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6일 일요일

Sonate Clair de lune

이미 청력을 잃어 버리기 시작한 베토벤이 피아노에 직접 볼을 대고 그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작곡한 피아노곡. 듣고 있을 수록 우울해 지는 이 기분은 그에대한 내 마음의 공명 현상일까. 짙은 푸른색은 우울함을 상징하던가.아무런 우울함도 없이 그저, 이젠 단 한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는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이시간까지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피아노 곡은 반복되고 있다.

마치 건반에 손이 늘어 붙듯이 치는 그의 주법.

건반에서 손을 떼기 싫어하는, 음악과 소리에 대한 그의 미련을, 슬픔을, 그리고 그 곡의 연주가 끝나기 전에 잃어버린 그의 사랑을...그는 이렇게 소리를 통해 울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기억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러한 슬픔은 비켜갈 수 있을까.

짙은 푸른색의 슬픔.

영화 Le Grand Bleu 가 생각난다.


2000년 2월 3일 목요일

Faith

'유난히'란 단어는 이럴때를 두고 하는 소리일까? 잃어보린 Kenny G 의 Cristmas edition CD에 대한 애착과 생각이 유난히 많이 나던 이번달. 결국 같은 CD를 사기 위해 음반점의 문을 열고 말았다. 하지만 너무나 옛날 곡이라서 두군데의 음반점을 들렸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의 망설임 뒤에 점원이 권해준 Faith CD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곡을 따라가보면 그다지 선곡에 있어서 차이는 없는 CD인듯 했다. 하지만 역시 '대신'이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 그리고 깊이가 더해지는 안타까움. 차가운 공기를 방안으로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일요일 밤이어서일까...차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를 않는다. 시내에는 지금쯤 캐롤송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겠지? 저 멀리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인다. 거의 1km는 떨어진 것 같은 이곳까지 저렇게 커다랗게 보일 정도면 얼마나 큰걸까?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을까?

CD는 계속 조용하면서 즐거운 색스폰 소리를 방안에 흘려 보내고 있고 내 커피 메이커는 조금씩 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잔' 분량의 물만 넣었으니 빨리 끓는게 당연하겠지. 뭔지 모를 아쉬움에 항상 커피를 끓일때는 두잔 이상의 분량을 끓이곤 했는데 오늘은 딱 한잔만을 끓였다. 왜 난 항상 커피를 끓일때면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끓이게 되는건지. 생각이 자꾸 나래를 펴고 날아오르려 하는 것 같다. 이대로 생각의 흐름에 몸을 싣고 흘러도 되는걸까...

방안을 크리스마스 트리로 꾸며볼까? 하지만 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또 무엇을 할까. 날 위해서? 우스운 이야기다. 자신을 위해서 옷이나 신발을 사는 것조차 아끼는 녀석이 바로 나인데. 얼마전에 후배에게서 내가 참 재미없게 산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은 혼자서 살면 정말로 재밌게 살거라면서.

맞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재미없게 해놓고 산다. 책상하나, 침대 하나. 책장 하나. 컴퓨터 하나...등등 그 흔한 라디오나 TV조차도 없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구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커다란 CD플레이어 로 사용하는 것이 고작일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시점일뿐 나 자신의 주관으로는 그다지 재미없게 해놓고 사는건 아닌듯 하다.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혼자사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즐거움이고 원하는데로 꾸미는 것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혼자서 커왔던 나에게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미련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집이 피아노 학원이었기에 조용함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그래서인것 같다. 내 방이 TV등도 없고...처음오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연하게 끓여서인지 커피가 그다지 맛이 없다. 한잔을 끓이면서도 결국 난 여러잔 끓일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혼자서 남은 커피를 모두 마셔야 하기 때문에 항상 연하게 끓여서 마시던 그 습관을.
...
왜 슬프지?
...
집에서 내년 달력을 하나 가져왔다. 음악가들의 모습이 박힌 달력. 첫장은 내가 좋아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모습이 들어있다.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서 어머니께 달라고 해서 가져오긴 했지만 덕분에 내 방은 좌우로 색의 대비가 되어 버렸다. 들어오면서 우측에는 책상과 달력, 왼쪽에는 컴퓨터/컴퓨터 책상, 냉장고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모두 검은색이고 왼쪽에 있는 것들은 모두 흰색이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것은 아니건만 그렇게 됐다.
지금 스피커에서는 'O Christmas tree'가 흘러 나오고 있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곡. 하긴 지금 상태에서 이이상 차분해질 기분같은건 어디에도 없지만. 초등학교때 이 곡을 '소나무'라는 제목으로 배웠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제목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잠시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살 수는 없을까? 정지된 시간속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해도 왠지 억지를 쓰면 그렇게 될 것도 같다. 정지된 시간속에서의 삶. 예전에 본 어느 영화에서처럼 하루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세상만이 정지되어 있고 난 다른 곳에서 자유를 즐기는 것.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니 사고로 잃어버린 이전 게시판에서도 난 이와 비슷한 글을 쓴 것 같다. 아무도 날 아는이 없는 곳에서의 새로운 삶. 외로울까? 서태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라며 혼자서 피식 웃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그는 그 삶을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런 삶을 계속 영위하는 것은 그도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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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커피잔을 들고 창가로 가서 창밖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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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올해가 끝났으면....