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6일 화요일

월동준비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학교에서 실험을 하다 끝내 엉뚱하게 나와버리는 데이타를 원망하며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세미나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도와 같이 포스터를 붙였고 1시간정도 짬을 내서 이번 세미나때 발표하게 된 후배에게 몇가지 내 아는바를 알려주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6시 30분.

약속이 있어 대학로를 간다는 후배를 지하철 역에서 떠나 보내고 집으로 오는길이 어찌나 춥던지. 미처 월동 준비를 못한 탓에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춥게 느끼는 것 같다. 문득 98년 겨울이었나..11월쯤에 썼던 시가 생각난다.

잘 말린 단풍잎 하나,그리고 감기약 몇알.
월동준비 끝.

아마 제목이 월동준비 였던 것 같다. 그때 적어두었던 시모음 파일을 잃어버려서 이젠 대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이녀석은 짧기도 했거니와 유난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썼던 녀석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 겨울은 슬픈 계절인듯 싶다. 좋지 않았던 최초의 기억은 어디부터였더라.. 아마도 94년 겨울부터였던 것 같다. 뭐, 엄밀히 따지면 매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는게 인상이 강하게 남은일을 기억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손해 본것을 더 확실하게 기억하는 특징이 있는 터라 아마 나도 좋지 않았던 일들을 기억에 남겨 두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좋지 않았던 일을 더 기억에 남겨 두는 성격인지도.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날과 그 전후로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로 밖으로의 나들이를 피하도록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안에만 있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까닭에 오늘의 이 추위는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아직은 우습다면 우스울수 있는 자존심에 겨울 파카를 입고 다닐 수는 없고 그저 약간 두꺼운 남방과 마이 한벌로 날씨를 견디고 있다. 어서 12월이 되서 파카를 입어도 부자연스러울 것 하나 없는 날씨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날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방에서 바깥 풍경을 보면, 참 따뜻해 보인다. 사람의 생각이란게 어찌나 간사한지. 아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탓이겠지만 볼에도 약간의 열이 오르고 있고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는 듯해 두텁게 입은 옷 덕분에 상당히 따뜻한게 지금의 내 상태다. 그렇다고 해도 바깥 사람들이 따뜻하지 않은건 당연한 사실일진데, 그걸 알면서도 내 눈에는 따뜻하게 보인다. 단 한가지 문제라면, 방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는 것.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있어서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날 약간은 방해하더라도 웃어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잠들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잠들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 혼자의 망상은 아닐것이다. 무척 따뜻할 것 같은데. :)

며칠전에 과일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둔 덕에 며칠간 원없이 과일을 먹고 있다. 이 과일들을 술안주로 날려 버리지 않는 내가 어찌나 기특한지. 오늘 저녁은 사과 한알을 먹고 잠들어야 겠다. 감기에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올 겨울에는 꼭 동해를 가볼 생각이다. 가서 겨울산을 지나는 기차 안에서 밖을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

2001년 9월 16일 일요일

폭풍의 언덕

워더링 하이츠...

그 열병같고, 바보같은 사랑 이야기.

2001년 7월 6일 금요일

너트메그와 너그메트

태엽감는 새를 두번째 읽던날, 나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의 이름이 가하사라 메이 가 아니라 가사하라 메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종종 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내가 발음하기 편한 식으로 바꿔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나타날 때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어 버리고 잘못된 이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태엽감는 새를 십여차례도 더 읽었을 무렵에 그것도 세번째 권을 읽다가 나는 또다른 등장 인물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카사카 너그메트 가 아니라 아카사카 너트메그 라는 것을.

난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알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마치 내가 전에 읽을 때에는 분명 너그메트 였는데 이후 누군가가 교묘하게 너트메그로 바꿔 버린 것 같은 이 느낌.

새벽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2001년 6월 4일 월요일

잠,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4일째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기고 있다. 언제 알람이 울었는지, 언제부터 창문 밖에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소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잠에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깊이 잠든 것이며 그때문에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좀 다른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지만 그것은 분명, 잠이 덜 깨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여느 아침의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난 순간적으로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는데 무언가 찝찝하게 끈끈한 것이 낸 몸 전체에 늘어 붙어서 날 뒤쪽으로 잡아 당기고 있다. 그리고 미간에는 술을 마신 다음날 내쉰 숨 같은 것이 덩어리로 뭉쳐서 늘어붙어 있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찝찝함은 그 미간의 덩어리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의 느낌이다.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미간의 그 느낌이나 온몸의 끈끈함에 몸을 맏기면 그대로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이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야 날 다시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 낼 수 있다. 그 한두시간은 그야말로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로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뒹구는 잠이 아닌 모든 의식이 배제된 상태이다. 즉, 나는 내가 잠이 들려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두번째인가 세번째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때 필사의 노력을 해서 몸에서 그 끈끈함들을 떨쳐 버리고 미간의 덩어리를 밖으로 뜯어내고 나면 난 완벽한 무기력에 휩쌓여 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할 힘조차 없는 그런 완벽한 무기력이다.

그렇게 맞이한 4일째 아침.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헤매게 만드는 것일까. 그 원인모를 느낌에 사로잡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바뀐 것이라면 방이 무척 지저분해 졌다는 것과 목캔디 한통을 거의다 먹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목캔디? 그러고 보니 목캔디가 몇개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지난 4일동안 수십개의 목캔디를 먹었단 소리인가?

마음같아선 이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의 경계면에서 좀더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 이제까지 난 단 한번도 ‘무의식’이란 단어에 신경써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세상은 날 그렇게 두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해야할’일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아침...사실 이미 10시가 넘어 버렸기에 아침이라고 하기엔 좀 뭣한 시간이 되었지만 어쨌든 이 ‘아침’부터 잠시 이 무의식에 대한 탐닉을 잠시 꺼두려 한다.(그것이 가능할지는 자신없지만) 그리고 좀더 긴 시간이..나 혼자만의 긴 시간이 주어졌을때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번 빠져들어 봐야 겠다.

수업을 위해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목요일...벌써 목요일인가. 이번주는 정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린 느낌이다.

2001년 5월 6일 일요일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스발을 사랑하게 된 율리아나 공주가 파킨스 신부에게 물어본 말이다. 거기에 대해 파킨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고.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가?”

다만 살아가기는 하는게 사람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만족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게 바로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만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 삶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

가능할것도 같다. 앞을 보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한 사랑도 제법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난?
지나치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에따른 공포도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벨로린은 현재를 모두 알 수 있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공포도 느껴야 했지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추가로 느껴야 하는 법이다.

난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2001년 4월 6일 금요일

뒤바뀐 고향

(2001년도에 쓴 글을 옮겨 놓은 것)

며칠간의 짧은 청주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로 학교에 들려 몇가지 볼일을 보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을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며칠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아 너저분한 술병들과 쓰레기들. 그렇지만 그와 함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 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청주에 가고싶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 때가 있었다. 1995년도...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 그랬다. 그런식으로 무작정 수업까지 빼먹고 평일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황당해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난 그러한 마음의 고향이 뒤바뀌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건 아마도 하숙집이 아닌 내 방이 생긴 이후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중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뀐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방에는 컴퓨터의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이란.

이 편안함 때문에 난 항상 술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걸까. 지금 스피커에선 Air on the “G” string 이 흐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 하나.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

자기 기만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흘러가는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소중해 하는가?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가?
나는 행동하고 싶어서 행동하는가?

...

나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가?

어리석은 고민. 즐겁게 걸음을 내딛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게 바로 춤인 것을.


168통의 편지 그리고 우표 한장

오늘 정말 오랜만에 학부때 친구를 만났다. 한 4,5개월만인것 같았다. 마침 휴가라며 찾아온 녀석과 같이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담소하던 중에 그녀석이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편지 정리를 하던중에 보니 내가 보낸 편지가 참 많더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그녀석이 휴학하면서 문득 군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서는 앞으로 편지를 자주 쓸테니까 답장 안하면 가만 안둔다고 협박했던 일 이후로 참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두배는 더 많은 편지를 보냈던게 분명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와서는 편지함을 꺼내서 군에 있을때 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30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편지 저편지 골라봤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다 읽을수가 없어서 그냥 몇통이나 왔는지 수만 세어봤다. 모두 다해서 168통. 군에 있는 30개월동안 내게 찾아온 편지의 통수가 모두 168통이었다. 한달에 평균 5.6통씩 받았으니까 일주일에 대략 1.4통, 그러니까 2주마다 3통씩의 편지는 받은 셈이다. 이정도면 제법 많이 받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이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하긴 제대하고 2년 반이 지나도록 받은 편지가 10통이 안되는걸 보면 상당히 많이 편지를 받았던 시기인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왜이리 편지가 안오는지 참 기다려 했었는데. :)

그때는 편지를 쓸때 참 공들여서 썼다. 어차피 그때도 행정병이란 신분상 손으로 쓰기보다 워드로 쳐서 보내는 편지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내용을 쓸때는 참 공들여서 썼다. 단어 하나를 선택할때도 이생각 저생각 해서 쓰고. 어쩌면 그것은 우표 한장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170원하는 그 우표가 그때는 왜그리 귀했는지. 170원이라는 그 돈의 가치때문에 편지 한통을 보낼때 최대한 공을 들여서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메일때문에 점점 메일 하나를 쓸때 기울이는 노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편지는 거의가 A4로 3페이지 정도 된다고 했다. 글자 크기나 기타 편집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용만 해서 3페이지. 잠시 갸웃했다. 그렇게나 할말이 많았나...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많은 내용들을 담아서 여러차례 보낸 편지들이 왜 내 기억속에는 무슨 내용을 썼었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건지. 돌이켜 보면 그녀석에게만 그렇게 길게 쓴게 아니라 그때 편지를 보낼때는 최소한 프린터에서 두장씩 이상씩 뽑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보냈던 편지를 모두 복사해서 도로 받을수만 있다면 참 재미있을 텐데. 편지를 도로 돌려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그에게 보낸 내 추억이고 그에게 도착한 그의 추억이니까 내가 원한다고 돌려받아서도 안되고 그가 원한다고 돌려 줄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예전에 보낸 편지들이 무언가 날 기대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일수도.
어느덧 난 편지를 쓰는것에 인색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뿐이 아닌 다른이들 모두가. 편한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모니터로 보는 편지와 종이에 씌여 날아오는 편지는 엄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향기가 있다고나 할까?

편지...

오늘부터는 한번 다시금 예전의 나로 돌아가 봐야겠다. 손으로 편지를 쓰고자 하면 세월아 네월아일테니 어쩔 수 없이 워드로 치긴 하지만, 우표 한장과 함께 찾아들어 바스락 거리는 느낌을 주며 상대방을 즐겁게 해줄 그런 편지를 써야겠다.

아울러 편지를 들고 우체국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만큼 두툼한...그런 편지를. :)

2001년 2월 15일 목요일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서 참 여러가지를 해봤다.

살갗을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에 한동안 샤워를 하고 다시 찬물에 몸을 식히기를 수차례. 마치 고온 사우나에 다녀온것처럼 피부가 발갛게 달아 올라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옷을 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표면상으로는 쇼핑을 하러 간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다지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물건 사는데 문외한이라 혼자서는 어지간하면 쇼핑을 가지 않는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볼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밖을 나가고 싶었다는 것 뿐인것 같다.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다. 얼마만에 즐겨보는 혼자만의 오락인가.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조종해서 싸움을 하고, 스피커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발판을 밟고, 미친듯이 드럼의 스틱을 두드려도 봤다. 그리고 신발 가게에 들려 운동화를 사고 며칠전에 지선이에게 편지를 쓴다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 꾸겨 버리는 바람에 모두 소모해 버린 편지지를 대신하기 위해서 모닝 글로리에서 편지지를 샀다. 그럭저럭 표면상으로 계획했던 ‘쇼핑’이라는 단어에는 충실했을까?

날씨는 참 좋은 저녁이었던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니 어쩌면 약간은 추운 날씨였는지도 모르지만(겨울이니까) 며칠전의 그 매서운 추위에 비하면 이제 겨울은 모두 끝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날씨였다. 오히려 약간은 상쾌한 기분이 드는 날씨였을까?

집에와서 방청소를 하고 며칠째 흐트러져 있는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오늘 오후에 도착한 메일들의 첨부물들을 프린터로 출력하면서 차를 한잔 마셨다. 처음엔 녹차를 마시고자 했지만 왠지 평소와 다른것이 마시고 싶어서 찬장을 뒤져 예전에 집에서 가져온 인삼차 티백을 찾아냈다. 그다지 고급차는 아니어서 맛은 없었지만 평소와 다른 맛이라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기쁜 법이다. 그것이 정말로 싫은 맛이 아니라면.

지금은 Ennio Morricone의 영화 Mission OST를 틀어놓고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커다란 성당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그다지 성실한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성당의 그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항상 내게 안도감을 준다. 지난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이라고 묻는다면 그다지 할말은 없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특별히 어떻다..라고 딱부러지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그때는 그러한 상황에 어찌할줄을 몰라 우왕좌왕 했다면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그런걸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어렵다. “난 어떤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난 어떤 사람이었구나”라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말처럼 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제대로된 길을 가고 있는가? 엄청난 혼란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 속마음과 내 행동들은 과연 그길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지만 내 자신이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바래왔지만 나역시 자신의 그런 이중성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두렵다는 감정.
난 그 두렵다는 감정에 항상 시달려 왔다. 남들앞에서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없다고 비난받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하고자 하는일이 행여나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난 내가 누구에게 기댈수조차 없었다. 그가 내 기대를 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의 난 그러한 두려움들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나 있는가? 대답은 슬프게도 “No”이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난 공포 영화가 싫다. 다른 사람들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 영화안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오히려 쾌감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공포 영화는 내 안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인식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난 원래 이렇게 겁이 많은 녀석이야..’라는 인식. 어째서 난 그런 두려움이란 감정에 그렇게 민감한 것일까. 왜 항상 내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는 가면을 쓴 그런 얼굴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나보고 바르게 산다는 후배들과 동기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외친다. 아니라고.. 난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만 아무도 납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 편하게 해주지 못하고 따라서 내 마음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말 잠깐이나마 내 마음속의 그런 감정을 알고 보듬어 준 친구가 몇명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명은 이성이었기에 사랑에 빠졌었고, 그중 한명은 동성이었기에 지금껏 정말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맹목적인 사랑의 댓가로 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 더 얻었다. 그리고 요즘의 내 마음 고생은 그러한 두려움의 결과이다.

만일 내 안에 숨어있는 그런 감정을 내가 인정하면 난 편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조차도 난 두렵다. 만일 내가 그렇게 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만을 생각하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칠테니까. 그리고 내 자신의 그런 감정에 솔직하고자 노력을 해왔던 지난 5,6년동안 난 수없이 많은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

차라리 옛날로 돌아갈까? 남에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대신 상처도 받지 않는.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마음을 남에게 열어서 내게 돌아온 이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상처 투성이가 되었을뿐. 정말...정말로 옛날로 돌아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어떻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저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 진실되게 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내가 상처받지 않는쪽으로,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하지 말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면 되는 것일까? 예전의 난 정말 그랬던가? 만일 그랬다면 언제까지 그래왔을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그저그런 마음상태. 지금은 이 편안한 상황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렇게 이루어 질거라는 조금은 아이같은 기대를 해본다. 지금 흐르는 곡은 River. 마치 무엇의 ending곡 같은 음악이다.

2001년 2월 4일 일요일

환기를 시키다

무엇인가 귀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나는 정확하게 구분해 낼 수 없다. 마치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저 소리는 무엇인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후에 나는 내가 잠에 취해 있고 그것은 내 전화기의 알람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 인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몸을 돌리려는데 마치 복싱 선수에게 전신을 두드려 맞은듯이 전신이 쑤셔왔다. 힘겹게 몸을 돌리고 눈을 뜨니 이미 창밖은 환하게 밝아 오고난 후였다. 내 알람은 6시에 울도록 되어 있을텐데 벌써 하루가 이렇게 빨라졌는가 의아하던 난 시계를 보고선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난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밤사이 몸부림을 치면서 잤는지 이불은 뒤집혀 있고 나는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인가? 그래서 이렇게 온몸이 쑤시고 아픈걸까? 꿈에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떠올릴수 있다면 좋으련만 남아있는 것은 통증 뿐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얼굴을 수차례 비비고 난 후에 난 오늘이 일요일이고, 따라서 밖으로 외출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떠올릴수 있었다. 왜이렇게 오늘따라 아침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인지. 굳이 지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일요일인데. 하지만 난 마치 무엇에라도 쫓기듯이 억지로 내가 해야할 일들을 기억해 냈다. ‘오늘 해두면 나중에 쉴수 있어’라는 이유를 붙이면서까지.

어제밤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게 나질 않는다. 전화를 끊고나서 침대에 기대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기억이 불분명 하니까. 그럭저럭 잘 잠이 든 것 같다. 요즘 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앉아 있다가 아침해를 맞이한 적이 여러번 되기 때문에 푹 잠을 자고난 다음날이면 기분이 좋다.

일어나서는 습관처럼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로 전신을 한참 뒤덮고 나니 쿡쿡 쑤시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하다. 간만에 아침을 먹자는 생각에 쌀을 씻으려다 어제 쇼핑하러 나갔다가 쌀을 사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쌀통을 기울여 보니 한끼 분량의 밥은 지을 수 있을것 같아 톡톡 털어서 밥솥에 쏟아 부어 버렸다. 밥을 먹고나서 쌀을 산다는 핑계로 나갔다 올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일까?

그렇게 주섬주섬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난 후 지금은 창문과 방문을 모두 활짝 열어 두었다. 왼편으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방안의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후에는 문을 반쯤 지쳐 주어야 겠다. 아무래도 예의 없다는 말을 듣는것은 싫으니까.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불어준다. 창에서 들어와 문쪽으로 제법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마치 밤동안 방안에 갇혀 있었던 나쁜 공기를 몰아내기라도 하듯이. 방 공기가 차가와 지니 기분은 무척 상쾌하다. 문득 자연향이 나는 방향제라도 하나 구입해서 둘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 생활비가 넉넉한 편은 아니니 포기해야 겠다. 어쨌든 쌀을 사고나면 그런 여유를 부릴만큼 통장의 잔액이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방안의 공기가 제법 환기가 된것 같다. 기분이 무척 좋다. 이렇게 공기를 바꾸듯 내 생활도 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흐르는 바람은 정지한 바람(그것을 바람 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보다 좋다. 일전에 사랑은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움켜쥐려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도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저 한명에게 시원함과 상쾌함을 주고 다시 다른사람에게로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음...그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어차피 그 바람에게 미련이 있지 않는한 사람들은 시원함만을 필요로 하지 바람 자체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테니까. 2001년이고 2월 4일이다. 동아리 후배가 입대한다고 동아리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사람들은 모두 바람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