있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단 한차례의 급커브도 없는 도로를 보면서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끔 높은 고가다리를 지날때 아래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옛길에서 그 흔적을 찾을 뿐이다.

원래가 탄광촌이었던 곳, 정동진.원래가 매마르고 척박한 곳이었던 이곳에 매마르고 척박한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찾는 사람이 나 뿐일까. 하지만 굳이 매스미디어의 힘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이제 그곳에서 석탄가루를 발견하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원래가 정동진역이 목적이 아니었던 까닭에 입장료를 내고 해변으로 내려섰다. 여름바다나 겨울바다와 달리 봄의 바다는 따뜻함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겨울바다처럼 차갑지도, 여름바다처럼 뜨겁지도 않은 백사장에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거니는 많은 연인들의 모습에서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이 아닐거라 생각이 들었다. 북적거림과 썰렁하다는 단어 사이의 `한적한’이라는 느낌에 취해 나역시 신발을 벗어들고 발목을 간지럽히는 파도와 백사장 사이의 경계를 걷고 싶었지만 목적지가 그곳이 아님을 상기하면서 그저 신발밑으로 느껴지는 모래의 사박거림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길게 늘어선 해변을 지나 자연회손에 대한 비판여론도 없지는 않다는 조각공원으로 들어섰다. 사진기를 가져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여러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겼겠지만 흐린 날씨에 지레 겁을 먹고 맨몸으로 갔기에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조각공원으로 가는 와중에 만나는 모래시계, 모래가 모두 떨어지면 정확하게 1년이 지난다는 커다란 그 시계의 모습은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조각공원의 배모양 카페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며 마신 한잔의 차, 오롯히 나있는 산길에 여러 형상들의 장승들을 늘어놓아 마치 장승들의 축제에 초대되어 가는 듯한 장승길 그리고 조각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돌에 적혀있는 여러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까지. 모두가 따뜻하게 어루만져지는 것들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흐릿한 풍경을 몇시간이나마 잊을만큼 충분하게.

나는 무엇을 찾아 정동진까지 갔는가? 그곳에 있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결코 내가 도달했던 장소에 함께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도달했다 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곳은 따뜻함이라는, 나만의 형이상학적 장소였으니까. 사람이라는 약간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서울로 오는 버스는 정확하게 2시간 반의 시간의 흐름뒤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난 그녀가 불룩하게 만들어 버린 가방과 손에 남아있는 부드러움과 그녀가 매워버린 또 한군데의, 이젠 잊혀진 상처의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내 모든 상처를 매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일까.

집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누른 전화기의 버튼 3개. 온갖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난무하는 요즘 거리를 거리 자체로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2시간 반 혹은 버튼 3개. 그 이상은 결코 아닌.

2002년 1월 25일 금요일

기억은 감정의 해석이다

아침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온통 스모그로 뒤덮여 있다. 항상 그렇지만 난 뿌옇게 변한 서울의 아침을 안개낀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희뿌연 대기는 오후까지도 지속이 되고 안개가 생길 지형이라고는 한강이 유일한 이런 대도시에 그런 짙은 안개가 낀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2년반동안 안개의 도시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거다. 깨끗한 공기에서 느껴지는 안개는 상쾌하다. 약간의 상쾌함과, 차가움 그리고 감각이 아닌 상상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서울의 안개, 아니 스모그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답답한 가슴뿐.

예전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답답하다고 느꼈었는데 어느새 강릉 해안의 그런 해무를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마치 여기서부터 안개 라고 주장을 하는 것 같이 검은색의 안개가 꾸역꾸역 해안가로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써야 했던게 불과 몇년전인데. 그때와 지금의 난 도대체 어떤 기억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일까? 기억하고 있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 기억을 해석하는 내 내면의 무엇인가가 변했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는 그렇게 보기 힘든 상황은 아닌 듯 하다. 분명 좋았거나 나빴던 기억 자체가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 변한것은 정말 무엇일까? 잠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눈을감고 음악에 생각의 흐름을 맡겨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변한것은 그 대상에, 그 기억하고 있던 사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감정은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경험한 시간들의 길이에 의해 변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사실들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감정에 의해 과거를 그리워 하고, 미소짓고, 대상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마지막으로 잊어간다. 비록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감정의 변화 순서는 제각각 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같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라도 기억을 돌이키는 시간대의 내 감정에 따라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나 혹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려 해도 감정과 기억 모두가(엄밀하게 말하면 감정이 기억을 변화시키는 것이니 감정이라고 해야 하겠지 만) 한쪽으로 흐르는 이상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혹은 거스르면서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비참해진다. 나만 그런것은 분명 아닐것. 나를 기억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현재 감정에 의해 과거의 날 자신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하고 판단한 뒤 증오하고 사랑하고 또 잊어갈테니. 슬픈일은 아니다. 스스로가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와 우리가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재단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사실에 대한 인정일 뿐이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돌려서 좋게 표현한다. 무엇이 이성적인 판단이란 말인가. 고작해야 감정으로 인한 변화에서 수반되는 찌꺼기일 뿐인것을.

...

차한잔과 함께 즐기던 사유의 시간에 취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고 있었다. 이젠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점. 기억이 어떻든, 감정이 어떻든.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성을 한번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더이상 감정과 기억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성으로 기억을 잘라내 버릴 수 있다. 원망도 사랑도 필요없다. 그런것들은 모두 마음의 평온과는 거리가 있는 것. 학교에 가면서 음악을 듣고 싶다. 학교 아침방송이 끝나기 전에 어서 집을 나서야 겠다. 이렇게 뿌연 스모그가 온세상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고 해도 소리는 우리에게 찾아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