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6일 금요일

뒤바뀐 고향

(2001년도에 쓴 글을 옮겨 놓은 것)

며칠간의 짧은 청주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로 학교에 들려 몇가지 볼일을 보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을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며칠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아 너저분한 술병들과 쓰레기들. 그렇지만 그와 함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 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청주에 가고싶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 때가 있었다. 1995년도...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 그랬다. 그런식으로 무작정 수업까지 빼먹고 평일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황당해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난 그러한 마음의 고향이 뒤바뀌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건 아마도 하숙집이 아닌 내 방이 생긴 이후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중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뀐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방에는 컴퓨터의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이란.

이 편안함 때문에 난 항상 술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걸까. 지금 스피커에선 Air on the “G” string 이 흐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 하나.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

자기 기만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흘러가는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소중해 하는가?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가?
나는 행동하고 싶어서 행동하는가?

...

나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가?

어리석은 고민. 즐겁게 걸음을 내딛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게 바로 춤인 것을.


168통의 편지 그리고 우표 한장

오늘 정말 오랜만에 학부때 친구를 만났다. 한 4,5개월만인것 같았다. 마침 휴가라며 찾아온 녀석과 같이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담소하던 중에 그녀석이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편지 정리를 하던중에 보니 내가 보낸 편지가 참 많더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그녀석이 휴학하면서 문득 군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서는 앞으로 편지를 자주 쓸테니까 답장 안하면 가만 안둔다고 협박했던 일 이후로 참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두배는 더 많은 편지를 보냈던게 분명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와서는 편지함을 꺼내서 군에 있을때 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30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편지 저편지 골라봤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다 읽을수가 없어서 그냥 몇통이나 왔는지 수만 세어봤다. 모두 다해서 168통. 군에 있는 30개월동안 내게 찾아온 편지의 통수가 모두 168통이었다. 한달에 평균 5.6통씩 받았으니까 일주일에 대략 1.4통, 그러니까 2주마다 3통씩의 편지는 받은 셈이다. 이정도면 제법 많이 받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이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하긴 제대하고 2년 반이 지나도록 받은 편지가 10통이 안되는걸 보면 상당히 많이 편지를 받았던 시기인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왜이리 편지가 안오는지 참 기다려 했었는데. :)

그때는 편지를 쓸때 참 공들여서 썼다. 어차피 그때도 행정병이란 신분상 손으로 쓰기보다 워드로 쳐서 보내는 편지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내용을 쓸때는 참 공들여서 썼다. 단어 하나를 선택할때도 이생각 저생각 해서 쓰고. 어쩌면 그것은 우표 한장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170원하는 그 우표가 그때는 왜그리 귀했는지. 170원이라는 그 돈의 가치때문에 편지 한통을 보낼때 최대한 공을 들여서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메일때문에 점점 메일 하나를 쓸때 기울이는 노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편지는 거의가 A4로 3페이지 정도 된다고 했다. 글자 크기나 기타 편집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용만 해서 3페이지. 잠시 갸웃했다. 그렇게나 할말이 많았나...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많은 내용들을 담아서 여러차례 보낸 편지들이 왜 내 기억속에는 무슨 내용을 썼었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건지. 돌이켜 보면 그녀석에게만 그렇게 길게 쓴게 아니라 그때 편지를 보낼때는 최소한 프린터에서 두장씩 이상씩 뽑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보냈던 편지를 모두 복사해서 도로 받을수만 있다면 참 재미있을 텐데. 편지를 도로 돌려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그에게 보낸 내 추억이고 그에게 도착한 그의 추억이니까 내가 원한다고 돌려받아서도 안되고 그가 원한다고 돌려 줄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예전에 보낸 편지들이 무언가 날 기대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일수도.
어느덧 난 편지를 쓰는것에 인색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뿐이 아닌 다른이들 모두가. 편한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모니터로 보는 편지와 종이에 씌여 날아오는 편지는 엄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향기가 있다고나 할까?

편지...

오늘부터는 한번 다시금 예전의 나로 돌아가 봐야겠다. 손으로 편지를 쓰고자 하면 세월아 네월아일테니 어쩔 수 없이 워드로 치긴 하지만, 우표 한장과 함께 찾아들어 바스락 거리는 느낌을 주며 상대방을 즐겁게 해줄 그런 편지를 써야겠다.

아울러 편지를 들고 우체국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만큼 두툼한...그런 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