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5일 목요일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서 참 여러가지를 해봤다.

살갗을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에 한동안 샤워를 하고 다시 찬물에 몸을 식히기를 수차례. 마치 고온 사우나에 다녀온것처럼 피부가 발갛게 달아 올라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옷을 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표면상으로는 쇼핑을 하러 간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다지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물건 사는데 문외한이라 혼자서는 어지간하면 쇼핑을 가지 않는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볼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밖을 나가고 싶었다는 것 뿐인것 같다.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다. 얼마만에 즐겨보는 혼자만의 오락인가.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조종해서 싸움을 하고, 스피커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발판을 밟고, 미친듯이 드럼의 스틱을 두드려도 봤다. 그리고 신발 가게에 들려 운동화를 사고 며칠전에 지선이에게 편지를 쓴다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 꾸겨 버리는 바람에 모두 소모해 버린 편지지를 대신하기 위해서 모닝 글로리에서 편지지를 샀다. 그럭저럭 표면상으로 계획했던 ‘쇼핑’이라는 단어에는 충실했을까?

날씨는 참 좋은 저녁이었던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니 어쩌면 약간은 추운 날씨였는지도 모르지만(겨울이니까) 며칠전의 그 매서운 추위에 비하면 이제 겨울은 모두 끝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날씨였다. 오히려 약간은 상쾌한 기분이 드는 날씨였을까?

집에와서 방청소를 하고 며칠째 흐트러져 있는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오늘 오후에 도착한 메일들의 첨부물들을 프린터로 출력하면서 차를 한잔 마셨다. 처음엔 녹차를 마시고자 했지만 왠지 평소와 다른것이 마시고 싶어서 찬장을 뒤져 예전에 집에서 가져온 인삼차 티백을 찾아냈다. 그다지 고급차는 아니어서 맛은 없었지만 평소와 다른 맛이라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기쁜 법이다. 그것이 정말로 싫은 맛이 아니라면.

지금은 Ennio Morricone의 영화 Mission OST를 틀어놓고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커다란 성당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그다지 성실한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성당의 그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항상 내게 안도감을 준다. 지난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이라고 묻는다면 그다지 할말은 없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특별히 어떻다..라고 딱부러지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그때는 그러한 상황에 어찌할줄을 몰라 우왕좌왕 했다면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그런걸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어렵다. “난 어떤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난 어떤 사람이었구나”라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말처럼 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제대로된 길을 가고 있는가? 엄청난 혼란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 속마음과 내 행동들은 과연 그길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지만 내 자신이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바래왔지만 나역시 자신의 그런 이중성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두렵다는 감정.
난 그 두렵다는 감정에 항상 시달려 왔다. 남들앞에서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없다고 비난받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하고자 하는일이 행여나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난 내가 누구에게 기댈수조차 없었다. 그가 내 기대를 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의 난 그러한 두려움들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나 있는가? 대답은 슬프게도 “No”이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난 공포 영화가 싫다. 다른 사람들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 영화안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오히려 쾌감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공포 영화는 내 안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인식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난 원래 이렇게 겁이 많은 녀석이야..’라는 인식. 어째서 난 그런 두려움이란 감정에 그렇게 민감한 것일까. 왜 항상 내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는 가면을 쓴 그런 얼굴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나보고 바르게 산다는 후배들과 동기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외친다. 아니라고.. 난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만 아무도 납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 편하게 해주지 못하고 따라서 내 마음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말 잠깐이나마 내 마음속의 그런 감정을 알고 보듬어 준 친구가 몇명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명은 이성이었기에 사랑에 빠졌었고, 그중 한명은 동성이었기에 지금껏 정말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맹목적인 사랑의 댓가로 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 더 얻었다. 그리고 요즘의 내 마음 고생은 그러한 두려움의 결과이다.

만일 내 안에 숨어있는 그런 감정을 내가 인정하면 난 편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조차도 난 두렵다. 만일 내가 그렇게 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만을 생각하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칠테니까. 그리고 내 자신의 그런 감정에 솔직하고자 노력을 해왔던 지난 5,6년동안 난 수없이 많은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

차라리 옛날로 돌아갈까? 남에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대신 상처도 받지 않는.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마음을 남에게 열어서 내게 돌아온 이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상처 투성이가 되었을뿐. 정말...정말로 옛날로 돌아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어떻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저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 진실되게 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내가 상처받지 않는쪽으로,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하지 말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면 되는 것일까? 예전의 난 정말 그랬던가? 만일 그랬다면 언제까지 그래왔을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그저그런 마음상태. 지금은 이 편안한 상황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렇게 이루어 질거라는 조금은 아이같은 기대를 해본다. 지금 흐르는 곡은 River. 마치 무엇의 ending곡 같은 음악이다.

2001년 2월 4일 일요일

환기를 시키다

무엇인가 귀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나는 정확하게 구분해 낼 수 없다. 마치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저 소리는 무엇인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후에 나는 내가 잠에 취해 있고 그것은 내 전화기의 알람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 인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몸을 돌리려는데 마치 복싱 선수에게 전신을 두드려 맞은듯이 전신이 쑤셔왔다. 힘겹게 몸을 돌리고 눈을 뜨니 이미 창밖은 환하게 밝아 오고난 후였다. 내 알람은 6시에 울도록 되어 있을텐데 벌써 하루가 이렇게 빨라졌는가 의아하던 난 시계를 보고선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난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밤사이 몸부림을 치면서 잤는지 이불은 뒤집혀 있고 나는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인가? 그래서 이렇게 온몸이 쑤시고 아픈걸까? 꿈에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떠올릴수 있다면 좋으련만 남아있는 것은 통증 뿐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얼굴을 수차례 비비고 난 후에 난 오늘이 일요일이고, 따라서 밖으로 외출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떠올릴수 있었다. 왜이렇게 오늘따라 아침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인지. 굳이 지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일요일인데. 하지만 난 마치 무엇에라도 쫓기듯이 억지로 내가 해야할 일들을 기억해 냈다. ‘오늘 해두면 나중에 쉴수 있어’라는 이유를 붙이면서까지.

어제밤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게 나질 않는다. 전화를 끊고나서 침대에 기대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기억이 불분명 하니까. 그럭저럭 잘 잠이 든 것 같다. 요즘 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앉아 있다가 아침해를 맞이한 적이 여러번 되기 때문에 푹 잠을 자고난 다음날이면 기분이 좋다.

일어나서는 습관처럼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로 전신을 한참 뒤덮고 나니 쿡쿡 쑤시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하다. 간만에 아침을 먹자는 생각에 쌀을 씻으려다 어제 쇼핑하러 나갔다가 쌀을 사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쌀통을 기울여 보니 한끼 분량의 밥은 지을 수 있을것 같아 톡톡 털어서 밥솥에 쏟아 부어 버렸다. 밥을 먹고나서 쌀을 산다는 핑계로 나갔다 올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일까?

그렇게 주섬주섬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난 후 지금은 창문과 방문을 모두 활짝 열어 두었다. 왼편으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방안의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후에는 문을 반쯤 지쳐 주어야 겠다. 아무래도 예의 없다는 말을 듣는것은 싫으니까.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불어준다. 창에서 들어와 문쪽으로 제법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마치 밤동안 방안에 갇혀 있었던 나쁜 공기를 몰아내기라도 하듯이. 방 공기가 차가와 지니 기분은 무척 상쾌하다. 문득 자연향이 나는 방향제라도 하나 구입해서 둘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 생활비가 넉넉한 편은 아니니 포기해야 겠다. 어쨌든 쌀을 사고나면 그런 여유를 부릴만큼 통장의 잔액이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방안의 공기가 제법 환기가 된것 같다. 기분이 무척 좋다. 이렇게 공기를 바꾸듯 내 생활도 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흐르는 바람은 정지한 바람(그것을 바람 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보다 좋다. 일전에 사랑은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움켜쥐려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도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저 한명에게 시원함과 상쾌함을 주고 다시 다른사람에게로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음...그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어차피 그 바람에게 미련이 있지 않는한 사람들은 시원함만을 필요로 하지 바람 자체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테니까. 2001년이고 2월 4일이다. 동아리 후배가 입대한다고 동아리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사람들은 모두 바람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