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6일 화요일

월동준비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학교에서 실험을 하다 끝내 엉뚱하게 나와버리는 데이타를 원망하며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세미나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도와 같이 포스터를 붙였고 1시간정도 짬을 내서 이번 세미나때 발표하게 된 후배에게 몇가지 내 아는바를 알려주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6시 30분.

약속이 있어 대학로를 간다는 후배를 지하철 역에서 떠나 보내고 집으로 오는길이 어찌나 춥던지. 미처 월동 준비를 못한 탓에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춥게 느끼는 것 같다. 문득 98년 겨울이었나..11월쯤에 썼던 시가 생각난다.

잘 말린 단풍잎 하나,그리고 감기약 몇알.
월동준비 끝.

아마 제목이 월동준비 였던 것 같다. 그때 적어두었던 시모음 파일을 잃어버려서 이젠 대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이녀석은 짧기도 했거니와 유난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썼던 녀석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 겨울은 슬픈 계절인듯 싶다. 좋지 않았던 최초의 기억은 어디부터였더라.. 아마도 94년 겨울부터였던 것 같다. 뭐, 엄밀히 따지면 매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는게 인상이 강하게 남은일을 기억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손해 본것을 더 확실하게 기억하는 특징이 있는 터라 아마 나도 좋지 않았던 일들을 기억에 남겨 두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좋지 않았던 일을 더 기억에 남겨 두는 성격인지도.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날과 그 전후로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로 밖으로의 나들이를 피하도록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안에만 있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까닭에 오늘의 이 추위는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아직은 우습다면 우스울수 있는 자존심에 겨울 파카를 입고 다닐 수는 없고 그저 약간 두꺼운 남방과 마이 한벌로 날씨를 견디고 있다. 어서 12월이 되서 파카를 입어도 부자연스러울 것 하나 없는 날씨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날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방에서 바깥 풍경을 보면, 참 따뜻해 보인다. 사람의 생각이란게 어찌나 간사한지. 아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탓이겠지만 볼에도 약간의 열이 오르고 있고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는 듯해 두텁게 입은 옷 덕분에 상당히 따뜻한게 지금의 내 상태다. 그렇다고 해도 바깥 사람들이 따뜻하지 않은건 당연한 사실일진데, 그걸 알면서도 내 눈에는 따뜻하게 보인다. 단 한가지 문제라면, 방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는 것.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있어서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날 약간은 방해하더라도 웃어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잠들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잠들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 혼자의 망상은 아닐것이다. 무척 따뜻할 것 같은데. :)

며칠전에 과일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둔 덕에 며칠간 원없이 과일을 먹고 있다. 이 과일들을 술안주로 날려 버리지 않는 내가 어찌나 기특한지. 오늘 저녁은 사과 한알을 먹고 잠들어야 겠다. 감기에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올 겨울에는 꼭 동해를 가볼 생각이다. 가서 겨울산을 지나는 기차 안에서 밖을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